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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02(월) ◈ 역대상 2:1-55 다말과 무명의 사람들, 은혜로 생명의 계보에 참여하다.
2:1 이스라엘의 아들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2:2 단과 요셉과 베냐민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다.
2:3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과 셀라이며, 이 셋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유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주님께서 그를 죽이셨다.
2:4 유다의 며느리 다말과 유다 사이에서는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났다. 유다의 아들은 모두 다섯이다.
2:5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다.
2:6 세라의 아들은 시므리와 에단과 헤만과 갈골과 다라로서, 모두 다섯이다.
2:7 가르미의 아들은 아갈인데, 그는 하나님께 전멸시켜 바쳐야 하는 물건 때문에 범죄하여 이스라엘을 고통에 빠뜨린 자다.
2:8 에단의 아들은 아사랴이다.
2:9 헤스론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이다.
2:10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유다 자손의 지도자 나손을 낳고,
2:11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고,
2:12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다.
2:13 이새는 그의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 아비나답과 셋째 시므아와
2:14 넷째 느다넬과 다섯째 랏대와
2:15 여섯째 오셈과 일곱째 다윗을 낳았다.
2:16 이들의 누이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다.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이렇게 셋이다.
2:17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는데, 아마사의 아버지는 이스마엘 사람 예델이다.
2:18 헤스론의 아들 갈렙은 그의 아내 아수바와 여리옷에게서 아들을 낳았다. 아수바가 낳은 아들은 예셀과 소밥과 아르돈이다.
2:19 아수바가 죽자, 갈렙은 또 에브랏과 결혼하였고, 에브랏과 갈렙 사이에서는 훌이 태어났다.
2:20 훌은 우리를 낳고, 우리는 브살렐을 낳았다.
2:21 그 뒤에 헤스론은 예순 살에 길르앗의 아버지 마길의 딸에게로 가서, 그와 결혼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스굽이 태어났다.
2:22 스굽은 야일을 낳았다. 야일은 길르앗 지방의 성읍 스물세 개를 차지하였다.
2:23 그러나 그술과 아람이, 그낫과 그 주변의 성읍 예순 개와 야일의 마을을, 그들에게서 빼앗았다. 이들은 모두 길르앗의 아버지 마길의 자손이다.
2:24 헤스론이 갈렙 에브라다에서 죽은 뒤에, 그의 아내 아비야는 그의 아들, 드고아의 아버지 아스훌을 낳았다.
2:25 헤스론의 맏아들 여라므엘의 아들은 맏아들 람과, 그 아래로 브나와 오렌과 오셈과 아히야이다.
2:26 여라므엘에게 또 다른 아내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아다라이며, 오남의 어머니이다.
2:27 여라므엘의 맏아들 람의 아들은 마아스와 야민과 에겔이다.
2:28 오남의 아들은 삼매와 야다이며, 삼매의 아들은 나답과 아비술이다.
2:29 아비술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하일이며, 아비술과의 사이에서 아반과 몰릿을 낳았다.
2:30 나답의 아들은 셀렛과 압바임이며, 셀렛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다.
2:31 압바임의 아들은 이시이고, 이시의 아들은 세산이고, 세산의 아들은 알래이다.
2:32 삼매의 아우 야다의 아들은 예델과 요나단이며, 예델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다.
2:33 요나단의 아들은 벨렛과 사사이다. 이들이 여라므엘의 자손이다.
2:34 세산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다. 세산에게는 이집트 사람인 종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야르하이다.
2:35 세산이 그의 종 야르하에게 자기 딸을 결혼시켰고, 그들 사이에서 앗대가 태어났다.
2:36 앗대는 나단을 낳고, 나단은 사밧을 낳았다.
2:37 사밧은 에블랄을 낳고, 에블랄은 오벳을 낳았다.
2:38 오벳은 예후를 낳고, 예후는 아사랴를 낳았다.
2:39 아사랴는 헬레스를 낳고, 헬레스는 엘르아사를 낳았다.
2:40 엘르아사는 시스매를 낳고, 시스매는 살룸을 낳았다.
2:41 살룸은 여가먀를 낳고, 여가먀는 엘리사마를 낳았다.
2:42 여라므엘의 아우 갈렙의 맏아들은 메사이며, 그는 십의 아버지이고, 그의 아들은 마레사이며, 헤브론의 아버지이다.
2:43 헤브론의 아들은 고라와 답부아와 레겜과 세마이다.
2:44 세마는 요르그암의 아버지 라함을 낳고, 레겜은 삼매를 낳았다.
2:45 삼매의 아들은 마온이며, 마온은 벳술의 아버지이다.
2:46 갈렙의 첩 에바는 하란과 모사와 가세스를 낳고, 하란도 가세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2:47 (야대의 아들은 레겜과 요담과 게산과 벨렛과 에바와 사압이다.)
2:48 갈렙의 첩 마아가는 세벨과 디르하나를 낳고,
2:49 또 맛만나의 아버지 사압을 낳고, 또 막베나와 기브아의 아버지 스와를 낳았다. 갈렙에게는 악사라는 딸도 있었다.
2:50 갈렙의 자손은, 곧 에브라다의 맏아들 훌의 아들인 기럇여아림의 아버지 소발과,
2:51 베들레헴의 아버지 살마와, 벳가델의 아버지 하렙이다.
2:52 기럇여아림의 아버지 소발의 자손은 하로에와 므누홋 족의 절반이니,
2:53 기럇여아림 족은 이델 족과 붓 족과 수맛 족과 미스라 족이다. (이들에게서 소라 족과 에스다올 족이 나왔다.)
2:54 살마의 자손은 베들레헴과 느도바 족과 아다롯벳요압과 마하낫 족의 절반과 소라 족이다.
2:55 (야베스에 사는 서기관 족은 디랏 족과 시므앗 족과 수갓 족이며, 이들이 레갑 가문의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족이다.)
◈ 주해: 성령님의 조명
1. 역대기가 9장에 걸쳐 족보를 기록하는 이유는 바벨론에서 70년 만에 돌아온 백성들에게 정체성의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1) 당연이 이스라엘 백성이고 하나님을 믿는 정체성 정도는 가지고 있다.
2) 막연한 정체성으로는 다윗왕조는 사라지고 페르시아의 속국으로 주변 나라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 하나님과 언약관계 안에 거하는 것은 어렵다.
3) 우리도 그리스도인이라는 희미한 정체성으로는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손해다”라는 세상을 이기며 생명으로 살기는 힘들다.
2. 족보의 시작은 아담인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확인시킨다.
1) 세상의 영웅 니므롯의 활동에 이어서 연약하지만 하늘의 복을 받은 아브라함이 나온다.
2) 역대기 기자는 의도적으로 야곱 대신에 “이스라엘”로 소개한다.
3) 야곱은 자신을 “야곱 즉 속이는 자”로 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자”로 보신다.
4) 역대기 기자는 귀환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보는 관점으로 자신을 보고 구속사의 관점으로 공동체를 보라고 한다.
3.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디 소속인가,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정체성”이다.
1) 로마서 7-8장의 말씀처럼, 내가 나를 보면 곤고하고 정죄받는 자이지만, 주님의 눈으로 보고, 복음이 준 은혜를 믿으면 생명과 평안이 있다.
4. 2장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이룬 12 아들의 이름부터 나온다.
1)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12족장들 훌륭한 사람들이 아니다.
2) 고린도 전서 1장에서 바울은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고 하였다. 강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불렀는데, 그 이유는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이라고 하셨다.
3) 성도는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은혜로 의롭게 되었고, 은혜 입은 자의 태도는 겸손, 즉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랑(찬양)하는 것이다.
5. 그리스도가 오시는 유다 지파가 소개되는데, 유다의 훌륭함이 아니라, 유다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는다.
1) 유다의 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여 여호와께서 죽이셨다. 오난도 다르지 않다.
2) 생명의 계보는 유다와 유다의 며느리 사이에서 태어난 베레스를 통해 이어진다.
6. 시아버지 유다로부터 베레스를 낳은 다말은 도덕적으로는 “부끄러운 여인”이나 생명의 계보에 참여하기 원했던 “믿음의 여인”이기도 하다.
1) 그녀는 유다의 장남과 결혼함으로 생명의 계보에 참여할 위치에 있었으나 그의 남편과 시동생은 악하였다. 심지어 유다도 그에게 생명의 계보에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2) 그녀는 죽을 각오와 조롱과 멸시를 감수하며 생명의 계보에 참여하기를 선택했다.
3) 시아버지의 아들을 낳고자 함으로 화형에 처할뻔한 다말은 죽음 대신 생명의 계보에 들어간다.
- 물론 그녀는 도덕적 비난을 받았을 것이고, 세상 즐거움을 많이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4) 유다는 다말의 행위에 대하여 적절하게 말했다.
창 38:26 유다는 그 물건들을 알아보았다.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나의 아들 셀라를 그 아이와 결혼시켰어야 했는데" 하고 말하였다. 유다는 그 뒤로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7. 그리스도가 오는 다윗의 가문이 나온다.
1) 본문에는 없으나 살롬은 여리고에 살던 이방여인 라합을 통해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이방 여인 룻을 통해 오벳을 낳았다.
2) 자격이 없으나 믿음으로 순종한 여인들이 생명의 계보에 참여하고 이들을 통해 주님은 오셨다.
3) 다윗은 7번째 아들이다. 다윗이 마땅히 자격 있는 자가 아니었음을 말한다.
4) 족보에 나타난 이름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연약하고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심을 보이신다.
5) 이런 족보는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 족보와 역사는 귀환하였으나 연약한 백성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었을 것이다.
8. 2장 1-17절에 언급된 사람들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1) 한편 18-55에 언급된 헤스론의 자손들은 다른 곳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2) 우리는 무명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나 주님은 무명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 왜냐하면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는 자를 가장 높이시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다.
- 물론 무명한 것이 겸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명함이 괜찮은 자가 겸손한 자다.
3) 브살렐(20): 성막 건축을 할 때 지도한 기술자였다(출 31:2)
9. 우리는 역사를 지켜온 사람들, 믿음을 전수시킨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1)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떠오르고, 그들에게 연약함이 있지만 우리의 기준으로는 대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와 동일한 사람들, 심지어 우리보다 연약한 사람들도 생명의 계보에 참여하게 하시고, 믿음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신다.
3) 이방인들이 다윗의 계보에, 유다의 계보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와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10. 바벨론에서 70년을 사는 동안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결혼하는 가정도 있었을 것이다.
1) 작게는 바벨론 문화에 어느 정도 동화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2) 이런 저런 이유로 “내가 언약 백성의 자격이 있는가”를 의심하며 낙심할 수도 있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족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 때문에 믿음의 계보에 참여하는 언약백성이 된다고 하신다.
4) 믿음의 용사만이 아니라, 부끄러운 자, 이름없는 자도 은혜로 택하셨다고 말씀하신다.
5) 그러므로 생명을 누리는 언약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어떠함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의 지배 아래에 거해야 한다(롬 5:20-21).
11. 마지막 절인 55절에는 특이하게 “서기관 종족”이라는 사람들이 나온다.
1) 이들은 성경을 기록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2) 언약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역사 속에서도 말씀을 기록하고 가르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3) 서기관 종족도 바벨론에서 다시 귀환한 백성들에게는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4) 우리가 말씀을 사랑하고 나누는 것은 말씀을 떠나는 세대에서 “서기관 종족”이 되는 것이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12. 족보는 지루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을 한 눈에 보게 한다.
1) 생명으로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 자격이 없지만 믿음으로 생명의 계보에 참여한 사람들, 당연히 생명의 계보에 들어갈 것 같지만 탈락한 사람들, 크게 쓰임 받은 사람, 은사대로 쓰임 받은 사람, 무명으로 쓰임 받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2)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알게 한다.
3) 이 다양한 부류들 중에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를 보여주며, 내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 나의 묵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면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비참함은 십자가 사랑의 크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생명으로 나아감을 힘들게 한다. 그런데 이 족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택하심을 본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에는 관심이 가지 않아서 자세히 읽지도 못했는데, 그곳에 내가 있음을 본다. 하나님의 백성의 족보, 그리스도가 오시는 계보의 족보에 훌륭한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자격 없는 자, 연약한 자들이 더 많다. 야곱의 12아들을 택하심부터 은혜다.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 이 몸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한다는 말은 참으로 옳다. 이 옳은 말씀으로 인하여 자격 없는 자들은 늘 움추려져 있고, 사실은 정죄를 당한다. 늘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를 묵상하기에, 나는 내가 나의 비참함과 어두운 그림자를 이렇게 정죄하는지 알지 못하였다. 바리새인에 해당하는 맏아들이 죄인에 해당하는 탕자를 얼마나 정죄하였는지를 알게 된다. 왜 맏아들이 탕자를 기뻐하는 잔치를 거절했는지 말이다. 내 안에는 옳음을 추구하는 바리새인과 허랑방탕하는 탕지(그림자)가 공존한다. 그리로 내 안의 바리새인은 내 안의 탕자를 정죄하고 경멸한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내 안의 탕자를 용납하시고 사랑하시고 심지어 기뻐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그렇게 혼났던 내 안의 바리새인도 사랑하시고 품어주신다. 맏아들과 탕자와 함께 있는 아버지는 “참된 아들, 빛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하지 않으신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사실은 역겨운 모습 그대로를 사랑으로 바라보시며 품어주신다. 언젠가 참된 아들이 되는 것은 아버지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함이리라.
육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생명에 계보에 들어가려면 합당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속인다. 그러나 오늘 족보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죄가 더한 곳에 더욱 은혜를 넘치게 하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그 은혜로 생명의 계보에 참여한다.
다말은 시아버지를 비롯하여, 그 수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경멸을 어떻게 감당하고 베레스를 낳았을까? 인간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치를 안고 생명의 계보에 들어간 다말의 용기를 본다. 다말은 가장 비참한 자로서 복음을 통하여 생명에 거한다. 그러기에 모두가 다말을 손가락질해도 나는 다말의 용기를 본받아 복음으로 나아간다. 주님은 다말 같은 나에게 다말의 믿음과 생명에 참여함을 보라고 하신다. 그리고 다말처럼 생명의 길을 가라고 하신다. 내 안의 바리새인은 다말 같은 나를 조롱할지라도 주님만은 십자가에서 달려와 나를 맞이하여 주신다. 그러기에 있는 모습 그대로, 상한 모습 그대로, 경멸받아 마땅한 모습 그대로 십자가로 나아가 그 보혈과 그 사랑을 의지한다. 그리고 그 크신 사랑에 잠긴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고 품으시는 그 놀라운 사랑을 찬양한다.
◈ 묵상 기도
주님, 인정받고 칭찬받는 자로서 주님과 연합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말과 같은 자입니다. 그래도 다말은 생명의 길을 갔습니다.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고, 수천 년이 지나도 다말을 비방하는 소리는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말은 조롱과 멸시보다 생명의 계보에 참여하는 뻔뻔한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모두가 다말을 꺼리지만 주님만은 다말을 품고 사랑하여 생명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이름을 아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제 안의 바리새인도, 제 안의 탕자도 모두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아버지 품 안에서 참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화목하게 하여 주십시오. 저의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통합되어, 영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6월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의와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부어 주십시오. 대통령 선거에도 주님의 주권이 임하게 하옵소서. 미움과 분노와 분열이 가득한 정치에 주님의 사랑과 공의와 은혜가 임하게 하옵소서. 정치인들 위에서 역사하시는 주님, 이 나라를 섭리로 이끄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게 하시고, 의견과 주장이 달라도, 이 나라가 하나되며 겸손한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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