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癸亥일
정인 왕, 편인 록지
수평선이 잔뜩 부풀어 올라 성난 파도를 밀어내는 대진 바닷가에서
김밥에 오뎅국으로 조찬을 하고 5일장이 열린 영해 시장엘 갔다.
흔히 전통 풍수에서는 산의 형태를 오행으로 분류한다.
이를 테면 水體의 산은 물이 흘러가는 모양이고
火體의 산은 불꽃처럼 끝이 뾰족뾰족하다는 식이다.
영해는 주산이 책상처럼 평평한 토체 산이라 토를 상징하는 후천수 5와 10이 장날이 되었다.
각설하고
면 소재지에서 열리는 5일장으론 대표선수 급이라는 영해 만세시장은
평소 개점휴업 분위기에서 돌변, 인파로 북적였다.
영해를 드나든 이후로 가장 많은 인구를 한 자리에서 본 듯하다.
일단 커피 리어커에서 천 원짜리 달달이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시장 구경에 나섰는데
한 골목을 다 둘러보기도 전에 지름신이 나투사 지갑이 마구 열리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작은 풍로에서 구워내 제대로 딱 벌어진 노오란 군밤,
달고 꼬순 콩고물을 막 무쳐낸 쑥 절편, 팥순이를 그냥 보내지 않는 새알 팥죽,
1+1 단팥빵, 바닷내 진한 미역귀, 옹골찬 사과와 두 알 더 덤으로 넣어준 토마토까지...
사실 열무김치며 김치 등속도 사야했는데 주전부리에 눈이 뒤집힌 덕분에
이미 장바구니는 차고 넘치고 있었다.
더 봉지를 들 손도 없는데 설상가상 눈 앞에선 막 튀긴 강냉이가 쏟아지고...
아, 머리에 이고서라도 한 봉지 사가야 하는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살림하는 여자라면 문어, 백합 같은 특산품 어패류에 꽂혔겠지만
나는 주전부리에 홀려 오늘도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장터에서도 길치의 능력은 십분 발휘됐다.
들어는 가지만 절대 출구는 못 찾고 한번 지나간 곳은 결코 다시 찾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늘 포기와 대체가 빠르다.
가다보면 길들은 다 일가친척으로 연결되고, 좀 돌아가면 될 뿐...
아무 문제없지 않은가. 뭐 그러고 만다.
오후엔 책상 삼을 조립식 탁자가 배송되었다.
선생님이 손수 퐁퐁으로 세척해서 새 것으로 만든 의자로 구색을 갖췄다.
박일우 선생의 개운법을 보면 공부하는 학생의 책상은 천살 방향이어야 두뇌가 맑아진다고 하고
공부방 문이 장성살 방향이면 효과가 반감된다고 적혀있다.
신자진에게 천살은 未, 서남간이다.
그런데 내가 책상을 놓고자하는 자리는 잠잘 때 머리를 둬야하는 반안살 방향이었다.
거기다 문도 북쪽 장성살 방향으로 열려있다. 개운법의 취지에선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난관봉착.
이렇게 내 책상 놓는 자리 하나도 모순에 빠지는데
풍수에 대한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야 하는 처지라니 참 대략난감이다.
오늘은 일주를 중심에 놓으면 반안살.
타인의 희생으로 부가 이익을 얻는다는 반안살 날, 애 많은 선생님이 톡톡히 희생을 치르셨다.
길눈 어둡고 방향치인 도시 촌년이 영해에서 미아가 될 뻔한 걸 구해내셨다.
다음에 어디를 혼자 가겠다하면 누구라도 말려주길 바란다.
파출소에서 나를 찾게 될지 모른다.
수년간 차를 타고 그리 자주 오갔던 길이건만 이리도 물색없을 줄이야.
아직도 뭐든 한 번에 해내는 게 없다.
오늘은 반안살과 더불어 망신살도 깨춤을 추었나 싶으다.
그렇게 또 하루가 좌충우돌 지나갔다.
첫댓글 영해 ...
산세가 참으로 수려합니다
영해시장군밤
맛있는데..맛이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