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숙경 작가의 첫 소설집 『달의 꼬리를 밟다』(푸른사상 소설선 61).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의 냉혹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춘들의 비애와 고뇌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우리 시대의 겨울 같은 존재들이 소망하는 봄 풍경을 그려내어 소외된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준다.
2024년 10월 5일 간행.
■ 작가 소개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과학기술대학에서 수학했다.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삼각조르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학비단길 회원으로 활동 중이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어머니는 잠만 주무신다. 깨어서 밥을 한 술 뜨고 곧바로 누워버린다. 어머니와 나눴던 이야기를 또 하고 싶지만 이젠 할 수 없다. 그래도 그 와중에 농담도 조금 하신다. 방구 한 방 줄까? 이리 와봐라, 하신다. 나는 다른 별로 떠나려는 어머니를 위해 기원한다. 아주 멋진 곳, 평화로운 곳에서 행복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조금 후에 나도 그곳으로 갈 것이니 기다리시기를…….
또 만나서 지금처럼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나를 낳아주셨고 길러주셨고 문학적인 감수성도 주셔서 늘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느라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우린 친구였고 동료이기도 했고 자매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스승이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 부족하지만 이 책을 드린다. 잘 쓰지는 못했지만 몰입해서 뭔가를 해냈다는 것으로, 갚음 했으면 한다. 어머니, 함께했던 시간들, 너무 좋았고 감사했습니다.
■ 추천의 글
작가 안숙경의 서사 렌즈는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존재들로 일렁인다.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고, 말하고 싶을 때 말하는 것을 선택하고 싶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인물이거나(「달의 꼬리를 밟다」), 뒷걸음을 치면서 “뒤로 물러서는 인종”(「삼각조르기」)이거나, “실의도 희망도 없는 무연”(「철갑상어의 노래」)한 캐릭터들은 한결같이 아직 겨울의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선의 다른 이름”이랄 수 있는 “명랑성”(「나의 봄」)을, 그 화창한 봄의 풍경을 추구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철갑상어의 노래」에서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종환은,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다 다른데 학교에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다른 인물들이 경험한 조직에서도 엇비슷하다. 작가는 그런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저마다의 아르테를 잘 발휘하며 저마다의 길을 활달하게 걷는 정경이, 작가가 소망하는 “명랑성”으로 충일한 봄 풍경이다. 작가는 누구나 그런 자신만의 길을 낼 수 있기를 희원하며 자기 서사 길을 열어간다.
―우찬제(문학비평가)
■ 작품 세계
여러 작품이 안 작가가 태어나고 살아온 인천을 공간 배경으로 잡고 있다. 21세기 인천이라는 도시의 그늘 속 인간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슬프게 그렸다. 문득 인천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 많은 선배와 동료 작가들과 다른 방향의 작품을 씀으로써 인천 소설의 지평을 넓힌 것은 소중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웹 소설의 등장, AI가 만들어낸 진짜 소설 같은 소설이 떠오르면서 종래의 소설은 빠른 속도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안숙경은 1년에 단편소설 한 편 정도를 써온 과작의 작가이다. 이 창작집에 실린 소설들은 그가 한순간도 시와 소설을 멀리하고 살아오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구성과 문체에서 보이는 형식미학은 물론 주제의식을 담아내는 엄숙한 태도도 엿보인다. 치열한 작가정신이 허물어져가고 있는 소설의 본령을 지키고 있는 숙명적인 파수꾼처럼 보인다.
― 이원규(소설가·전 동국대학교 교수) 발문 중에서
■ 작품 속으로
민수는 달의 한 조각을 떼어낸 것 같은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은 아마도 월미도에 함께 갔을 때 했었을 것이다. 민수는 월미도를 ‘달의 꼬리’라고 불렀다. 월미도는 지형이 반달의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고 했다. 달의 꼬리라. 달에 꼬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짐승도 아니고 그냥 달일 뿐인데. 달은 이지러졌다가 차오르고 차올랐다가 이지러지니 꼬리가 생기기도 한다고 민수는 말했다. 어쩌면 그럴 때 달의 모습이 살짝 웃는 연인의 입꼬리 같아 그곳의 사람들은 무한한 애정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민수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달의 꼬리를 밟다」, 20쪽)
내가 이층 피시방에서 전기요금을 받으러 왔다고 말하자 그녀는 실망한 낯빛이 되었다. “저 내일 가져다드리면 안 될까요.” 여자는 조용히 말하였으나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렴 그깟 전기세 떼먹을 줄 아느냐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그러라고 말하고 나가려 하자 여자가 옆으로 다가왔다. “생맥주 한 잔 드릴까요.” 난감했다. 여자의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고 술을 마실 기분도 아니었다. 게다가 여자의 얼굴이 무엇인가 낯이 익다. 어디선가 본 듯한 표정 없는 얼굴과 놀랍도록 실의도 희망도 없는 무연함. 이런 것들이 여자를 대하는 순간 묘한 흥분을 느끼는 동시에 기분 나쁜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눈은 호기심으로 빛나지만 더 이상 알 것이 없다는 자조의 빛이 섞여 있었다. (철갑상어의 노래, 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