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교실] 16. 계바라밀(戒波羅蜜)
보살행 실천위한 육바라밀의 기초
自他 선행 이끄는 대승 핵심 가르침
길고 긴 불교의 역사에서 가장 놀랍고 획기적인 사건을 하나 들라면, 우리는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 개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승불교의 흥기를 들지 않을까 싶다.
아라한이 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오로지 자신의 해탈만을 위해 수행하는 성문(聲聞)이라 불리던 기존의 수행자들과는 달리,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한없는 이타를 실현할 수 있는 붓다, 즉 깨달은 자가 될 것을 목표로 하는 위대한 보살 이념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걸어오신 길을 밟으며 나 역시 그 분처럼 최고의 깨달음을 얻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신음하는 많은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위대한 서원을 세운 보살들, 이들은 이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윤회의 삶을 거치며 수행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때 이들의 주요 실천행이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이다. 바라밀이란 빠라미따(pAramitA), 즉 저 언덕에 도달한 것, 다시 말해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붓다가 된 바로 그 실천행을 의미한다.
육바라밀 가운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계바라밀이다. 계바라밀의 내용에는 오계나 팔재계 등 초기불교 이래 설해지던 계가 모두 포함되지만, 특히 십선계가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선악의 판단 기준으로 취급되던 십선업도가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십선계라는 이름으로 왜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십선계의 내용에 마음에 관한 규정이 들어가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행동은 눈에 보이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지만,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방심할 수 있다. 따라서 내부의 마음까지 계로서 구체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다소 형식주의로 흐를 수 있는 부분을 조절하고 보다 충실하게 계의 정신을 살리고 실천할 수 있게 한 것은 아닐까.
기존의 부파승단이 율의 조문에 사로잡혀 본질보다는 형식적인 실천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에 대한 하나의 반동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계바라밀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계의 실천이 자신의 완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완성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신의 깨달음과 더불어 다른 사람의 구제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잘 담고 있다. 즉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야말로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계의 실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소품반야경」에서는‘아유월치 보살은 스스로 살생하지 않으며, 또 남으로 하여금 살생하게 하지 않는다. 스스로 도둑질하지 않고, 사음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고, 거친 말을 하지 않으며,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탐욕을 갖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삿된 견해를 갖지 않고, 또 남으로 하여금 이들을 행하도록 하지 않는다. 이 열 가지 선한 길을 늘 스스로 행하고, 또 남으로 하여금 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십선계를 설명하고 있다.
자신뿐만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선한 행위를 실천하도록 함으로써 그 사람 역시 하루 빨리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라는 대승의 가르침, 이것이야말로 현대의 재가불자가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고귀한 정신이다.
日 도쿄대 연구원
[출처 : 법보신문]
☞'계율교실' 목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