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젼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는 쉽지 않다. 시작하는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고, 우연히 틀었다가 마음에 드는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을 만나기란 더욱 흔치 않다. 그런 흔치않은 우연이 겹쳐 보게 된 영화, [와일드].
화면에 비치는 길 위의 모습이 내 눈길을 끌었다. 어디건 길은, 길 위의 걸음은 언제나 내마음을 붙든다. 영화는 길 위에서 시작해 길 위의 걸음이 끝나는 것으로 끝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 폭력 속에서도 남매를 지키며 키워 준 분신과도 같은 엄마의 암 발병과 고통스러운 투병,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죽음 이후 셰릴 스트레이드는 스스로의 삶을 포기한 듯 망가져 간다. 모든 것을 잃은 지점에서 그녀는 망가져버린 자신을 되돌아보며 엄마에게 자랑스런 딸, 그런 자기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정에 나선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을 잇는 4,285km의 Pacific Crest Trail(PCT) 도보여행 코스.
"험난하고 거친 등산로와 눈 덮인 고산 지대, 아홉개의 산맥과 사막, 광활한 평원과 화산지대"까지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자연 환경을 거치고서야 완주할 수 있다는 PCT는 완주하는 데 평균 152일이 걸리는 ‘악마의 코스’라 불린다고 한다. 워낙 난코스인데다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도 쉽지 않아서 연간 겨우 120여명 정도만이 겨우 성공하는 극한의 여정인데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고독의 공간 속으로 트래킹 경험조차 전무한 셰릴은 집채만큼 배낭을 메고 뛰어든다. 영화는 그런 셰릴의 걸음을 그대로 따라가며 여정의 사이사이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그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다.
온갖 위험과 역경이 가득했던 사투에 가까운 94일의 그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낸 셰릴, 중간중간 비치는 그녀의 고통스러운 과거, 그리고 엄마와의 추억. 그리고 고통과 대비되어 화면을 채우는 날 것 그대로 자연의 풍광. 셰릴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에 기반한 영화는 고행에 가까운 걸어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안과밖을 오롯하게 확인하는 셰릴의 자기 치유의 과정을 과장없이 보여준다.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는 자신이 걸었던 길 위의 시간을 "영적인 여정"이었다면서 그 과정을 통해 "문자 그대로 한걸음 한 걸음 내딛는 법"을 배웠다고 당시의 트래킹을 회고했다고 한다. 광활한 대자연과 함께 하는 길 위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 여정을 마친 그녀의 말. “모든 고통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받아 들일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좌절은 존재하지만 전처럼 무너지지 않고, 힘들지만 결국 이겨낼 수 있음을 알고 있기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괜찮아질 거야’라는 울림이 느껴진다."
화면 가득 담겨오는 날 것 그대로의 자연에 더해 익숙한 노래와 휘트먼과 프로스트의 시 구절이 영화 속 여정의 의미를 강렬하게 한다.
"내 안의 뭔가를 찾아야겠다 싶어서요. 잘 왔다 싶어요."
"슬픔의 황야에서 길을 잃은 뒤에야 숲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냈다."
그 여정의 끝에서 셰릴이 찾은 "진정으로 내 것인 인생", 그러나 여전히 셰릴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이젠 다른 길 위를 걷는 그녀의 삶이 있기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The Road Not Taken"과 "Stopping by Woods on as Snowy Evening" 마지막 구절이 잘 어울리는 영화.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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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화로 봤는데요. 마치 천로역정을 보는 듯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