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서러있는 ‘지세포 교항마을’
지세포는 선창, 교항, 회진, 대동, 대신, 공령, 미조라 마을이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지세포라고 하지, 마을 이름을 거명하지는 안는다. 그래서 교항이니 회진이니 이런 이름들은 생소하다. 그러나 그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해온 토박이들은 자기 마을에 대한 애착심과 추억이 서러있는 곳이다.
지세포를 수 십 번 왔다 갔으나 사실 고영화님을 알기 전에는 교항마을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고영화씨를 알고 난후 이 지역을 통과할 때는 아하 저기가 고영화씨 마을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번 거제 실버봉사단이 교항마을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제실버봉사단은 내가 중책을 맡은 것은 아니나 각 마을 별 노인회관 위문 프로그램은 내가 주관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그저 방문하여 인사말하고 밥 먹고 얘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이 지역 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이번에는 회장과 몇몇이 안마 강습소에서 교육을 받아 실전에 활용해본 결과 주민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카세트를 빌려와 흥겨운 유행가를 부르며 둥실 둥실 춤을 추는 광경이 바람직스러워 보였다.
노인회관에 15명 정도 모였으며 할머니들은 호응이 좋았다. 마을이장과 노인회장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동조하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지세포면사무소에서 직원이 왔다 갔다. 고영화씨 어머님은 신명이 있고 활동적인 분이섰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바닷가에 쓰레기를 줍거나 경로당을 방문해 선물 몇 개 주고 기념 촬영하는 형식적인 것이 대부분이나 우리 봉사단은 주민과 좀 다가가서 어울리며 잠시 나마 향수를 달래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그렇게 업그레이드 시킬 방침이다.
1. 교항마을이란 어떤 마을인가?
교항마을은 조선시대 지세진에서 가장 발달한 마을이었다. 지세포진은 바로 옆인 선창마을에 위치하고 지세진영의 무관들 일부는 교항마을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옛날에는 마을입구 어판장이 있었으며 번창했던 곳이다. 인구가 늘어나고 팽창하여 옛날 다리 건너 새로운 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 가구 수가 많이 불어나면서 회진(사림沙林)리로 분리 되었다고 한다. 선창마을쪽 추깡에서 교항마을쪽100m 쯤에 옛길에 우물과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다. 거기가 서울서 유배 온 배소지 였다고 한다. 약국집, 서당, 제재소, 신당, 무당, 경문쟁이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교항천은 예부터 회진이나 관청골(현 대신)으로 오갈 때 거쳐 가야한다. 조선초기부터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한자어로 항리(項里)라고 부르다가 임진왜란 후에 구조라진이 지세진으로 통합되면서 구조라 항리(項里, 현 구조라마을)와 구별코자 다리목(교항)으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나무다리가 생기고 부터 "다리목=대리목"(순우리말) 으로, 한자어로는 "교항"이라 표기했다.
교항마을 바다는 제법 큰 규모였으나 고현에 포로수용소가 지워질 때 이곳에서 모래를 운반해 갔고 해안길을 조성하느라 해변이 바다쪽으로 줄어들어서 지금은 작은 해변으로 변했다.
2. 샛풍이재 (새피재)--교항마을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뒷산이다.
새피재(셋풍이재)는 예전부터 억새와 피비 (표준어, 띠), 줏띠기 (진퍼리새)로 무성한 고개였다. 일운면지에 보면 1934년 일제강점기에 조림사업으로 일본소나무를 심어 억새와 피비가 없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내용 중 일본소나무란 어떤 나무인가? 내가 생각하기로는 리기다소나무이거나 삼나무일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소나 염소를 먹이는 마당터다. 그리고 교항주민들은 3월3일, 9월9일 단합대회(회치)장소이며 정월대보름 달맞이 장소로 각광받던 곳이다. 2004년부터는 이곳에서 일운면 해돋이 행사를 하고 있다.
3. 지세포봉수대 --교항마을 뒷산에 있다. 교항마을에서 20분 거리
지세포봉수대는 교항마을 뒷산인 연지봉 정상에 있다. 만든 년대는 세종3년(1457)에 축조되었으며 아마 지세포진과 연관이 있다. 이 봉수대는 해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세포성에 알리는 간봉역활이다. 현재 지세포에서 조경사업을 하는 윤종환씨의 본가가 봉수대 바로 밑이라고 하였다.
4. 사라진 미조라마을과 동백고랑
미조라는 1981년 석유비축공사 이전에 너무나 이름다운 곳이며 20여호가 살았다. 미조라 해변은 몽돌로 가득했으며, 봄이면 멸치들이 밀려오고 많은 고기들이 몰려와 교항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미조라마을 큰골은 연지등봉수대 봉화병이 거주했으며, 1981년까지 3세대가 살고 있었다. 미조라마을 동쪽 해안가에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어 동백고랑이라 하였다. 동백고랑은 몽돌이 아름답고 멸치를 비롯한 해산물이 많아 교항주민 자주 찾아오는 피서지였다.
5. 개나무골 물 맞는 곳 : 미조라에서 남족 2km지점.
7월칠석 날이면 교항주민들은 노를 저어 배를 타고 폭포 물 맞으려 이곳 개나무골까지 왔다. 폭포에 물을 맞으면 피부가 깨끗해진다고 하여 많이 찾는 곳이었다. 주민들은 취사도구를 준비하여 해초와 해삼 등을 잡아 점심밥을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 장소였다. 그러나 1981년 석유비축기지공사로 매립되어 없어졌다.
6. 현재 시설물
-일운체육공원: 와현약수터 주변에 있다. 200평규모
-효자공원: 지세포에서 와현가는 고갯길 못가서 오른쪽에 있다. 고임규 기념비
-6.25참전용사 기념비:국도변에 있다.
-샛풍이재와 지세포봉수대 : 고항마을 뒤편에
~교황마을이 옛 전통을 살려 살기 좋은 마을이 조성되기를 바래본다~
자료협찬: 향토사학자 고영화님
리장님 한 말씀
저의 마을을 찾아주셔서 반갑습니다~~~, 경로회장
감사히 먹겠습니다---주민일동
자, 몸풀기 합시다. 정면 가운데 분이 전 시의원을 한 김정자회장님
거제도 출신 가수 한동엽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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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포 사진 감상
(교항, 회진 앞바다의 조개캐는 아낙네와 고기잡이 체험
억수로 많이 잡았습니데이
거제요트와 윈드셔빙의 메카 지세포만
샛풍이재에서 바라본 지심도 전경
아름다운 미조라마을은 석유비축기지로 변했다.
지세포 마을 주변에는 탱자나무가 많은데 이는 귀양살이 때문일까?
지세포항을 지키는 큰나무 얼굴
여기가 교항마을과 선창마을의 경계점인가.
첫댓글 아이구~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의 뿌리가 있는 고향마을 봉사에 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앉아서 고향마을 구경 잘 하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잘 갔다왔슈다.
본 카페 정모는 10월중에 한번 하려고 합니다.
언제쯤이 좋을까요?
늦게 접했지만 설레는 맘이네요. 혹여 아는 분이 계실까, 살펴보았지만 많은 세월이 기억을 앗아가고 말았군요. 데리묵이라 했는데 다리목, 교항 ....잘 알아 들었습니다. 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