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얼굴
목숨의 팔만대장경 어디엔가
숨겨진 얼굴이 있다
문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얼굴,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다
행복한 순간에만 살짝 나타나는 얼굴이 있다
삶의 그늘, 찌든 계곡 속에 숨어 있다가,
해맑은 웃음 사이로 잠간 나타났다가는
가뭇없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얼의 모습
사진관에 가서 여러 컷을 찍어 보아도
그 얼의 굴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사진이란 사람을 온전히 보일 수가 없는 법,
찰나로 변해가는 어느 지점에 셔터를 누를 것인가
적중의 플래시를 터뜨릴 것인가
칠백만 화소는커녕
천만 화소를 잡아낸다는
최첨단 카메라로도 안 잡히는 얼굴,
사람의 참 얼굴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인가
앨범 속 어느 갈피에선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얼굴,
흐린 눈으로는 도무지 잡히지 않는 얼굴,
초고속 디지털 카메라로도 잡을 수가 없는,
사람에게는 술래처럼 꽁꽁 숨은 얼굴이 있다
오후 세시의 커피
오후 세시의 커피는 방장스님의 죽비소리다
뜨거운 한낮 피어나는 배롱나무의 합창이다
그것은 오전 내내 울렸던 요령소리이며
독이 허물 벗어 약이 되는 소리이며
지장보살이 그의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다
나는 쓸쓸히 오후 세시의 커피를 타 마시며
이대로 죽을지라도 허물 벗어
생생한 삶에 이르고 싶을 뿐이다
* 시인 고명수 약력
1. 등단지: 월간 <현대시>
2. 등단연도: 1992년 2월
3. 활동사항: <문학과 창작> 편집위원, <창작21>편집위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평론가 협회 이사,
한국독서치료학회 이사, 한국이야기치료학회 회원, 한국문학치료연구소 소장, 동원대 교수(현)
4. 시집: <마스터 키>(1997); <금시조를 찾아서>(1999); <내 생의 이파리는 브리스틀 콘 소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다>(2000)
5. 저서: <시란 무엇인가>(1999); <민족의 청년 한용운>(2000); <시 창작 강의>(2003); <문학의 이해>(2003);<21세기의 교양>(2004); <어린이 글쓰기치료>(2010), <사회복지실천기술론(2011), <인간행동과 사회환경>(2012) 기타
6. 수상경력: 문학아카데미 작품상(2006), 동국문학상(2012) 수상.
첫댓글 오후 세시 나른한 끽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