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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겨울,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이 고금도로 귀양을 갔던 해였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던 김정희의 집에 한 역관이 찾아온다.
당대의 유능한 역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임금 헌종이 그의 시를 애송했다 할 만큼 시인으로서도
출중했으며 중국 친구들이 앞장서서 그 문집을 낼 정도의 인재였으나 항상 추사에게 머리 숙이고
가르침을 청하던 이상적이었다.
그 때 이상적은 부친의 귀양에 상심해 있던 추사에게 이런 시로 위로를 전한다.
“아침 햇살 흐릿한 성곽 너머로
눈 서리 뒤엉킨 드넓은 들판
지독한 추위는 풀리지 않고
남은 겨울을 옥죄고 있다.
모래 길 찾으면서 걸어가는데
얼음은 돌멩이와 뒤섞여 있고
빈 강의 찬 가운은 눈을 찌르며
드넓은 유리 빙판 덮어버린다.
주막 깃발 나부끼는 깊은 마을엔
고깃배 얼어붙어 멀리 갈 수 없지만
파교로 매화를 찾아나서면
시인을 만날 수도 있을 듯하다.
그 옛날 왕휘지는 친구 찾아 나섰다가
부질없이 섬계에서 배를 돌려 왔었지.
저기 저 한겨울의 나뭇가지 위로는
바람 속에 까치가 맴돌고 있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을 보자.
왕휘지라는 이는 명필로 유명한 왕희지의 아들이다. 그는 어느 날 섬계라는 곳에 사는 친구를
보고 싶어서 밤새 노를 저어 갔다.
그런데 새벽이 밝아오고 친구의 집 근처에 이르자 돌연 배를 돌렸다.
이유는 “흥이 나지 않는다.”는 것.
친구가 보고파서 밤새 노를 저어 갔지만, 막상 당도하고 보니 그럴 기분이 사라져서 배를 돌렸다는
고사(故事)를 인용한 것이다. 이건 무슨 뜻일까. 어쩌면 이상적 역시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추사의 부친 김노경이 절해고도로 유배된 사건은 뒷날 그 사건의 중심 인물 윤상도가 능지처참을
당할 만큼 심각한 사건이었다. 이렇듯 역모에 필적하는 사건에 휘말린 이의 가족을 찾아
위로한다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대단한 부담일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역모 또는 그에 준하는 혐의가 씌워질 경우, 그 친구들도 의심의 시선을 받고 불운한
경우 의금부에 끌려 들어가 형틀에 묶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던 시절이었다.
이상적은 가는 길에도 여러 번 발길을 돌릴까 말까 망설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은 왕휘지가
아니었다.
한편 김정희는 생애 가장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찾기
어려운, 외로워서 괴로운 겨울을. 그 지긋지긋한 겨울 끝, 입춘 즈음 이상적은 봄처럼 찾아왔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경사(慶事)에는 빠져도 상갓집은 빼놓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려울 때 손잡아 주는 벗은 기쁠 때 축배를 든 친구보다 열 배는 더 기억에 남는다.
김정희 또한 감격했다. 더구나 이상적은 역관으로서 북경을 막 다녀온 참이었다.
여독도 풀리지 않은 몸으로 한겨울 바람을 헤치고 자신을 찾아 항상 가슴에 담고 있던 북경의
새 소식을 도란도란 전해 주는 이상적이 김정희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김정희의 가슴에는 이상적의 이름과 얼굴이 깊숙이 박힌다.
그로부터 또 10년.
이번엔 10년 전 자신의 아버지처럼 국토의 끝 제주도에 귀양 와서 처참함을 곱씹던 김정희에게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피가 살아 흐르는 듯한 이상적의 선물이 당도한 것이다.
김정희가 어떻게든 구하려고 애썼던 바로 그 책들이었다.
일생에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북경행 기회를 허무하게 잃어버렸던 김정희에 대한 이상적의
위로였으리라. 김정희는 책장을 넘기면서 거듭 눈가를 닦아야 했다. 그 귀한 책장에 눈물 자국을
남길 수는 없었다.
'고맙네 상적이..... 감사하네 우선'
다산 정약용과도 인연이 있었던 차(茶)의 명인 초의 선사를 비롯하여 몇몇 제자들은 바다를 건너
김정희를 만나러 오기까지 했으나 김정희의 마음은 이상적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다른 손님들이 어찌 반갑고 고맙지 않을까마는 자신의 속을 가장 잘 알아주고 가려운 데를 긁고
허전한 곳을 채운 것은 이상적의 마음씀씀이였던 것이다.
“이 은혜를 어찌 갚을꼬.”
늘 이 한탄을 입에 물고 살던 김정희는 여느 날보다도 정성스럽게 먹을 갈고 종이를 편다.
귀양지 오막살이에 들이치는 바닷바람은 뭇 사람들의 살을 베어내며 귓전을 울렸으나 추사의
마음은 바람의 시퍼런 살기에도 아랑곳없이 제풀에 푸르른 소나무처럼 꼿꼿했다.
“오늘 이 마음을 담으리라.”
그리고 김정희는 필치 하나, 획 하나에 눈과 손과 정신을 쏟아부으며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나간다.
그는 평소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운이라는 뜻이다. 즉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으면 그것이 그림과
글씨에서 드러난다는 뜻이었다.
“평생 열 개의 벼루를 밑창 내고, 천 자루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었네.”라고 자랑했던 김정희는
필생의 붓놀림으로 <세한도>를 창조한다. 그림으로는 모자랐던가 보다.
김정희는 다시 손목을 바로 하고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그대가 지난해에 계복(桂馥)의 만학집(晩學集)과 운경(惲敬)의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두 책을 부쳐주고, 올해 또 하장령(賀長齡)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120권을
보내주니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한 일이 아니다. 천만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일시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다.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常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
사람들은 누구나 선물 받는 것을 기꺼워하지만 정말로 기쁠 때는 그 선물에 담긴 정성을
헤아릴 수 있을 때다.
이 사람이 나를 위해 얼마나 노고를 들였는지, 내가 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깨달을 때 선물은 한낱 물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고 평생 잊지 못할
우정의 징표가 된다.
김정희는 귀한 책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를 찾느라 발이 부르트고 귀를 세우고 적잖은 값을
치렀을 이상적을 헤아리고 있었다.
“지금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는 풍조가 휩쓸고 있다. 그런 풍조 속에서 서책을 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힘들이기를 그 같이 하고서도 그대의 이권을 보살펴줄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잇속을 좇듯이 하였구나”
(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趍 爲之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 如世之趨權利者)
조금 추우면 양지를 찾고 약간이라도 더워지면 그늘을 찾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어도 정승이 죽으면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잘나가는 역관에 문재를 갖추고 학문도 깊었던 이상적이라면 얼마든 고관대작과 어울리고
그들에게 귀한 책들을 바치며 자신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장식용’으로 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많거니와 당시는 어쨌건 책을 읽어야 행세를
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이상적은 그를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든’ 사람에게 ‘잇속을 좇듯이’
보낸 것이다. 글이 더해갈수록 추사의 마음도 격해졌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소나무, 잣나무는 본래 사계절 없이 잎이 지지 않는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도 같은 소나무, 잣나무요, 추위가 닥친 후에도 여전히 같은 소나무, 잣나무다.
그런데도 성인(공자)께서는 굳이 추위가 닥친 다음의 그것을 가리켜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가
나를 대하는 처신을 돌이켜보면, 그 전이라고 더 잘한 것도 없지만, 그 후라고 전만큼 못한 일도
없었다. 예전의 그대에 대해서는 따로 일컬을 것이 없지만, 그 후에 그대가 보여준 태도는 역시
성인에게서도 일컬음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성인이 특히 추운 계절의 소나무, 잣나무를
말씀하신 것은 다만 시들지 않는 나무의 굳센 정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역시 추운 계절이라는
그 시절에 대하여 따로 마음에 느끼신 점이 있었던 것이다.”
김정희는 이상적을 두고 “성인에게도 일컬음을 받을 만하다.”라고 극찬하며 감사해 하며 그림 속의
소나무와 잣나무를 이상적의 일관된 선의에 비겼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자신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다. 비록 만물이 숨을 죽이고 흰눈이 세상을 덮은
겨울이라 하더라도 온 세상의 한켠에서 푸르름을 잃지 않으리라는 선비로서, 귀양객으로서,
그리고 자존심 드높은 지식인으로서의 결의가 세한도에는 담겨 있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각각
두 그루인 이유다.
즉 세한도의 주인공은 이상적이면서 김정희였다. 세한도를 창조한 것은 김정희였으나 그 원천을
제공한 것은 이상적이었고, 이상적에게 감사한 만큼 김정희는 자신을 가다듬었다.
이상적의 배려와 김정희의 감응이 희대의 걸작을 창조해 낸 것이다.
이윽고 김정희는 왼쪽 하단에 붉은색, 즉 한 조각 붉은 마음을 드러내듯 장무상망(長毋想忘)의
낙관을 찍는다.
“오랫 동안 잊지 마세나.”
바다를 건너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한 장의 종이, 그에 담긴 글과 그림 앞에서 이상적은
몸을 떨며 감격한다. 그의 답신이다.
- [출처] 역사를 만든 최고의 짝 - 추사 김정희와 이상적
- 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