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궁남지의 유래와 역사를 통해서 백제의 정원문화를 살펴볼수 있다.
일본의 사원에는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이 있다.
사찰마다 철학이 있고 특색이 있는 정원을 공들여 가꾸고 있다.유럽과 미국에는 일본식 젠가든이 인기이다.
교토의 고찰들은 일년이면 수백만명이 사찰의 정원을 보기위해 찾아온다. 사찰의 정원은 주요 수입원이 되고 그들은 일본의 정원문화를 찬탄한다.
일본 정원문화의 뿌리는 백제인 지기마려이다.
일본 정종을 사케라고 한다.사케는 백제에서 유래된 말이다.일본에 처음 발효기술을 전하고 술 만드는 기술을 전한 이는 백제인 수수보리이다.
그는 일본에서 술의 신으로 높이 받들어지고 있다.수수보리를 모신 신사를 사가신사라고 한다.
일본술을 일컽는 사케는 우리말 사키는 기술 즉 발효기술에서 유래된 것이다.
일본 정원의 신도 백제인이다. 로자공 직책을 지닌 지기마려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서기 612년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612년 백제로 부터 한 사람이 왔다.그는 온 몸과 얼굴이 백반증에 걸려 흰점으로 덮여 있었다.그 때문에 사람들이 기피하여 외딴섬에 버리려 했다.그런데 그 사람이 말했다.‥
내 몸에 난 점이 그렇게 싫으면 흰 점박이 소나 말도 여기선 키우지 못하겠네.‥나는 언덕이며 산을 만드는 재주가 있소.나를 두고 내 재주를 쓴다면 나라가 발전할 것이요.어째서 나의 재주를 살리지 못하고 나를 버리려 하오.
사람들이 그 말을 옳게 여겨 섬에 버리지 않고 재능을 보여 보라고 하였다.그는 물길을 끌어 연못을 만들고 파낸 흙으로는 수미산을 만들었다.아치형 돌다리도 만들었다.사람들이 기뻐하고 그의 재주를 찬탄하였다.
이것이 일본정원의 효시이다.오늘날 일본의 사원에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을 보기 위해 1년이면 수백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려들어 일본의 정원문화를 찬탄하고 있다.
백제의 오래된 정원문화를 볼수 있는 곳이 부여의 궁남지이다.
삼국유사 기이 무왕조의 기록를 보면 백제의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 국왕의 자리에 오르고 미륵사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제무왕의 어머니는 용과 교접하여 태어났다는 설화가 전해진다.아버지가 용이라면 왕의 혈통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뜻이다.
무왕 35년(634년) 3월에 궁성 남쪽에 연못을 파고 물을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로 끌어들였다.물가 주변의 사방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본떴다고 하였다.
궁남지 유적은 원래 3만평이 넘는 규모이다.문화재청은 부여 궁남지를 발굴하고 1964년 국가사적 135호로 지정하였다.현재의 연못은 1967년에 13000평 규모로 복원한 것이다.
일본 정원문화의 뿌리이며 경주 안압지 보다 40년 앞선 조성된 곳이 부여 궁남지이다.
부여군에서는 궁남지를 중심으로 주변에 연지를 조성하여 세계 각국의 수련과 연꽃들을 종류별로 감상할수 있게 하였다.
덕분에 한여름 삼복더위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백제 정원 궁남지를 복원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서양식 분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진 1번은 궁남지 중심 수미산에 건립된 정자이다.
김종필 글씨로 포룡정이란 편액이 보인다.무왕의 탄생신화에서 정자이름을 지었다.
2.3번 궁남지에서 피어나는 연꽃이다.
102개의 연방죽에서 피어나는 90여종의 다양한 연꽃들을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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