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5(수)_시편15.1-5_행하는 자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새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의 말씀 앞에 나아갈 때 나의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먼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은 것처럼, 이시간 주의 만나를 먹고 살아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시편 14편은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 말하지만, 15편은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누가 주의 장막에 머물며 주의 성산에 살 수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다윗은 지금 어떤 장소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장막에 머문다는 것은 광야에서 성막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의 거룩한 산에 산다는 것은 성전이 세워진 예루살렘 언덕을 의미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그분의 보호와 평안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누가 하나님과 친밀히 동행하며, 누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시편 15편 마지막에 나옵니다. 그 사람은 마지막 절에 나오는데, 바로 ‘행하는 자’입니다. *아사(עָשָׂה)/포이오(ποιέω) : 행하다
듣기만 하거나 아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오늘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행하는 자가 오늘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입니다. 행하는 자가 오늘 거룩한 산에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 것일까요?
시편 15편 2절부터 4절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데,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깨끗한 삶입니다.
여기서 “깨끗하게 행한다”는 말은 히브리어 타밈(תָּמִים)인데, “흠이 없다”, “온전하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 없는 어린양이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자기 몸과 마음을 흠 없이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완벽한 사람이란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고 온전하게 드리는 삶을 말합니다.
둘째로, 의를 행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의는 히브리어 체데크(צֶדֶק)입니다.
이것은 단지 개인적인 선함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것처럼, 모든 일에서 바르고 공평하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내 유익 때문에 기준을 바꾸지 않고,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셋째로,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진실은 에메트(אֱמֶת)입니다.
겉으로만 바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이 진실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어떤 것은 받고 어떤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 앞에서 “아멘”으로 받는 삶입니다. 사람 앞에서만 경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진실한 삶입니다.
넷째로, 혀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삶입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은, 남을 중상하거나 모략하기 위해 혀를 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거짓과 아첨, 두 가지 마음으로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들추고, 없는 말을 만들어 내고, 상처를 퍼뜨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이 아닙니다. 마음이 정결한 사람은 혀도 정결하게 사용합니다.
다섯째로,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사람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이웃을 해롭게 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가아니라 관계 속에서 드러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웃에게 악을 행한다면, 그것은 참된 경건이 아닙니다.
여섯째로, 이웃을 비방하거나 모욕하지 않는 삶입니다.
다른 사람의 명예를 깎아내리고, 수치를 주고, 업신여기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정죄하고 모욕하는 자리가 아니라, 덮어 주고 세워 주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일곱째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진 삶입니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람을 본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높아 보인다고 해서 다 귀한 사람이 아닙니다. 반대로 세상에서 볼 때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존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사람을 볼 때도 하늘의 관점으로 봅니다.
여덟째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삶입니다.
그가 가난하든, 약하든,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든,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존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귀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아홉째로, 손해가 되어도 약속을 지키는 삶입니다.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약속했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손해가 되고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보다 진실과 신실함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온다 해도 쉽게 말을 바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말은 가벼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열째로, 이웃의 어려움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지 않는 삶입니다.
성경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 활동 보다, 곤궁한 이웃의 처지를 이용해서 부당한 이익을 얻는 악한 태도를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유익의 기회로 삼지 않습니다.
열한째로, 뇌물을 받지 않는 삶입니다.
무고한 자를 해하려고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진실과 정의를 돈과 바꾸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은 유익 때문에 판단을 굽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 때문에 옳은 것을 그르다 하지 않고, 그른 것을 옳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끝까지 정직과 공의를 붙듭니다.
성경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흔들립니다.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기준도 달라집니다. 상황이 압박해 오면 마음이 요동하고, 손해 앞에서 계산이 먼저 앞서고, 관계 속에서 사람의 마음도 흔들립니다. 의인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 흔들림이 멈추고 그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붙들리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주님의 장막에 들어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의 거룩한 산으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며 오늘 하루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복된 하루되시길 축복합니다. 샬롬.
나의묵상.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자는 누구인가? 그는 주의 장막에 머무는 자다. 주께서 계시는 곳에서 주와 함께 교제하는 자이다. 그분의 풍성한 사랑과 자비로 가득한 곳, 그곳은 주께서 성전 삼으신 이 몸이다. 이 몸은 성전이고 주님을 만나는 주의 집이다. 이곳은 주의 거룩한 산이다. 이곳은 죽어도 다시 사는 주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곳이다. 펠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이 몸이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이 진리가 참으로 놀랍다. 오늘 나와 우리 더함교회가 다시 살아난 자의 삶, 살아있는 자의 삶을 살기 원한다. 그 증좌로써 ‘정직하게 행하고, 공의를 실천하고, 마음에 진실을 말하길’ 원한다. 남을 허물하지 않고,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그리스도인을 존대하고 약속한 것은 손해가 나더라도 주님 앞에서 지키길 원한다. 나와 더함교회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으로 나아간다.
묵상기도.
아버지, 주의 은혜가 참으로 크고 놀랍습니다. 주님의 이름이 ‘펠라’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주의 성전으로 사는 자의 증좌를 열 한가지로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와 우리 더함교회가 주의 보혈 의지하여 오늘 주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께서 성전 삼으신 이 몸을 성령의 불로 활활 태워 산 제사로 주께 올려 드리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를 받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