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과 공 동 체 라 면?
2012-11
저에게 좀 더 다가와 주세요
박병민 목사(새터공동체)
봄에 버들버들 흔들거리며, 바람을 그 곁에서 떨어뜨려내기라도 하려는 듯 나무의 가지는, 떨려나가는 바람대신에 조요 하는 볕을 흠뻑 먹으며 흡입해 들인다. 들인 볕이 합성작용을 하여 그 양분이 굳은 몸으로 보내어지며, 잎과 가지를 받들게 되는 나무는 흐름에 따라서 햇볕으로 유들유들 능청스러워져 간다. 그 무른 줄기에서 유연의 잎이 피어나는 것처럼 눈 곁으로 나타난다. 여름새의 나무는 물렁물렁 늘어진다. 그렇게 지녀가다가 가을의 찬바람과 함께 기고만장의 우람하던 그 나무는 떨어뜨려갈 것은 밑으로 바람결에 나붓나붓 날려내고, 소름끼치듯 움츠려 들어가는 초라 속으로 몸이 접여저서 들어간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속으로 파고든 몸체는 단단함으로 갑각 지어져 가게 된다. 가을이 가고 겨울스러워가는 때에 나의 건조한 발바닥은 각질로 덮여들어져 간다. 겨울에는 대류의 약화로 무미건조한 그 곰발바닥 같은 딱지를 부드럽고 윤기 어리게 하는 것이 짐으로 얹어진다. 모든 것은 고정화되거나 정형화되기보다는 움직거려야 그 주위를 들떠가게들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것이 으슥하여 갈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만 때에는 반면으로 으슥으슥한 것이 으쓱으쓱하게 들먹여가는 모양새가 필요하다. 호들갑스런 성장의 몸서리가 있어야 성숙미가 감도는 메김새로 지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막바지의 스러지는 가을 미에는 김소엽 선생님의 시 “오늘을 위한 기도”를 읽어보면 좋을 듯싶다. 잃어버린 것들에 애달파하지 아니하며, 살아있는 것들에 연연해하지 아니하며, 살아가는 일에 탐욕하지 아니하며, 나의 나됨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내 안에 살아있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가난해도 비굴하지 아니하며, 부유해도 오만하지 아니하며, 모두가 나를 떠나도 외로워하지 않으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원통해하지 않으며, 소중한 것을 상실하여도 절망하지 않으며,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누더기를 걸쳐도 디오게네스처럼 당당하며, 가진 것 다 잃고도 욥처럼 하나님을 찬미하며, 천하를 얻고도 다윗처럼 엎드려 회개하는 넓고 큰 폭의 인간으로 넉넉히 사랑을 나누며 오늘 하루를 살게 하소서. 바로 애달픈, 연연, 탐욕 등의 나의 나 된 것을 버려가는 자포자기의 꼴이라고나 할까? 그렇기에 예수는 그의 제자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태복음 19:27). 찬바람 속에서도 모든 누더기를 벗어뜨리고 당당하게 서 있는 저 나무는 우리에게 말없이 겨울사리의 모습으로 이끌어 들인다.
시내의 어느 병원의 화장실 안에서 서서 용무를 보는 눈앞에 “저에게 좀 더 다가와 주세요”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일을 잘하지 못하고 흘려가며 볼일을 보는 것이 못마땅해서였든지? 앞으로 더 다가들라는 얘기다. “저에게 좀 더 다가와 주세요”라는 말 속에는,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은 얼마나 외로울까?라는 생각이 나에게 찾아온다. 친구는 나에게 외로움에다가 감미료처럼 더해주는 두 마디의 말을 문자로 전달해 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속담 중에 “손님이 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오지 않는다”라는 방송에서 들은 말과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는 장호승의 수선화 중에서...... 오지 않는다는 말과 온다는 말이 다 같이 외롭기는 마치 한가지인 것 같다. 성서에서도 주변머리가 없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고아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이사야 49:21). 그 여러해 전에 사람들 입 사이에서 오고가던, 배추의 알속만 쏙쏙 빼먹고 들어가서 속알머리가 없는 사람과 머리 주변부터 뜯어먹고 가서 그 주변머리가 없어진 사람을 이야기했었다. 영어 말에 “one more time”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한번 더”라는 말이다. 이 “한번 더”라는 말을 곶감 빼먹듯이 가 아니라, 혹은 상추 뜯어 먹듯이 가 아니라, 한번 더, 한 번더, 그리고 또 한번 더, 그렇게 그 누구에게 더해져 가는 사람.성서에서는 그런 얘기를, 그런 것들이 모여진 돌무더기와 같은 푸짐한 얘기를 끄집어낸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태복음18:21-22). 그리고 또 다른 곳의 성서에는 이 늦은 가을에 어울릴법한 “나그네와 행인”이라는 말이 나온다(베드로전서 2:11). 그 말을 빌려 어느 분이 시를 쓴 것을 여기에 옮겨본다. 안개와 같이 아침 한 나절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이 우리가 처한 운명이라면 우리는 비둘기같이 구구 슬피 울어야만 한다. 들에 핀 한 떨기 장미처럼 잠시 자태 화려 찬란해도 조락(凋落)의 날이 다가오면 운명처럼 떨어져 뒹굴며 나자빠져야 한다면 우리는 목이 긴 사슴 마냥 야트막한 산등성이 굽이 진 인생의 골짜기에서 길게 목을 빼고 애처로이 서 있어야만 한다. 물기 배인 축축한 눈빛으로 어쩔 수 없이 먼데 산을 응시하듯 올려다보고 부르르 몸을 추스리고 떨 때 어디선가 날아와 뚝 떨어져 발 밑 아래 나뒹구는 낙엽을 보고 흘낏 눈길 한번 주고는 푸른 초원에 머리를 쳐 박는 순하고 순한 짐승이 되어야 한다. 아, 어느 개인 날 하루 아침 홀연히 부지불식간에 떨어지며 소소히 나부끼는 저 숲 속의 황엽들. 저 들녘에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 홍시감도 떨어지고 풋감도 떨어지는 것을 우리들은 얼마나 자주 목도(目睹)하는가? 인생아,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오늘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어디선가 기별처럼 다가오는 말씀 우리에게 들려주는 별미(別味)와 특미(特味)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근심은 그 날에 족하니라’ 아, “gone with the wind”의 스카렛 오하라의 독백(獨白)처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를 테니까’ 나그네와 행인 같이 모든 걸 털며 훌훌 구름같이 바람같이 가야할 인생 길. 황혼의 해변에 깃들어 있는 우수. 우수수 떨어지는 호수 위의 낙엽들 저만치 포플러 나무 잎새 사이로 앙상한 가을이 춤추며 다가오고 널찍한 플라타너스 이파리에 가을의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있다. 해 마다 돌아오는 조락(凋落)의 날들. 지는 해 비낀 볕에 타오르던 정열 안으로 속으로 곰삭이다가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약속의 포구 언덕배기에 찬바람이 씨∼잉 불어온다. 가슴 설레던 긴 날의 감격. 가물거리는 흐릿한 추억 속에 물결무늬로 아롱진다. 해거름에 바라보는 풍경들은 늘 분주한 마음들을 다독인다. 헛헛한 마음 한 조각 달래려 이제 막 나그네 한 사람 물 위에 배를 띄우려한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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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예성만 김진구 박성찬 조창봉 이은주 지명수 권희숙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이삭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2012년 11월 3일 토요일에 금산군북교회하우림에서(한성국 목사님) 공동체 식구들과 이웃장애인분들을 함께 모시고 전북 완주군의 대하수목원을 다녀왔습니다.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금성교회.충전교회.정이삭.최영애.라홍채.박종만.이은주.대덕교회.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4인).진명구.채윤기(박현실.2회).김기홍.양오석.수영교회.신건태.신평교회.그리스도의집(옹인숙.금산파리바게트.2회).사랑의쌀나눔공동체(장진성).신평교회(2인).주식회사EG(이광형).신성삼외1인(한남프라자안경원).동춘교회6여전도회.반석전원교회.살림교회(박상용.권영일외11인).금산군북초등학교자모회(4인).임영호(고은성).금산주부클럽(박명희외3인).김용환(최정숙).추부중학교(10인).오미순(동춘교회).대덕교회(이중삼.한도식).금산군북용문초등학교(조기숙외11인).김종성가족.추부중학교25회(황한수.백승국).오정교회(최세영).동춘교회4남선교회(김상수).금산읍교회(김철우).금산군모란회(6인)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