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38 삼출액(渗出液), 그 상처가 빚어내는 비릿한 생명력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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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37
삼출액(渗出液), 그 상처가 빚어내는 비릿한 생명력에 관하여
인간의 몸이 겪는 고통의 과정 중 가장 고약하면서도 경이로운 순간, ‘삼출액(Exudate)’이 흐르는 단계이다. 흔히 진물이라 불리는 이 액체는 맑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불투명하지도 않은 불쾌지수가 꽤 높은 빛깔과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상처 부위에 흐른다. 사람들은 대개 이를 서둘러 닦아내거나 거즈로 가리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의학적 시선으로 보면 삼출액은 상처 치유를 위한 단백질과 백혈구가 응집된 ‘생명의 정수’이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배어 나오는 비릿한 슬픔과 고뇌의 흔적들은, 사실 우리가 회복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치열한 생존의 기록이다. 오늘날의 현대인은 상처를 거부하고 매끈한 피부와 완벽한 일상만을 강요받지만, 고전의 지혜는 오히려 그 축축한 습기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라고 조언한다.
『도덕경(道德經)』에는 ‘곡신불사(谷神不死)’라는 말이 나온다. 곡신은 맑은 물의 원천이고 그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된다. 그렇기에 생명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써도써도 없어지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 삼출액은 몸에 상처가 생겼을 때, 그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다. 이는 단순한 노폐물이 아니라, 내부의 치유 에너지가 외부로 분출되는 현상으로 억눌린 것이 터져 나오는 필연성을 담지한 것이다.
삶의 고난도 그렇다.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겪을 때 흘리는 눈물, 문인들이 창작의 고통 속에서 쥐어짜 내는 문장들은 영혼의 삼출액이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선생은 그의 글에서 ‘울음’의 미학을 설파했다. 선생은 『열하일기(熱河日記)』의 ‘호곡장론(好哭場論)’을 통해, 기쁨이나 슬픔이 극에 달해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가장 진실한 감정의 분출로 보았다. 선생은 “칠정(七情) 중에서 유독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이 극에 달해도 울게 되고, 분노가 극에 달해도 울게 된다. 막힌 것이 확 트일 때 터져 나오는 분출, 그것이 울음이다”라 하였다.
『주역(周易)』의 ‘수택절(水澤節)’ 괘는 ‘물(水)’과 ‘못(澤)’의 관계를 설명하며 정제와 규율, 질서를 말하지만, 동시에 물이 고여 촉촉함을 유지하는 것이 만물을 기르는 기본임을 알려준다. 너무 메마른 땅에서는 싹이 틀 수 없듯이, 고통이 없는 영혼은 타인의 아픔에 공명할 줄 모른다.
서양 고전의 한 줄기인 스토아 철학은 흔히 감정의 억제를 강조하는 것으로 종종 오해받지만, 세네카(Seneca)는 비극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참된 지혜라고 말했다. 그는 고난을 ‘영혼을 단련하는 훈련소’로 보았다. 삼출액이 상처를 보호하는 막을 형성하듯, 시련을 겪으며 흘린 마음의 진물은 훗날 그 어떤 충격에도 쉽게 깨지지 않는 단단한 흉터(Scar tissue), 즉 내면의 굳은살이 된다.
우리는 완벽한 무결(無缺)의 상태를 지향하지만 오히려 ‘흠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야(過而不改 是謂過也)”라 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진짜 잘못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생물학적으로 치환하면, 상처를 입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 상처에서 삼출액이 나오지 않아 치유가 멈추는 것이 재앙이라는 뜻이 된다.
삼출액은 상처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죽은 나무는 수액을 흘리지 않고, 죽은 가슴은 눈물을 흘리지 못하듯, 죽은 세포는 진물을 내보내지 못한다. 고전 속 영웅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상처를 품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허벅지의 흉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고, 조선의 선비들은 당쟁과 유배라는 인생의 상처 속에서 불후의 문집을 남겼다. 그들이 남긴 문학적 유산은 실로 당대의 고통이 빚어낸 거대한 삼출액이었던 셈이다.
2024년 12.3내란의 상처가 꽤 깊고 길게 패였다. 정치분열, 재판지연, …아직도 우리 사회는 그 상흔을 덮는 삼출액이 흐르는 중이다. 하지만 삼출액, 그 고통이 빚어낸 비릿한 진물은 결국 새 살을 틔우고 그 흉터 위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라는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 새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