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4막27장 (4-1부)
전두환 정권은 각분야에 개혁을 단행하였다.
언론, 교육, 경제, 예술, 모든 분야에 통폐합을 시도하였고 멀쩡하던 기업을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나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88서울 올림픽과 86아시안게임을 준비한다며 평상시에는 꿈도 못꿀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중에 하나가 자동차검사소 통폐합이였다.
서울을 몇군데로 분배하여 무분별한 자동차검사소를 통폐합 한것이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경남관광이 소유한 자동차검사소를 폐쇄하는 대신 신규 회사 택시면허 20대를 허가내 주었다.
아버님은 돈을 지불하고 택시면허 20대를 사고 회사설립을 하였다.
허가조건은 공항택시 (중형차인 스텔라 차량)10대와 일반택시(포니차량)10대로 허가를 내준것이다.
이에 나는 흥분되여 기뻐하였다.
남의 택시나 위탁 경영해주고 소정의 관리비로 연명해 가던 사업이 드디어 독립하여 단독회사를 꾸리게 되였으니 하늘로 날아갈것 같았다.
법무사를 불러 법인설립 절차를 하였고 나는 주식회사의 이사로 선임되였다.
물론 형식상이었으나 이사는 이사인 것이다.
차고지를 물색하다 마땅치 않아 그냥 이전에 쓰던 낙성대입구 차고지를 그대로 쓰기로 하였다.
정비공은 박주용주임을 그대로 채용하였고 나는 박과장에서 박부장으로 승격되였다.
경리는 "임순○"을 그대로 채용하였고 택시기사를 더충원하여야 하였다.
소문은 금새나 봉천동일대가 들썩였다.
택시운전수들이 구름처럼 몰려왔고 이력서를 보며 경력순대로 운전수를 합격시켰다.
모두 신규차량이다 보니 운전수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근로조건이였다.
서울시청에 신규 택시 면허사업 신청을 하였고 일주일후 합법적인 사업증이 발부되여 현대자동차에 차량20대를 신청하였다.
그리고D-day날 20여명이 울산으로 향하였다.
나는 두명의 기사와 전날 고속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출발하여 다음날 울산현대자동차 출고장에서 만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