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진노의 심판
예레미야 7장 16-28절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모르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해준 게 뭐가 있냐?’고 한다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순종의 결과가 복으로, 불순종의 결과가 저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유다를 위해 중보기도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유다의 심각한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줍니다.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일관한 그들에게 심판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16-20)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유다 백성들이 듣지 않을 것을 아시면서도 끊임없이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계속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16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17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18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19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 20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노를 이 곳과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6-20)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그것도 ‘기도하지 말라,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간구하지 말라’라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시면서 듣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유다 백성 가운데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중보기도의 중지(16)
성전 문에 서서 도둑의 소굴로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선포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을 주십니다. 이번에는 예레미야 개인과 관련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해서도 부르짖거나 간구해서도 안 됩니다. 유사한 표현을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의 금지를 단호하게 명하십니다. 중보기도는 예언자의 기능 가운데 하나로, 때로는 백성 편에서 하나님께 중재를 시도했습니다.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 의지를 알게 된 아모스가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라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중보기도를 받아들여 뜻을 돌이키셨습니다(암 7:1-3, 4-6). 그러나 예레미야에게는 중보기도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위한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어주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심판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셨기에 심판을 집행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성전의 제사뿐만 아니라 예언자의 중보도 그 기능과 유효성을 상실합니다. 유다와 하나님 사이의 통로가 모두 폐쇄되었습니다.
(2) 고발(17-19)
현재의 문맥에서 17-18절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중보기도를 금지시키신 이유를 보여줍니다.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를 예레미야도 보아서 잘 알기에 변호의 여지가 처음부터 없어집니다(17). 예레미야로서는 중보기도의 금지를 명령하신 하나님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배교는 노골적이고 전면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연한 우상숭배 가운데서 특별히 하늘 여왕 제의를 고발하십니다. 하늘 여왕에게 드릴 과자를 만들기 위해 온 가족이 역할을 분담해 제의를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은 나무를 주워 모으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밀가루를 반죽했습니다(18). 하늘 여왕을 숭배하는 동기와 목적은 풍요였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간 여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하늘 여왕을 섬겼을 때는 양식도 풍부해 잘 지냈고 재난 겪지 않았습니다(44:17). 성전은 희생제물로 죄를 세탁하려는 자들로 들끓게 되었고, 거리의 집들은 우상을 섬기느라 분주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과 그분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 우상들로 점령당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어떻게 하면 여호와를 더욱 노하시게 할 수 있을까’하며 우상을 숭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진노의 심판을 선포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의 어리석음을 고발하십니다.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한이나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19). 우상숭배의 부끄러운 짓이 이들에게 재앙의 부끄러움을 초래합니다. 중요와 번영을 기대하며 하늘 여왕과 우상들을 섬겼는데, 멸망과 파멸이 주어집니다.
(3) 심판선언(20)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긴 유다 백성에게 볼 심판이 선언됩니다. “보라 나의 진노와 분노들이 곳과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봄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20). 하나님의 진노의 분노가 붙이 되어 우상들로 가득 찬 예루살렘과 유다를 초토화 시킵니다. ‘꺼지지 않는 불’이 사람과 짐승뿐만 아니라 야생의 나무와 경작지의 소산 끝까지 모두 태워버립니다. 생존에 필수적인 자연환경마저 남김없이 파괴됩니다. 죄악의 심각성에 비례해 심판도 철저하게 집행됩니다. ‘나무’는 들판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나무를, ‘땅의 소산’은 과실이나 곡식과 같은 수화물을 가리킵니다.
제사에 우선하는 말씀의 순종(21-28)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시고 명령하셨던 것은 번제물이나 회목제물이 아니라 순종이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더욱 잘 순종할 수 있습니까?
21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 22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23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24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25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26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27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에게 순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니 28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21-28)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향해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번제는 제물 전체를 태워 바치는 제사기 때문에 오느 누구도 제물의 일부라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번제물의 고기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1) 제사 거절(21)
우상숭배의 늪에 빠진 자들에게 제사 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파격적인 명령이 내려집니다.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21) 이는 성전의 제사를 전혀 무시하는 명령입니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제단에서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고, 다른 제사의 경우는 제물의 일부만 화제로 드리며, 나머지는 제사장과 제의 참석자들의 몫으로 돌려집니다. 레위기의 제사법에 따르면 번제물의 고기는 제의 참석자들이 먹을 수 없습니다(참조, 레 1:3-17). 하나님의 명령은 차라리 풍자적입니다. “너희의 희생제물과 너희의 번제물이니 고기를 좋아하는 너희가 희생제물의 고기뿐만 아니라 번제물의 고기도 다 먹어라!” 우상과 불의로 부정하진 자들이 가져온 제물은 모두 부정하기에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고, 부정한 제물이기에 부정한 자들이나 먹을 수 있습니다. 정과 부정이 제의적 차원에서 윤리적 차원으로 옮겨집니다.
(2) 제사 대신 말씀 순종(22-23)
번제물의 고기도 함께 먹으라는 여호와의 명령은 이스라엘의 신학적 전통에 어긋나는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다. 여호와 신앙의 근간인 출애굽 사건을 살펴보면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셨고 명령하지 아니하셨습니다(22). 그들로부터 제사를 받기 위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사는 이스라엘 역사의 출발점인 출애굽 사건과 관련이 없었슨비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은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였습니다(23).
(3)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대조(24-25)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명령은 제의 규정의 준수가 아니라, 말씀의 순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분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명령에 따라 살아갈 때 그분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하고 그분께서 명령하신 길로 가는 것이 출애굽의 목적이고 언약의 근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길은 하나님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줄기차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피와 완악한 대로’ 행하였습니다(24). 이들의 불순종은 의도적이며 계획적이었습니다. 등을 돌리고 완강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이스라엘을 돌려세우기 위해 그분은 거듭 ‘종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25). 완악함과 악행이 이스라엘의 본질이 됐습니다.
(4) 더 악한 현세대(26)
시점이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지는 26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불순종과 악행과 완악함에 있어 현세대는 조상들보다 더했습니다(26).
(5) 예언자의 선포 거질(27)
조상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그분께서 보내신 그분의 종 예언자들을 거절했던 것처럼, 목이 뻣뻣한 현세대도 다르지 않았다.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불러도’ 그들은 응답하지 않을 것입니다(27). 조상들처럼 현세대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멸망의 길을 가려 하기에 예레미야의 선포는 결실을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6) 교훈을 받지 않는 민족(28)
예언자적 사역이 성과 없이 끝날 것을 알려주시고 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선포할 메시지를 주십니다.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민족이다. 진실이 없어져 버렸다. 그들의 입에서 끊겼다”(28절의 사역). 내용상 27절의 반복으로, 메시지라기보다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부정적 평가입니다. 예레미야의 선포에 귀를 막고 응답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술순종과 완고함이 심판을 초래하게 될 것을 시사해줍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사랑의 매를 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 등을 돌리고 얼굴을 향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되돌리기 위해 징벌하셨지만, 이들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익한 거짓말’에 의존해(8,4)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하지 않기에, 이들의 입에서는 ‘진실’이 끊기고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율법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백성의 삶이 어떠냐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백성이 율법을 따라 살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정상적이 됩니다. 순종을 바탕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위치에 머무르게 되고 그들의 삶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형통한 삶을 살 것입니다. 순종에 관심 없이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가려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삶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