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궁극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결과의 끝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 소설을 아무리 많이 쓴다고 한들 그곳에서 박하향 같은 달콤함은 얻을 수 없다. 진땀나는 영혼의 구토를 견디며 마침내 막장에서 걷어 올린 검은 탄가루 같은 언어의 유희 몇 조각을 건져 올릴 뿐이다. 그 고통을 알면서도 왜 소설쓰기에 매달리는가? 운명이다. 내 삶의 이정표에 소설쓰기가 포함되어 있다면 피할 방법이 없다. 나는 그곳에 몸을 얹어두고 따라갈 뿐이다. 그리하여 내 창작의 샘물이 고갈될 때 나는 떠난다. 산문이 보이는 범어사 순환도로 위로.
· 코스
범어사 전철역 7번 출구를 나와 울산 방향으로 100m쯤 가면 동화주유소가 나온다. 우회전하면 경동아파트를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아파트단지를 좌측에 끼고 우회해서 올라가면 정자가 보이고 그 위로는 나무데크로 만든 산책로가 나타난다. 곧이어 범어사 산문에 다다르고, 그곳을 정점으로 해서 내려가는 길이다. 음식점이 즐비한 상마, 하마마을 지나면 요산 김정한 선생의 문학비와 향파 이주홍 선생의 시비를 만날 수 있으며 예쁜 몇 곳의 카페를 지나면 번화한 범어사 사거리에 닿는다. 대략 6㎞ 거리. 곧장 내려오면 범어사 전철역으로 회귀하고 그 길의 끝에 그 유명한 치킨집이 나타난다.
· 계절
봄날에는 산목련을 만날 수 있다. 훈풍에 한들거리는 그 하얀 잎을 바라보며 걷는 산책로는 겨우내 움츠렸던 온몸의 세포 구석구석을 들쑤시며 신선한 정기로 새로운 삶의 의욕을 불러모아준다. 여름철, 흘러내리는 땀을 맨몸으로 받아내며 나무 그림자가 길고 짙게 깔린 산책로를 걷다보면 무아의 경지에 빠져든다. 사람들이 드문 어느 지점에 멈추어 서서 작렬하는 여름의 소나기 같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면 머릿속 어디에선가로 부터 알 수 없는 희열이 솟구쳐 오르기도 한다.
불어오는 바람에 회오리처럼 휘말리는 낙엽을 발로 차며 걷는 가을은 계절만큼이나 깊은 우수의 나락으로 몸과 마음을 끌고 간다. 대지 위에 수북하게 잎을 떨어뜨린 후 앙상한 가지로 남아있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삶의 종착점을 되짚게 해준다. 마침내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계절의 마무리, 겨울이 오면 텅 빈 도로 위에 내 한 해의 삶을 갈무리하는 족적을 찍는다. 어둑어둑해지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어디선가 울리는 범종소리를 들으며 길의 종착지를 향해 걷는다.
언어로서 우리 삶의 문제를 풀어낼 수 없을 때
가슴이 타들어가는 고립의 시간에서 솟구쳐 올라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돌고 싶다· 사건1
6월이었다. 푸른 신록으로 치장한 순환도로는 절정의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반바지와 흰 운동화 차림인 나는 경쾌한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경동아파트를 지나 정자 부근에 이르렀다. 정자에서 오른쪽 언덕길을 오르면 아주 맛깔스러운 오솔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계속가면 장군봉에 이르거나 아니면 양산 국도로 연결되는 접경지역으로 나갈 수 있다.
그날 처음 오솔길을 갈 요량으로 집을 나섰는데 걷다보니 본래의 길인 순환도로의 짙은 녹음이 마음에 끌려 그냥 그대로 직진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자에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 얼마 후, 내 곁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급하게 돌진하는 얌체 없는 차를 만났다. 원래 이 길은 인도가 없는 길이라 차와 사람이 뒤섞여 다닌다. 요즘 일부분 나무 산책로를 만들어 둔 덕에 걷기가 편해졌지만, 차들 때문에 산책길에서 가끔 수난을 만나기도 한다.
그날도 그랬다. 그냥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비켜 차들이 다니면 좋을 텐데, 내 곁에 바짝 붙어 휑하고 달아나버리는 차를 보니 울화통이 터졌다.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차종을 보니 아주 고급스러운 외제차다. 저렇게 좋은 차를 가진 자들이 운전하는 꼴이라니, 졸부가 된 자가 거들먹거리며 저러고 다닌다고 짐작했다. 저 좋은 차를 갖고 고속도로나 달릴 일이지 이 한적한 곳에는 뭐하러 왔지. 급하게 돌진하는 차는 얼마쯤 더 올라가더니 길모퉁이에 섰다.
운전자가 내려 뒷좌석 차문을 여니, 맙소사 집채만 한 도사견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난폭운전에 개까지? 이런 몰염치한 사람이 있나? 이곳은 개를 끌고 올만한 길은 도무지 아니다. 아무리 자기 차 가지고 자기 개 끌고 온다고 하지만 산문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사람들이 편하게 사색하며 걷는 산책로가 아닌가. 차 주인도 도사견만큼이나 근육질에 성깔 부릴만한 인상을 가졌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지나치다. 개 주인이 개 줄도 잡지 않고 풀어놓자 개는 완전히 방임상태가 되어 개 주인의 지시에 따라 도로를 질주하며 오르내렸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런 곳에 개를 몰고 오다니 너무 하지 않소? 그리고 개 줄까지 풀어놓아버리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불편해서 어쩌라는 거요?
그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귀찮다는 듯이 한마디를 툭 내 뱉었다.
-이 개, 물지 않아.
물지 않다니, 주인인 자기는 안 물지 몰라도 개를 모르는 타인들이야 그 집채만 한 도사견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리고 반말은 또 뭔가. 울화통이 터졌다.
-개가 물지 않는다는 것은 댁한테나 통할지 모르나 우리는 전혀 믿을 수가 없지 않소. 그것도 자그마한 애완용 개도 아니고 이렇게 사나운 도사견을 두고 괜찮다고 하니 누가 겁이 나서 길을 걸을 수나 있겠소?
-괜찮다니 그러네. 정 그렇다면 내가 당신 앞에 개를 조용히 꿇어 앉혀보지요.
-내가 왜 그런 무서운 일을 당해요? 당장 개를 차에 싣고 그냥 조용히 떠났으면 좋겠소.
그가 신경질 돋친 어투로 대꾸했다.
-대한민국 공용도로에 세금내고 사는 국민이 개 한 마리 끌고 왔다고 그게 무엇이 나쁘다는 말이오. 나는 조용히 개 운동이나 시키고 갈 테니 염려 말고 가는 길이나 가시오.
-개를 운동시킬 곳이 따로 있지 이런 곳에서 도사견을 풀어 놓는다는 게 말이 아니지 않소. 선생 혼자 다니는 길도 아니고, 아이들이나 부녀자들도 많이 왕래하는 길이니 얼른 개를 데리고 가시오.
-이 양반이, 아무리 말을 해도 참 못 알아듣네. 훈련이 잘 되어서 절대로 내 명령이 없으면 물지 않는다니까 그러네.
-그래요? 선생이 시키면 이 개가 지나다니는 사람 아무나 물겠네. 그게 길에 깔아놓은 흉기나 다를 바가 아닌데 왜 문제가 안 되겠소?
그는 내말에 들은 체도 않고 개 훈련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들고 개를 향해 냅다 던지고 싶었지만, 도사견에 반바지 입은 내 종아리가 물릴게 두려워 참았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단 한 가지,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는 일 밖에 없었다. 내가 그 졸부와 개를 피해 얼마쯤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을 무렵. 112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범어사 순환도로를 침입한 도사견과 그 주인은 틀림없이 그 길 위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 사건 2
8월이었다. 더위가 기성을 부리던 토요일 오후였다. 도시에서의 한낮의 더위도 이 순환도로에서만은 숨을 죽이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서늘했지만, 걷고 있는 나는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범어사 경내로 들어가 약수를 한바가지나 마시고 옷 위로 그냥 물을 뒤집어썼다. 걸어가는 길 위로 물에 젖은 옷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땀방울이 뒤섞여 길거리가 흥건했다. 해질 무렵 범어사 사거리에 닿았다. 그곳에서 늦게 일을 끝내고 나오던 직장 동료 두 사람을 만났다.
땀에 절어 혼자 산길을 걸어 내려온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지 동료들이 나를 끌고 치킨 집으로 들어갔다. 금정산 등산을 끝낸 사람들이 베이스캠프처럼 찾는 곳이다. 안주가 나오기 전에 갈증으로 생맥주 500㏄를 단숨에 들이켰다. 거기서 시작된 주말의 술집 순례는 자정을 넘기고도 끝나지 않아 노래방까지 전전하며 몇 군데 되지도 않는 범어사 밑 동네 술집이란 술집은 죄다 들른 것 같았다. 시간도 가늠할 수 없는 시각에 밖으로 나오니 술이 취해 걸을 수도, 차를 잡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버스가 지나다니는 길 옆에 비어있는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을 새로 만드느라 시멘트를 덧발라 말리고 있었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어영부영 거기까지 게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 위에 널부러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새벽이슬에 잠이 깨어나 일어나보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첫 전철이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맙소사. 일박 이일로 술을 마시고 길 위에서 잠이 들었구나. 우리는 취해 형편없이 헝클어진 몰골을 한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웃다가 택시를 타고 뿔뿔이 헤어졌다.
· 소설가들은
소설가들은 생(生)의 어떤 갈증으로 인해 전인미답의 세계로 한발 먼저 들어가 보고 싶어 한다. 그곳이 어디든 지금과 이곳이 아닌 현재의 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어느 곳으로 떠나버리고 말겠다는 욕망을 억누르며 산다. 그러나 현실을 탈피하고 떠나는 이들은 지극히 극소수다. 도시를 버리고 직장을 내팽개치며 불편함을 자처한 소설가들의 삶에 향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창작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그들 영혼의 그물로 건져 올리기 때문이다.
많은 소설가들은 무수한 희망과 혁명을 꿈꾸지만 대부분 좌절하고 만다. 그런 모순 속에서도 그들은 소멸해가는 세월의 흐름을 붙들고 사라져가는 기억들을 소환해 그것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 한다. 소설적 언어로서 우리들 삶의 문제를 풀어낼 수 없을 때, 가슴이 타들어가는 고립의 시간에서 갑자기 솟구쳐 올라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돌고 싶어 한다. 그 자유의 땅을 찾아가기가 너무나 멀고 어려울 때, 범어사 순환도로는 나에게 가깝고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장소이기도하다. 오늘도 나는 범어사 순환도로를 걷는다.
전용문 소설가
◇약력 : 신경외과 전문의.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장편 '죽은 의사의 시대'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 중·단편집 '길 위의 사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