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토머스 슈라이너는 남침례신학교 신약해석학 교수인데, 그의 책 『성경신학』의 서문을 쓰면서,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성경의 메시지가 보여 주는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장엄함과 아름다움”이란 표현이 매우 감동적이다. 우리가 성경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새로운 지각, 가슴 벅찬 감동, 결단 등과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성경 메시지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슈라이너는 이 책에서 성경 전체의 중심 주제를 “하나님의 나라”라는 흐름으로 정리하였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의 구성 요소는 국가의 3요소와 같이 “하나님”, “인간”, “땅”으로 나타난다. 구약에서부터 신약에까지 장구한 역사 속의 하나님의 나라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성취되고 완성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슈라이너의 성경신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저자의 말을 통해서 확인해보자.
서론
하나의 주제만으로는 성경의 메시지를 충분히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공통된 입장이다.1) 나는 이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2) 왜냐하면 어떤 중심을 선택해도 거의 한 주제나 다른 주제만 원하는 대로 다루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의 줄거리와 신학을 타당성 있게 종합하는 데는 여러 다른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의 주제가 전체를 담아낼 수 있다고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중심'이라는 단어는 모호하다. 우리는 이야기의 중심 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야기의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3) 이 책은 내러티브 안에 있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에 초점을 두고 있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야기의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이야기의 이유에 대해 집중하지는 않을 것이다.4) 이 책의 의도는 이야기가 드러내는 줄거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렇게 도출된 주제는 성경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몇 가지 다른 주제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유연하게 성경의 본질적인 메시지를 요약한다. 나는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가 충분한 유연성을 보여 주는 단어이므로 성경 전체의 중심 주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한다.5)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의 주장이 단어 연구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경의 많은 책에 전혀 사용되지 않은 "왕", "나라", "통치", "재위"라는 단어들이 사용된 횟수에 집중한다면, 하나님 나라는 분명 성경 전체의 중심 주제가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6) 그러나 이 책의 논점은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가 성경신학의 관점에서 성경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주제라는 것이다. 이제 나는 하나님이 그의 이름의 영광과 찬송을 위해 그의 나라를 가져오신다는 것을 곧바로 추가하려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며, 하나님의 영광은 이 이야기의 이유다.7) 이 책에서 나는 이 이야기의 중심 주제 중 하나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내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를 간단히 설명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킨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이시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스리신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인간의 타락 이후로 하나님의 통치는 무시당해 왔으며, 성경은 이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나님 나라를 중심 주제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 주제가 잠언과 같은 히브리 성경의 시가서에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나는 "나라"라는 용어가 잠언에 실제로 나오지는 않지만 잠언과 구약 시가서의 다른 책들도 이와 같은 주제에 적합하다는 점을 적절한 때에 주장할 것이다. 나는 지혜 문헌이 매일의 삶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다는 점을 말할 것이다. 우리는 잠언, 욥기, 전도서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초점은 성경, 특히 구약에서 하나님을 주와 동일시하는 일정한 후렴구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여호와 하나님은 주,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찬양과 순종을 받아야 하는 분이시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주제를 하나님의 왕 되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가 되신다는 일관된 후렴구에 의해 입증되고 확언된다.8)
인간을 제외하고 관념적으로만 왕이신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왕되심의 범위를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9) 왜냐하면 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창조의 절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10) 하나님은 왕이자 주이시므로, 만물 안에서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서 영광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며 계획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자아도취에 빠진 존재라고 불평하지만, 이것은 핵심을 놓치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왕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써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며,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사랑을 따로 떨어진 두 방에 우겨넣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주로서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영광 받으신다.11) 하나님의 주권과 왕 되심은 역사 속에서, 즉 성경에 설명된 이야기 속에서 나타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 안에서 최고로 드러난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언약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12) 놀랍게도 하나님의 언약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수단이다.13)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현존을 경험할 때, 하나님의 주 되심이 실현된다.14) 이는 "성경의 거대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는 땅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라는 주제가 특히 중요하다"라고 한 데스몬드 알렉산더(Desmond Alexander)의 주장과 일치한다.15)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과 맺은 언약 안에서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언약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 되심은 하나님의 사랑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 이야기의 다른 측면도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원수들을 벌하심으로써,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저항하는 자들을 심판하심으로써 왕 되심을 보이신다.16)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와 주권적 사랑에 반역한다. 그들의 반항과 반역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성경의 줄거리는 악이 괴멸되며 진압될 것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절하기를 거절하는 백성은 심판받을 것이며,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은 심판을 통해서도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해할 때 다른 개념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분명히 천사들과 인간에 대한 통치를 포함하지만, 통치에 대한 강조로 인해 이 나라에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초현실적인 영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주 전체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주 되심과 인간과의 관계는 이 땅에서 나타난다. 이 이야기에서 장소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우주의 왕이시다. 그러나 역사는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주되심에 대한 질문들을 쏟아낸다. 악의 습격은 하나님의 주권을 위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무효화하려는 반역적인 나라를 나타낸다. 세상과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악의 공격을 받는다. 왕이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인간에 대한 드라마는 역사 속에서 그리고 특정 장소에서 전개된다. 성경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우주와도 관련된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의 운명은 무엇인가?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 즉 하나님의 영광이 우주를 비추게 될 새 창조가 있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세 가지 측면을 갖고 있으며 왕이신 하나님, 이왕의 백성인 인간, 그리고 하나님의 왕 되심이 실현되는 우주에 초점을 맞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접근법에 대해 논해 보자. 이스라엘의 역사나 문헌의 비평적 재구성에 반응하는 것은 나의 목적이 아니다. 똑같은 접근법이 신약의 역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재구성에 신중하게 응답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달성할 수 있는 책은 없다.17) 또한 특정한 책들이 정경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진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18) 물론 나는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로 어느 글이 권위 있는 성경 목록에 포함되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최종적 형태인 정경의 책들을 분석하는 것이다.19) 덧붙여서 우리는 구약 성경과 관련된 중요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정경을 분석할 때 히브리 성경의 순서를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기독교 성경의 순서를 따라야 하는가?20) 어떤 학자들은 어느 순서를 따르느냐가 성경신학에서 주요 쟁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순서가 지니는 의미를 과장하고 있다.21) 나는 구약신학의 중심 주제들이 히브리 식 순서를 따르느냐 아니면 영어 성경의 순서를 따르느냐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영어 성경의 순서를 따르고 있는 일반 독자들이 히브리 성경의 순서를 모른다고 해서 구약신학을 이해하는 데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다양한 책들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겠다. 나는 어떤 책들은 연대기적으로 어떤 책들은 주제별로 검토할 것이다. 시편의 경우에는 다섯 권을 정경적 순서대로 분석할 것이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이 책에 사용된 접근법이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제안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이 접근법이 성경의 메시지를 검토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1) 성경 전체의 성경신학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벅찬 작업이다. 하나의 최종적 단어를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 책의 목적은 그것에 있지 않다. 나는 성경 전체의 성경신학이 상이하면서 상호 보완적인 여러 각도에서 쓰여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많은 학자가 성경 전체의 성경신학을 저술해 왔고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다음과 같은 학자들을 보라. Childs, Biblical Theology; Fuller, Unity of the Bible; Scobie, Ways of Our God; VanGemeren, Progress of Redemption; Hamilton, God's Glory in Salvation; Beale, Biblical Theology;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2) 이 책에서 나는 다양한 관점을 가진 여러 학자들을 인용한다. 나는 통상적으로 이 학자들이 인상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경우에 그들의 자료를 인용한다. 그러나 이들을 인용했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큰 그림의 틀에 나타난 나의 견해에 이들이 반드시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저자든지 나와 상당히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다.
3) 베른 포이트레스(Vern Poythress)는 "Kinds of Biblical Theology"에서 다양한 관점들이 성경신학 연구에 채택될 수 있다고 옳게 주장한다.
4) Schreiner, Paul; New Testament Theology을 보라.
5) 나는 성경에 일관된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고 주장한 빌의 의견(G. K. Beale, Biblical Theology, pp. 168~184)에 동의한다.
6) 이 부분에 대해서는 Goldingay, Israel's Faith, pp. 59~60을 보라.
7) 나는 이미 저술한 두 책에서 이와 같은 기본적인 이유를 풀려는 시도를 했다. Schreiner, Paul; New Testament Theology. 또한 Hamilton, God's Glory in Salvation을 보라.
8) 성경에 나타난 주 되심이 갖는 중심성에 대해서는 Frame, Doctrine of God을 보라.
9) Goldingay, Israel's Faith, pp. 59~83을 보라.
10) 다른 학자들은 성경의 주요 주제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것이라고 올바르게 주장하고 있다. Scobie, Ways of Our God, pp.469~651; Martens, "People of God"을 보라.
11)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에 대해 주의 깊게 설명하는 글로는 Childs, Biblical Theology, pp. 356~358을 보라.
12) 언약은 관계를 의미하며, 이 관계에는 맹세로 체결된 여러 규정들이 있다. 언약의 정의에 대해서는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pp. 132~133을 보라.
13) 메러디스 클라인은 "언약이 하나님의 광적인 통치를 집행하는 수단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한다(Meredith Kline, Kingdom Prologue, 3). 또한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Dumbrell, Covenant and Creation, p. 42을 보라. 언약에 대한 자신의 제안과 함께 성경에 나타난 언약을 살핀 글로는 Hahn, Kinship by Covenant을 보라.
14) 이 주장은 Martens, “People of God”, p. 230에서 옳게 제시되었다. 또한 Terrien, Elusive Presence을 보라.
15) Alexander, Eden to the New Jerusalem, pp. 14~15.
16) Hamilton, God's Glory in Salvation, pp. 37~65을 보라. 헤밀턴은 하나님의 영광이 "심판을 통한 구원에" 표현된다고 주장한다.
17) 나는 대부분의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우리가 창세기에 대해 말하든 복음서에 대해 말하든,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역사적인 사실로 믿는 것에 동의한다. 나의 입장이 책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이 책의 목표는 나의 입장을 변호하는 데 있지 않다. 이 책의 목표는 성경을 최종 형태, 즉 정경의 형태라고 받아들이면서 성경신학을 전개하는 것이다.
18) 이 주제에 대한 중요한 연구인 Kruger, Canon Revisited을 보라.
19) 정경적 접근법은 브레바드 차일즈(Brevard Childs)의 기념비적인 작업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비슷한 접근법으로 Rendtorff, Canonical Hebrew Bible을 보라. 매우 다른 해석 방법으로 Brueggemann,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을 보라. 브루그만(Brueggemann)은 포스트모던적인 접근법을 사용하는데, 이 방법은 기독교적인 해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명히 말해서, 본 연구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창하는 브루그만의 연구는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통찰을 제시하지만, 그의 책에는 수많은 실증주의적이고, 교의적이고, 모더니즘적인 진술들이 담겨 있다.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의제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드러내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린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의 진리와 성경의 권위와 완전한 진리성을 전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입장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위해 Frame, Knowledge of God; Word of God을 보라. 나는 이 책에서 구약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 여부를 조사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연구는 브루그만의 연구와 비슷하다. 그러나 나는 구약 성경이 역사적인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20) 현재 성경신학의 흐름은 구약을 히브리 성경의 순서에 따라 탐구하는 것이다. 이 추세에 대한 강력한 지지자는 자이cm다(Seitz, Fellowship of the Prophets). 또한 Hamilton, God's Glory in Salvation, pp. 59~63: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pp. 95 각주 308을 보라. 모든 목록에 시가서들이 같은 순서로 배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순서가 어떤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핵심적인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21) 차일즈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나의 견해로는, 이 쟁점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주장과 이 쟁점의 전제가 되는 많은 가정이 입증되지 않았다. 구약 성경의 한 책을 읽을 때 정경적인 순서가 보여 주는 결과와 히브리 성경과 헬라어 구약 성경의 정경적인 순서 배합이 드러내는 신학의 차이를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생산적인 조사 방법이다."(Childs, Old Testament as Scripture, p. 564).
토머스 슈라이너 지음, 강대훈 옮김, 『성경신학』(서울: 부흥과개혁사, 2016), pp. 10~13.

첫댓글 매우 좋은 포스팅입니다. 초신자든 신학생이든 성경전체의 중심주제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저자 토머스 슈라이너에 대한 소개
------------------------------------------
토머스 R. 슈라이너 (Thomas R. Schreiner; 1954년 - ) 미국출신의 신약신학의 권위자이다. 남 침례교 신학교에서 신약 해석학교수로 있다.
저서
토머스 슈라이너 히브리서 주석 (BTCP 성경신학주석시리즈1): 복있는 사람, 2016년
신약신학 (임범진 옮김, 부흥과 개혁사, 2015)
속죄의 본질 논쟁 (그레고리 A. 보이드 외, 김광남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8년)
https://ko.wikipedia.org/wiki/%ED%86%A0%EB%A8%B8%EC%8A%A4_R._%EC%8A%88%EB%9D%BC%EC%9D%B4%EB%84%88
--------------------------------------------
한국에서 슈라이너의 책을 출판한 곳들도 건전한 곳들이네요.
건전한 출판사와 좋은 저자로 보입니다.
교보문고에 올린 추천사들을 보니 추천인들이 쟁쟁하네요.
--------------------------------------
추천사
사이먼 게더콜 (캠브리지 대학교)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고 충실하게 성경신학을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은 지적인 호소력과 하나님을 향한 영예를 담고 있으며, 따라서 널리 읽혀질 만한 가치가 있다.
도널드 A. 해그너 (풀러 신학대학원)
슈라이너는 에덴동산에서 낙원의 동산까지 구속사의 전체 내러티브를 통해 숙달된 솜씨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슈라이너는 정경의 모든 부분을 주의 깊게 다룸으로써, 하나님 나라 또는 다스림이라는 주제 아래 성경이 어떻게 일관성을 갖는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신학적이고 실제적이며 신앙적인 통찰이라는 만찬을 독자들에게 보상으로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은 크리스천들에게 간결하고, 직접적이고, 비전문적인 방식으로, 성경 전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맛을 제공할 것이다.
마크 L. 스트라우스 (벧엘 신학대학원 샌디에고)
한 권으로 된 슈라이너의 성경신학은 성경 스토리텔링의 풍부한 광맥이다. 슈라이너는 전체 정경의 성경신학과 씨름함으로써 그의 연구에 금자탑을 쌓았다. 그리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슈라이너는 왕이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승리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명확하고 일관되게 추적함으로써, 대단한 일을 해 냈다. 성경의 거대 내러티브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처럼 광범위하고 잘 다룬 작품은 별로 없다.
로버트 W. 야브루 (커버넌트 신학대학원)
성경의 모든 책들을 훌륭하게 연결시킨 책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처럼 배움의 열정과 가르침의 은사와 하나님을 향한 가슴을 가진 저자는 별로 없다. 당신의 성경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당신의 영혼이 아름다움 중에 계시는 왕에게 새롭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이 책을 음미하라.
출처: 교보문고
출팡사의 개요와 서평을 보면 책이 없는 상태에서도 책의 성격을 대강 금방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성경신학』은 성경 전권에 대한 신학적 개관으로, 정경인 최종 본문의 각 권 내용을 성경신학적 주제를 따라 설명하면서 성경 전체의 흐름에 주목하게 한다. 저자는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한 개념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갖지는 않지만, “하나님 나라”가 가장 포괄적으로 성경 전체의 주제를 묶어 준다고 제안한다.
출판사 서평
철저히 학문적이면서도 신학 전공자는 물론이고 일반 성도도 쉽게 읽을 수 있게 글을 쓰는 토머스 슈라이너의 최신작이 나왔다. 이 책은 성경 전권에 대한 신학적 개관으로, 정경인 최종 본문의 각 권 내용을 성경신학적 주제를 따라 설명하면서 성경 전체의 흐름에 주목하게 한다. 저자는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한 개념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갖지는 않지만, “하나님 나라”가 가장 포괄적으로 성경 전체의 주제를 묶어 준다고 제안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구성 요소, 즉 “주 되신 하나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땅”이라는 주제들이 성경 전체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본다. 특히 구약 시대에 성취될 것 같았던 아브라함의 언약이 마침내 신약에 이르러 그리스도를 통해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출처: 교보문고
@장코뱅 위 서평과 추천사를 보면 책을 사기 전에도 어느 정도 개관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재직중인 남침례신학교는 칼빈주의의 흐름을 어느 정도 수용한 보수적이고 복음적인 신학교입니다.
--------------------------------------
남침례신학교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SBTS)는 미국의 남 침례교 협약 (SBC)과 관련된 6 개 신학교 중 가장 오래된 신학교이다. 이 신학교는 1859년 사우스 캐롤라이나 그린빌에서 설립되었으며, 처음에는 퍼먼 대학교 캠퍼스에 있었다. 남북 전쟁 중에 문을 닫은 후 1877년 루이빌 시내에 새로 지어진 캠퍼스로 옮긴 후 크레센트 힐 인근의 현재 위치로 옮겼다. 5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교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현재 3300명의 신학생들이 등록되어 있다.
이와 아래 위키 링크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B%82%A8_%EC%B9%A8%EB%A1%80%EA%B5%90_%EC%8B%A0%ED%95%99%EA%B5%90
남침례 신학교의 학풍을 알려 주셔서 도움을 받습니다. 괜찮은 신학교 같습니다.
본문 중 "인간의 타락 이후로 하나님의 통치는 무시당해 왔으며..." -->
원죄의 결과는 하나님의 통치에서 제외된 것이고, 구원의 결과는 지상에서 살아갈 때에 조차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마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
마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호크마 주석>
나라 -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거룩하시듯이 또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시고 영원히 통치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Kingdom)란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reign)가 미치는 영역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더불어 나타났지만 세상 끝날에 비로소 완성되는 이중 구조를 지니고 있다(막 1:15 강해, '하나님 나라의 개념',28:10;눅 21:27, 28;계 21:1-8).
임하옵시며 - 사람들이 하나님께 머리 숙여 복종하고 또 구원의 종말론적 축복을 미리 누림에 따라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가 계속 확장되게 해달라는 기도이며, 그 나라가 완성되게 해달라는 기도이다(고전 16:22;계 11:17;22:20). 한편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위로'(눅 2:25)를 기다렸으며, 메시야가 통치할 다윗 왕국을 대망하였었다. 특히 그들은 회당 예배가 끝날 때마다 고대 아람어 기도인 '콰디쉬'(Qaddish, 성화를 뜻함. 여기에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소망이 간절히 깃들어 있다)를
암송하기도 했다(Jeremias, Prayers, p.98).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에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나라가 시작되어 그 나라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 이 말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롬 12:2) 하늘에서 온전히 성취된 것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여기서 '뜻'에 해당하는 원어 '델레마'(* )는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들(7:21;12:50)과 구속사에서 어떤 사건을 전개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18:14;26:42)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십자가와 같은 대속적(代贖的) 죽음이 실현되어야 하고, 동시에 절대적 순종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한편 본문의 '하늘에서'란 하나님과 천사들만이 존재하는 세계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두번째의 간구('나라이 임하시옵시며')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통치와 의(義)가 지금 현재 온전히 성취된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이와 상용되는 '땅에서'란 말은 앞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대상(타락한 이 지상과 역사와 인격들 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뜻은 현재 '하늘'에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거기에는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은 아직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구현되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메시야 왕국의 왕성을 뜻하는 기도라 할 수 있다.
@장코뱅 네, 알겠습니다.
마6:13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호크마 주석>
'나라'는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10절). 따라서 그 나라를 유지(維持)하시고 당신의 백성에게 선한 약속들을 성취시킬(12절) 권세와 거기에 수반되는 모든 '영광'이(9절) 다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앞의 주기도문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본문의 송영은 전통 깊은 교회의 신앙 고백적 찬양으로서 오늘날 우리들에 의해 계속 낭송되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본문 중 “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창조의 절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
“창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호크마 주석: 창세기>
===1:26
우리 - 이 말에 대한 여러 해석은 다음과 같다. (1)하나님께서 자신을 재촉하는 의미로 복수형을 사용하셨다. (2)삼위일체에 대한 구약적인 표현이다. (3)하나님이 천사들과 의논하심을 가리킨다. (4)히브리인들은 장엄한 것을 나타낼 때 흔히 복수형을 사용하므로 강세(强勢)를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이다. 그러나 후대의 발전된 계시에 비추어 볼 때 합당한 해석은 두번째 견해, 즉 창조 사역에 나타난 각 위(位) - 성부, 성자, 성령...의
완벽한 협력을 나타낸 말로 보아야 한다.
형상...모양대로 - '형상'( ,첼렘)과 '모양'( ,데무트). 이 두 단어는 유사한 단어로서, 비슷한 말을 연속 사용하여 강조의 효과를 나타내는 히브리 수사법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굳이 분류하자면 '형상'(image)은 어떤 사물과 그것을 그린 그림이 서로 닮은 것처럼 인간과 하나님 간에 찾아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닮은꼴을 가리키며 '모양'(likeness)은 추상적인 면에 있어서의 유사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 되었다는 것은 인간전인(全人)이 하나님의 성품의 영향을 받아 지음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시 8편, 겔28:12). 이러한 사실은 (1)인간이 저급한 상태에서 고등한 상태로 진화되었다는 진화론(evolution theory)의 허구성을 깨우쳐 주며 (2)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 대상으로 인간만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엡 4:23, 24, 골 3:10). 그러나 창조시 부여된 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타락시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그러나 끝내 상실되지 아니하고 그 흔적은 계속 남아 있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케 하는
접촉점(contact point)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 피조물 중에서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능히 깨달을 수 있는 반면 타락으로 말미암는 인간 비하(卑下, 3:16-19) 역시 얼마나 뼈아픈 비극인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사람( ,아담) - 창조 사역의 절정은 사람의 창조요, 창조의 면류관 역시 사람이다.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담'은 이중적인 뜻을 갖고 있다. 첫째 는 보통 명사로서 일반 사람을 가리키며, 둘째는 고유 명사로서 최초의 사람인 아담을 가리킨다. 한편 '아담'이란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1) '붉어진다'에서 유래, 인간의 피부 빛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 (2)'빛이 난다'란 뜻의 아람어에서 유래, 아담을 빛나는 자로 만들었음을 뜻한다는 견해. (3)'데리고 온다', '결합시킨다'는 뜻의 아람어에서 유래,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며 모든 인류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자임을 뜻한다는 견해. (4)'모양'이란 어원에서 유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음을 뜻한다는 견해. (5)'땅'에서 유래.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졌음을 반영한다는 견해 등이 있다. 모두 일면의 타당성을 지니나 (5)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다스리게 하자 - '주권을 잡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통치하다'라는 뜻, 즉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을 주관할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고등한 존재로서 다른 피조물들에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1:27
여자 - 남자와 구별됨을 강조하는 표현(6:19). 본절에서 남자와 더불어 여성의 창조를 특별히 언급한 것은 창조시부터 남녀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1:28
정복하라( , 카바쉬) - '발로 밟다'(미 7:19), '복종케 하다'(민32:22)란 뜻, 이는 땅을 자신의 것으로 취급하여 마음대로 행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선한 목적을 좇아 땅 속에 포함된 광대한 자원을 개발하며 유용하게 이용하라는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이다(9장, 강해 하나님의 문화 명령).
@장코뱅 매우 풍성한 설명입니다. 잘 흝어 보겠습니다.
슈라이너 저서와 같은 좋은 책은 신학은 물론이고 신앙도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좋은 포스팅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