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13.
‘이런 연구가 어떻게?’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해 마지막 호에서 ‘2020년 10대 과학성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목록을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1년 동안 나온 수많은 연구결과 가운데 뽑힌 열 개에 포함되기에는 너무 평범해 보이는 게 하나 있어서다. 세계기후연구프로그램(WCRP)의 연구자들이 2020년 7월 학술지 ‘지구물리학리뷰’에 실은 장문의 논문으로, 기후민감도의 범위가 2.6~3.9도라는 결과를 얻었다는 내용이다.
기후민감도란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혁명 이전의 두 배가 될 때 지구 기온 변화를 뜻한다. 지구 온도가 2.6~3.9도 높아질 거라는 예측이다. 연구자들은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 및 지구 표면 평균온도의 변화를 예측하는 물리 모형과 산업혁명 이후 측정 데이터, 수백만 년에 이르는 고(古)기후 데이터를 종합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이게 뭐 대단한 연구인가 싶었지만 1979년 처음 기후민감도 범위를 1.5~4.5라고 예측한 연구가 나온 이래(당시 연구를 이끈 저명한 기상학자 줄 차니의 이름을 따서 ‘차니 보고서(Charney report)’로 불린다) 34년이 지난 2013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기후민감도 예측 결과를 발표했을 때도 여전히 이 값의 범위였다.
문제는 하한선과 상한선이 너무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한다는 데 있다. 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보다 1.5도만 올라가면 지구가 견딜만하다. 반면 4.5도 상승은 지구를 핫하우스가 되기 직전의 상태로 만드는 값이다. 난방을 하는 온실을 뜻하는 핫하우스(hot house)는 5도 이상 높아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 지구를 묘사하는 용어다.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건 과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하한선을 근거로 든다. 과학의 예측 범위 안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농도가 1.5배가 된 오늘날 이미 평균 기온이 1.1도 올라간 걸 생각하면 2배가 됐을 때 불과 1.5도(지금보다 0.4도) 더 높아질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기후민감도 범위를 좁힐 수 있는 좀 더 정교한 예측 프로그램의 개발이 시급했고 이걸 해낸 것이다.
이제 하한선을 적용하더라도 2.6도(지금보다 1.5도) 더 높아지는 것이므로 지구가 꽤 타격을 입을 거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게 지구촌의 절박한 과제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게 됐고 각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에 이르기 전에 최고점을 찍고 내려갈 수 있을까.
○ 내년에 1.5배 돌파할 듯
▲ 1979년 기후민감도 예측 연구결과가 발표된 이래 40년 동안 범위가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 마침내 범위를 2.6~3.9도로 좁힌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 사이언스 제공
지금 추세대로라면 이럴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2000년대 들어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폭이 오히려 더 커져 매년 2~3ppm씩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50년 뒤에는 기후민감도의 실제값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월 7일 영국기상청과 미국 스크립스연구소는 하와이 마우나로아관측소에서 측정한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의 3월 평균값이 417.64ppm으로 지난해 5월의 417.10ppm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5월에는 420ppm을 넘을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영국기상청은 올해 평균을 416.3(±0.6)ppm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내년이 산업혁명 이전 농도인 278ppm의 1.5배를 돌파하는 해로 기록될 것이다. 산불이나 가뭄 등 자연재해가 극심하면 올해가 될 수도 있다.
물론 1.5배인 417ppm을 돌파한 건 지난해 5월이지만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는 계절적 요인, 특히 광합성 양에 따라 오르내림이 있어 5월이 최고점이고 9월이나 10월이 최저점이다. 육상식물과 사람이 훨씬 많은 북반구가 추워 광합성이 줄고 난방을 하는 7~8개월 동안 8ppm 정도 올라가다가 날이 따뜻해 광합성이 활발한 4~5개월 동안 5~6ppm 낮아진다. 1년 주기로 톱니처럼 오르내리지만, 상승 폭보다 하락 폭이 작아 매년 그 차이(2~3ppm)만큼 평균값이 증가하는 것이다. 참고로 지난해 평균은 414ppm이다.
그렇다면 오른쪽이 높게 기울어져 있는 톱을 어떻게 평평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반대로 기울게 만들 수 있을까. 매년 이산화탄소가 어디서 얼마나 배출되고 어디서 얼마나 포집되는지 현 상황을 살펴보자.
○ 포집량은 배출량 절반 수준
▲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를 보여주는 그래프로 하와이 마우나로아관측소 데이터다. 2021년은 예측값이다.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는 식물 광합성량에 따라 계절 편차를 보이는데, 지난해 정점인 5월 417.1ppm을 기록해 산업혁명 이전 농도인 278ppm보다 50% 증가한 값인 417ppm을 돌파했다. 올해는 3월에 417.64ppm을 기록했고 5월에는 420ppm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 영국기상청 제공
화석연료로 에너지를 얻은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탄소 무게만 따졌을 때 94억 t에 이른다(이하 2010~2019년 평균). 여기에 토지 용도를 바꾸면서(예를 들어 숲을 파괴해 농지를 만들 때) 나오는 탄소 16억 t을 더하면 매년 110억 t의 탄소가 배출된다. 반면 식물의 광합성 등으로 육지에서 포집되는 탄소는 34억 t이고 플랑크톤의 광합성 등으로 바다에서 포집되는 탄소는 25억 t으로 둘을 합쳐도 59억 t에 불과하다.
매년 탄소 51억 t이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대기에 더해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배출량을 줄이고 포집량을 늘려 51억을 0으로 만들어야 ‘탄소제로’가 실현된다. 언뜻 봐도 기후민감도의 결과를 확인하기 전에 탄소제로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먼저 화석연료 발생량을 보면 각국이 재생에너지나 원전 확대 등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지만 지구의 인구가 여전히 늘고 있고(현재 78억 명에서 2050년에는 100억 명 가까이 될 것으로 예상) 1인당 에너지 소비량도 늘고 있어 크게 줄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토지 용도 변경에서 나오는 탄소도 식량 및 사료 수요 증가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므로(인구 증가와 육식 선호) 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면 포집은 어떨까. 육지 포집량을 늘리려면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하지만 숲을 파괴해 경작지를 만드느라 사라지는 나무의 생물량이 더 많아 지금의 포집량을 유지하기도 버겁다. 바다의 포집량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연의 포집만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는 말이다.
▲ 지구 탄소순환을 보여주는 도식이다. 매년 화석연료 연소로 탄소 94억 t이 배출되고 숲 개간 등 토지 용도 변경으로 16억 t이 배출돼 총배출량은 110억 t에 이른다. 반면 육지에서 34억 t, 바다에서 25억 t이 포집돼 총포집량은 59억 t에 불과하다. 나머지 51억 t은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대기에 더해진다. 그 결과 해마다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2~3ppm씩 올라가고 있다. / 지구시스템과학테이터 제공
○ 이산화탄소 1t 포집 비용 47달러로 낮춰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3월 26일자에는 최근 탄소포집기술을 소개한 기사가 실렸다. 이 기술이 상용화에 성공하면 현재 4000만 t에 불과한 이산화탄소 포집량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기사를 읽고 두 측면에서 놀랐다.
먼저 실증설비 단계라고 알고 있었던 탄소포집기술이 이미 상용화돼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30곳이 추가로 지어질 계획으로, 실현되면 연간 포집량이 1억4000만 t으로 늘어날 것이다. 화석연료를 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연간 배출량이 350억 t이므로 그래 봐야 0.4%에 불과하지만 뜻밖이다.
다음은 현재 상용화된 포집 기술이 '아민'이라는 질소화합물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기사에서 소개한 최신 기술 역시 새로운 아민 분자를 만들어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크게 낮춘 것이다. 예전에 탄소포집기술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을 때 아민은 언급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 좀 당황스러웠다.
뜻밖에도 아민 탄소포집은 1930년에 특허가 난 뒤 상용화돼 널리 쓰이는 오래된 기술이다. 주로 천연가스에서 불순물로 들어있는 이산화탄소와 황화수소를 걸러내는 용도였지만, 1980년대부터 화력발전소에 적용되기 시작해 지금은 사실상 유일하게 상용화된 탄소포집기술로 자리매김했다.
아민 탄소포집의 원리는 간단하다. 화력발전소의 배출 가스가 파이프를 통해 탱크 아래쪽서 들어와 올라가고 탱크 위쪽에 연결된 파이프에서 아민을 20~30% 함유한 수용액 물방울이 분사돼 내려오면 둘이 만나며 이산화탄소가 아민 분자에 잡힌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가 제거된 기체가 탱크 위로 빠져나가고 이산화탄소를 머금은 아민 수용액은 탱크 아래 파이프를 통해 빠져나간다.
아민 탄소포집의 단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서 이산화탄소를 꽤 발생시키는 공정이라는 점이다. 이산화탄소를 머금은 아민 수용액에서 이산화탄소를 떼어내고 아민 수용액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열과 압력을 가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00도 이상 가열하면 수증기가 발생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떨어져 나가고 압력을 가해 수증기를 응축시킨 뒤 남은 이산화탄소는 100기압 이상의 고압으로 압축해 보관한다.
현재 이산화탄소 1t을 포집하는 비용은 58달러(약 6만5000원) 수준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2035년까지 이 비용을 30달러로 낮춰야 아민 탄소포집이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의 규모로 커진다고 보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퍼시픽노스웨스트국립연구소의 데이비드 헬데브란트 박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9년부터 물이 필요 없는 아민 용매를 개발하는 연구에 뛰어들었고 지난해 마침내 이상적인 물성을 지닌 2-EEMPA라는 아민 분자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의 아민 분자들은 물 없이 100%로 쓰면 이산화탄소를 머금으면서 점도가 높아지고 침전물이 생겨 연속공정이 불가능했다.
2-EEMPA는 독특한 분자구조 덕분에 이산화탄소를 머금어도 다른 분자와 서로 들러붙지 않고 침전물이 생기지도 않는다. 또 열을 약간만 가해도 이산화탄소가 쉽게 떨어져 분리되므로 이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지난 3월 학술지 ‘온실기체조절국제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기존 방법보다 에너지가 17% 덜 들고 이산화탄소 1t을 포집하는 비용도 47달러로 계산됐다. 연구자들은 내년에 0.5메가와트급 소형 화력발전소에 2-EEMPA 용매를 쓴 아민 탄소포집기술을 적용한 실증설비를 만들어 시험할 예정이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탄소포집저장을 하는 기업에 1t에 5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지난달 의회는 탄소포집프로젝트에 49억 달러(약 5조5000억 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 최근 미국 연구자들이 개발한 아민 용매 탄소포집 공정을 보여주는 도식이다. 화력발전소의 연소 기체(1)가 탱크(absorber)로 들어와 올라가며 위쪽에서 뿌려져 내려오는 아민 용매 방울(청록색)을 만나면 이산화탄소가 흡수된다(2). 이산화탄소를 머금은 아민 용매(짙은 갈색)가 아래 파이프로 배출돼 가열되면 두 번째 탱크에서 고압의 이산화탄소(파란색)가 빠져나간다(3). 잔여 이산화탄소를 머금은 아민 용매(옅은 갈색)가 아래 파이프로 배출돼 가열되면 세 번째 탱크에서 저압의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간다(4). 이산화탄소가 제거된 아민 용매(청록색)가 재활용되면서(5) 위의 과정이 반복된다. / 사이언스 제공
한국도 7일 80여 개 민관기관이 참여한 ‘K-CCUS 추진단’이 발족했다. CCUS는 ‘탄소포집활용저장’의 영문 약자다. 탄소포집기술 덕분에 기후민감도의 실제값을 보기 전에 탄소제로를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강석기 /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