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육체 / 앤드루 머리
작성자백합향|작성시간12.09.21|조회수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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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에서 우리는 타락의 결과가
육신화(肉身化)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이 함께 할 수 없는 존재,
곧 육신화한 인생은 곧 영원한 죽음을 운명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복음 교리가 부딪치는 하나의 장애물이 있는데
그것이 곧 로마서 8장 13절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은 실로 복음을 깨달았다고
기뻐하는 사람들 앞에 가로놓인 준엄한 장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을 깨달으면 무조건 천국에 간다고 경솔하게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말씀이지요.
왜냐하면 복음을 깨달았다는 사람들에게 그 말씀은 또 하나의
천국 가는 조건을 새롭게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 말씀을 편리하게 해석합니다.
신자들이 육신대로 살아도 천국 가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나
단지 생활이 죽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열매는 나빠도 나무는 좋다는 궤변이지요
그러나 그런 엉터리 해석은 사탄의 올무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야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영광을 밝혀주는
로마서 8장이 이 13절을 중심으로 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라는 말씀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우리라"는 창세기 말씀과 똑 같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중시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말씀은 쉽고 편안하게 천국에 가고자 하는 신자들에게는
절망을 안겨주는 애물단지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천국에 가고자 하는 신자에게는
온전한 신앙으로 나아가는 감사한 전환점이 되는 구절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듯이 죽는 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일진데
우리는 가감하지 말고 그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버리거나 등한히 하면서 목사님의 말씀은 중히 여기고
따라가는 교단이나 신자가 바로 사이비 신자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남더러 이단 소리는 잘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육신대로 사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즉 육신을 따라 살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진정 무엇이냐 그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 때만이 신자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종교도 이것이 없습니다.
기독교가 여타 종교와의 가장 크게 다른 점 중의 하나는 성령을 배우고
성령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육신대로 사는 것은 한 마디로 내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싫어 인생 자신의 독자노선을 선택한 것이
선악과를 따 먹은 소치이지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좋아하지만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은 싫어합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천국 가는 것은 다 찬양하지만
죽기까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맘에 안 든다는 그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들이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집에 오면
하나님 없이 산다는 그 말입니다.
육신대로 사는 것은 곧 불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고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바로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돌이킨 것이 구원된 삶입니다.
얼마나 순종 하느냐가
얼마나 성령충만에 이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앤드류 머리(정현대 평역)
25장 "성령과 육체" 처음부분 에서 일부 발췌
2012. 9. 21
청천홍심
PS:
그렇습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말씀이 계시로 믿어진 믿음은 순종과 이김을 줍니다.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믿음은 죄를 이기고 죄에 매이지 않는 자유를 줍니다.
보리 이삭에 발생하는 깜부기 병
앤드류 머리 (Andrew Murray, 1828-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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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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