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웃음 / 유태경
어느 날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거실에 상자를 놓고 나가기에 “누구요?”라고 물었다. 대답도 없이 나가버린다. 나는 상자를 열어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고함치며 일어서지도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상자 안에는 뱀들이 꿈틀거리며 나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기 때문이다. 괜찮으니 진정하고 일어서라며 내 등을 툭툭 치는 그 사람의 다리를 움켜잡고 당장 치워달라고 사정사정하는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상자를 앞마당에 옮겨 놓고는 자동차를 가져온다며 자리를 뜬다. 마치 꿈틀거리는 뱀이 내 몸에라도 기어오르는 듯이 두렵기에 뱀 상자를 쳐다보며 나는 좌불안석이다.
잠시 후다. 상자가 슬그머니 열리더니 뱀들이 밖을 기어 나온다. 깜짝 놀라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쳤으나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온 뱀들은 모두 집안으로 기어들어간다. 나는 벌벌 떨며 이제는 망했구나! 설령 뱀을 다 잡는다 해도 저 집에는 들어가 살 수 없기에 소리 지르며 도망치다 벌러덩 넘어져 코에 피가 터졌다.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는 나는 푹~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몸은 식은땀에 푹 젖어있지만, 다행스럽게도 꿈이었기에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뱀을 제일 싫어한다. 징그럽기도 하지만 날름거리는 혀는 상상하기조차 무서워 소름까지 끼친다. 하필이면 왜! 뱀 꿈을 꾸었을까? 식은땀에 젖은 몸에 냉기마저 흘러 오싹 소름이 끼친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지 않는다. 평소 꿈을 꾸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또 개꿈이다 싶었는데,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니 아마도 개꿈은 아닐 듯싶다.
해몽 책을 본 적이 있기에 벌떡 일어섰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책을 찾아서 뒤져보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며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끔찍한 꿈이었지만 뱀에 대한 소름도 수그러들며 징그러움도 서서히 사라진다. 도리어 뱀들이 귀엽고 고맙게 느껴진다. 큰 재물이 들어와 횡재할 꿈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콧노래 부르며 거리를 달린다. 자동차의 문 유리창을 내렸다. 약속이라도 한 듯 쏟아져 들어오는 새벽 공기가 이렇게 상쾌한 줄은 미처 몰랐다. 마치 나는 하늘로 날아갈 듯 상쾌한 새벽바람에 눈썹이나 머리카락은 물론 내 마음까지도 자동차를 무대 삼아 춤사위가 한창이다.
주유소에 도착했다. 6마리씩 2봉지라! 총 12마리와 오늘 날짜를 합하여 데일리 3, 4, 슈퍼 로또, 메가밀리언, 판타지 5 등 복권을 샀다. 오늘이 10월 7일이니 17불을 투자했다. 그리고는 한꺼번에 횡재를 위해 추첨이 모두 끝나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아직 먼동이 트기 전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책상 앞에 앉아 누가 볼세라 문을 걸어 잠그고는 눈을 감았다.
베버리 힐 산모퉁이 으리으리한 집 주차장에 벤츠 자동차 600인지 1,000인지가 서 있다. 그 옆으로는 큰 요트도 서 있다. 부부는 골프를 하고 젊은 남녀는 테니스를 한다. 수영장에서 아이들의 물장구에 튀는 물방울이 나에게 떨어지기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잠깐 졸았다.
턱에 흘러내리는 침을 닦았다. 그리곤 돋보기안경을 깨끗이 닦아 쓰고는 복권의 숫자를 하나씩 뚫어지도록 보았다. 에이~ 에이~ 에이~ 꽝, 꽝, 꽝 역시 꿈은 개꿈이었다. 모두가 꽝이다.
나는 한동안 눈을 감고는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과욕은 금물이라는 말이 새삼 떠올라 너무도 창피하기에 증거를 없애려고 복권을 모두 불에 태워버렸다. 비록 17불의 적은 돈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 한 조각이라도 먹이거나 좋은 일에 쓸 것을…….
로또 당첨자 3명 중 1명은 5년 내 파산한다고 들었다. 누구나 로또 당첨을 꿈꾸지만 실상 복권 당첨자의 행복보다는 오히려 불행한 사람이 더 많다고도 들었다. 1백만 명 중 단 1명만을 당첨시켜 특별히 부각하게 시키니 누구나 사면 당첨될 듯한 환상에 젖어든다.
그런데 나는, 나이 60이 되도록 먹고 사느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만 하면서 살다가 쓰러져서야 인생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묻게 되었다. 수술 후 병실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과연 인생이란 무엇인가? 배우고 싶은 것들이나 하고 싶은 일을 미루기만 하며 왜 이렇게까지 살아왔으며 살아야 하는가 싶었다.
그동안 나의 꿈은 대형 상가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계획대로 꿈은 차곡차곡 쌓여 마음속으로 정한 목표가 보이는 듯싶었다. 하지만 병상에 누워 생각해 보니 정상에 올라서면 과연 나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지나간 긴 세월이 너무도 허무하게만 느껴진다.
퇴원 후 나는, 나 자신과의 결렬한 싸움 끝에 멋진 노후를 위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가게를 팔았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정년퇴직했다. 60세가 되기 전에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내려놓고 새로운 나만의 인생길을 찾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하고 싶으면 하면서 배우고 싶었던 국악(해금, 피리, 경기민요, 사물놀이) 등을 열심히 배웠다. 행복하면 가는 세월은 더 빠른가 싶다. 벌써 고희의 문이 열리기에 말이다. CEO의 큰 꿈도 접었거늘 사소한 꿈에 흔들려 복권을 쪼였던 간사하고 초라한 내 몰골이 나도 싫다.
아내가 전화받으라며 뛰어 올라온다. 며느리의 전화다. 직접 아버님께 말씀드리고 싶단다. “아버님. 여긴 병원인데요. 저 임신이래요. 한 명도 아니고 쌍둥이래요!”라는 며느리의 반가운 목소리다. 꿈인지 생시인지 나는 허벅지를 힘껏 꼬집어보았다.
역시 뱀을 본 꿈이 개꿈은 아니었다. 횡재하는 귀한 꿈이었다. 결혼한 지 일 년이 되어가도 아기 소식이 없어 은근히 걱정되는가 싶더니 몇천만 불 복권당첨보다 더 귀하고 반가운 태몽 꿈이었다.
하나뿐인 외아들도 아들 한 명만을 두었기에 딸이나 손녀가 소원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꼭 예쁜 딸 쌍둥이를 우리 부부에게 안겨 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혹시라도 과욕은 아닐는지!
뱀이 든 상자로 우리를 시험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자못 궁금하다. 딸 아들 구별하지 말고 조용히 신은(神恩)만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오늘도 하루해가 지나 찬란한 황혼이 쏟아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아내와 씽긋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