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 외과의사
남자는 삼색등(三色燈)이 걸려 있는 이발소, 여자는 미장원이라고 부르던 때도 있었다.
오래 전에는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했다
1685년 프랑스 외과의사 '샤를 프랑수아 펠릭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현대적 의미의 외과의사가 자리잡을 때까지, 요즘의 시각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19세기 독일에서오늘 날 외과의사로 확실하게 구뱔하게 된다.
이발사는 의사만큼 오래된 직업이다. 서양에서 면도는 오래된 관습이었고 성직자인 수도사들은 수염을 다듬어야
했기에 면도사인 이발사는 필수적인 존재였다.
당시에도 내과의사(physician)가 있었지만, 이들은 정식 대학교육을 받은 고위층 집안 자제들이었다.
이들은 치료법과 약의 효능을 위주로 공부하였고, 상처 차료, 고름 제거,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의료, 절단 수술을하는 의사, 종군(從軍)해서 군인들의 총상(銃傷)치료는 천시하였다.
외과의사는 이발사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보니, 1200년대에는 파리대학에서 외과 전공이 아예 폐지되어 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차별에 대한 반발로 외과의사들은 그들끼리 교육기관을 만들어서 도제식 교육을 했다.
개업한 외과의사들은 정식교육을 받았다는 뜻으로 빨강과 흰색의 2색등(色燈)을 내걸었다.
---빨강, 파랑과 하얀 색으로 구성된 '이발소 삼색등'의 의미는 동맥, 정맥, 붕대에서 유래하였다.
그리고 일반 이발사와 다르다는 의미로 하얀 색의 긴 가운을 입었는데, 이것은 '의사 가운'의 유래라고 한다.
(위생 목적이 아니고. 당시 위생 개념이 전혀 없었음)
태양왕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루이14세의 병을 고치며 인생이 달라진 이발사 겸 외과의사 '샤를 프랑수아 펠릭스'(
(Charles-François Felix)가 나타난 이후로, 1731년 왕립외과아카데미가 설립돼, 1740년대에 유럽에서 비로소
이발사와 외과의사가 분리. 츠랑스에서 이발사와 외과의사의 겸업이 금지한다.. 완전한 것은 독일에서부터.
펠릭스'가 루이14세의 치질을 수술했는데. (치유가 안되 골치였는데 펠릭스가 성공)......공개적으로 사람들이
보고 있었고, 마취(痲醉)도 전혀 없이.
하지만 영국에서는 아직도 외과의사는 '닥터'라고 하지 않고 '미스터'라고 부르기도한다.
닥터의 어원은 docere인데, 라틴어로 "가르친다"는 뜻. 그래서 닥터(doctor)은 학식이 높은 사람-박사(博士)-라는 의미가 되었다.
외과의사는 영어로 surgeon 서저리(surgery)라고 한다. 어원은 그리스어의 cheir. "손으로 일한다"는 뜻
중세에 이발사는 barber-surgeon라고 불렀다. 바버(barber)에 외과의사란 말인 surgeon가 붙어서 이발사 겸 의사라는 뜻을 의미했다.
'이발소 '에 대하여 이의(異議)가 있다.
Italy 작곡가 Rossini의 opera 선전 그림엽서를 구했는데 3색등이 아니었다.
미국 측 역사가 들은 빨강과 흰색의 2색등(色燈)이 미국으로 오면서 청색이 더해져서 삼색등이 되었다고한다.
참고 wikipedia barber’d p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