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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감추고 싶어하는 독도의 비밀 (4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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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100년사 추적] 한일회담문서, 일본은 왜 독도문헌을 비공개했나? | |||||||||||||||
日, '한일협정' 한푼도 주고 싶지 않았다 (1부)
'한일조약'에 동원된 만주국 인맥들 (2부) '먹칠투성이'로 나온 일본측 한일회담 문서(3부) 우선 아래 자료를 보자. 이 자료는 일본정부가 2007년 11월 16일 세번째로 공개한 5340 항목의 한일회담 문서 중 문서번호 68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시 일본 외무성과 대장성(현 재무성) 등의 분과회가 작성한 것이다. 총 73페이지로 구성된 이 자료의 제목은 "일한회담 의제의 문제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문서는 한일 양국 대표단의 회의 석상에서 오고 간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에는 일본정부가 한국과의 예비교섭, 특히 한일기본관계 수립과 재산권, 어업, 재일조선인의 국적처리, 선박문제 등 구체적인 안건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상세하게 적혀져 있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이 첨부자료 두번째에 서술돼 있는 '독도문제'다. 사실 '한일회담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공개요구모임)'이 지금 일본 외무성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먹칠 부분의 공개에 관한 2차 재판'도 독도에 대해 당시 일본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확실히 알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전략) ... (4) 일한양국의 국민감정도 있기 때문에 본 문제에 대해서 지금 어떤 타협을 하는 것은 양쪽 모두 곤란해 질 수 있다. 따라서 얼마간은 상대의 불법행위에 대한 항의를 거듭하면서 우리 영토권의 보전 및 유보를 꾀하는 종래의 방식을 이어나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 (5) 다니, 김 대표간의 회담에 있어서도 다케시마 문제 때문에 다른 현안의 해결에 지장을 줘서는 안된다는 방침이었다. 또 전체적으로 좋아진 분위기를 활용해 쌍방간의 면목을 세워주는 방식으로 타결하자는 견지에서 다케시마 문제는 한일회담과는 별개로 합의하자는 데 동의, 다루지 않았다. (6) 또한 다케시마는 일본해의 고도(孤島)로 왕년에는 물개 사냥과 얼마 되지도 않는 조개나 해초를 채취했던 ■■■■■■■■■■■■■■■■■■■■■■■■■■■■■■■■■■■■" (기자주 - 일본측 문서 내용에 등장하는 지명표기는 원문 그대로 번역) 먹칠된 이 부분에는 도대체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는 걸까. 이 문서는 일본측이 내부적으로 작성한 문서로 한국측 공개문서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일본측이 공개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진실을 밝혀낼 수 없다. 다만 일본정부는 3차 공개문서를 공개할 당시 12개 문서 26군데에 달하는 문서를 부분공개 및 비공개한 이유에 대해 '교섭상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즉 먹칠부분이 그대로 밝혀진다면 한국측과의 교섭에서 불리해 질 수 있다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다. 하지만 먹칠된 부분의 앞 문장의 흐름을 본다면 어느 정도 논리적인 추론은 가능해 진다. 문서공개모임의 이양수 사무차장은 "일본은 독도문제를 회담의제로 넣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먹칠 앞부분 문장의 흐름을 본다면 독도는 일본에게 있어 고작 조개 정도나 채취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개인적 추론임을 전제로 36글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왕년에는 물개 사냥과 얼마 되지도 않는 조개나 해초를 채취했던, 우리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저 그런 돌섬이다." 그는 "만약 독도가 그들에게도 중요했다만 앞 부분에 '조개나 해초를 채취해었지만 지금은...' 등의 구절이 들어갔을 테고, 만약 그런 내용이었다면 교섭상 불이익도 없으니까 먹칠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일본정부로서는 설령 '독도가 별로 중요한 섬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것을 공개해 버리면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인정한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위 자료는 그나마 낫다. 일본측은 3차 공개에 있어 '독도에 관한 문헌자료 - 문서 137'을 아예 비공개했다. 일본정부는 비공개 이유에 대해 "지금 현재까지 한일간의 입장이 다른 문제에 관한 교섭에 대한 정부내의 검토 및 견해가 드러나 있으므로 공표해 버린다면 앞으로 교섭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다음과 같은 견해서를 냈다. 제1 비공개문서 '독도문제에 관한 문헌자료' (문서 137) 1. 비공개 정보의 내용 등 외무성 아시아국 극동 아시아과(당시) 내 일한국교정상화 교섭사 편찬위원회가 작성한 문서이다. 해당문서는 다케시마 문제에 관한 문헌자료(주로 외무성에서 작성된 것)의 리스트 및 그 개요 등이다. 2. 비공개 이유 해당 기재내용은 현재의 일한관계에 있어 최대 현안사항중 하나인 다케시마 문제에 관해 우리나라(일본)의 대응에 관한 당시의 내부 검토 상황 등을 언급한 문서이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회심의에 있어서도 항상 논의되어 왔으며 한국측에서도 주일대사관에 대한 항의행동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등 일한 양국민이 각각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 정치적 중요성, 역사적 경위, 국제법상의 논점, 양국국민의 감정, 나아가 국제사회의 인식 등도 포함해, 우리나라의 입장이 불리해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공개함에 따라 우리나라가 앞으로의 교섭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행정기관이 장(長)이 판단하는 등 정보공개법 5조 3항에 따라 (비공개에 걸맞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참고로 외무성이 비공개의 법적근거로 든 정보공개법 5조 3항은 다음과 같다. 제5조 행정기관의 장은 정보공개 요구가 있을 때는 공개청구에 관한 행정문서에 다음 각 호에서 정하는 정보 중 하나라도 기록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청구자에 대해 해당 행정문서를 공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3항 정보를 공표함으로 인해 나라의 안전이 피해를 입거나 타국 혹은 국제기관과의 신뢰관계에 금이 갈 우려, 또는 타국 및 국제기관과의 교섭상 불이익을 입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행정기관의 장이 판단하는 정보. 그렇다고 해서 독도에 관련된 문서가 모조리 비공개된 것은 아니다. 2008년 5월 9일에 공개된 32951항목에 이르는 제6차 문서자료 문서번호 1510의 58~60항목, 그리고 63~64항목은 일본 외무성 <아시아국 집무일보>(1953년 1~12월호)의 기사를 인용해 독도의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넣기도 했다. "7월 12일 제4차 순시를 위해 다케시마로 출발한 순시함은 한국어민 약 30명이 한국경찰관 7명의 보호아래 어선 3척을 사용해 어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다케시마가 일본령임을 설명하고 재빨리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이것에 대한 한국 관헌은 우리 요구에 불응함은 물론 순시함이 섬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갑자기 수십발의 총격을 가해 왔다. 그 중 2발은 우리 배에 명중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2. '다케시마문제'의 2항 내용) 하지만 5, 6차 공개문서에 담긴 독도관련 자료들은 위 인용에서 보듯이 독도를 둘러싼 양국의 대응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지금 일본측이 주장하고 있는 '다케시마는 일본땅'임을 뒷받침하는 주장은 일본측의 공개자료에서 밝혀진 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측이 교섭상 불이익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 처분을 내린 '독도문제에 관한 문헌자료 (문서 137)'가 중요해 질 수 밖에 없다. 일단 문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문서 137은 독도에 관한 객관적이며 역사적인 문헌자료일 가능성이 높다. 또 일본정부가 교섭에서 불리해진다는 이유를 들어 100% 비공개했기 때문에 이 문헌자료에는 독도가 한국령이라는 결정적인 내용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문헌자료가 일본측에 유리한 내용이라면 일본정부가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문서공개모임이 오는 16일 판결이 떨어지는 2차 재판의 핵심을 '독도문제'라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양수 사무차장은 이렇게 말한다.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외무성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감출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다 드러내고 당당하게 독도가 누구 땅인지 따져보면 되는 걸 굳이 감추고 있다. 이번 재판은 그래서 독도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양수 사무차장은 '독도가 일본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내용이 담긴 정령(政令) 24호를 최초로 발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사무차장은 한국측 문서 3만 5천페이지와 일본측이 공개한 6만페이지의 비교대조 작업을 하던 중 일본측 6차 공개 1174의 1358 '제5차 한일회의 40항 - 조선총독부 교통국 공제조합의 본토내에 있는 재산 정리에 관한 정령'을 발견했다. 이 정령은 조선총독부 도쿄사무소의 부동산과 교통국 직원공제조합의 재산처리에 관한 법률로, 그 내용은 한반도에 본사를 두었던 회사의 일본내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조선이 해방됐기 때문에 나중에 혹시라도 불거질 지 모르는 청구권 문제를 미리 해결한다는 차원에서도 국내처분을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 정령 40호는 '조선총독부 교통국 공제조합의 본토내 재산의 정리에 관한 정령 시행에 관한 총리부령 제24호 2조'를 통해 "재산처분의 대상이 되지 않는 도서(島嶼, 섬 및 섬 주변지역)"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1. 지시마 열도, 하보마이 군도(스이쇼, 유리, 아키유리, 시보쓰 및 다라쿠도를 포함) 및 시코탄 섬 2. 오가사와라 제도 및 이오지마 열도 3. 울릉도, 다케노시마(竹の島) 및 제주도 4. 북위 30도 이남의 남서제도 (류큐 열도는 제외) 5. 다이토 제도, 오키노토리 섬, 미나미토리 섬 및 나카노토리 섬 원문 세번째 '다케노시마'라고 표기된 섬이 독도다. 이 정령을 보자면 일본은 독도를 재산처분의 대상지역이 아니라고 명시한 것이 된다. 이양수 사무차장이 발견해 낸 이 내용에 대해 민주당의 곤노 아즈마 참의원은 올초 아소 다로(麻生太?) 전 총리에게 질문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때 곤노 의원이 총리 앞으로 보낸 질문과 그에 따른 답변은 다음과 같다.
곤노 의원 질문) 1950년부터 1965년까지 진행된 일한국교정상화 교섭의 문서공개청구 소송의 결과 정부측이 2008년 5월에 공개한 6차 공개 1174의 1358 '제5차 일한회의' 40항에 조선총독부 교통국 공제조합의 본토 내의 재산정리에 관한 정령(1953년 3월 6일 정령 제40호, 이하 '정령 제40호')가 기재돼 있었다. 정령 제40호를 실시하기 위해 제정된 조선총독부 교통국 공제조합의 본토 내의 재산정리에 관한 총리부령(1951년 6월 6일 총리부령 제24호, 이하 '총리부령 제24호') 제2조에 의하면 정령 제40호 제14조의 규정에 따라 구(舊)일본점령지역에 본사를 두었던 회사의 본토내 재산정리에 관해 제2조 1항 제2호의 규정에 따라 제외되는 도서지역으로 '울릉도, 다케노시마 및 제주도'를 들고 있다. 즉 일본해 지역에서 다케시마는 울릉도, 제주도와 함께 정령 291호의 적용대상이 아닌 도서가 된다. 지금까지 일본정부는 1905년 1월 28일의 각의결정과 같은 해 2월 15일의 내무대신 훈령에 따라 2월 22일 나온 시마네 고시에 의해 "다케시마는 시마네현 오키노섬 소관이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총리부령 제24호는 이 주장과 모순되는 규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떻게 이해하면 되나? 아소 다로 답변) 조선총독부 교통국 공제조합의 본토내의 재산정리에 관한 총리부령은 조선총독부 교통국 공제조합의 본토내의 재산정리에 관한 정령의 규정에 따라 조선총독부 교통국 공제조합의 재산정리 사무를 행하는 데 있다. 당시 일본이 연합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이들 법령의 제정당시 해당 공제조합의 상황이 불분명했다는 것 등에 비추어 볼 때 원활한 사무처리를 하기 위해 다케시마 등 일부 지역에 있는 재산 및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연금지급자들을 제외한 것으로 일본 영토로부터 다케시마를 제외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다케시마의 영유권 문제에 관한 우리나라의 입장과 모순되지 않는다. 이 질의응답은 올해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자민?공명당 연립정권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과는 어느 정도 견해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지금도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독도가 일본영토로 표기돼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일본정부의 주장은 허점이 많다. 그간 논란거리가 되어 온 역사적 문헌자료를 대조해보고 싶어도 일본측이 공식적 문서자료를 내놓지 않는 이상 일본측의 문헌을 확인할 길이 없다. 내년은 한일합방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내년에는 한일양국의 미래지향적 친선우호 관계를 개척하자는 취지의 이벤트도 도처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한일관계 100년사에 있어 결정적 전환점이 된 한일회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 이러한 겉발린 친선관계는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른다. 12월 16일 열리는 2차 재판 1심 재판결과는, 그래서 중요하다. <제이피뉴스>는 한일회담에 관한 문서가 한 점의 의혹없이 투명하게 공개될 때 비로소 '투명하고 진정한' 한일 양국의 우정이 시작될 것이라 믿고 있다. (끝) ■ 기자주 <제이피뉴스>는 12월 16일 열리는 '한일회담문서 전면공개에 관한 재판'에 대해서도 충실히 보도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기사의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링크를 이용해 주세요 ⓒ 일본이 보인다! 일본전문뉴스 JP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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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목련꽃이 질 때 원문보기 글쓴이: 거지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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