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그는 누구인가
1. 17세기 초에 탄생한 ‘돈키호테’는 오랜 시간 동안 가장 매력적인 문학적 캐릭터로 칭송되었다. 무모할지 모르지만 풍차라 상징될 수 있는 거대한 기득층에 대한 도전, 억압을 극복하는 자유로의 질주, 약자를 위한 무한한 헌신 등 그는 자유와 도전의 상징이었으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변화의 중심적 인물이었다. 돈키호테의 도전과 용기의 정신은 그 후로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패러디되고 재생산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햄릿’과 함께 인간의 대조되면서도 전형적인 두 개의 인물상 중 하나를 대표하기도 하였다.
2. 하지만 <고전학교> 독서모임에서 읽게 된 <돈키호테>에 대한 원본 독서는 돈키호테와 관련된 긍정적 요소들을 마냥 그대로 인정하기에는 위험한 면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분명 돈키호테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는 새롭고 도전적이며 관습적 틀을 극복하려는 위대한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돈키호테가 벌이는 행동을 조심스럽게 관찰해 보면 그의 행동은 분명 존중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며 고정된 패턴의 사고틀에 의해 전개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약자를 보살피고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대한 판단을 무시하고 확신에 차 자폐적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독단적으로 실현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다툼을 벌이거나 도움을 거절하는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상대에 대한 고려없이 자기 멋대로 벌이는 선의는 때로는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3. 돈키호테의 이러한 과도함의 문제는 그가 어떤 특정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기사소설의 환타지적 상황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기사소설의 배경과 흐름을 현실에 적용시키며 현실을 왜곡하고 사람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상실하는 것이다. 돈키호테의 이런 행동은 심각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웃음을 만들어내는 요소일 수 있지만, 중대한 상황에 적용된다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공포와 불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불필요한 권력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에게는 권력이 없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자신만의 정의를 강요할 수 없지만, 만약 권력을 지닌 인물이 이런 망상과 착각에 빠지다면 그것은 거대한 공포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토론 중 누군가가 윤석열의 행동에서 ‘돈키호테’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듯이, 돈키호테의 망상은 때론 거대한 위험으로 실재화될 수 있는 것이다.
4. 돈키호테의 또 다른 위험은 비록 망상적이고 허황된 생각이라도 전파력이 있다는 점이다. 돈키호테는 같은 동네의 농부 산초판사를 기사의 종자로 삼아 동행한다. 산초는 섬을 준다는 유혹에 쉽게 빠지는 속세적 욕망에 가득 찬 물질적 성품이지만 현실을 나름 객관적으로 볼 수 정도의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돈키호테와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비록 욕망의 정도는 줄지 않았어도 점차 돈키호테의 망상적 행동의 가치와 의미를 수용하고 존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은 돈키호테의 행동이 미친 짓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위대한 행위라는 것에 대해 내면적으로 수긍하고 동조한다. “주인님이 계시지 않으면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이 응징을 받을 두려움이 없어져 이 세상은 악당으로 넘쳐날 것예요.”
5. 돈키호테의 신념과 행동은 억압과 관습의 힘이 지배하는 중세적 시대에는 분명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가 생겨난 근대 이후, 자유, 평등, 정의에 대한 의미는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과 편견에 의해 왜곡되고 변형되었다. 전혀 다른 의미의 가치가 다른 상황에서 다른 의도로 활용되고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치적 혼란 속에서 돈키호테의 저돌적이고 순수하지만 확신에 찬 행동은 매우 위험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금도 허황된 신념과 확신에 빠져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행동의 실천은 반드시 행동의 의미와 영향력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며 그러한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단련되어야함을 말해준다. 돈키호테의 행동은 한때는 ‘자유와 도전’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절제되어야 할 신념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첫댓글 - 돈키호테나 찰리 채플린 같은 정신이상자의 망상은 웃음을 선사하지만, 윤석렬이나 트럼프 같은 미치광이들은 공포와 불안만을 던질 뿐이다. 민주주의는 집단지성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