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뜨겁게 달구는가?
烏川人 仁守/ 정 용하
요즘은 솜처럼 가볍고 허(虛)해서 좋다.
70년대 초반부터 최 근년까지 약40여 년간 씨름해온 법률서적과 절교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고 헛된 일에 평생을 올인 했구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삶을 위한 불가피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 필자가 관심이 끌리는 분야는 한시와 서예이다.
한시는 자연을 여유롭게 대할 수 있어 좋고, 서예는 집중력과 시간의 공간을 단축시켜주기 도하지만 무엇보다도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매개로하여 내적 자존감을 함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어떤 때는 먹는 것도 귀찮을 지경이다.
혹자는 한자를 중국글자라 하여 의도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한자가 중국에서 만들어 졌으나 우리의 선조들께서 2,000년 이상 사실상 사용해온 문자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글자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김치와 같은 것이다. 한글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기껏해야 100년도 안 된다. 인정상으로도 1,900년을 쉽게 버릴 수 없다는 뜻이다. 한자를 버린다 해서 뇌 속에 잠재된 유전인자까지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향후 중국, 일본 등과의 교역 확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3국의 공통어인 한자는 실생활에서도 영어 못지않게 그 중요성이 점차 증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이곳에 묘한 구석이 있다.
한글은 확정적, 단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한자는 그 기본적 속성이 불확정적이다.
이는 의미(뜻)에서 뿐만 아니라 글자의 외형 자체에 있어서도 그렇다. 즉 같은 글자라도 앞뒤에 어떤 글자가 오느냐에 따라 중간의 글자는 전혀 다른 글자로 전환 될 수도 있는데 특히 초서에서 그것이 뚜렷하다. 다시 말해 이미지가 암시하는 속성을 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예컨대 무(無)자를 40여 가지로 다르게 쓸 수 있는데 쓰다보면 그 중 몇 개는 분명히 다른 어떤 글자로 보아야함이 마땅한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용인되는 이유는 문인들 사이에 장기간에 걸쳐 묵시적으로 인정해온 사실상의 관례인 듯하다. 결론적으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한글은 정확성이 요구되는 법률적 측면에의 사용에는 유리하나 문학이나 서예 등을 하는 데는 융통성이 없어 그만큼 사용영역이 좁다는 뜻이고 그 반대로 한문은 문학이나 서예를 하는 데 있어서 사람마다 자의적인 해석의 폭이 넓기 때문에 다양함을 맛볼 수 있는 동시에 묘사를 함에 있어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필자의 사고(思考)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인생 초창기부터 가지고 있었던 일관된 생각 즉,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매달리는 극성파 팬들의 행위를 이해 할 수 없었으며 또한 그들을 줄기차게 비난해왔었다.
한번 주어진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서 찾으려는 행위를 어떤 이유로도 도저히 납득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속단임을 최근에 와서야 느껴서 알았다.
한시나 서예를 접하면서 옛 성리학자들이 공자나 주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하여 느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요즘 한류바람을 타고 일본에서 건너온 주부들이 영화 세트장을 찾거나 모(某) 사마가 앉았던 음식점 의자에 자신도 앉아보면서 채취를 더듬거나 일체감을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배우나 가수의 인기는 한시적인데 비해 공자나 주자에 대한 유학자들의 인기는 수천 년간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 그 차이다.
자료에 의하면 옛 선비들은 벼슬하는 것을 속세에 때 묻은 사람으로 부끄럽게 생각하였고 학문을 함에 있어서도 심산유곡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고매한 학식과 인품이 있는 것으로 스스로 자부했고 또한 다른 유생들로부터도 존경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벼슬을 기피하면서 자칭 사림(士林)으로 자처했던 영남지방에서 더욱 뚜렷하다. 또한 주자가 강학하던 무이산 구곡과 무이정사 주변의 경치를 본받아 자신의 생활 근거지주변 자연의 바위 등에 시를 새겨 넣기도 하고 개울에 작은 배를 띄워 주자의 행위를 모방해봄으로써 자신을 주자와 일체화 시켰으며 또한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 병풍을 방안에 소장하며 생활을 함께했다.
경서(經書)를 통하여 자연의 이치를 점차 터득함에 큰 희열을 느꼈으며 시를 읊어 자연을 노래하면서 하나가 되었고, 붓 한 자루가 마치 명검(名劍)이라도 되는 듯 심적으로 의존하면서 용사비등(龍蛇飛騰)과 평사낙안(平沙落雁)의 일필휘지(一筆揮之)를 한지위에 그려냄으로써 지식인으로 자처하면서 세상만사를 해결할 수 있는 양 내적인 우월감과 자존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바와는 달리 조선사회는 자격제(資格制)에 의한 철저한 신분사회이다. 다시 말해 양반이 되기 위해서는 등과하여 벼슬을 하거나 최소한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나 진사의 신분을 기본적으로 득해야 남들이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주었다. 가끔은 운 좋게 태어나 선대에서 당상관 관직을 역임했을 경우 그 후손 1대에 한하여 통덕랑 등의 명예직이 주어지는 것은 예외적인 자격취득이다. 따라서 대대손손 부단히 학문을 해야만 하는 것이 조선사회의 시스템이다. 그렇지 못하면 구석으로 밀려나거나 사실상 중인 또는 그 이하 신분으로 추락되고 만다.
관료유학자들은 사회 지도층 내지 지배층으로 권력과 부를 향유했지만 그렇지 못한 선비를 남편으로 둔 여인은 평생에 걸쳐 직접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그 삶의 고달픔은 이루 말로써 설명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2,000년도 들어서면서 국내 여성계에서 “공자가 죽어야 여성이 산다.”라는 슬로건을 잠시 내걸기도 했는데 최 근년에 심야 TV를 언뜻 보니 ‘한시 사랑방’이란 제목 하에 다수 여성들이 출연하여 조선시대 여류시인들의 한시를 낭송하고 토론하며 국악인이 옆에서 창을 곁들면서 진행하던 프로를 시청한 적이 있는데 아이러니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남녀 또는 시대를 초월하여 문학과 예술은 정형화된 삶에 대한 인간 내면에 숨겨진 멋스런 자아의 일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예협회 등록된 회원 중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우리의 상상을 훨씬 능가하고 있으며 또한 그 활동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음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하겠다.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는 남송 때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가 중국 복건성 무이산(武夷山) 계곡의 아홉 구비 경치를 노래한 것으로 주자는 무이구곡(武夷九曲) 제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이를 지었는데 자연묘사 이면에는 성리학을 공부하는 단계적 과정을 시사하고 있어 10폭짜리 병풍 중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가장 많이 선호한 글귀인데 이를 소개해 보고자한다.
武夷山上有仙靈(무이산상 유선령) 무이산 위에 영험한 신선이 살고 있는데
山下寒流曲曲淸(산하한류 곡곡청) 산 아래 차가운 물줄기 굽이굽이 맑아라.
欲識箇中奇絶處(욕식개중 기절처) 그 가운데에 빼어난 경치 알고자하면
櫂歌閑聽兩三聲(도가한청 양삼성) 한가하게 노 젓는 노래, 두세 곡 들어보세.
一曲溪邊上釣船(일곡계변 상조선) 한 굽이돌아 시냇가 낚싯배에 오르니
幔亭峰影蘸晴川(만정봉영 잠청천) 만정봉 그림자가 맑은 물속에 잠겼는데
虹橋一斷無消息(홍교일단 무소식) 무지개다리는 한번 끊어진 후 소식이 없고
萬壑千巖鎖翠煙(만학천암 쇄취연) 일만 골짜기 일천바위가 비취빛 안개에 갇혀있네.
二曲停停玉女蜂(이곡정정 옥녀봉) 두 굽이돌아 우뚝 솟은 옥녀봉이여
揷花臨水爲誰容(삽화임수 위수용) 꽃을 꽂고 물가에 서있으니 누구를 위해 꾸몄는가?
道人不複荒臺夢(도인부부 황대몽) 도인은 황대몽(영화로운 옛 꿈)을 다시꾸지 않는데
興入前山翠幾重(흥입전산 취기중) 흥에 겨워 앞산에 들어가니 푸르름이 첩첩이네
三曲君看架壑船(삼곡군간 가학선) 세 굽이돌아 그대는 절벽에 매달린 배를 보았는가?
不知停櫂幾何年(불지정도 기하년) 노 젖기 멈춘 지가 몇 해인지 알 수 없고
桑田海水今如許(상전해수 금여허) 뽕나무밭이 바다가 된 것이 지금부터 언제이든가?
泡沫風燈敢自憐(포말풍전 감자련) 물거품과 풍전등화 같은 우리인생 절로 가련하네.
四曲東西兩石巖(사곡동서 양석암) 네 굽이돌아 동서에 바위가 둘 있는데
岩花垂露碧藍山(암화수로 벽람산) 쪽빛산 바위 꽃은 이슬 머금어 싱그럽구나.
金雞叫罷無人見(금계규파 무인견) 금 닭이 울어 아침을 열지만 아무도 본이가 없고
月滿空山水滿潭(월만공산 수만담) 달빛은 빈산을 채우고 물은 호수에 가득하네.
五曲山高雲氣深(오곡산고 운기심) 다섯 굽이돌아 산정에는 구름기운 두텁고
長時煙雨暗平林(장시연우 암평림) 안개가 오래 머물러 평지 숲은 어둑어둑한데
林間有客無人識(임간유객 무인식) 숲 사이 나그네를 알아보는 이 아무도 없고
欲乃聲中萬古心(애내성중 만고심) 뱃사공 노래 소리에 오랜 세월마음 서려있구나.
六曲蒼屛遶碧灣(육곡창병 요벽만) 육곡에 드니 푸른 물굽이 병풍바위 감돌고
茅茨終日掩柴關(모자종일 엄시관) 띠 집의 사립문은 종일토록 닫혀있는데
客來倚櫂巖花落(객래의도 암화락) 나그네가 노에 기대어 바위에 꽃이 떨어져도
猿鳥不驚春意閑(원조부경 춘의한) 원숭이와 새들이 놀라지 않고 봄의 정취 한가롭네.
七曲移船上碧灘(칠곡이선 상벽탄) 칠곡에 배를 몰아 푸른 여울에 올라서
隱屛仙掌更回看(은병선장 갱회간) 은병봉과 선장암을 다시금 돌아보네.
却憐昨夜峯頭雨(각련작야 봉두우) 오히려 가엾어라 간밤 산정에 비가 내리더니
添得飛泉幾度寒(첨득비천 기도한) 폭포의 물줄기는 얼마나 더 차가워 졌을까?
八曲風煙勢欲開(팔곡풍연 세욕개) 팔곡에는 바람이 불어 안개가 열리려 하고
鼓樓岩下水縈洄(고루암하 수영회) 고루암 바위아래 물이 굽이굽이 돌아드는데
莫言此處無佳景(막언차처 무가경) 이곳에 좋은 경치가 없다고 말하지 말게
自是遊人不上來(자시유인 불상래) 여기서부터 속인은 올라갈 수 없다네.
九曲將窮眼豁然(구곡장궁 안활연) 구곡에 다다르니 눈앞이 활연히 트이는데
桑麻雨露見平川(상마우로 견평천) 뽕나무와 삼나무에 이슬 맺힌 평천을 바라보네.
漁廊更覓桃源路(어랑갱멱 도원로) 뱃사공은 다시금 무릉도원 길을 찾지만
除是人間別有天(제시인간 별유천) 이곳이 바로 인간세계의 별천지라네.
(해석이 사람마다 약간 상이하여 나름대로 수정 번역함)
한마디로 신(神)이 “숨겨놓은 경치”는 못되더라도 하늘이 “아끼는 경치”임에는
분명한듯하다. 누군가가 종서(縱書)로 된 문장은 새가 허공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문학은 오감을 통한 미적 감정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의 영혼을 뜨겁게 달군다.
그것이 순수한 모방이건 모방을 전제로 한 부분적 창작이건 큰 차이는 없다.
자연 그 자체가 사람을 여유롭게 하고 동시에 따뜻함과 관용이 내재된 마치
문학의 한 장르이며 세상이 바뀌어도 쉽게 소멸되지 않는 삶의 기본적 에너지를
공급하는 맑은 샘과 같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익숙한 가운데에서 잠자는 뇌를 깨울 수 있는 새로운 자연의
발견으로 정신영역을 확장하는데 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문자를 재료로 하여 머릿속에 무이산 구곡의 경치를 만들어 보아라.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자연이 실제 자연보다 얼마나 더 아름답고 신비한지를 체험할 때 그대는 문자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 것이다.
그것은 마치 마음속의 고향이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행복을 만드는 원천은 기존의 암시를 배재하고 세상에 없는 것을 상상하여 만들어 키우는데 있다. 그것은 갈수록 삭막하고 추해져가는 소모품세상에서 면역주사를 맞는 것과 같은 효과를 안겨줄 것이다.
계절과 무관하게 당신의 뇌 속에 푸른 비취빛이 가득 차 있을 때 그대의 육신은 먼 이국땅 어느 후미진 시골길을 여행하고 있는 착각에 빠져드는 호사를 누릴 것이다.
(2011.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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