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이야기 –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서
19기 정예림
6개월 만에 꿀 같은 휴가가 생겼고 가족들과 제주도로 향했다. 5년만의 가족 여행이다. 5년 전에는 엄마 아빠의 계획에 따라 움직였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아빠 엄마는 얼마의 돈을 주면서 동생과 나에게 여행의 A부터 Z까지 모든 권한을 일임했다. 여행 스타일도, 식성도 다른 우리 네 식구는 각기 다른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나는 오래간만에 모인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서로 간에 더욱 돈돈해지길 기도하였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하나. 행복이 네 배로
여행 내 우리는 따뜻한 날씨 속에서 대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여행 첫날엔 우연히 만난 일몰이 우리 가족의 발걸음을 한동안 붙잡았고, 우리는 간격을 유지한 채 걸으며 따로 또 함께 일몰을 감상했다. 바닷가를 끼고 난 해안도로를 달리는 일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큰 바람에 파도가 크게 일 때 우리는 다같이 "와-"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소소한 행복도 함께하니 배가된다. 이것이 선물이 아니고 무언가!
둘. 설산에 오르며 다진 가족애
무엇보다 하나님의 창조 솜씨에 감탄하였던 최고중의 최고는 눈 덮인 한라산이었다. 여행 둘째 날 적당한 코스를 골라 한라산에 오르기로 했다. 백록담까지는 도저히 못 오르겠다는 엄마의 의견을 반영하여 영실코스를 선택했다.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집에서 가져온 쌀과 반찬들을 가지고 요리하느라 분주했다. 수고해준 엄마 덕분에 우리는 산에 올라 허기진 배를 따뜻하게 채울 수 있었다. 아빠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상하게 엄마와 나를 돕는다. 눈길에 오를 때 위험한 길을 먼저 앞서가 길을 내주는 아빠. 아빠의 묵묵한 섬김은 언제나 날 감동시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여행의 모든 물질적인 지원을 담당했다.) 동생은 날다람쥐마냥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설산 오르는 가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젊은 피 동생 덕분에 우리 가족은 사진을 보며 추억할 거리가 많이 생겼다. 자기 역할을 하며 이루어지는 조화 속에서 나는 오래간만에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느꼈다.
셋. 엄마 아빠의 추억팔이
마지막 날 '선녀와 나무꾼' 이라는 박물관에 들렀다. 70-8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 담아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 좋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특별히 들른 곳이다. 엄마 아빠는 어렸을 적 추억을 떠올리면서 우리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종알종알 읊어주었다. 아빠와 엄마가 살았던 세상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아빠가 학생 때 입고 다니던 교복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 공간이 있었다. 아빠는 교복을 냉큼 갈아입고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마와 나는 배꼽을 잡고 한바탕 웃었다. 어느새 교복으로 갈아입고 아빠 옆에 서있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영락없이 네 아빠라며 엄마는 또 낄낄 웃었다.
넷. 네 식구(食口)의 즐거움, 식사시간
우리는 맛있는 음식 먹는걸 참 좋아한다. 블로그에 맛집 어플까지 다 뒤져가며 찾아간 음식점이 형편없으면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지막 날 최후의 만찬으로 아껴둔 흑돼지 구이를 빼고는 음식점 선택이 아주 탁월했다. 우린 함께 밥을 먹으며 비로소 식구(食口,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현할 수 있었다. 나는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순간이 어색하면서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가족은 함께 있어야해."
행복 지수가 차오를 때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라는 노랫말이 자꾸 생각났다. 사랑만 하기에도 짧은 시간이라는 말을 실감했던 3박 4일이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적어서 함께 있을 때 더 애틋한 우리 가족. 올 한해는 아끼다 똥 되기 전에 아껴뒀던 애정표현을 많이 해야지. 더 늦기 전에 효도해야지. 아낌없이 고마워해야지.
첫댓글 예림이의 맛깔난 글이 귀에 어른거린다 ^^
그러니까.. 라이브 강추ㅋ
예림아 오늘 글 진짜 재밌고 감동이었어. 앞으로도 쭉 행복하길.
이하동문~ㅎ
고맙습니다.. ^^ 조언해주신대로 아끼다 똥되기 전에 부모님께 글을 쏴드렸어요. 무척 부끄러워 하셨다능...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