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끼미라는 이름의 구렁이 / 김남철
사람들이 오도 가도 않고 담장 밖으로 벋은 석류나무 가지를 손가락질 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쳐다보니
아이구! 엄청나게 큰 뱀이 그 가지에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다니는 길 위에 뱀이 걸려있으니 간 큰 사람이 아니면 지나가기가 몹시 망설여지겠다.
그러니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모두 움직이지 못하니 제법 되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나이든 할아버지 한분이 “저거 찌끼미 아이가. 저거 건디리모 큰일난데이. 음식 차리가꼬 잘 대접해주야 될낀데, 이집 주인 뭐하노.”
옆에 있던 중년의 사내가 “할배요 찌끼미라 캣는데, 거기 뭣이요. 저거 큰 뱀인데, 와 찌끼미라 카요.”
그러니 그 할아버지는
“집에 찌끼미가 다 있는 기라. 저 찌끼미가 집밖으로 나가삐모 그 집은 망한다 아이가. 그렁께 몬나가그로 해주야 되능기라”
그러면서 답답해한다.
밖이 소란스러우니 집주인이 무슨 일인가 해서 대문은 열고 나왔는데,
나뭇가지에 걸린 뱀을 보고는 안에 들어가더니 큰 작대기를 들고 나와 사정없이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그 모양을 본 노인네가 “주인장 그라모 안되요. 살살 달래가꼬 다시 집안에 들어가거로 맨들어 주야 되능기라요”
그러나 중년쯤으로 보이는 집 주인은 눈을 한 번 흘기며 계속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한다.
상처투성이가 된 그 뱀은 길바닥에 떨어지더니 아래 언덕으로 사라져 버린다.
아침 등교하는 길에 일어난 일이었다.
덕분에 그날은 지각을 하여 담임선생님께 꿀밤 한 대를 선물 받았다.
까마득한 옛날 중학생일 때 일이다.
그 전에도 찌끼미 이야기는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거제도에 포로수용소를 건설할 때
군인들이 장비를 가져와 조그만 야산을 밀어 정지작업을 하는데,
그 작업을 하기 전날 그 마을의 토박이 한 촌로가 찾아와서 부탁하기를
“며칠만 연기 해줄 수 없겠소. 꼭 그렇게 해주이소”
하며 공사 책임자에게 매달리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해진 날짜를 어길 수 없다고 거절하니
그 노인은 “연기 안하모 사람이 마이죽소. 그랑께 제발 며칠만 연기해주소.”
그래도 전쟁 중 군인의 신분인 그 책임자는 명령이니 그럴 수 없다고 공사를 강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두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장비가 흙을 허물고 들어가니,
엄청나게 큰 뱀이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뱀이 다닌 길이지 싶은 곳의 흙이 반들반들 윤이 나더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 주춤하여 공사 진행을 멈추니 공사 책임자가 명령하기를 장비로 깔아뭉개라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니 경비병에게 명령하기를 사격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뱀은 많은 총알이 박혀 죽었다는 이야기 였다.
이 이야기는 그 공사에 민간인으로 참여했던 우리 동네 아저씨의 입을 통해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다.
그런데 묘하게도 얼마 후 그 공사 책임자가 우연찮게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그 뒤 총을 쏜 군인들도 차례로 모두 죽었다는 후일담이었다.
그 공사를 며칠만 연기해 달라고 말리던 노인의 사연인즉
밤에 꿈을 꾸니 머리가 하얀 산신령이 나타나 지금 공사를 며칠만 연기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아직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며,
찾아 옮길 때 까지 연기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 꿈을 며칠 동안 계속 꾸었다고 한다.
그 땅의 찌끼미 임을 안 그 노인은 결사반대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마룻바닥을 치더라고 했다.
중학생 때 본 그 큰 뱀도 그 집을 떠나버려서 인지 싸전을 하던 그 주인도 화재로 망했다고 했다.
그 뒤 가세가 점점 기울어 그 집을 팔고 이사를 갔다고 한다.
경상도에서는 찌끼미라 부르는 소위 말하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영물(靈物) 이야기는 우리 어릴 때 심심찮게 들었다.
그 뒤로 우리 집에도 그 찌끼미가 있을까?
한동안 살피기도 했다. 천정에서 쥐들이 마구 설치고 다니는 소리를 들으면 혹 그 찌끼미에 놀라 쥐들이 그럴까?
그 쥐들 100미터 달리기 연습하는지 잠들 무렵 천장에서 종종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찌끼미란 지킴이의 경상도 사투리다. 즉 내 집을 지켜주는 영물이 있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역할을 하는 영물이 주로 큰 구렁이인 걸로 알려지고 있었다.
과연 집을 지켜주는 지킴이 역할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큰 구렁이를 보면 찌끼미라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이야 웬만한 길은 모두 포장이 되어있고, 사람들의 주거도 아파트 형태가 많으니 그런 이야기를 접하지 못하지만,
옛날, 비 오면 질퍽거리는 길이나 주거환경이 열악할 때, 종종 집안 지붕이나 굴뚝근처, 마루 밑 또 으슥한 울타리 근처에서 구렁이가 나오기도 했다.
마루 위 제비집 근처에서 새끼 잡아먹겠다고 기어 올라가다 무게를 주체 못해 마루에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길가다 갑자기 몽둥이 들고 설치는 자에게 무차별 폭행당하는 사람도 있다.
등산로에서 이유 없이 흉기에 찔려 죽는 일도 발생한다.
인도를 질주하는 오트바이 제지했다, 얻어터지는 일도 심심찮게 들린다.
담배 피운다고 한마디 했다가 역시 무차별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보이스피싱에다 아이큐 150은 넘을 것 같은 기발한 사기꾼에게 걸려 거금을 사기당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정신 나간 일들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럴 때는 내 주위에 항상 나를 지키고 보호해주는 찌끼미라도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