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읊은 시 한수
寒風擦顔蕭瑟而(한풍찰안소슬이)
溫君兩臉甚思時(온군양검심사시)
靑葉染丹麗其面(청엽염단려엽면)
欲藏戀夢靜其裏(욕장연몽정기리)
아시다시피, 漢詩는 내용에 앞서 그 틀을 이루는 하드웨어가 중요합니다. 우선 운(韻 : 같은 中聲+終聲)이 없는 한시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7言詩에는 1, 2, 4째 구 끝자에 압운(押韻)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而(이), 時(시)와 裏(리)가 이에 해당됩니다.
그 다음에는 역시 대구(對句)를 들 수 있지요. 7언시의 경우, 첫 구와 둘째 구가 꼭 대구를 이룰 필요는 없으나,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없는 거 보다야 훨 낫겠지요. 여기에선 '차가운(寒)'과 '따뜻한(溫)'이, '얼굴(顔)'과 '뺨(臉)'이 대구를 이루고 있네요. 그리고 3째 구와 4째 구는 반드시 대구를 써야 하는데 끝자인 面(거죽)과 裏(속)이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더욱이 '빨갛게 물듬(染丹)'과 '사랑의 꿈(戀夢)'도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닌가요.
마지막으로 필자는 어려운 한자가 많이 들어 간 시는 좋게 봐줄 수 없습니다. 옥편을 찾는 동안 시의 맛이 다 달아나기 때문이지요^^. 이 시에서 좀 어려운 한자는 '뺨 臉(검)' 정도가 아닐까 사료됩니다만..
우리말 새김
눈치 빠른 님들은 벌써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굳이 우리 말로 새기면
찬 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물들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하렸더니..
낙엽따라가버린사랑...wma
단풍을 노래한 옛님들의 시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쌀쌀한 산을 멀리서 오르노라니 돌길은 가파르고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흰구름 피어 오르는 곳에 인가가 보이는구나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수레를 세우고 앉아 늦은 단풍숲을 즐기니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서리 내려앉은 단풍이 이른 봄 꽃보다 붉어라
가을을 읊은 시로 널리 회자되고 있는 두목(杜牧, 803~852 )의 山行, 마지막 구절 '霜葉紅於二月花(서리맞은 단풍잎이 봄 꽃보다 붉어라)'가 이 시의 백미라 할까요. 여기서 1, 2, 4구의 斜(사), 家(가), 花(화)로 압운한 걸 알 수 있지요. 그리고 굳이 대구를 살펴보면 3구의 '늦은 단풍숲(楓林晩)' 과 '이른 봄 꽃(二月花)' 를 들 수 있겠네요. (두목은 이백과 두보의 적통을 잇는 당나라 후기(晩唐) 정치가 겸 문장가로 이상은(李商隱, 812~858)과 더불어 작은 이백, 두보라는 뜻의 소이두(小李杜)라는 별칭까지 있는 서정시인이지요.)
秋雲漠漠四山空 (추운막막사산공)
가을 구름 아득하고 온산은 비었는데
落葉無聲滿地紅(낙엽무성만지홍)
낙엽은 소리 없이 땅 가득 붉구나
立馬溪橋問歸路(입마계교문귀로)
개천 위 다리에 말 세우고 돌아갈 길 묻는데
不知身在畵圖中(부지신재화도중)
이 내 몸이 한 폭 그림 속에 든 줄을 몰랐구나.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의 '김거사의 들집을 방문하고(訪金居士野居)'. 이 시는 당나라 시절에 쓰여진 서정시(唐詩)를 연상케 하듯 한 폭의 산수화 같습니다. 여기에서도, 1, 2, 4구의 마지막 자에 압운이 되었네요. 그런데 對句는 오히려 1, 2 구에 있어, '가을 구름(秋雲)'과 '낙엽(落葉)', '아득함(漠漠)'과 '소리없음(無聲)' 그리고 '온 산(四山)'과 '땅 가득(滿地)'이 잘 어울리고 있지요.
첫댓글 한 밤에 섹소폰연주에 단풍에 관한 좋은 글을 읽으니 아주 좋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