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 할머니의 오징어/유하
오징어는 낙지와 다르게
뼈가 있는 연체 동물인 것을
죽도에 가서 알았다.
온갖 비린 것들이 살아 펄떡이는
어스름의 해변가
한결한결 오징어 회를 치는 할머니
저토록 빠르게, 자로 잰 듯 썰 수 있을까
옛날 떡장수 어머니와
천하 명필의 부끄러움
그렇듯 어둠 속 저 할머니의 손놀림이
어찌 한갓 기술일 수 있겠는가.
안락한 의자 환한 조명 아래
나의 시는 어떤가?
오징어 회를 먹으며
오랜만에 내가, 내게 던지는
뼈 있는 물음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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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유하 시인의 시집 <무림일기>에 실려있습니다.
오징어는 문어처럼 뼈가 없는 연체동물로 분류되지만 막대기 모양의 얇은 뼈가 외투막 안에 하나 있지요. 화자는 죽도시장에서 오징어회를 주문하고 이러한 발견과 함께 그 오징어를 써는 할머니의 솜씨에 감복하여 뼈있는 물음을 던지네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 '한석봉'과 떡장수를 하는 그의 어머니 '백인당'이 호롱불을 끄고 각자 글씨와 떡을 썰던 일화를 소개하며 어둠 속에서 한결한결 정성스레 회를 치는 할머니께 경외심을 표하지요.
살아있는 오징어를 저토록 빠르게 자로 잰 듯 써는 저 할머니의 손놀림을 한갓 기술이라 낮춰 말할 수 없을 것 같지요. 어느 경지에 이른 모습이 아닐 수 없지요. 안락하고 환한 곳에서 글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움을 갖고 돌아보네요.
학식이 높다고, 돈이 많다고 다 존경받지는 못하지요. 어둠 속에서도 정성껏 오징어를 썰어 손님에게 내놓는 할머니도, 그것을 보고
반성하는 화자도 삶에 대한 절심함과 진정성이 느껴집니다.(감상/어향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