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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없음 경(M5) Anaṅgaṇa Sutta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225-242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응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2. "도반들이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들(*1)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도반들이여, ① 여기 어떤 사람은 흠이 있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②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흠이 있으면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③여기 어떤 사람은 흠이 없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④여기 어떤 사람은 흠이 없으면 '내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여기서 흠이 있으면서도 '내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흠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서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흠이 있으면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흠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서 수승한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흠이 없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흠이 없는 두 사람 가운데서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흠이 없으면 '내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흠이 없는 두 사람 가운데서 수승한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3. 이렇게 설했을 때 마하목갈라나 존자(*2)가 사리뿟따 존자에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으로 흠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은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리고, 다른 사람은 수승한 사람이라 불립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다시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으로 흠이 없는 두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은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리고, 다른 사람은 수승한 사람이라 불립니까?"
4. "도반이여, 그중에서 흠이 있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흠을 제거하기 위해서
의욕을 일으키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고 정진을 시작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을 가지고 성냄을 가지고 어리석음을 가지고
흠을 가지고 마음이 오염된 채로 죽을 것입니다.
도반이여, 예를 들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그릇이 먼지에 뒤덮이고 녹이 슬어도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지도 않고 닦게 하지도 않고 먼지 구덩이에 던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그 청동 그릇은 나중에 더 더러워지고 더 녹슬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그와 같이 흠이 있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흠을 제거하기 위해서 의욕을 일으키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고 정진을 시작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을 가지고 성냄을 가지고 어리석음을 가지고 흠을 가지고
마음이 오염된 채로 죽을 것입니다."
5. "도반이여, 그중에서 흠이 있으면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그 흠을 제거하기 위해서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정진을 시작할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 없이 성냄 없이 어리석음 없이 흠 없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로 죽을 것입니다.
도반이여, 예를 들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그릇이 먼지에 뒤덮이고 녹이 슬면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고 닦게 하고 먼지구덩이에 던져버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그 청동 그릇은 나중에 더 깨끗해지고 더 광이 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그와 같이 흠이 있으면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그 흠을 제거하기 위해서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정진을 시작할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 없이 성냄 없이 어리석음 없이 흠 없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로 죽을 것입니다."
6. "도반이여, 그중에서 어떤 사람은 흠이 없으면서도 '내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아름다운 표상(*3)을 마음에 잡도리할 것이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기 때문에 탐욕이 그의 마음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을 가지고 성냄을 가지고 어리석음을 가지고 흠을 가지고 마음이 오염된 채로 죽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그릇이 깨끗하고 광이 나는데도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지도 않고 닦게 하지도 않고 먼지 구덩이에 던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그 청동 그릇은 나중에 더러워지고 녹슬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그와 같이 흠이 없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기 때문에 탐욕이 그의 마음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을 가지고 성냄을 가지고 어리석음을 가지고 흠을 가지고 마음이 오염된 채로 죽을 것입니다."
7. "도반이여, 그중에서 어떤 사람은 흠이 없으면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그는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을 것이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탐욕이 그의 마음을 오염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 없이 성냄 없이 어리석음 없이 흠 없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로 죽을 것입니다.
도반이여, 예를 들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그릇이 깨끗하고 광이 나면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고 닦게 하고 먼지구덩이에 던져버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그 청동 그릇은 나중에 더 깨끗해지고 광이 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그와 같이 흠이 없으면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을 것이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탐욕이 그의 마음을 오염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 없이 성냄 없이 어리석음 없이 흠 없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로 죽을 것입니다."
8. "도반 목갈라나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으로 흠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은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리고, 다른 사람은 수승한 사람이라 불립니다.
도반 목갈라나여, 다시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으로 흠이 없는 두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은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리고, 다른 사람은 수승한 사람이라 불립니다."
9. "도반이여, '흠','흠'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도반이여, 흠이란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의 영역들(*4)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10.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내가 계를 범하더라도 '비구들이 내가 계를 범했다.'라는 것을 알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5)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비구들이 '그 비구가 계율을 범했다.'라고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비구들이 '내가 계를 범했다,'라고 아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6)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7)
11.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내가 계를 범하더라도' 비구들이 남의 눈을 피하여 나를 질책하고,(*8) 승가 가운데서 질책하지 않기를.'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비구들이 그 비구를 승가 가운데서 질책하고,
남의 눈을 피하여 질책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비구들이 나를 승가 가운데서 질책하고, 남의 눈을 피하여 질책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12.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내가 계를 범하면 나와 동등한 사람(*9)이 나를 질책하고, 나와 동등하지 않은 사람이 질책하지 않기를.'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그와 동등하지 않은 사람이 그 비구를 질책하고,
동등한 사람이 질책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나와 동등하지 않은 사람이 나를 질책하고, 나와 동등한 사람이 질책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13.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참으로 스승께서는 오직 내게 거듭 질문을 하시어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시지,
스승께서 다른 비구에게 거듭 질문을 하시어 법을 설하지 않으시기를.'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10)
도반이여, 그러나 스승께서 다른 비구에게 거듭 질문하시어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시지,
그 비구에게 거듭 질문을 하시어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스승께서는 다른 비구에게 거듭 질문을 하시어 법을 설하시지
내게 거듭 질문을 하시어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시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11)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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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 ‘인간들(puggalā)’은 중생들, 사람들(sattā, narā, posā)을 말한다. …
사리뿟따 존자는 부처님의 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부처님 · 세존의 가르침에서 조금도 벗어남이 없이 법을 설한다.
세존의 가르침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인습적인 가르침[世俗諦, 俗諦, sammuti-desanā]이고,
다른 하나는 궁극적인 가르침[勝義諦, 眞諦, paramattha-desanā]이다.
그 중에서 인간, 중생, 여자, 남자, 끄샤뜨리야, 바라문, 천신, 마라 등은 인습적인 가르침이고,
무상, 고, 무아, 무더기[蘊], 요소[界], 감각장소[處], 마음챙김의 확립[念處] 등은 궁극적인 가르침이다.
세존께서는 인습적인 가르침을 통해 뜻을 통찰하여 어리석음을 버리고 특별함(visesa)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습적인 가르침을 설하시고, 궁극적인 가르침을 듣고는 뜻을 통찰하여 어리석음을 버리고 특별함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궁극적인 가르침을 설하셨다. …
그러므로 사리뿟따 존자도 세상의 용어에 능숙하기 때문에 부처님 · 세존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고
세상의 언어를 사용하여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cattarome puggalā santo)’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궁극적인(paramattha) 가르침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습적인 것(sammuti)으로서의 인간임을 알아야 한다.”(MA.ⅰ137~139)
(*2) 마하목갈라나 존자(āyasmā Mahā-Moggallā)는 라자가하의 꼴리따 마을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마을 이름을 따서 꼴리따(Kolita)라 불리었다. 어머니의 이름이 목갈리(Mogglī)였기 때문에 목갈라나로 불리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사리뿟따 존자와 절친한 친구였으며 같이 산자야 벨랏티뿟다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시리뿟따 존자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며(AA,ⅰ.148이하),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부처님의 두 상수제자로 불린다.
존자는 『앙굿따라니까야』 「하나의 모음」 (A1:14:1~3)에서 “신통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마하목갈라나가 으뜸”이라고
칭송되고 있다. 북방에서도 신통제일이라 불린다.
한편 『앙굿따라니까야』 제4권 「졸고 있음 경」(A7:58)은 목갈라나 존자가 아라한과를 증득한 인연을 담고 있다.
(*3) “여기서 ‘아름다운 표상(subha-nimitta)’이란
탐욕을 확고하게 하는(rāga-ṭṭhāniya) 원하는 대상(iṭṭh-ārammaṇa)을 말한다.”(MA.ⅰ.142)
한편 『상윳따니까야』 제5권 「몸 경」(S46:2)에서는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하기(ayonisomanasikāra)를
많이 짓는 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을 일어나도록 하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을 늘리고
드세게 만드는 자양분(āhāra)이라고 설명하고 계신다.
(*4) “‘바람[願]의 영역들(icchāvacarā)’이란
소원의 형태로 일어난 여러 가지 화와 기분 나빠함(kopa-appaccaya)을 말한다.”(MA.ⅰ.143)
(*5) 여기서 ‘경우’는 ṭhāna(장소)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에서 taṃ ṭhānaṃ은 taṃ kaṇaṃ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서(MA.ⅰ.143) 이렇게 옮겼다.
주석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면 내가 비록 ‘계를 범하더라도(āpatti)’ 다른 비구들이 내가 ‘계를 범했다(āpattiṃ āpanno).’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득을 바라기 때문(lābh-atthikatā)이다.
이득을 바라는 비구는 천성적으로 공덕을 쌓아서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공경을 받으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장로들이 어떤 비구가 계를 범했다라고 알면 중진 비구에게 말하고, 그들은 또 신참들에게 말하고,
신참들은 또 남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결국은 사부대중이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의 이득에 장애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내가 계를 범하더라도 그 비구들이
내가 계를 범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면.’이라고”(MA.ⅰ.143)
(*6) “‘장로들이 알고 중진들에게 말하고 그들은 다시 신참들에게 말하여,
이런 식으로 사부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렇게 오명이 자자하면 나는 망하게 된다.’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이유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한다.”(MA.ⅰ.143)
(*7) “‘화냄(kopo)’은 심리현상들의 무더기[行蘊]에 포함되고,
‘기분 나빠함(appaccaya)’은 느낌의 무더기[受蘊]에 포함된다.”(MA.ⅰ.144)
(*8) “‘남의 눈을 피하여 나를 질책한다.’는 것은
자기를 데리고 원림에서 멀리 떨어진 거처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질책하는 것이다.”(MA.ⅰ.144)
(*9) “‘동등한 사람’이란 죄를 범한 것이 동등한 사람이다.
즉 질책을 당하는 자와 질책을 하는 자 둘 모두 죄를 범했기 때문에 동등하다는 말이다.
이 사람은 자기와 동등하게 죄를 범한 사람으로부터 질책을 듣기를 원한다.
그래야 “‘그대도 이런저런 죄를 범했으니, 먼저 그것부터 참회하고 나중에 나를 질책하시오.’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혹은 태생 등이 동등한 사람을 말한다. 이 사람은 태생, 가문, 많이 배움, 현명함, 두타행 등
이런 것이 자기와 동등한 사람으로부터 질책을 듣기를 원한다.
‘이런 사람들로부터 질책을 듣는 것은 그리 큰 고통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MA.ⅰ.144)
(*10) “이 비구도 이득을 바라서 세존께서 자기에게 거듭 질문을 해주시기를 원한다.
그것도 도를 닦고 과를 실현하고 위빳사나를 닦고 열반을 성취하는 것 등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공감하고 찬성하는 질문만을 원한다.
그는 세존께서 바리뿟따 등 대장로들에게 ‘사리뿟따여, 목갈라나여, 깟사빠여, 라훌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라고 대중 가운데 거듭 질문하시고서 법을 설하시고,
또 사람들이 ‘이 현명한 장로들이 스승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라고 이들을 칭찬하고 이득과 존경을 표하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그도 그 이득과 존경을 원하면서 이렇게 생각하고는
박아놓은 말뚝처럼 세존의 면전에 앉아있다.”(MA.ⅰ.144~145)
(*11)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한다(kupito hoti appatīto).’라고 했다.
세존께서 그를 염두에 두지 않고 다른 장로들에게 거듭 질문을 하시어 법을 설하시자 그는 세존과 장로들에게 화를 낸다.
‘세존께서는 나에게 한 번도 관심을 주시지도 않고 내게 질문하시여 법을 설하시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께 화를 내고, ‘이 장로들이 이 원림에 머물지 않았다면 세존께서 분명 내게 질문하시어 법을 설하셨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장로들에게도 화를 낸다는 말이다.”(MA.ⅰ.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