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햇살에 눈을 찡긋거리다
저-조금숙 시조집
출- 만인사(86쪽)
독정-2023.12.4.(월)
시조집 『소수언어박물관』 『중인당 한의원』 을 낸 시인이 『햇살에 눈을 찡긋거리다』 시조집을 출간해 보내왔다. 11월 따뜻한 햇살 속에.
시인은 유년의 기억을 1편에 적었다.
-완고한 벽돌 앞에 눈물도 바삭거려/바다 같은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다/ 해당화 붉은 잎처럼 뚝뚝뚝 떨어지네.-상큼씨, 김 선생
-텅 빈 상단 바라보는/ 눈에도 물결치다/ 젖어서 더 간절한/ 침묵과 침묵들이/ 메마른 어깨를 타고/ 내 안의 집이 된다.-‘내안의 집’에서
-소소한 일상들이 유리된 나날들/ 모래알처럼 제각각 흩어진 사람들은/소리를 내지 않고도 사는 법 배웠다// 기대와 기대치가 반비례하는 사이/ 이력을 알 수가 없는 조각달이 뜬다-‘유리의 나날들’에서
※ 허기진 어린 날의 기억 파편들도 돌아보면 황금빛을 품고 있었음을 상기시켜 준다
※ 2장과 4장에는 이웃의 삶을 상징적 이미지로 가져와 절제된 마음으로 들여다본 감상을 적어두어 독자의 공감을 크게 불러들인다.
-반지하는 얼굴이 없다. 꽃잎 같은 얼굴이/ 저민 듯 붙어 있는 담벼락 그 틈새로/ 있어도 보이지 않는 형체만 떠다닌다//방치된 어둠이 머물다 떠난 자리엔/ 모든 문이 닫혀 버려 피지 못한 얼굴이/ 미완의 생애를 두고 달빛에 잠긴다.- ‘슬픔의 그늘’에서는 신림동 수혜 지역을 보고 쓴 마음이 달빛에 젖어있다.
-구석 아닌 도시에서 볕을 걸쳐 말렸다./신문지 켜켜이 두고 가방도 숨을 쉬었다/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모서리 같은 인생/ 말줄임표로 대신하는 하루살이 삶에도/ 환하게 피었던 날이 손꼽을 만큼 있었지// 절벽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는/ 차가운 눈보다 더 슬픈 계절 여백의 끝에/ 뜨거운 숨을 받으며 그림자를 끌고 간다- ‘소설 무렵(노숙자)’에서
-얼음이 녹아내려 갈 곳 잃은 바다코끼리/ 절박함을 등지 삼아 해안선에 모여들어/끝없이 펼쳐진 군락 마지막 종착지다-‘극지를 가다’에서
-깨어진 비상등 달고 삶을 밀어내던/소요와 고요를 넘어 티끌 된 그녀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에서
※ 3장은 20년대를 살아내는 전쟁과 분쟁을 직시한 시들이다.
-세상의 슬픔 끌고 와 들숲을 채우네-슬픔의 집 ‘안티고네’에서
1장에 실린 ‘안녕, 할로원데이’도 이 3장으로 데려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스 비극을 직시하며 원한을 품고 사는 세 여인의 한을 다루었는데 ‘아, 이런 것을 사랑이라 할까(메데이아)’에서 ‘어찌도 사랑이 이리 핏빛 노을 같을까요’라는 표현과 ‘헤로디아드’에서 ‘노을로 뒤덮인 사해 영혼이 쓰러진다’는 표현에서 하나같이 저주를 표상하는 노을빛을 읽었다. 작가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깊이이겠다.
※ 5장을 읽으면서 작가가 대구수목원을 나랑 같이 정원으로 거니는 동민이고, 고령 대가야 고분군을 좋아하는 군민이라는 사실이 우선 반가웠다.
-햇빛 받아 꿈틀대는 말이산 고분 속/ 타오르는 불꽃 지문처럼 새기고/ 아라국 숨결을 담아 뒹굴고 있었다// 강국을 꿈꾸었던 삶은 잠시 멈춰/대륙을 건너가 셀 수 없는 봄 보내고/ 무수한 불덩이 품어 아라를 다시 산다.-‘불꽃무늬 토기’를 읽으면서 흙으로 앉아있는 토기에서 불꽃을 피워내어 독자들 가슴에 안겨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발상과 크고 오묘한 시 세계에 초대받은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