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기억하며
2024. 9. 25(수)
이사야서 45장~48장
(이사 45,5)
나는 주님이다. 다른 이가 없다.
나 말고는 다른 신이 없다.
(이사 45,14)
다른 이가 없습니다.
다른 신이 없습니다.
(이사 45,21)
나 밖에는 다른 신이 아무도 없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사45,9)
내가 하느님, 다른 이가 없다.
내가 하느님, 나 같은 이가 없다.
묵상-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하시는거야.
이러시는 이유가 뭐다냐!!
얘들아, 내가 주님 아니냐?
그러니 나밖에 없는 거야.
나 말고 다른 신은 없어.
내가 진짜고, 다른 신은 다 가짜야
나는 시방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알겠니?
주님의 이 간곡함,
허를 찌르는 듯한 단어들,
‘나 말고는 없다.’에서는 ‘없다’ 앞에,
‘아무도’라는 말을 붙였다.
절대 있을 수 없고, 전혀 없으며,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시는 거다.
몇 번이나 강조하신 이유는,
‘너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 거지?
나 지금 소귀에 경 읽는 거 아니지?
진짜 이거 중요한 얘기니까 기억해.
다음에 꼭 물어 볼 거다.’
뭐 이런 뉘앙스가 아닐까 싶다.
폐부를 찌를 듯이 와서 박히는
위 구절들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자각이 일어나고 묵상이 된다.
다음 장에서도 반복 등장하려나?
하고 기대하기도 했으니,
주님의 반복,강조 기법, 대성공한 거다.
우리 인간 역시, 누군가 내 존재를
알아주지 않거나, 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치부하는 것 같으면, 어떻게든
애를 쓰면서, ‘나 이런 사람이야’라며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그만큼 나의
가치와 존재성은 존중받아야 하고,
그 자존감 속에서 타인의 존재성을
존중할 힘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하느님 한 분만이
주님이시고, 신이신 절대적이고
독보적인 존재인데, 금이나 은만
생기면 가짜 상을 만들어놓고,
하느님인양 섬기며, 배신자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우리의 꼬락서니가
얼마나 염치없고 비참한 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느님 말고는 다른 신이 없다고
인정하기는커녕, 심지어 이런 말을
내뱉으며 주님을 기함하게 한 거다.
‘너는 너의 지혜와 지식이 너를
현혹시켜 너는 마음속으로 나뿐이다,
나밖에는 없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사 47,10)
세상에나 만상에나!!
이렇게 뻔뻔하고 파렴치할 수가 있나.
그렇다면 나는 자유로울까?
천만의 말씀이다.
모태신앙인이었으면서도 한창 젊고 팔팔할 땐,
‘나는 내 능력과 힘으로 죽도록 노력하며
많은 것을 이뤄냈으며, 하느님 도우심 없이도
내 가정 지키며 잘 살아왔다. 이 세상 누가
나의 고통을 대신해 줄 것이며, 나를 먹여주랴.
그러니 내 힘으로 나를 지켜내야 한다. 내가
하느님이고, 오직 나뿐이다. 나 밖에는 없다.’
(친정아빠로터 답습된 나의 신념)
에구머니나. 이를 어째!!
오늘 말씀들, 완전 내 얘기였네.
그래서 ‘내가 하느님 나 같은 이가 없다.’
라고 반복한 대목에서, 가슴이 움찔거렸던 걸까!!
사람이 분수가 있어야지. 어찌 이리 살았을까.
그러니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 다가와서
속삭였던 거다.
‘요세피나, 어찌 그리 애를 쓰면서 사나요.
얼마나 힘들고 고달플까요. 나 밖에 없다는
그 외로운 마음 내려놓고, 하느님께 의탁하고
하느님 도우심에 힘입어서 인생 편하게 살아요.’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겐
‘지금 이걸 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라는
부정적인 신념이 있었다.
나밖엔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었던
환경과 역할이 있었던 거다.
누군들 그렇게 살고 싶었겠는가.
상처입고 나약해져서 의지가 박약해진
나에겐,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하느님만이 전부이시고,
오직 하느님 밖에 없으니 그분이
다 해주실거라고 믿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그랬었는데... 하고 회상해본
은총의 시간이었다.
주 하느님,
맞습니다. 옳습니다.
당신만이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
다른 이가 없습니다.
다른 신이 없습니다.
당신 같은 이가 없습니다.
‘나 주님이 아니야?’ 라고
몸소 하느님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그 비애감을 저희가 어찌 알 수 있을까요.
당신을 좀 더 믿어드리고, 신뢰하며
오히려 당신의 존재를 세상에 증명하고,
당신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도록
애써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오늘 하루의
자원으로 삼아, 자주 기억하겠습니다.
‘모태에서부터 업혀 다니고,
태중에서부터 안겨 다닌 자들아,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
(이사 46,6)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의
좋은글은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