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피복 공장의 재단사이자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22살의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말을 남기고 분신자살을 했다. 이 사건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우리나라 헌법은 현재 노동권과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 노동권을 법으로 포괄하고 있는 것이 근로기준법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노동의 ‘최저’ 조건을 법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장애인 노동권은 사각지대에 있다.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서 공부하고 이른바 스펙을 쌓아도 정작 노동시장에서는 갖은 차별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다.
고의적 체불, 비고의적 체불의 3배 넘어
지적장애 3급 장애인 A씨는 경기도 소재의 소파공장에서 70만 원을 받기로 하고 약 13년 동안 근무했으나, 임금을 거의 받지 못하고 체불이 돼 있는 상태였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회사를 옮긴 후에는 전시장 청소, 배달, 경비 등 온갖 일을 다 했고, 휴일이나 명절에도 근무했다. 하지만 장기간 임금체불로 가족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체불된 임금과 퇴직금 지급을 요청했으나, 사용자는 체불된 임금은 없으며(수시로 의뢰인이 가불해 갔다고 주장), 퇴직금은 받지 않기로 했다며 거절했다.
위 사례는 (사)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장애인노동상담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으로 근로기준법 제43조 재직 중 임금지급이 연체되거나 지체된 임금체불과 관련 있다. 문제는 2015년 장애인노동상담센터 통계자료를 보면 영업장의 경영 악화 등 불가피하게 지불하지 못한 경우보다 고의적으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약 3배 정도 많다는 점이다.
조호근 장애인노동상담센터 센터장은 부당체벌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그 이유로 꼽았다. “임금 체불 건은 상당히 급증했다. 상담센터에서 일 년에 약 450여 건 상담을 하는데 고의적인 임금체불이 경영악화로 인한 비고의적인 곳보다 3배 정도 많다. 문제는 사용자가 임금을 체불했을 때 법적 제재가 약해 체불해도 벌금을 물고 나면 끝난다. 벌금도 체불액의 몇 퍼센트 수준으로, 악덕업주일 경우 재산을 차명으로 하고 임금은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장애인 열 몇 명을 고용하고 임금을 몇 달 체불해 1억여 원이 됐다고 해도 벌금을 내고 나면 끝이다. 한술 더 떠 법이 개정되며 징역을 살아야 할 근거가 약해졌다. 법적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임금을 주고 싶으나 여건이 안 되는 곳도 있다. 그런 곳은 사업주나 근로자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A씨의 여동생은 지적장애인 오빠를 대신해 센터에 상담을 신청했으며 사업주와 만나 체불임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대화내용을 녹취했다. 녹취자료에는 의뢰인의 근무연수, 급여액 등이 비교적 잘 나타나 있었다. A씨의 여동생은 노동청에 진정을 했고 근로감독관의 사실조사 결과 최저임금 기준으로 체불임금과 퇴직금으로 1,320만 원을 확정해 사용자에게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사용자가 거절해 형사처벌(벌금형)됐으며, 현재 민사소송 중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 해고와 이직 부추겨
33세의 지체장애 5급 B씨는 전자부품 제조회사에서 부품조립 일을 했다. B씨를 포함해 장애인 3명과 비장애인 7명이 근무하는 회사였다. 비장애인 근로자들은 장애인 근로자와는 대화는 물론 점심식사도 꺼려 하며, 소외시키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을 수시로 하는 등 인격적 모욕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장애인 근로자 때문에 불량률이 높다고 사업주에게 귀띔했고, B씨를 포함한 장애인 근로자 2명은 해고를 당했다. 위 사례도 장애인노동상담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으로 근로자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한다는 근로기준법 제23조와 관련돼 있다.
무엇이 ‘정당한 이유’인가에 관해서는 동법에 구체적 규정이 없으나, 그 일반적 내용은 해당 근로자와 사업주의 원만한 근로 관계 유지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이유를 말한다.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해고는 당연 무효이다. 해고의 정당한 이유와 징계해고 시의 징계사유에 관해서는 사업주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 또한, 사업주가 근로자를 해고하고자 할 때는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를 하거나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조호근 센터장은 사업주와 동료들의 장애인 동료에 대한 차별적이고 부정적인 인식과 행위로 인해 장애인 근로자가 회사까지 그만두게 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상담센터에서 상담의뢰된 사업주들은 보통 4,50대 이상이다. 장애인 인권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세대다. 보통 종업원이 많으면 2,30명이니 의무고용 사업장도 아니고 부담금을 물지도 않는다. 그런데 고용장려금은 탈 수 있다. 그래서 무턱대고 고용은 하는데 준비가 부족해 마찰이 빚어진다. 근로 환경과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유형의 차별이 바로 비장애인 동료나 주변사람들에 의한 차별이다. 이는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단적으로 표출된 것으로써, 근본적인 인식 개선 없이는 노동현장뿐 아니라 전반적인 장애인 차별문제도 해결되기 힘들다. 장애인 근로자에 대한 따돌림, 업무능력에 대한 평가절하, 직원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오해가 해고나 배척으로 이어진다. 이는 곧 장애인의 높은 이직율을 양산한다.”
상담센터는 B씨에게 장애는 해고 사유가 될 수 없음을 알리고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 할 것을 권유했다. B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상태다.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기초생활수급자들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가 2013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접수한 상담통계를 살펴보면 2013년 상반기 63건에서 2016년 상반기 401건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유형에는 면접 시 탈락, 모집공고 제한, 적절한 시험 환경 부재 등 ‘노동기회차별’과, 적절한 직무환경 및 업무배치차별, 승진차별, 장애로 퇴직강요,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의 차별 등의 ‘노동환경차별’, 산재인정차별 등 ‘산재보상차별’로 분류된다.
예방센터에서 상담한 피상담자의 경우 대체로 노동시장에 진입했거나 진입을 시도하며 노동권의 차별을 겪는 이들이 대다수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에 진입 자체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수급권을 갖고 있는 차상위계층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이하 수급자)들 중에는 일자리를 갖고 싶어도 수급권 박탈을 꺼려해 아예 시도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인 수급자들에게 국가의 무상 의료비 혜택은 큰 버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구직을 원해도 그 일이 수급권을 포기할 만큼 양질의 일자리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
조호근 센터장은 일자리가 수급권을 대신하기는 힘든 현실이라고 짚었다. “어디서나 중증장애인직업재활지원사업을 하고 있고, 또 장애인고용공단이나 장애인개발원도 있어 일반적인 일자리를 얻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대다수는 최저 임금에 계약직이 많아 그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며 수급권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은 하고 싶어도 안정되지 않은 일자리가 수급권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은 장애인들을 제3의 선택으로 내몬다. 4대 보험 가입을 포기하고 취업을 하는 것인데 문제는 악덕 사업주가 이를 악용할 경우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장애인이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겠다고 하면 해당 근로자를 수급자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고의적으로 체불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수급자로서는 부당체불이 발생해도 노동청에 신고하기를 꺼린다. 신고했다 불이익이 없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조호근 센터장은 수급권 박탈에 대한 정부의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장애인 수급자가 일에 대한 생각을 접는 경우가 다반사다. 선진국의 경우 수급자가 일자리를 원할 때 어느 정도 안정화된 다음에 지원을 끊는 것이 일반적이다. 입사를 해도 바로 끊는 게 아니라 입사해서 월급이 몇 번 나오고 나서 수급액을 줄이고 1,2년 후 고용이 안정된 다음 수급권을 거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입이 수급액 이상으로 발생하면 바로 박탈한다. 장애인 입장에서는 수급권을 포기하고 일을 택하는 위험을 감수하기 어렵다.”
▲ 발달장애인 근로자들에게 쉬운 버젼으로 노동권 교육 중인 유영복 강사
법망을 피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덫’
근로기준법에 의해 사업주는 근로자에 대해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한 근로기준법에서 5인 미만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은 예외가 된다.
직원 수가 5명이 채 안 되는 일터는 편의점, 커피전문점, 음식점에서 소규모 출판사 등 도처에서 볼 수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는 2014년 12월 기준으로 158만 명으로 임금근로자 1천437만 명의 11%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노동자 10명 가운데 1명은 휴가를 받을 권리, 휴일수당을 받을 권리, 부당한 해고에서 구제받을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 상당수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조호근 센터장은 근로기준법이 1인 이상 사업장에 모두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3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사업장 중에서 약 65퍼센트가 5인 미만이고 이곳에 상당수 중증장애인은 물론 경증장애인들이 고용돼 있다. 65퍼센트나 되는 사업장이 5인 미만이다 보니 노동청은 ‘감독이 어렵다’, ‘사업장들이 도산하게 된다’며 구실을 댄다. 그러나 5인 이상 사업장조차 장애인에 대한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법적 테두리 밖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부당처우는 불 보듯 뻔하다. 5인 미만 기준을 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근로기준법을 산재법이나 연금법처럼 1인 이상 사업장에 모두 적용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예외사항에 대해 비슷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또 있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이하 알바노조)이다. 알바노조는 2013년, 아르바이트 1,260명의 투표로 알바인권선언문을 채택한 뒤 노동시장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같은 시간제 노동자들도 엄연히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고 받지 못하면 사업주는 처벌을 받게 돼 있으나 근로계약서를 쓰는 비율이 굉장히 낮다. 사업주와 구두로 시급을 정하다 보니 나중에 임금체불 등 분쟁이 생기면 증거가 없어 받기가 힘들다. 또한,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유급휴일 등의 권리를 갖고 있으나 지켜지기 어려운 현실이다.
최기원 알바노조 대변인은 근로기준법의 문제를 지적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마음대로 사업자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사업장은 소규모 사업장이다. 해고예고수당이 있어서 30일 이전에 해고 예고를 안 하면 30일치 임금을 받아낼 수 있으나 받기는 어렵다. 편의점에서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고, 야근수당으로 최저임금 6,030원의 1.5배인 9,045원을 받아야 하나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임금은 주간과 동일하다. 근로기준법 테두리 밖에 있는 것은 테두리 밖에 있으니까 안 지키는 것이다.”
임금체불의 문제도 처벌이 약하다고 최 대변인은 설명했다. “사업주가 시정하지 않고 계속 임금을 체벌하면 형사상 처벌을 받게 돼 있다. 그러나 노동청 쪽에서 소액사건이다 보니까 적당히 합의를 요구하거나 사업주 편을 들어준다.”
알바노조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5인 미만 사업장 예외사항에 대한 문제제기 외에도 최저인금 1만 원 인상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 장애인 근로자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공통점은 사회 약자 계층에 속한다는 점이다. 약자이기 때문에 부당처우를 받고, 주어지는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 임시적이거나 영세한 사업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쳇바퀴 돌 듯 악순환은 계속된다.
조호근 센터장은 장애인을 위한 근로기준법 예외조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근로자 중 등록장애인 약 5%에 추정 장애인까지 하면 약 10%다. 10명 중 한 명이 장애인이면 근로기준법에 장애인에 대한 예외조항을 명시해야 하지만, 한 마디도 없다. 헌법도 물론이다. 상위법이라는 헌법에 장애인에 대한 우대가 없다는 것은 그 나라가 장애를 보는 시선이 얼마나 낙후됐나를 가늠케 한다. 국가유공자, 여성처럼 근로기준법에도 장애인을 위한 예외조항이 필요하다.”
최기원 알바노조 대변인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생계가 어렵고 시간이 없어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기본적으로 저임금이다 보니 어려운 생활고에 처할 수밖에 없다. 임금이 적다 보니 길게 일해야 하고 길게 일하다 보니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없다.”
위) 한국 최초 맥도널드 노조 출범
아래) 영화관 알바노동자 꾸미기보동 문제제기 기자회견
장애인 노동권 확보를 위한 미풍도 불어
최근 장애인의 노동권을 위한 변화의 바람들이 불고 있다.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발달장애인들이 일하고 있는 사업장을 순회하며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쉬운 버전으로 노동권 교육을 하고 있다. 노동권을 교육하는 강사들은 삽화가 첨부된 영상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알기 쉽게 근로기준법에 대해 설명하고 근로계약서를 직접 작성해보도록 시간을 준다.
교육의 효과에 대해 유영복 강사는 “당사자나 종사자에게 모두 효과가 있으나, 당사자에게 좀 더 크다. 당사자일 경우 즉각적인 반응성은 좀 부족하지만 계속 반복하면 인지가 쌓이며 변화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백미옥 강사는 “노동권 교육은 자존감을 높이는 교육이 된다. 당사자들이 교육을 받기 전에 미처 몰랐던 것을 교육을 받고 바로 적용한다. 실례로 교육 후 조립을 할 때 장갑을 요구하는 친구를 봤다. 경계선에 있는 친구들은 이유 없이 야단맞는 것에 미처 부당하다는 생각을 못해왔으나 반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15일에는 국내 최초 발달장애인 전용 훈련센터인 서울발달장애인훈련센터가 개소했다. 이곳에서는 연간 2천여 명의 서울시 고등학교 재학생 및 졸업 후 2년 내의 발달장애학생에게 직업체험과 취업훈련을 실시해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하게 된다. 서울발달장애인훈련센터는 직업훈련을 위한 훈련시설 외에도 발달장애인의 진출 가능성이 높은 도서관 사서, 쉬운 글 번역, 바리스타, 제과제빵, 사무행정, 우편분류 등 다양한 직무에 대한 훈련을 제공하며, 실제 근무환경과 유사한 환경과 체험실을 구축, 접목했다. 고용노동부는 서울발달장애인훈련센터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전국 17개 광역시·도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47년 전, 22살 전태일 열사의 절규 중에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에 쉬게 하라’도 있었다. 주 5일 근무가 보편화된 현재 노동시장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개선됐을 뿐 아직도 노동권 피해를 입는 근로자들은 상당수이며, 장애인 등 사회 약자들의 피해는 특히 심각하다. 그들의 절규에는 47년 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있다.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 근로자들의 노동권 현주소를 되짚어 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