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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만리장성, 세계 7대 불가사의로도 불리는 만리장성은 매년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다. 이 거대한 장소는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과 연원을 함께 한다. 2300여년 전 진시황은 북방 유목민족인 흉노족을 막기 위해 장성 건설을 지시한다. 황량한 서부 사막에서 시작해 광활한 초원지대를 지나 동쪽 요동에 이르기까지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성, 오랜 역사를 굽어보며 오늘에 이른 만리장성은 유목민 민족과 농경민족의 끊임없는 충돌과 전쟁으로 점철된 중국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다.
최원정/KBS 아나운서: 364번째 역사저널 그날 유네스코 세계유산 두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중국 만리장성으로 가보도록 하죠.
허준/방송인: 중국하면 떠오르는게 사람은 진시황, 건축물은 만리장성이라고 그런데 진시황과 만리장성을 딱 보면 그 당시 진시황이 정말 장난 아니었구나 입이 딱 벌어지는~
이시원/배우: 스케일 중에서 스케일은 만리장성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거 같애요.
최원정: 요즘은 기술력과 경제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높은 건물을 쌓듯이 예전에는 권력과 건축이 밀접한 관계가 있었군요.
허준: 진시황이 심각한 근시였다라는 소문이 있더라구요.
이시원: 안 보여서~
허준: 잘 보이도록 크~게 짓거라
이시원: 이제는 보이네~
최원정: 만리장성은 중국의 랜드 마크이자 중국인들의 자부심을 높여주는 그런 건축물인데 오늘 여기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해주실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여경래 셰프님~
여경래/셰프: 안녕하세요, 여경래입니다.
최태성/한국사 강사: 아니 저희 동네에 유명한 중국집 레스토랑엘 저는 자주 가는데요. 거기서는 너무 유명해서 못 뵈었는데 여기서 뵙게 되네요.
여경래: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不到長城 非好漢 (만리장성을 오르지 않은 사람은 대장부가 아니다) 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마오저둥이 한 얘기인데요. 그 정도로 만리장성은 중국 사람들이 꼭 한번은 다녀와야 하는 그런 명소죠, 그래서 오늘 만리장성에 관련된 얘기를 하게 끼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원정: 셰프님, 혹시 중국인 이세요?
최태성: 발음이?
최원정: 본토발음을 하시네,
여경래: 저의 아버지 고향은 중국이고요 (타이완) 한국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한국 사람입니다.
이시원: 2개 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시는 군요. 그런데 셰프님, 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 라고 했는데 그러면 셰프님께서는 대장부가 되셨나요?
여경래: 두 세번은 갔어요. 나도 그랬지만 만리장성을 갔었을 때 갔다 온 사람이나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얼굴 속에 희열이 있는 것 같애요. 나도 만리장성에 다녀 왔다 라는 느낌들이 얼굴 속에 다~
허준: 사실은 나 만리장성 갔다 왔다 하면 그냥 우리나라에서는 웬지 그집 짜장 잘해? 이런 중국집 느낌~
일동: (폭소, 박수)
이시원: 옛날에 만리장성이란 중국집이 있었어요.
여경래: 아마 중국을 상징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만리장성이란 글자 안에 다 포함이 되어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최원정: 그래서 만리장성 식당이 많구나. 북경반점과 더불어~
이시원: 저는 진짜 만리장성에 갔다 왔어요. 초등학교 때 갔다 왔는데 그때 그 길이도 어마 어마하지만 거기 사람이 왜 그렇게 많아요.
최태성: 그래서 이렇게 (옆으로) 밀려 가죠
이시원: 저 사람들이 어떻게 모였을까 그게 신기했던 기억이나요.
허준: 공짜예요?
이시원: 돈 내고 들어가요 돈 내는 데 저렇게~
홍승현/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진에 나왔던 데가 팔달령 이라고 하는 (팔달령-베이징 서북부에 위치, 교통의 요지로 사통팔달에서 지명이 유래), 북경 근처에 있는 정말 잘 되어 있어요. 그리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어서 저도 몇번 갔었는데 여러분들은 저 장성을 누가 만든 걸로 알고 계세요?
일동: 진시황이요!
홍승현: 그렇죠, 보통 우리는 진시황이 저 장성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는 거죠. 하지만 사실은 진시황이 만든 게 아닙니다!
허준: 누구라구요?
최원정: 스토리가 있다는 얘긴데~
홍승현: 장성은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것처럼 그냥 군사 건축물입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가지고 중국 역사 내내 수축되고 보완되고 유지됐다 라고 할 수 있는데요. 처음에 장성이라는 것과 지금의 장성은 굉장히 큰 차이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아마 여러분들이 장성과 관련되어 갖고 알지 못했던 혹은 잘못 알고 있었던 얘기들을 한 번 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이시원: 답을 안 알려주시는 거예요?
최원정: 교수님, 주특기 시잖아요. 밀당~
최태성: 지도를 통해 가지고 도대체 그 성이 어느 정도 인지, 만리장성의 규모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 만리장성지도 동영상), 베이징을 기준으로 해서 서쪽 가욕관에서 출발해 가지고 동쪽 산해관까지 이어집니다. 한 둘이 아냐 저게 중국 왕조 2천년이 넘는 시간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는 건축물이다 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시원: 만리장성이 정말 만리일까 했는데 저 정도면 만리에 가까울 것도 같구요, 진짜 만리인가요?
홍승현: 오늘 다같이 세상의 중심에서 X를 외치다. 이 X는 좀 다른 느낌이에요. 엄격하게 말하면 만리가 넘어요. 만리라고 얘기하는데는 사마천의 사기가 역할을 했어요. 사마천이 사기에서 요동(遼東)에서 임조(臨恌-지금의 감숙성)까지 만리에 이르렀다 라고 했거든요. 근데 이때 만리는 실제로 만리가 아니라 길다 라는 의미예요. 실제로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서 알려진 걸 정리를 해보면 진대장성이 5000 킬로미터 정도 돼요. 한대장성은 6500 킬로미터가 돼요. 지선까지 하면 10,000킬로미터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명대장성이 6000 킬로미터예요. 그래 갖고 역대 중국에서 만들어진 장성의 지선까지 다 합쳐지면 한 50,000 킬로미터까지 된다는 얘기도 있기 때문에~
허준: 50,000킬로 미터=약13만리 (4킬로미터=약10리),
최원정: 13만리 장성이라고 해야 되나?
허준: 그렇다면 저희가 중국의 역사를 보면 숫자가 보통기본이 0 하나 더 붙거나 많으면 00도 붙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백만리 장성이라고 해야 되는게~
홍승현: 그래서 이 경우에는 사실 숫자를 부치는게 의미가 없어요.
최원정: 만萬 자가 많다 길다 만세 하듯이 그런 의미죠.
여경래: 한국에서는 만리장성이라고 하지만 보통 중국에서는 그냥 장성이라고 불러요.
최원정: 어떻게 발음 하나요?
여경래: 長城 [Changcheng] 창청~
최원정; 진지한 만리장성 얘기를 하기 전에 진짜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시원: 저도 이 질문 꼭 하고 싶어요!
최원정: 난 웬지 시원씨 질문이 내 질문과 같을 것 같애, 해 보세요
이시원: 해도 되나? 왜 우리가 남녀가 뜨거운 하룻 밤을 보내면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라고 그러잖아요. 근데 그 만리장성이 이 만리장성 맞아요? 끝나지 않은 긴긴 밤을 보냈다 그런 건가요?
허준: 아니 궁금하다는 거잖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넘지 못할 성을 넘었다는 느낌도 있는 것 아닌가.
최태성: 지금 이시원씨 말이 맞는 거 같애.
최원정: 굉장히 문학적인 표현이잖아요.
이시원: 만리장성이 쌓기가 힘들잖아요. 정말 함께 밤을 보내기 까지 어렵다는
최원정: 그런데 또 만리장성을 하룻 밤만에 쌓아! 그것도 좀 특이 하잖아요. 어떤 의미에요, 교수님!
홍승현: 저는 제 전공이 아니라 안 쌓아봐서 모르겠어요.
허준: 이게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예기죠. (여경래씨를 향해) 중국 속담에는 없는 거죠?
여경래; 한국 에서만 그런 얘기가 있는 거죠. (하룻 밤을 자도 만리장성 쌓는다-하룻 밤의 인연이라도 만리장성을 쌓을 만큼 큰 일일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뜻의 속담),
최원정: 궁금해 하시는 여러분, 각자 찾아보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중국의 역사가 담긴 만리장성, 시작에는 중국 최초의 황제였던 진시황제가 있습니다.
해설: (동영상), 중국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전국칠웅, 일곱 나라 중 특히 진나라 군대는 강력하고 무자비 했다. 당시 중국의 가장 서쪽에 자리한 진나라는 유목 민족에게 익힌 기병전술로 전국 시대 최후의 승자가 됐다.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진시황, 황제의 땅은 사방에 경계가 없었으며 (地無四方) 백성에겐 진나라 이외에 다른 나라는 있을 수 없었다 (民無異國). 모든 천하가 자기 것이라던 진시황, 하지만 그는 스스로 땅에 경계를 짓는 모순을 드러낸다. 바로 장성의 건설이다.
여경래; 중국 사람들은 진시황이 고맙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왜냐면 중국을 상징해서 외부에서 China라 했을 때 China의 Chin자가 Chin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중국을 상징하는 용어로 그때부터 시작을 한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중국의 기틀을 잡은 진시황),
이시원: 한 마디로 중국이다 라고 부를 수 있는 중국을 최초로 만든 기틀을 잡은 사람이네요.
홍승현: 맞아요, 보통 진시황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뭘 가지고 설명을 하냐면 통일성이라고 하는 걸 가지고 설명을 해요. 아시는 것처럼 문자통일, 도량형 통일, 화페통일 하고 다 그렇죠, 전 국토를 하나의 기준으로 동일하게 다스리는 통일성이야말로 진시황의 제국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근데 문제는 저 북방에 통일성을 저해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죠. 바로 북방 유목민족이죠. 이 흉노들을 내쫓고 거기다가 방어선을 쳐라 이렇게 한 것이 장성의 첫 발자국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최원정: 황제 땅에 사방에 경계가 없다고 분명히 했는데 방어선을 긋는다는 것은 모순이잖아요.
홍승현: 우리가 알고 있는 농경민족 같은 경우에는 땅이 거기 있으니까 반드시 거기 있거든요. 가서 잡으면 돼요. 근데 유목은 어떠냐 그렇지 않다 라는 거예요. 끊임없이 떠돌아 다니는 거예요. 새들처럼 산다고요. 앉았다가 날아가고 앉았다가 날아가고 유목하고 싸울려면 무슨 문제가 있냐 전선이 계속 깊어지는 거예요. 근데 장성이야 말로 당시 진대인들이 두기지를 절묘하게 대응하는 거죠. 제국의 안정적인 통일을 유지하면서도 가장 확대된 제국의 영역이라는 선을 딱 표시하는데 장성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죠.
허준: 흉노들의 성격 자체가 몰아내면 말 타고 도망갔다가 약탈하려 가자 또 오잖아요. 그러니까 선을 안 만들면 얘들은 무조건 다시 온다 이런 걱정이 있었네요.
최태성: 그런데 만리장성을 따지고 보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진시황도 정치인이잖습니까. 대선후보 전까지는 세상을 넓히겠습니다. 하다가 딱 대통령이 도니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최원정: 대외적으로는 황제의 위용을 과시하고 뒤에서는 내실을 기하고~
최태성: 그런데 이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로 이 책(錄圖書)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 한자 읽을 수 있어요?
허준: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바탕이라,
이시원: 녹도서~
최태성: 녹도서라는 건데요 (錄圖書-연나라 사람 노생(盧生)이 쓴 예언서), 이게 지난 시대의 정치를 점친 거를 적어놓은 거예요.
최원정; 우리로 치면 예전의 정감록 같은~ (조선중기 예언서),
최태성: 그렇죠, 정감록 같은 건데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 있거든요. 그 내용이 뭔지 궁금하시죠. 여 셰프님, 한 번 읽어주시죠. 亡秦者胡也 망치즈호얘
여경래: 진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들은 호胡 나라 사람들, 胡자를 넣을 때는 보통 오랑캐 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최원정: 맞아요, 호떡~ 호 주머니(중국에서 유입), 호로자식胡奴子息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이르는 말), 胡자가 오랑캐 胡자라고 들었어요.
허준: 호루라기는 루라기의 오랑캐 버전이에요?
이시원; (허준을 향해) 그건 아닐 것 같애요.
최태성: (녹도서를 읽은 진시황) 진시황은 자신이 믿었던 몽염이라는 장군에게 30만 병력을 오르도스 사막에 올라온 데가 있어요. 그 일대를 점령을 하고 만리정성을 쌓도록 명령을 내린 것이죠.
허준: 사실은 진시황이 하늘 아래 무서울 것이 없는 왕 중의 왕이었겠지만 약간 쫄보(?) 기질이 있잖아요. 죽을 까봐 그때 간호사가 있었으면 주사 바늘이 무서워~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저 예언서를 봤다고 하면 오랑캐 때문에 내가 죽을 수가 있겠구나 무서운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애요.
홍승현: 보통 우리가 진시황이 30만 대군을 줘서 방어선을 치라고 한 걸로 알고 있죠. 근데 사실 이때 만리장성을 처음서 부터 끝까지 다 만든 건 아니예요. 일단 새로 쌓은 부분이 있기는 있어요. 하지만 기존에 있었던 것을 연결을 한 거예요. 왜냐면 전국 시대 때 전쟁이 굉장히 많았었잖아요. 모든 제후국들이 방벽을 갖고 있었어요. (흉노-진의 장성(진), 조의 장성(조), 연의 장성(연) 위, 제) 그 중에서 燕나라 趙나라 秦나라 같은 경우는 북방 흉노와 경계선을 맞대고 있었던 거죠. 그들의 선들을 일단 이용을 한 거죠. 쭉 이어진 장성을 쌓은 건 아니다 라는 거죠. 봉수대를 일정거리 마다 심은 거예요.
최원정: 점 점 점을 연결시킨 거구나!
홍승현: 굉장히 좋은 표현을 하셨는데요. 선이 아니라 점을 만든 거예요. 생각을 해보세요, 말 타고 막 달려와 흙먼지 날리면서 올라오고 있으면 농민들이 할 수 있는 건 뭐냐 저들의 스피드에 대결하기 위해선 봉수대에다 봉화를 올리는 거예요. 그럼 뒤에서 그걸 보고서 많은 군대를 모아갔고 대결을 시키겠죠.
이시원: 한 마디로 진대장성은 1차 방어선 2차 방어선을 방어할 시간을 벌어준 거네요.
홍승현: 어찌보면 궁여지책이에요. 말 타고 오는 사람들을 당해낼 수가 없거든요.
허준: 우리가 배울 때 아예 만리장성으로 배워서 그런데 처음에는 만리전망대였다가 만리초소였다면 만리장성(만리장성의 변천사)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배웠으면 확 와닿았을 것 같애요.
최태성; 진짜 만리장성에 대한 오해가 엄청 많이 풀린 것 같애요. 일단 진시황은 無에서 有를 만든게 아니다 기존에 있는 성을 이용해 가지고 봉수대 형식으로 점을 형성한 것이다. 여기서 만리장성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게 엄청나네요.
최원정: 그럼 교수님, 만리장성 저 북쪽 유목제국이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홍승현: 진시황 시기에는 북쪽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게 돼요. 그러니까 북방민족의 대명사라고 하면 흉노라는 집단이 있는데요. 흉노의 1대 선우(군주)로 두만 (만인의 우두머리)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요. 만인의 우두머리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이 사람이 기원전 220년 즈음에 나타나서 유목민족들을 통합을 해요. 진시황으로서는 그 예언서를 봤을 때~ 녹도서에서 말한 胡가 흉노 두만이로구나!
허준: 그럼 두만이 영역을 넓혀 와 가지고 한반도 위쪽까지 와서 두만강이에요?
이시원: 우와~
허준: 진짜예요!
최원정; 오늘 또 혼난다, 아니에요, 두만강은 콩이 가득한 강이라는 뜻이에요 (豆滿江-콩이 가득한 강이라는 뜻, 두만강 연안이 대두의 원산지),
이시원: 저 믿었어요!
최원정: 비록 틀렸지만 나는 그 상상력 칭찬해요. 이렇게 흉노대제국이 형성이 되는데 그 위력이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 나라가 들어설 때까지 이어집니다.
----------------이광용/아나운서; 기원전 209년 흉노제국은 두번째 리더가 등장하면서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묵특 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묵특-기원전 3세기 말부터 기원전 2세기 초 흉노 대제국을 이끈 2대 선우), 동상인데요, 동상만 봐도 포스가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이시원: 보통 동상은 웃는 얼굴이나 무표정으로 만드는데 (강한 인상) 이게 이분의 캐릭터였나 봐요.
이광용: 그러니까요, 지금 딱 동상에서 느껴지듯이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쉽을 바탕으로 흉노제국을 완성하고 번성시킨 묵특이라는 사람, 충성심 강한 정예부대를 만들었는데요. 그 부대를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 바로 이걸 활용했습니다.
--------------박금수/무기 및 전략전술 전문가: 오랜만에 돌아왔는데요, 제 손에 화살이 있습니다. 화살 촉을 한 번 보세요, 촉이 특이하죠, 묵특이 사용했던 명적이라는 화살인데요. 울명 鳴자예요. 적은 화살촉 鏑을 말하는데요. 우는 화살촉이죠. 우는데 응애 응애 우는 게 아니라 맹금류가 공격할 때 소리를 내죠, 맹~ 그런 소리가 나게 돼요. 지금 요거는 금속으로 만들었는데 묵특의 시대에는 속이 빈 나무(명적의 원리-속이 빈 나무, 사슴 뿔 등에 구멍을 뚫어 소리통 제작)나 사슴뿔이나 소뿔 같은 걸로 소리통을 만들어요. 구멍을 뚫는 거죠 (명적의 원리-화살을 쏘면 구멍에 바람이 통하면서 (일종의 호루라기 역할 소리나는 원리) 그렇게 되면 여기가 호루라기가 되는 거죠.
최태성; 날아가면서~
박금수: 그렇죠, (화살촉에 입술을 대고) 바람 한 번 불어볼까요, 쉬~ 쉬~ 뭐 소리가 나는 것 같긴 하죠. 이게 빠르게 날아가면 훨씬 더 높은 소리가 나게 되는 거죠. 자~ 쏘겠습니다. (맹금류 같은 소리를 내며 날아간 화살!).
일동: (핑~ 소리에 놀람)
허준; 귀가 따가올 정도로 아파요.
이시원; 맹금류 소리가 너무 시기하다.
이광용; 근데 궁금한 게 명적은 어떤 상황에서 주로 활용을 했을까요?
박금수: 명적은 주로 집중공격 대상을 가리키는데 사용했죠.
이시원: 저게 표적이다 하면 레이저 포인트로 가리키면~
박금수: 소리가 나니까 쏘라는 명령도 되구요, 어떤 대상을 쏠지를 지시해 주는 건데요. 그래서 명적이 날아가는 곳에는 소나기처럼 화살비가 쏟아집니다. 그런데 묵특은 요병적을 자신의 부하들의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도 사용을 했어요.
이광용: 어떤 식으로요?
박금수: 이 명적을 자신의 가장 아끼는 애마를 향해 쏩니다.
일동: ???
박금수: 허준씨, 만약 허준씨가 옆에 있어서 묵특의 부하였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허준: 이건 테스트입니다. 유목민족에게 말이라는 거는 목숨과 같아요. 그러니까 명령이 딱 들어왔을 때 이게 멍청한 명령인지 아닌지 판단해서 가려야 한다. 말한테 쏘면 이건 아시죠 활을 거두어라.
이시원: 내 말인데도 쏘면 그건 바보다!
허준: 안 쏘겠습니다!
박금수: 안 쏘실겁니까 정말 입니까? 그렇다면 허준씨는 사망!
최원정: 멍청한 판단이었네.
박금수: 그렇다면 다음으로 묵특의 명적이 날아간 곳은 바로 어디였냐면 묵특이 가장 좋아하는 애첩에게 날아갔습니다.
최원정: 이건 아니지~
허준: 칸께서 마음이 다 하셨구나
이광용: 칸께서 이제 정리하실 때가 됐다!
최태성: 전 안 쏴요!
이시원: 저도 안 쏴요!
박금수: 그러면 허준씨 빼고 다 사망! 이때도 묵특은 망설였던 병사들 다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이광용: 이게 끝이 아니에요.
최태성: 또 있어!
박금수: 마지막으로 묵특은 명적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쏩니다.
최태성: 그건 말이 안 된다.
박금수: 화살을 날립니다.
이시원; 이번에는 진짜 쏘면 말이 안 돼요.
허준: 칸이 왕 위에 오르시려나 보다!
홍승현; 첫번째 두번째 화살은 결국 애첩과 애마라고 하는 건 아버지를 죽이기 위한 희생이에요. 그렇게 훈련을 시켜야지만 자기 아버지한테 화살을 쏘았을 때도 주저없이 활을 날릴 수가 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우리가 봤던 그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의 결사대 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을 만들어낸 거죠.
최태성: 표정을 알겠어요.
최원정: 관상을 보세요. 살기가 가득해.
박금수: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강력한 리더쉽이 있었구나. 그리고 충성심 높은 최정예 군사들이 있었죠.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더 한 사실 진시황을 불안하게 했던 것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 할 수 있었던 그 힘! 그 힘 중에서 핵심 기술 말 위에 사람이 바짝 타서 전쟁을 벌이게 되면기마전술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 유행했던 전차전은 말 세 네 마리가 수레 하나를 끄는 거죠. 이런 전차병 보다 훨씬 기동성이 좋구요. 유연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광용; 진시황이 중국 대륙을 통일할 수 있을 정도로 결정적인 기술을 전해준 흉노 그런데 그 흉노가 대제국을 세우면서 오히려 위협이 되는 상황, 그러니까 만리장성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길어지는 그런 상황으로 바뀐 거죠. 과연 이 만리장성이 진시황의 든든한 방어선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요?
최원정: 흉노 세력이 저 정도라면 진시황 입장에서는 장성을 더 높이 빠르게 세워야 될 것 같애요, 너무 무섭죠.
최태성; 문제는 그 과정에서 너무 만리장성 쌓는 거에만 집중했다는 거죠. 백성들의 어떤 삶, 이런 것들은 놓쳤다는 거지. 문제가 되는 것이죠. 백성들을 토목공사에 엄청나게 동원한 거잖아요. 이미 그 어마어마한 병마용갱만으로도 힘들었을텐데~이거 하나만으로도 그 시대를 사는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최원정: 많이도 죽고~
최태성: 그런데 그것뿐만 아니라 만리장성까지 그 당시 백성들은 공사하다가 삶을 마감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요.
여경래: 만리장성을 찾는 중국 사람들은 꼭 들리는 곳이 있습니다. 왜냐면 거기 맹강녀 라고 동상이 있는데~ 맹강녀 표정을 보게되면~ (맹강녀 동상-중국 하북성 산해관 부근에 위치),
이시원: 뭔가 슬퍼하고 있고~ 억울해 하기도 하고~
허준: 어디 떠나간 사람을 쳐다 보는 것 같고,
최태성; 저기 지금 만리장성에게 남편을 빼앗긴 부인 맹강녀 이야기 예요.
최원정: 남편이 공사하다가 죽었구나.
최태성: 만리장성을 쌓다 보니까 동원이 된 거예요. 그래서 남편을 위해서 옷을 몇 벌 지어가지고 몇 달을 걸려서 여기를 왔어요. 왔는데 남편이 이미 죽은 거예요. 저 부인이 너무 충격을 받아 가지고 거기에 쿡 쓸어져요. 근데 이 성벽이 와르르 무너진 거예요. 성이 무너졌는데 그 안에 남편의 시신이 있어요. 너무 너무 슬퍼가지고 펑펑 울면서 장사를 잘 지내고 이 맹강녀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라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최원정: 만리장성을 세계에서 긴 무덤이라고 하잖아요.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홍승현: 이 전설은 맹강녀가 남편 범기량 이라는 사람을 찾아가는 데 관련 되어 있거든요. 춘추시대 때 있었던 전설이에요(서사). 근데 당대 때 기량처 라는 시가 있어요. 시 중간에 “한 번 목놓아 우니 장성이 무너지고 두번째 목 놓아 우니 백골이 드러났다.” 라고 하는 게 있었구요. 두 가지가 섞인 거예요. 춘추시대 때 전설과 당나라 때 문학적 상상력 두 가지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
최태성; 나중에 이런 애기가 회자된 거군요.
홍승현: 이런 전설이 계속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넘어갔다 라는 건 그만큼 국가의 토목공사 라고하는 것 자체가 백성들의 애환이라고 하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란 걸 볼 수가 있는 거죠.
최원정: 그러니까 만리장성 쌓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으면 이런 전설이 다 나왔겠습니까.
해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몽염 장군에게 30만 군대를 주어 북방 흉노족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장성을 쌓게 했다. 전국 시대부터 있던 성벽을 서로 연결하고 또 새로운 장성을 쌓으면서 진시황은 6년 동안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성을 건설했다. 거대한 토목공사는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당시 참상을 전하는 노래가 있다. “아들이 있어도 키우지 말게 딸이 있으면 고기는 그 애에게 먹이게 모르겠는가 장성이 해골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과도한 토목공사와 엄격한 통치로 백성들의 허리는 휘어져 갔다. 아파도 치료 받을 수 없었고 또 죽어도 묻힐 수 없었다.
이시원: 야, 이 만리장성 쌓는 고된 토목공사 때문에 백성들의 삶은 무너져 내리고 있네요.
허준: 고기 있으면 아들 먹이지 말고 딸 먹여라. 어차피 가서 백골이 될 거니까 전설이 나올만 하네요.
홍승현: 진나라 인구를 어림 잡아서 약 2천만 명을 봐요. 그럼 우리가 느슨하게 얘기를 한다고 했을 때 성인 남성은 그 중의 4분의 1을 치면 약 500만명이 되겠죠. 그런데 장성을 쌓을 때 30~100만 명이 동원됐다고 봐요. 그리고 우리가 진시황릉 공사할 때 70만명이 동원됐어요. 그리고 아방궁 건설하는데 사람이 또 동원돼요. 그러니까 당시의 성인 남자의 2분의 1이 지금 어디선가 삽질을 하고 있는 거죠.
이시원: 아무리 중국이 사람이 많긴 하지만 2분의 1이 동원될 정도면 나라가 굴러는 가나~
최태성: 그리고 진나라 때 장성의 위치를 한번 볼텐데 장성이 통과한 데를 보면 극한 지역을 통과합니다. 서북부에 있는 감숙성을 출발해 가지고 산해관을 감싸고 올라가고 있죠. 게다가 저 위 내몽고 쪽이 굉장히 지형이 험하고요. 혹한의 추위와 요동지역 까지 오고 있고 해발고도 2천, 3천 미터에 달하는 곳도 있거든요. 정말 험한 곳에 진나라 때 장성이 만들어진 겁니다.
이시원: 저 힘든 일을 저렇게 극한의 기후와 환경에서 했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그 생각이 저는 먼저 들거든요.
홍승현: 이게 제가 장성에 가서 찍어온 사진이에요.
최태성: 저게 직접 찍으신거예요?
홍승현: 네, 한대장성, 거연이라고 하는곳에 가서 찍은 건데요.
최태성: 새벽 틈새로 보이는 흙과 짚,
홍승현; 보시는 것처럼 사이 사이에 짚 같은 게 보이잖아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짚과 풀을 섞어서 흔히 말하는 점성을 높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 것을 일일이 다 손으로 다져 갖고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최원정: 요즘에야 토목공사는 고용창출이라도 한다고 하지만 그 때는 그냥 목숨을 건 노역이었죠?
여경래: 진시황 같은 경우는 무조건 폭군적인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그렇긴 한데 그래도 진시황 덕분에 생겨난 음식이 있거든요. 제가 직접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광용: 황제의 강력한 권위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순행에 나섰던 진시황, 기원전 210년 경 진시황이 중국 산동성에 있는 푸산이라는 곳을 방문했을 때 탄생한 요리가 있다고 합니다. 셰프님, 맞습니까?
여경래: 네, 맞습니다. 푸산이라는 곳은 면 요리가 유명한 곳입니다. 그런데 진시황이 그 쪽을 방문하고 요리를 하나 만들라고 했는데 어느 요리사가 음식을 잘못 만들어서 맛이 없다고 생각하고 목아지가 날라 갈 것이라 생각하고 전전긍긍 하다가 드디어 음식을 만들 차례가 된 거예요. 기름하고 여러가지 순서를 다 생각했는데 지금 저처럼 경황이 없는 거죠. 기름을 넣어야 되는 데 기름에다 춘장을 같이 넣어서 볶으게 되었는데 아이고~ 난 이제 죽었다. 내가 실수했구나. 벌벌 떨면서 진시황한테 갔다 바쳤죠.
이광용: 잠깐만요! 여러가지 봤을 때는 뭔가 레스피 대로 안 된 족보에 없는 음식이 나온 거잖아요.
여경래: 그렇죠,
이시원: 얼마나 떨렸으면~ 실수를 했을까요!
이광용: 손이 벌벌~ 이렇게였을 것 같은데요.
여경래: 근데 진시황이 드디어 그 면을 먹고 나서 띵호와 挻好! 라고 했데요.
일동: 대반전이네요.
여경래; 오히려 상도 많이 받고 짜장면 가게도 만들었다는~
최태성: 짜장면 이에요?
여경래: 원래는 작장면 炸醬麵인데요. 작장면의 원 발음은 자장면~ 이렇게 된 것이 한국의 짜장면이 된 거예요.
이광용: 발음 자체가 작장면 짜장면 발음이 비슷하네요.
최원정: 우리가 먹는 짜장면이 일종의 대륙의 실수네요.
여경럐: 한국에 와서 짜장면이 하루에 최대 약700만 그릇이 팔린데요. 중국의 작장면이 한국의 제일 유명한 국민음식 짜장면이 된 거예요.
이광용: 그러면 당시 진시황이 먹었다고 전해지는 작장면을 만들어 주시는 건가요?
여경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시원: 우리가 흔히 먹는 짜장면이 진시황 때문에 탄생한 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허준: 그것도 실수로!
최원정: 대륙의 실수라니까~
허준: 그래서 중국집에 진시황과 관련된 만리장성 이라는 이름이 많다~
여경래: 고기를 좀 푸짐하게 넣고~
허준: 생각해 보면 진시황한테 바쳤던 음식인데 고기를 아끼겠어요?
최원정: 셰프님은 여기 앉아 계실 때 모습이랑 요리 모자를 쓰니까 다른 사람 같애요.
여경래: 올라오니까 살판 났습니다.
이광용: 아까 리허설 하실 때 까지만 해도 이렇게 적극적 이시지는 몰랐거든요.
최원정: 마늘이에요?
여경래: 마늘, 생강 다 넣거든요.
허준: 진시황은 오래 살고 싶어 하니까 건강에 좋은건~
이시원: 음~ 냄새 너무 좋아~
최태성: 다 됐나요?
여경래: 네, 다 됐습니다. (황제의 요리-작장면 완성),
최원정; 2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작장면을 먹습니다.
허준: 진짜 완전 다르다.
최태성: 물기가 하나도 없는데요, 물기가 하나도 없어요.
이시원: 구체적으로 비벼 먹으면 되나요? 우리나라 짜장면은 약간 검잖아요. 얘는 거의 하얀 느낌~ 너무 맛 있고 담백하고 깔끔하네요. 진시황이 좋아할 만 했네요.
최원정: 이거를 원래 기름 넣고 춘장을 확 넣는 게 아니었는데 실수로 볶은 거잖아요. 그래서 뭔가 오히려 더 깊은 맛이 나는 것 같애요. 춘장의 쓴 맛이 없어지고 진시황이 폭정으로 민심은 잃었지만 우리 입맛은 즐겁게 해주네요. 셰프님, 잘 먹었습니다. 박수 한 번 보내드리겠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짜장면이 중국 작장면과 만리장성이 연관이 있다는 사실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진시황이 무서워서 조리법을 실수할 정도로 요리사가 벌벌 떨었다는 거 아닙니까. 진시황이 그런 사람인데 진 나라는 흉노에게 망한다는 예언이 있었잖아요.
최태성: 아까 이 책 기억 나시죠? 녹도서에 지금 진 나라는 호 오랑캐에게 망한다. 亡秦者胡也 이걸 보고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런 얘기가 있는데 이 예언은 일단 맞습니다. (일단 진실), 어떻게 맞느냐 진시황이 순행을 하다가 사망을 하게 돼잖아요. 근데 진시황의 막내 아들이 호해 라는 아들이 있었거든요. 진시황이 순행하다가 죽은 거야. 이 상황 속에서 당시엔 SNS나 전화가 없으니까 진시황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채 환관 조고 라는 사람이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을 황제의 자리에 앉혀야 되겠다 라고 해서 정적들을 다 제거한 이후에 바로 그 자리에 그 막내 아들 호해를~ 녹도서의 胡자가 막내 아들의 胡亥의 그 胡자예요.
최원정: 녹도서의 胡가 아니라 胡亥의 胡~
최태성; 이 호해가 결국은 술 여자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진 나라 멸망의 원인 중의 하나가 되기 때문에 이 예언은 어찌 보면 그렇게 맞았다.
최원정; 호해가 호로자식 맞네요.
이시원; 진시황의 입장에서는 외부의 胡는 막았어도 내부의 胡는 막지 못해서 결국에는 진 나라가 망하게 됐네요.
홍승현: 진 나라의 멸망은 사실 하나로 딱 말하기는 어려워요. 외정에 대한 문제도 있고 토목공사에 대한 문제도 있고 또 폭정 문제도 있고 복합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근데 분명한 건 하나 있죠. 결코 성벽이 제국을 유지할 수 없다.
최원정;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안팎을 다 두루두루 살펴야 된다는 아주 훌륭한 교훈을 남긴 만리장성이었는데 세계유산으로 지정될만 하네요.
최태성; 지금부터 우리가 이제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상식~ 이걸 바로 잡아야겠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거든요. 아까 교수님이 그랬어요. 슬쩍 우리가 생각하는 만리장성은 진시황의 만리장성이 아닙니다. 이 말이 기억나세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지금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만리장성은 진시황의 만리장성이 아니다 라는 얘기예요. 어떻게 된 건지 지도를 보겠습니다. 빨간선이 보이죠. 빨간선은 진대장성입니다. 지금의 노란색,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라인이 저 노란색이에요 (가욕관-오르도스 사막 하단-북경-산해관 라인), 다릅니다. 지금 전대 장성은 지금의 만리장성 보다 훨씬 더 북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약 2세기 말 후한대 중국의 세력약화로 국경도 남하합니다. 내려오면서 형성 된 게 저 노란색 만리장성이 된 것이고 바로 명나라 때 지은 장성이 지금의 만리장성으로 자리잡게 된 겁니다.
허준: 근데 성벽 기술이 진나라 때 보다 밑으로 내려 오면서 후퇴했나 봐요. 왜냐면 진나라 만리장성은 일자로 이어져 있는데 그 후대에 지어진 건 두 세 줄로 되어 있잖아요. 이렇게 지어서 가다가 어! 못 만났다 못 만났다 이런 느낌~
이시원: 아니면 짓고 짓고 만리장성은 삼중 창설이 아닐까요? 뭐예요?
홍승현: 기존에 있었던 거를 다 증축하기도 하고 양쪽에서 오다가 엇갈리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 거기만 지방관들이 자기가 지키는 선에 대해서만 쌓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중복적인 지선들이 많이 발달을 하게 되는 데 명대장성의 특징입니다.
이시원: 그러면 아까 지금 남아 있는 만리장성이 만6천 킬로미터가 넘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그 긴 거리의 장성들이 다 명대에 세워진 건가요?
홍승현: 지금 보시고 있는 장성은 다 명대장성이다 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애요. 물론 아까 제가 사진에서 찍어온 것처럼 지선으로 한대장성이라든지 내몽골 지역에 아주 부분적이긴 하지만 저희가 흔히 말하는 관광지로서의 장성이라 하는 것은 명대장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경래: 저는 몇 번 가봤는데요. 일단 아까 그냥 그림에서 나온 것처럼 가파른 곳도 되게 많은데요. 실제로 성을 쌓기 위해서 일을 했던 사람들도 당연히 더 어마어마하게 힘들었겠죠.
최원정: 그 벽돌을 지고 올라갔을 거 아녜요.
최태성; 엄청나지~
홍승현; 장성이 평지만 있는 게 아니라 산세를 이용해서 벽돌로 덥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일단 벽돌부터 찍어야 해요. 벽돌을 산 꼭대기에서 찍을 수는 없단 말예요. 평평한 데서 벽돌을 찍어요. 그럼 그걸 갖고 등짐을 지고 산꼭대기로 걸어 올라가는 거죠. 실제로 기록에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실제 그 벽돌이 쌓인 데서부터 80킬로미터 밖에서 벽돌을 제작 후 운반을 한 거에요.
허준: 80킬로 미터에서 메고 간다니 인원이 많으니까 일렬로 죽 늘어서서 옆으로~
홍승현: 80킬로 미터를 지고간 건 아니고 일단 평지에서는 수레를 끌었겠죠.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갈 때는 지고도 올라가지만 연결 연결 해서 운반하는 방법도 다 썼어요.
최원정; 세계사에서는 예수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해서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싯점까지 쌓았다는 게 만리장성이잖아요. 그 안에 정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땀과 눈물이 베어 있겠습니까. 그 희생 위에서 세워진 만리장성을 구경해 볼까요? (동영상) 봐도 봐도 끝이 안 보이는 만리장성~
최태성; 와~ 엄청나요.
최원정: 끝이 안보여~
홍승현: 멀리서 봐야죠. 가까이 가면 보지를 못해요.
허준: 만리장성 보려면 우주선 타고 올라가서 봐야지
최태성: 산 정상을 다 이은 거 아냐, 대단하다.
이시원: 만리장성을 멀리서 보면 볼수록 더 멋질 것 같애요. 그래서 교수님, 진짜 우주에서 달에서도 만리장성이 보인다는데 사실인가요?
홍승현: X, 아니오.
허준: 안 보여요? 보일만 한데~ 백만리 장성인데요.
홍승현; 이게 장성이 넓은 폭을 가지고 있는 데가 한 10미터 돼요. 평균적으로 말 네마리, 다섯 마리 정도가 달린다고 해서 4미터 정도의 폭을 갖고 있어요. 높이는 대체적으로 10 미터 이하예요. 근데 지구에서 달이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면 39만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요. 그게 보일려면 훨씬 더 높고 훨씬 더 커야 된다 라는 거죠.
여경래: 옛날에 중국이 달나라에 갔었을 때 양리웨이란 우주항공사가 (양리웨이-중국 최초의 우주인 2003년 선저우 5호에 탑승, 21시간 만에 귀환), 자기도 자기 조국의 만리장성이 유명하니까 그걸 꼭 보겠다고 했는데 지구를 몇 바퀴 돌았지만 결국 못 봤어요. 그렇게 인터뷰를 하더라구요.“지구는 매우 아름다웠다. 하지만 만리장성은 보이지 않았다” (양리웨이 인터뷰 中). 자랑스럽게 보고 싶었지만 결국 못봐서 너무 아쉽다고~
허준: 그런데 사실 얘기를 들어보니까 진나라 때 지어진 만리장성도 아니고 내몽고 안쪽으로 들어가 있고 명나라 때 거의가 다 완성이 되었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희생이 되었어요. 그리고 달에서 안 보이고 세계문화유산에서 조금만~
홍승현;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그리고 건축학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위대함을 부정하기는 어려워요. 세계 어느 곳에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만들고 보수하고 유지하고 이런 군사 건축물은 없거든요. 그냥 긴 시간만 이어졌다 라고만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그 당시 변했던 국제정세, 발전하고 있었던 성벽 축조기술들, 이런 것들이 다 들어가 있고 투영되어 있다 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장성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에 있어서의 외교사, 건축사, 민중사, 전쟁사 이런 것들 모두가 장성이 증언하고 있는 거죠.
최태성: 사실 이 만리장성이 중국의 상징이 된 건 1970년 이후부터 라고 볼 수 있어요. 이게 어떤 계기였냐면 바로 사진이 나왔네요. 바로 저 분이에요. 혹시 저 분이 누군지 아세요?
이시원: 누군가요?
허준: 닉슨?
최태성: 맞습니다. 닉슨 (리처드 닉순-미국의 제37대 대통령), 대통령이 왜 저기 올라가 있냐면 1972년 2월 만리장성을 방문한 닉슨 대토령, 핑퐁외교 있잖아요. (핑퐁외교-1971년 미국 탁구선수단, 중국 방문 시합 양국수교의 계기가 된 사건), 당시 미국이 베트남 하고 전쟁 중이었는데 계속 수렁에 빠진 상황이었잖아요. 그때 북베트남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국을 통해서 어떤 돌파구를 마련해 봐야겠다 해서 중국에 온 거예요. 그때 만리장성을 본 거죠. 그리고 그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장성은 위대한 성벽이며 위대한 민족이라야 이런 성벽을 세울 수 있다” (닉슨 대통령), 그러면 중국이 어땠겠어요. 어깨가 으쓱 올라가죠. (동영상), (리처드 닉슨/대통령-장성 처럼 물리적으로 세워진 장벽이든 이데올로기나 철학의 장벽이든 사람들을 갈라놓지는 못합니다. 만리장성에 와서 직접 보니 16,000마일을 날아온 가치가 있다고 감히 말합니다.).
최원정: 닉슨이 굉장히 대단한 게 미국 대통령이 당시 중공을 방문해서 그 문화유산을 칭찬했다는 건 굉장한 화해 제스쳐였던 거예요.
여경래: 미국하고 중국하고 수교하였을 때 였었으니까요. 저 양반이 가고 나니 중국 사람들도 원래 항상 주변에 있었던 걸 그렇게 중요시 못했던 거죠. 얘기를 하고 나니까 이게 그렇게 중요한 거였구나! 그때부터 알기 시작한 거죠.
홍승현: 만리장성을 서양인들은 모두가 다 놀랬을 거 같애요. 특히 하나의 일화는 1793년 영국의 매카트니 경이 굉장히 놀래요. 용이 산을 휘감고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전제 군주가 이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다는 걸 상상을 못했는데 그걸 눈으로 본 거예요. 그 경이로움 이라는 것은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보통 그러잖아요. 자기가 본 걸 보지 않은 사람한테 말할 때는 감탄해서 내가 진짜 대단한 걸 보고 왔어!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서 서양인들 사이에 장성의 위대함이 뿌리 깊게 과장되고 재생산 되는 상황에 들어가게 됩니다.
최원정: 절대권력의 산물 건축물 위에 서양인들의 세계가 덧입혀지면서 지금의 위대한 이미지가 된 거죠.
허준: 거기 가면 축구를 할 수 있어!
최태성: 어쨌거나 끝없이 이어진 만리장성은 중국을 정말 철옹성 처럼 지켰을꺼야 라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역사를 들여다 보면 아니었습니다. 만리장성이 무너졌다고 하는 건 밖에서 문이 열렸을 때 무너지는 게 정상인데 밖이 아니라 대부분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는 거, 여기서 아니러니한 거예요. 아까 얘기 했잖아요. 진시황제 진나라 누구 때문에 무너지기 시작했죠? 호해~ 안에서 무너졌잖아요. 그리고 명대의 만리장성,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 굉장히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인데 만리장성을 백여 년간 계속 쓰다보니까 곳간이 텅빈 상태에서 청나라가 쳐들어온 거예요. 쳐들어 왔을 때 어떤 식으로 만리장성은 역할을 했을까. 놀랍게도 산해관의 장수 오삼계가 문을 열어 줍니다. 그래서 무혈입성으로 들어와요.
이시원: 정말 이런 장성이라는 게 아이러니한 게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안전할 것 같지만 결국은 고립되고 고인 물이 되게 만드는 것 같애요. 그래서 고인물 안에서 썪고 결국은 문을 열고 나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되는 것 같거든요.
허준: 고이기엔 너무 넓은데~
최태성; 그거 믿고 내치에 실패했다는 느낌이 드네요. 국가운명이 거기서 달라지네.
홍승현: 위대한 국가를 생각해 보면 고립된 시대가 아니라 개방된 시대에 위대한 제국이 등장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성벽을 쌓아서 외부와 단절하기 보다는 그 문을 열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양한 것을 만들어낼 때 진정한 제국 다운 제국은 생겨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원정: 유네스코 세계유산 두번째 시간 만리장성을 보았는데 우리가 관심을 많이 가졌던 만리장성 그런데 의외로 많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시원: 우리가 만리장성 하면 환상 속의 만리장성으로 잘못 알고 있었어요.
여경래; 제 몸 속에는 중국과 한국이 다 섞여있는 상태인데요. 오늘 역사저널 오고 나서 새로운 생각과 개념을 알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허준: 저는 짜장면이라는 음식이 사실은 서민 음식 중에서도 가장 싼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고 못살던 시대에 짜장면 한 그릇 그리워 하시는 분들도 많았잖아요. 그런데 역사와 지식을 알게 되면 이게 서민음식이 아니라 황제가 먹었던 음식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똑 같은 음식도 알게 되면 황제가 됩니다. 저는 항상 황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홍승현: 중국사에서 북방 유목민족은 단순한 대외관계의 대상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비중이 커요. 그래서 실제로 많은 역사가들은 중국과 북방 민족들간의 관계사 자체가 중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구성요소다 라는 얘기를 해요. 장성이야말로 그런 두 존재의 성장 갈등 화합을 처음부터 끝까지 받고 지원하고 있는 증인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저는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장성에 대한 지나친 감탄 또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장성이 말해주고 있는 그날의 진실을 귀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원정: 다음 시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도의 타지마할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끝. (KBS 역사저널 그날 364회 유네스코 세계유산 아시아 ② 중국 만리장성에서 정리).
①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만리장성, 세계 7대 불가사의로도 불리는 만리장성은 매년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다. 이 거대한 장소는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과 연원을 함께 한다. 2300여년 전 진시황은 북방 유목민족인 흉노족을 막기 위해 장성 건설을 지시한다. 황량한 서부 사막에서 시작해 광활한 초원지대를 지나 동쪽 요동에 이르기까지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성, 오랜 역사를 굽어보며 오늘에 이른 만리장성은 유목민 민족과 농경민족의 끊임없는 충돌과 전쟁으로 점철된 중국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다.
②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不到長城 非好漢 만리장성을 오르지 않은 사람은 대장부가 아니다 란 말이 있다. 그 정도로 만리장성은 중국 사람들이 한번은 다녀와야 하는 그런 명소다, 중국을 상징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만리장성이란 글자 안에 다 포함이 되어 있다. 팔달령은 북경 근처에 있는 명대에 건축된 장성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장성은 군사 건축물이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가지고 중국 역사 내내 수축되고 보완되고 유지되어 왔다. 만리장성의 규모는 베이징을 기준으로 해서 서쪽 가욕관에서 출발해 가지고 동쪽 산해관까지 이어진다. 그건 중국 왕조 2천년이 넘는 시간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는 건축물이다.
③ 엄격하게 말하면 만리가 넘는다. 만리라고 하는 얘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있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요동(遼東)에서 임조(臨恌-지금의 감숙성)까지 만리에 이르렀다. 근데 이때 만리는 실제로 만리가 아니라 길다 라는 의미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서 알려진 걸 정리를 해보면 진대장성이 5000 킬로미터, 한대장성은 6500 킬로미터, 지선까지 하면 10,000킬로미터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명대장성이 6000 킬로미터다. 역대 중국에서 만들어진 장성의 지선까지 다 합쳐지면 한 50,000 킬로미터까지 된다. 50,000킬로 미터=약13만리 (4킬로미터=약10리), 한국에서는 만리장성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그냥 장성이라고 부른다.
④ 중국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전국 칠웅 중 특히 진나라 군대는 강력하고 무자비 했다. 진나라는 유목 민족에게 익힌 기병전술로 전국 시대 최후의 승자가 됐다.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진시황, 황제의 땅은 사방에 경계가 없었으며 (地無四方) 백성에겐 진나라 이외에 다른 나라는 있을 수 없다 (民無異國). 모든 천하가 자기 것이라던 진시황, 하지만 그는 스스로 땅에 경계를 짓는 모순을 드러낸다. 바로 장성의 건설이다. 중국을 상징해서 China라 했을 때 China의 Chin자가 Chin에서 시작했다. 진시황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통일성을 가지고 설명한다. 문자통일, 도량형 통일, 화페통일 전 국토를 하나의 기준으로 동일하게 다스렸다
⑤ 근데 문제는 북방에 통일성을 저해하는 유목민족 흉노족들이다. 그들을 내쫓고 거기다가 방어선을 쳐라 라고 한 것이 장성의 첫 발자국이다. 유목민족은 끊임없이 새들처럼 앉았다가 날아가고 앉았다가 날아가고 유목하고 싸울려면 전선이 깊어진다. 장성은 당시 진대인들이 절묘하게 대응한 거다. 제국의 안정적인 통일을 유지하면서도 확대된 제국의 영역 표시이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다. 바로 녹도서(錄圖書)를 읽었기 때문이다. 녹도서는 조선의 정감록 같은 것인데 거기에 亡秦者胡也 망치즈호얘 진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들은 호胡 나라 사람들이다, 胡자는 보통 오랑캐를 표현한다
⑥ 진시황은 몽염이라는 장군에게 30만 병력을 주고 오르도스 사막에 올라온 데 그 일대를 점령을 하고 만리정성을 쌓도록 명령을 내린다. 이때 만리장성을 처음서 부터 끝까지 다 만든 건 아니다. 새로 쌓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기존에 있었던 것을 연결을 한 거다. 왜냐면 전국 시대 때 전쟁이 굉장히 많았다. 모든 제후국들이 방벽을 갖고 있었다. 흉노-진의 장성(진), 조의 장성(조), 연의 장성(연) 위, 제, 그 중에서 燕나라 趙나라 秦나라 같은 경우는 북방 흉노와 경계선을 맞대고 있었다. 그들의 선들을 일단 이용을 한 거다. 쭉 이어진 장성을 쌓은 건 아니다. 봉수대를 일정거리 마다 심은 거였다. 장성은 처음에 선이 아니라 점을 만든 거였다.
⑦ 어찌보면 궁여지책이었다. 진시황은 無에서 有를 만든게 아니다. 기존에 있는 성을 이용해 가지고 봉수대 형식으로 점을 형성하였다. 여기서 만리장성의 역사는 시작된다. 진시황 시기에는 북쪽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북방민족의 흉노의 1대 선우(군주)로 두만 (만인의 우두머리)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만인의 우두머리 라는 뜻, 이 사람이 기원전 220년 즈음에 나타나서 유목민족들을 통합한다. 진시황으로서는 녹도서에서 말한 胡가 흉노 두만이었다! 흉노대제국이 형성이 되었는데 그 위력이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 나라가 들어설 때까지 이어진다.
⑧ 기원전 209년 흉노제국은 두번째 리더가 등장하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바로 묵특이다. 묵특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쉽을 바탕으로 흉노제국을 번성시키고 충성심 강한 정예부대를 만들었다. 그는 부대를 독특한 방법으로 철저하게 장악하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강력한 리더 충성심 높은 최정예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그런데 진시황을 불안하게 해서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 할 수 있었던 그 핵심 기술은 기마전술이었다. 흉노는 진시황에게 중국 대륙을 통일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런 결정적인 기술을 전해주었다. 그 흉노가 대제국을 세우면서 위협이 되었다, 그러니까 만리장성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길어지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⑨ 진시황은 장성을 더 높이 빠르게 세워야 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너무 만리장성에만 집중했다. 백성들의 어떤 삶은 황폐해져갔다. 그 당시 백성들은 장성 공사하다가 인생을 마감했다. 만리장성을 찾는 중국 사람들이 꼭 들리는 곳이 있다. 맹강녀 동상이다. 만리장성에게 남편을 빼앗긴 부인의 이야기다. 남편을 위해서 옷을 몇 벌 지어가지고 몇 달을 걸려서 작업장엘 왔다. 왔는데 남편이 이미 죽은 거다. 부인이 너무 충격을 받아 가지고 쓸어졌다. 근데 그 성벽이 와르르 무너졌는데 그 안에 남편의 시신이 있었다. 너무 억울하고 펑펑 울면서 장사를 지내고 이 맹강녀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슬픈 이야기다. 만리장성을 세계에서 긴 무덤이라고 한다.
⑩ 거대한 토목공사는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당시 참상을 전하는 노래가 있다. “아들이 있어도 키우지 말게 딸이 있으면 고기는 그 애에게 먹이게 모르겠는가 장성이 해골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과도한 토목공사와 엄격한 통치로 백성들의 허리는 휘어져 갔다. 아파도 치료 받을 수 없었고 죽어도 묻힐 수 없었다. 진나라 인구를 2천만 명이라고 했을 때 성인 남성은 그 중의 4분의 1을 치면 약 500만명이다. 장성을 쌓을 때 30~100만 명이 동원됐다. 진시황릉 공사할 때 70만명이 동원됐고 아방궁 건설하는데 사람이 동원됐다. 당시의 성인 남자의 2분의 1이 지금 어디선가 삽질을 하고 있는 거였다
⑪ 진나라 장성의 위치를 보면 서북부에 감숙성을 출발해 가지고 산해관을 감싸고 올라가고 있다. 내몽고 쪽이 굉장히 지형이 험하다. 혹한의 추위와 요동지역 까지 해발고도 2천, 3천 미터에 달하는 곳도 있다. 험한 곳에 장성이 만들어졌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짚과 풀을 섞어서 흔히 말하는 점성을 높혔다. 일일이 다 손으로 다져 갖고 만들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그야말로 목숨 건 노역이었다. 진시황 덕분에 생겨난 음식이 있다. 기원전 210년 경 진시황이 중국 산동성에 있는 푸산이라는 곳을 방문했다. 진시황이 요리를 하나 만들라고 했는데 어느 요리사가 기름을 넣어야 되는 데 기름에다 춘장을 같이 넣어서 볶으게 되었다. 난 이제 죽었다. 내가 실수했구나. 벌벌 떨면서 진시황한테 갔다 바쳤다. 근데 진시황이 드디어 그 면을 먹고 나서 띵호와 挻好! 라고 했다. 원래는 작장면 炸醬麵인데 이게 한국으로 와서 짜장면이 되었다.
⑫ 진시황이 사망하였다. 근데 환관 조고의 조작에 의해 진시황의 막내 아들이 胡亥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녹도서의 胡자가 막내 아들 胡亥의 그 胡자다. 胡亥는 술 여자 호화로운 생활로 진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진시황은 내부의 胡를 막지 못했다. 결코 성벽이 제국을 유지할 수 없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만리장성은 약 2세기 말 중국의 세력약화로 명나라 때 지은 명대장성이다. 명대장성은 관광지로서의 장성이다.
⑬ 만리장성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해서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싯점까지 쌓았다. 많은 사람들의 피땀과 눈물이 베어 있고 그 희생 위에서 세워졌다, 끝이 안 보이는 만리장성, 역사적 건축학적으로 만리장성은 위대하다. 세계 어느 곳에서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만들고 보수하고 유지한 이런 군사 건축물은 없다. 거기에는 그 당시 국제정세, 성벽 축조기술들이 들어가 있다. 장성은 중국의 외교사, 건축사, 민중사, 전쟁사를 증언하고 있다.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은 만리장성을 방문해 이런 얘기를 했다. “장성은 위대한 성벽이며 위대한 민족이라야 이런 성벽을 세울 수 있다” 리처드 닉슨은 장성처럼 물리적으로 세워진 장벽이든 이데올로기나 철학의 장벽이든 사람들을 갈라놓지는 못합니다. 만리장성에 와서 직접 보니 16,000마일을 날아온 가치가 있습니다. 중국도 닉슨이 가고 나서 그때부터 장성을 알기 시작하였다.
⑭ 서양인들은 전제 군주가 이런 실력을 갖고 있다는 걸 상상을 못했다. 경이로웠다. 서양인들은 장성의 위대함을 과장하고 재생산하였다. 절대권력의 건축물 위에 서양인들의 세계가 덧입혀졌다. 만리장성은 중국을 철옹성 처럼 지켜주지 못했다. 만리장성은 안에서 문이 열렸다. 명대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 청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만리장성 산해관의 장수가 문을 열어 주었다. 무혈입성, 위대한 제국은 그 문을 열고 다양한 것을 만들어낼 때 탄생한다. 중국과 북방 민족들간의 관계사는 중국사에서 빠질 수 없다. 장성의 존재가 그 증인이다. 장성에 대한 감탄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진실에 귀 기울여야 한다.
⑮ 한반도에서 북한 김정은 치하의 핵무기와 미사일 실험으로 인한 북한주민들의 계속되는 빈곤과 배고픈 참상이 중국 진나라 진시황 치하의 백성들의 장성 노역으로 인한 처참하고 비참한 참상들이 어쩌면 동일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