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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無窮花)
내가 처음 무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찬송가 중에 ‘샤론의 꽃 예수’라는 노래가 있는데 샤론의 꽃이 무언가 궁금해서 성경을 찾아 본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아가서 2장 1절에 ‘나는 샤론의 꽃, 골짜기의 백합화로다’란 구절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아 일본어 성경을 찾았더니 <‘わたしはシャロン の ばら>(나는 샤론의 장미)로 나오고 다시 영어성경을 찾았더니 <‘I am a rose of Sharon,>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rose of Sharon>이 무언지 영어사전을 찾았더니 바로 '무궁화'라고 나왔습니다.
이 때 얼마나 놀랐던지….그 때부터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꼬리를 무는 의문을 다음과 같이 적어보았습니다.
A. 무궁화에 대한 의문
1. 샤론이란 성경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된 이스라엘 해변가 평야인데 어찌하여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가 수천 년 전 그 땅에서 예수를 찬양하는데 쓰일 정도로 사랑을 받았단 말인가?
2. 무궁화의 학명이 <Hibiscus syriacus linnaeus> 즉 원산지가 시리아(이스라엘과 인접)란 말인데 어떻게 그 먼 나라의 꽃이 우리나라의 국화가 되었단 말인가?
3. 한국 및 중국 사서에 보면 무궁화는 과거 단군시대 및 그 이전부터 한국민의 숭배의 대상이었고 온 나라에 무궁화 천지였다는데 그럼 언제 시리아에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4. 실크로드가 생긴 것이 기원 후 1세기경, 다시 말해 그 이전에는 걸어서는 한국까지 올 길도 없는데 기원 수천 년 전에 어떻게 우리나라에 전해졌단 말인가?
5. 고대한국의 세력이 시리아보다 월등했다면 거꾸로 한국에서 대륙의 땅끝인 그 나라로 전해지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이런 의문들을 풀어가려니 우리의 상고사는 말할 것 없고, 인류의 발생지 및 이동경로도 알아야 하고, 인류의 최초 문명발상지도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하고, 인류 최초 언어의 발생과 전파과정도 보아야 하고 …..할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무궁화 속에 복음의 전파경로가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B. 무궁화
무궁화(無窮花, Hibiscus syriacus)는 아욱과의 식물로, 대한민국의 나라꽃입니다. 작은키나무로, 2~3미터의 높이에 팔목 정도의 굵기로 자랍니다. 꽃잎은 길이가 4~10센티미터이며 달걀 모양으로 깊게 3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보통 5장으로 되어있습니다. 요즘 시기인 7월에서 9월에 꽃이 피는데, 우리교회 화단에도 무궁화 1그루가 피어납니다. 새벽에 꽃이 새로 피었다가 오후에는 오므라들기 시작하고 해질 무렵에는 꽃이 떨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씨에는 잔털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C. 무궁화와 한국의 관계
1. 구당서 ‘신라전(新羅傳)’에는 신라를 가리켜 ‘근화향(槿花鄕, 무궁화의 나라)’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2. 무궁화는 산해경에 '아침에 펴서 저녁에 지는 훈화'로서 '군자국(君子國)에 대한 설명에 언급되었습니다.
3. '무궁화'로 불린 것은 조선시대 이후로, 그 이전에는 '목근(木槿)' 또는 '근화(槿花)', '순(舜)' 등으로 불렀습니다.
4. '무궁화'는 애국가의 후렴구에서도 등장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의 뜻이 “무궁화의 은혜”라는 뜻입니다.
D. 무궁화의 이용
무궁화는 대체로 관상용으로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나, 다른 용도로의 사용도 가능합니다. 무궁화의 겉껍질은 벗겨서 종이의 원료로 사용하며, 말려서 약으로도 사용합니다. 어린 잎은 식용하며 꽃과 잎은 차로 마실 수도 있습니다. 근화는 열대 아열대에서 자라며, 관상용으로 키울 때에는 집에서 생육이 가능합니다. 목근은 난대성 수종으로 100여 년 전까지는 차령산맥 이남에서만 생육되었다가 점차 개량하여 휴전선 인근까지 생육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무궁화(無窮花)(2)
지난 주부터 나라의 꽃 무궁화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꽃이면서도 정작 잘 모르는 무궁화를 좀 더 자세히 기술해 보겠습니다.
1. 무궁화는?
•무궁화의 꽃말은 "섬세한 아름다움"이다.
•무궁화의 영어 이름인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는 이스라엘의 샤론 평원에 핀 아름다운 꽃이란 뜻을 담고 있다.
•무궁화는 십자군이 시리아에서부터 유럽으로 옮겼다는 식물이다.
•가지가 잘 꺾이지 않는 섬유질이어서 흔히 울타리로 사용한다.
•우리 조상들은 불면증을 이겨내기 위해 무궁화를 차로 마셨는데, 그렇게 마시면 잠이 잘 온다.
•무궁화의 즙은 무좀, 설사, 눈병, 생리 불순, 위장병 등의 여러 질환에 효과가 있다지만 현재 성분 분석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ㅇ 고조선시대에는 제단에 무궁화를 심어 신성시 했으며, 신라․고려시대에는 무궁화가 전국에 있어 ‘무궁화나라’ 즉 근화향(槿花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 바 있고,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어사화’라 하여 청․홍․황 3색의 무궁화를 꽂아 영예로움을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ㅇ 이처럼 우리 민족의 근면성과 순결, 강인함이 무궁화의 생태적 특성과 유사하여 나라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ㅇ 무궁화의 끈질긴 생명력’과 ‘은은한 꽃의 아름다움’이 5천년 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무궁화만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무궁화 이름의 유래
무궁화의 명칭은 중국에서는 목근(木槿)·순영(舜英)·순화(舜華) ·훈화초(薰花草)·단(쓩)·친(漱)·일급(日及)·조개모낙화(朝開暮落花) 화노옥증(花奴玉蒸)·번리초(藩籬草) 등 여러 가지로 쓰였고, 무궁화로는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한자로 무궁화(無窮花·無宮花·舞宮花)로 쓰였는데, 최근에는 無窮花로만 쓰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쓰여 오던 무궁화라는 한글명은 16세기부터 나타나는데 한자로는 목근화(木槿花)로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볼 때, 목근화 → 무긴화 → 무깅화 → 무궁화의 형태로 변했으며 여기에 뜻이 좋은 무궁화(無窮花)로 차음(借音)하여 표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정상(金正祥)은 그의 논문 《무궁화보(無窮花譜)》에서 1923년에 전남 완도군 소안면(所安面) 비자리(榧子里)에서는 노인들이 무궁화를 ‘무우게’로 부른다고 보고하였고 ‘무궁화’라는 꽃이름은 ‘무우게’에서 변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무궁화는 오래 전부터 한국 고유의 다른 이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무쿠게[牟久計] ·모쿠게아사가오[牟久計朝顔] ·하치스 ·기하치스 등으로 쓰고 있는데 ‘무쿠게’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무궁화가 도입될 때에 전해진 이름입니다. ‘무쿠게’라는 한자가 오직 음만을 표시하고 별로 뜻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더욱 그렇게 믿어집니다.
속명 Hibiscus는 이집트의 히비스신(Hibis神)을 닮았다는 뜻으로, 곧 히비스신처럼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또 속명이 Althaea라고도 쓰였는데 그리스어로 ‘치료한다’라는 뜻입니다. 영명(英名)으로 <rose of sharon(샤론의 장미)>라고 한 것은 가나안 복지 중에서 제일 좋은 곳 샤론에 피는 장미라고 하여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크게 찬미한 것입니다. 문헌상으로 무궁화가 유럽에 도입된 것은 1596년입니다.
3. 무궁화가 국화가 된 이유
(문헌에 무궁화가 국화가 된 정확한 근거는 나타나 있지 않다고 하네요)
예로부터 상당히 광범한 지역에 관상수로 재배되어 온 무궁화는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었으며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되면서 은연중 나라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무궁화가 나라꽃임을 알고 있으나, 그 근거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러 문헌에서 무궁화가 우리의 꽃임을 명시하고 있으나 국화로 제정된 정확한 근거에 관해서는 서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궁화가 우리 민족과 연관되어 나타난 것은 역사적으로 그 연윈이 고조선까지 거슬러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궁화(無窮花)(3)
1. 무궁화에 얽힌 이야기
고려 16대 예종왕 때 일어난 일입니다. 예종 임금은 참으로 사랑하는 신하가 셋 있었습니다. 세 신하를 똑같이 아끼어 벼슬도 똑같이 참판 벼슬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그렇지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종 임금에게 더 잘 보이려고 하였습니다. 더 잘 보이려고 하니, 서로 시기하고 헐뜯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사람 가운데 한 사람 구 참판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비단결 같은 구 참판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면,"쓸데없는 소리 마오. 그 친구를 욕하면 내 얼굴에 침뱉기요." 하고, 자리를 뜨곤 하였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정 참판과 박 참판은 둘이 만나면 구 참판 이야기로 하루 해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정참판과 박참판은 구참판을 궁궐에서 쫓아내기로 서로 짠 것입니다. 없는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예종 임금은 그것을 사실로 믿었습니다. 정참판과 박참판의 꾐에 넘어간 것입니다.
"네 마땅히 사형으로 다스릴 것이나, 경상도 땅으로 귀양을 보내노라. 종 하나를 붙여서....." 임금님은 말끝을 맺지 못하였습니다. 박참판과 정참판의 흉계인 줄을 뒤늦게 알았으나, 왕은 두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 전하!" 구참판은 엎드려 울었습니다. 한 번 떨어진 명령은 어쩔 수 없는 것. 그날로 구참판은 귀양지에 끌려갔습니다. 귀양지에 도착한 구참판은 개성쪽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임금님 생각만 하였습니다.
'나는 아무 죄도 없는 몸이다. 죄인은 정참판과 박참판이다.' 혼자서 이렇게 생각하면서 구참판은 외롭게 살았습니다. 역적으로 몰렸으니 구참판의 집안도 전부 망해 버렸습니다. 부인은 종이 되어 끌려갔고, 아들 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조차 모릅니다. 그렇지만, 구참판은 임금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에 대한 충성심은 날로 더해만 갔습니다.
"전하, 만수무강하소서....."임금님을 향한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참판님, 무엇을 좀 잡수셔야죠? 이렇게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누가 알아주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네!" 먹쇠놈이 울면서 간청했지만, 구참판은 눈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좀 드시와요? 이렇게 굶으시다가는 제명을 못사십니다. 제명을......" 벌써 며칠째 굶고 있는 구참판입니다. 차라리 굶어 죽고 싶은 구참판. 마침내 가랑비가 내리던 밤, 구참판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종 먹쇠는 양지바른 곳에 구참판을 묻어주었습니다.
다음해 봄. 구참판의 묘 앞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이 바로 우리 나라의 국화, 무궁화입니다. 임금님을 사랑하던 마음이 빨갛게 달아서, 무궁화꽃 속은 빨간빛이 되고, 구참판의 죄없음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꽃잎은 하얀빛, 보랏빛등으로 피어났습니다. 꽃말은 [일편단심]또는 [영원]입니다. 임금님을 사랑하던 그 염원이 무궁화로 피었으니 그 충성된 마음이야 변할 리가 있겠습니까!
2. 또 다른 이야기
옛날 북부 지방에 있는 어느 한 산간 마을에 글 잘 쓰고 노래 잘하는 아주 예쁘게 생긴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많은 사람들은 이 여자의 재주를 칭송했고 귀여워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남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남편을 매우 사랑하였습니다. 언제나 지극한 정성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남편을 돌보았습니다. 제아무리 돈많고 권세있는 사람들이 여자를 유혹하여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마을을 다스리던 성주가 그녀의 재주와 미모에 반해 그녀를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편을 돌볼 뿐이었습니다. 애를 태우던 성주는 마침내 부하를 보내 강제로 그녀를 잡아들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성주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성주는 화가 나서 단숨에 칼로 그녀의 목을 잘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죽은 뒤 성주는 그녀의 절개에 감탄을 하며 그녀의 시체를 남편이 살고 있는 집안 뜰 앞에 묻어 주었습니다.
그 후 그 무덤에서 꽃이 피어났는데, 이 꽃나무는 자라고 자라서 집을 온통 둘러쌌습니다. 마치 장님인 남편을 감싸주려는 듯이 울타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이 꽃을 울타리꽃이라 불렀다 합니다. 이꽃의 이름이 무궁화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 꽃을 언제부터인가 사랑해 왔습니다. 멀리 시리아에서 이스라엘에서 온 이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의 조상이 이스라엘과 가깝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무궁화(無窮花)(4)
1. 무궁화는 구원역사의 향기를 뿜어낸다
한국이 원산지로 알았던 무궁화.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인 무궁화는 예수를 지칭하는 성경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더불어 무궁화는 '시리아에서 온 꽃'(Hibiscus Syriacus)이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지역이죠. 그렇다면 시리아에서 온 꽃인 무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요. 무궁화가 결코 한국에만 제한된 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구원역사를 품고 있는 꽃임을 성경과 꽃 이름의 어원적 특성을 통해 알아봅니다.
2. 노아 홍수 후
하나님의 천지창조 이후에 타락한 인간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물로써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시고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의 가족들과 각종 동물들의 암수 한 쌍씩을 방주로 불러들이시고 홍수로써 심판을 하십니다.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아라랏산에서 부터 시작한 새로운 인류가 시작 되었습니다. 인류는 아라랏산에서 내려와 산과(노아의 장남인 셈족들이 살았던곳) 들과(노아의 차남인 함족들이 살았던곳- 메소포타미아) 바닷가(노아의 막내 아들이었던 야벳족이 살았던곳)에 살기 시작했는데 산에서 살던 셈이 함의 땅인 메소포타미아에 내려오면서 큰 성들을 건축하고 문자를 만들면서 점차 강력해지기 시작합니다.
인류 최초의 문자라고 밝히고 있는 수메르문자와 그의 문화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셈에 힘 때문에 밀려난 함의 자손들은 흩어지게 되는데 함의 장자인 구스는 에디오피아로 갔고 둘째 미스라임은 애굽 그러니깐 이집트로 갔고 셋째 붓은 리비아로 그리고 넷째 가나안은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이 홍수 이후에 아라랏산에서 내려와 문화를 건설하고 그 가운데 함의 자손인 "니므롯"이라는 영걸이 또다시 하나님에 대한 반항으로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언어의 혼잡이 오고 거기서 모든 민족들이 각기 방언대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삶을 시작한 아라랏산에 다시 돌아와서 새로운 땅을 찾아서 길을 떠나게 되는데 이들 가운데 끝까지 동쪽으로 와서 그 새로운 시작을 했던 사람들이 고아시아족의 일부고 그들이 우리의 선조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이 아라랏산에서 북상해서 러시아 평원을 만나고 우랄산맥을 넘어서 중앙아시아를 통과하고 시베리아를 거치면서 바이칼 호수를 만나게 되고 야블로비 산맥과 스타노보이 산맥을 넘어서 드넓은 평지를 발견합니다. - 지금도 러시아와 우랄산맥 일대에서 그리고 바이칼 호수 근방에서 우리나라말과 발음이 비슷한 몇 가지 방언이 지속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말 아리랑도 그 근원이 알+이랑으로 알은 하나님을 뜻하는 엘이고 이랑은 함께한다는 접미사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민족임을 나타냅니다.
아무튼 먼 동남쪽으로 이동하여온 그들이 정착한 곳 - 이곳을 그들은 "아사달" 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그 옛날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극동까지 왔다는 증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무궁화라는 것입니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은 무궁화가 핀 적정산에서 신시를 열었다고 합니다. 고대로 부터 동이족의 꽃으로 인식되어져 신라시대 화랑의 머리에 그리고 조선시대 때는 장원 급제자에게 내리는 어사화가 바로 무궁화였다고 합니다.
국화로서 무궁화에 대한 아무런 법 규정은 없는데 5,000년 역사 안에 무궁화는 아무런 이의 없이 국민의 정서 속에 나라의 꽃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양 최고 지리서인 산해경에 보면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라는 기록이 있고 원중기에도 "군자의 나라에는 무궁화가 많다"는 비슷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또 신라의 최지원 선생이 중국에 보내는 국서에서 우리나라를 근화지향 이라하여 무궁화의 나라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무궁화의 원산지가 고대 앗시리아 제국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겠습니까?
무궁화(無窮花)(5)
1. 시리아의 무궁화
우리나라에서 무궁화는 여름 꽃으로 기온이 높은 7~9월 사이에 피지만 무더운 고대
앗시리아 지역에서는 매일 무성히 피었을 것입니다. 또한 산해경의 관찰대로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며 큰 나무일 경우 매일 새롭게 피는 송이수가 50여 송이에 이른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풍요와 부 그리고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생각 합니다.
그리고 무궁화 잎사귀는 꽃이 갖는 부드러움과는 달리 작고 단단하며 가장자리는 톱니모양으로 되어있어 뻗어나가는 힘을 상징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중동가운데 바벨론이나 니느웨 등 이 지역의 성벽들이 무궁화의 잎사귀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도 그러한 힘을 표현 한다고 합니다.
BC2000년 경 건축된 옛 앗시리아 왕궁에서는 마치 우리나라의 관공서 같은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수 많은 무궁화 문양의 조각이 새겨진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무궁화 사랑 정서가 바로 이 지역에서 부터 시작되어 이어져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2. 먼길 떠난 무궁화
그들이 왜 그토록 먼 길을 가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있지만 아무래도 그것을 설명하자면 장자의 속성 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형제간의 불화나 다툼이 생기면 아우들에게 좋은 것을 양보하고 길을 떠났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많은 민담이나, 민요나, 소설에는 <간다> 라는 내용이 많습니다.
또한 그들의 언어였던 옛 수메르어는 우리나라와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sov
형태의 교착어를 쓰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 정황으로 봐서 우리의 조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성경의 인물은 셈족의 일부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 동양사상에 나타난 성경이야기
노아홍수 후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은 어디에 정착했을까요? 바벨탑 사건 후 언어혼란으로 흩어진 그 후손들은 어디에 뿌리를 내렸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어떤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흔적은? 한국의 흔적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중국의 문헌과 성경 비교를 통해 그 뿌리가 노아의 자손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해봅니다.
기나 긴 4천년의 중국역사에는 상제(上帝)에게 드려온 제사사상(국경제사)의 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문의 내용은 성경 창세기 사상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고대 상형문자의 기록은 인류의 기원이 상제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었고, 노아홍수와 바벨탑사건 후의 언어혼란으로 인한 민족이동을 통해 한 후손들이 조상들의 순전한 믿음을 이어받아 그들의 문자제정과 제사사상에 기초로 삼고 반영해 두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중국의 한자에는 창세기의 내용이 그대로 들어있는 글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건 다음시간에 다시 기술하겠습니다.
4. 셈과 제사권
노아 홍수 이후 셈과 함과 야벳은 각자의 터전을 삼았습니다. 함의 후손은 산 아래로 내려와 티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강들 사이의 땅이라는 뜻)평원에 정착했습니다. 야벳의 자손들은 서쪽의 타우르스 산맥을 지나서 바다를 끼고 좀 더 전진하다가 결국 바닷가의 땅에 자리를 정하였습니다(창10:5). 모든 형제들이 다 새로운 땅을 찾아서 떠날 때에 그대로 산 중턱의 불편한 땅에 눌러 앉은 것은 바로 노아의 장자, 셈의 자손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종가(宗家)인 장자의 자손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것은 홍수 이전부터 셋의 가계(家系)를 통해서 내려온 전통이었고, 그것은 그대로 장자인 셈의 가문에 계승되어 장자권과 제사권을 맡게 되었습니다.
모든 제사를 주관해야 했던 셈의 자손들은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신다고 믿어서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따라서 산 아래로 멀리 내려가면 제사 때마다 다시 올라가기가 더욱 힘들었기에 산 중턱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무궁화(無窮花)(6)
한국이 원산지로 알았던 무궁화.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인 무궁화는 예수를 지칭하는 성경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더불어 무궁화는 '시리아에서 온 꽃'(Hibiscus Syriacus)이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지역이죠. 그렇다면 시리아에서 온 꽃인 무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요. 무궁화가 결코 한국에만 제한된 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구원역사를 품고 있는 꽃임을 성경과 꽃 이름의 어원적 특성을 통해 알아봅니다.
1. 셈과 수메르
셈의 장자인 '엘람'의 이름은 '높은 곳'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내'란 말은 '사나이'의 준말인데 곧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역사상 모든 셈족의 조상이 되는 종족은 산지에서 내려와 우르 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수메르 사람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수메르'라는 말은 '셈'이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셈족은 모두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셈'은 '이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셈'이 '이름'을 뜻한다면 곧 셈의 언어, 즉 우리가 말하는 수메르어는 아담이 짐승들과 새들의 '이름'을 지을 때부터 있었던 원초적 언어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수메르어를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혼잡케 하셨던 바벨탑 사건(창11:9) 이전의 언어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상하게도 세계 모든 종족의 언어학자들이 수메르어를 자기네 언어의 원형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강신택 박사는 우선 수메르어에서 수없이 나타나는 우리말의 원형을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수메르의 쐐기문자로 기록된 어휘의 발음을 편의상 알파벳으로 표현해보면 gir(길)는 우리말의 '길'이며, 'bad'(바드)는 '발'을 의미하고, 'nim'(님)은 윗분에게 붙이는 경칭이니 우리말의 '님'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하늘'은 가장 높다는 뜻의 'an-ur'(아누)에서 온 것이며 아버지를 부를 때 'abba'(압바)라 하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abi'(아비)로 낮추는데 이것은 같은 셈계인 히브리어와도 공통입니다. (아바 아버지)
수메르어가 아담의 때로부터 전해온 바벨탑 이전의 언어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문자의 역사도 역시 수메르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찾아낸 최고(最古)의 기호문자, 즉 기호로 발음과 뜻을 나타낸 문자는 바로 수메르의 '쐐기문자' 뿐인 것입니다.
수메르의 쐐기문자 중에 네 개의 쐐기를 포개놓은 것 같은 쌀 미(米)자 모양의 문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an'(안)이라고 읽는데 즉 '하늘'을 의미하는 글자입니다. 그러나 이 글자를 신의 이름, 즉 '하늘의 신'을 의미할 때는 'Anu'(아누)라고 읽습니다. 또 수메르어에서는 윗분을 높여서 부를 때 우리 한국에서 그렇게 하듯 'nim'(님)이란 존칭을 붙이는데 'Anu'(아누)에다 'nim'(님)을 붙이면 우연일 수도 있겠으나, 기이하게도 'Anu-nim',(아누님) 즉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수메르나 이집트에 살던 민족들이 나름대로의 독특한 상형문자를 사용했던 비슷한 시기에 중국의 고대문명도 상형문자로서 한자를 발명하였습니다. 그림문자(상형문자)는 세계에서 쓰여진 초기의 문자형태입니다. 중국에서의 한자는 상형문자를 둘 이상 조합시켜 뜻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표의문자(의미를 나타내는 문자)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대한자를 히브리 민족이 쓴 성경내용과 비교해 보면 실로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내용에 있어 중국과 히브리의 고대문명 사이에 나타나는 역사적 설화가 서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샹띠(천제)를 경배하는 국경제사의 기도내용을 성경 창세기의 구절을 들어 비교해보면 지극히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놀람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 샹띠에게 제사 드린 中國皇帝(중국황제)
고대 중국의 왕들은 지난 과거 4천여 년 동안에 걸쳐, 해마다 국경지역을 방문하여, 그 곳의 옥외제단에서 하늘의 통치자인 샹띠에게 흠없는 어린 수소로 제사를 드려왔습니다. 이 국경제사는 중국의 역대왕조에 있어서 하나의 통치이념 자체였으며, 통치자 자신이 이 의식을 관장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의 왕군통치가 종식되던 1911년이 축제의식은 그 막을 내렸습니다.
이 대제사 의식에 성현 공자(기원전 551-479)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공자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데 있어서 이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공자님도 하나님을 섬기던 분이었다고 주장하나 아직 정설은 아닙니다.
다음 시간에는 상제에게 드린 제사문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 속에서 성경에 나타난 구절을 대비하면 얼마나 정확한 성경구절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무궁화(無窮花)(7)
한국이 원산지로 알았던 무궁화.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인 무궁화는 예수를 지칭하는 성경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더불어 무궁화는 '시리아에서 온 꽃'(Hibiscus Syriacus)이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지역이죠. 그렇다면 시리아에서 온 꽃인 무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요. 무궁화가 결코 한국에만 제한된 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구원역사를 품고 있는 꽃임을 성경과 꽃 이름의 어원적 특성을 통해 알아봅니다.
1. 상제에게 드린 제사문
오늘은 중국에서 행하여 지던 상제에게 드린 제사문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 속에서 성경에 나타난 구절을 대비하면 얼마나 정확한 성경구절인지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하늘과 땅이 드리는 제사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공자가 쓴 서경(西經)에 순황제(기원전 2230년경)가 <샹띠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중국의 제사의식에서 드려지는 송축문을 읽어보면 중국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샹띠에게 제사를 드렸는지 짐작이 갑니다. 황제는 황궁우(皇穹宇)에 이르러서는 명상을 시작하고, 옷을 차려입은 가무들은 악단을 따라 주문을 읊기 시작합니다.
“역사하시는 조물주시여, 당신을 경배하옵니다. 당신께서 거하시는 궁창은 어찌 그리 고상하온지요. 당신을 경배하여 이제사를 드리옵니다... 미미하오나 내가 궁중의 일을 행하며 모든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겠사옵니다. 이 낮은 땅에서 당신이 거하시는 천국을 향해 우러러 보옵나니 이 제단으로 임하시옵소서... 오 주여, 이 제물을 받으시옵고 우리로 당신의 영원하신 선하심을 경배하게 하옵소서.”(참조 : 왕상8 :27-30)
기원을 드리고 나서 황제는 추수 감사를 올리고 수소의 번제로 마지막 송축을 올리게 됩니다.
“저희가 거룩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의 보석에 기록하고 경배하였사옵니다. 이제 그것을 당신 앞에서 불에 던지었사옵니다. 귀한 제물로서 비단과 고기를 드리고 기도와 함께 그것들을 불태웠나니 불길을 따라 드높이 올리워 질 것이옵니다.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당신을 우러러 봅니다. 이 땅의 모든 인생들과 모든 만물이 그 크신 이름을 기뻐하옵니다.”
“지극히 오래 전 태초에 공허하고 큰 혼돈이 있었사옵니다. 다섯 행성은 아직 운행되지 않았었고 태양도 달도 빛을 발하지 않았었습니다. 거룩하신 신황(新皇)께서 이곳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주께서 모든 만물을 만드셨사옵니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셨사옵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만물이 지음을 받았사옵니다.”(참조 : 창1:1-2, 9-10, 16, 27-28)
본문은 중국의 '대명회전'(大明會典)이라는 책의 일부분입니다. 고대 중국의 한자기록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명칭은 '하늘의(上) 황제(帝)'란 뜻의 샹띠(上帝)라고 불렀습니다. 국경제사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피조물을 향한 샹띠의 관심과 사랑하시는 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생물들이 당신의 뜻으로 말미암았사옵니다. 샹띠시여, 인간도 만물도 모두가 당신의 지혜로 말미암았습니다.... 오 주시여, 당신만이 이 모든 만물의 참 어버이가 되십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다(사64 :8)”
“주 샹띠가 말씀하시니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과 만물들을 두시고 궁창을 펼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33 :6-9)”
북경에 있는 이 천단(天壇)은 지금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어있습니다.
또한 공자는 <중용>에서 '하늘과 땅에 드리는 제사 의식들을 통해 샹띠를 섬기느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드려진 국경제사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여름철 하지 때는 북쪽 국경에서 땅에 드리는 제사가, 겨울철 동지가 되면 남쪽 국경에서 하늘에 드리는 제사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기원전 2205년 이전인 중국의 <전설시대>, 이른바 황제통치시대 이전의 중국에서는 동쪽 산뚱지방의 태산에서 샹띠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이후 공자 사상과 도교가 등장하였고, 기원전 1세기에 인도로부터 불교가 전래되면서 샹띠에 대한 신앙이 전체적으로 잊혀지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에 관한 자료들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새로이 창조된 지구상에 첫 인류가 시작되는 아름다운 역사들이 한자 속에 고스란히 보전되어 왔던 것이다.
2. 샹띠와 엘 샤다이
이상에서 바벨탑 이후 언어혼란으로 인해 흩어졌던 노아 자손의 그 흔적들을 중국의 '국경제사문'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그 내용이 성경 창세기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통해서 중국인들이 섬기던 샹띠는 바로 한 분이신 성경의 하나님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히브리식 이름 중 하나는 <엘 샤다이>인데 음성학적으로 볼 때, 샹띠와 매우 유사하며, 중국 관동지역에서는 샹띠가 <샹다이>로 발음되고 있어 흡사 일치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현대의 관동어는 고대 중국어의 발음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제사권을 가진 노아의 장자인 셈의 후손은 아마도 중국을 걸쳐 이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정착을 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제시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국 說話에 나타난 聖經이야기
우리 한 민족의 뿌리는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가? 노아홍수와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의 대이동은 시작되었다. 한민족의 뿌리도 그 흩어짐 속에서 중원과 산동반도와 북만주 일대와 한반도 유역의 방대한 지역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의 곳곳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들은 그 뿌리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다. 이중 '단군' 및 '동명'에 관한 내용을 통해 그들의 神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고 성경적으로 어떻게 상통하는지 알아본다.
조선의 천자계(天子系)설화
조선설화의 가장 큰 줄기는 '하늘의 아드님이 인간에 내려와 나라를 다스린다'는 '천자계'(天子系)설화이다. 이 설화가 조선설화의 70-80%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단군신화인데 이는 단군으로부터 시작하는 조선의 최고(最古)또 최저(最著 :가장 두드러짐)한 신화형태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한 단군고기(檀君古記)에 의하면 환(桓)이라는 신계(神界:천국)가 있었고, 그 주신(主神, 天帝)의 아드님 한 분인 환웅(桓雄)이 인간세계 중 훌륭한 산악의 꼭대기, 즉 태백산(백두산의 옛 이름으로 '밝은 곳', '신성한 산'이라는 뜻)에 내려와 신국(神國)을 만든다는 얘기로 시작된다. <삼국사기>에 의거한 이규보의 ‘동명왕 ’의 건국설화도 태자인 해모수가 내려오는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다섯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종자 백여인은 흰고니(白鵠)를 탔는데, 채색구름이 위에 뜨고 음악 소리가 그중에 진동하고, 웅심산(雄心山, 백두산의 다른 이름)이란 산 위에 오랫동안 머뭇거리다가 비로소 세상으로 내려오니, 머리에는 까마귀 깃으로 만든 갓을 쓰고 허리에는 놀라운 광채 나는 칼을 차셨다 ”
환국(桓國)과 천(天)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은 桓國과 天의 개념이다. 고대의 동방인들은 인간세계의 위에 광명의 신령세계가 있어 선신(善神)이 거하는 곳을 환(桓)이라고 했다. 이것은 요즘말로 광명세계를 의미한다. 이 '<환>의 나라'를 한문으로 쓰면 천(天), 즉 '하늘'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군신화의 '환국(桓國)'은 '환한나라', '밝은나라', 곧 하늘나라, 천국(天國), 신국(神國), 영계(靈界)인 것이다. 단군신화에서는 <동방>의 옛말을 음으로 쓰고 동명신화에서는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해 사용한 것으로, 실체는 동일한 천상세계를 가리킨다.
* 환(桓)은 우리말의 '밝다', '환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으며 '桓'은 환하다'할 때의 '환'을 단지 漢字로 표기한 것뿐이고, '韓國'이라 할 때의 '韓'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환국'이 후에 '한국'이 된 것으로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천주(天主)와 태양
이 천상의 광명계(光明界)는 많은 신령이 거주하는데, 이들의 가장 큰 어른으로 세계를 주재(主宰)하시는 최상신(最上神)은 광명의 근본인 태양이라 했다. 그들은 태양을 '하느님' 곧 천주(天主)로 생각했다. 동명왕 건국설화에도 천제자(天帝子)가 세상에 하강하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침에 해가 떠서 하늘에는 놀이 뜨고 눈부신 광선이 높은 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비추는 광경을 그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약성경 시84: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고 말씀하는 것과 더불어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을 광명으로 비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의 마지막 예언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본질을 해로 설명하고 있다(삼하23:4). 그 나라에서는 빛되신 하나님이 비춰주심으로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계22:5, 사60:19).
결국 천제(天帝)가 곧 태양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또한 백곡(白鵠)을 탄 종자는 해 뜰 때의 구름이 뭉게뭉게 뜬다는 것을 형용한 것이요, 조우(鳥羽,까마귀깃)의 관이니 용광(龍光)의 칼이니 한 것은 다 일륜(日輪:해)과 일광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성경말씀을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먼저 어두운 심령 속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요한복음 1장에서 기록하고 있다(요1:4-5, 9). 계시록에는 다시 오실 예수님, 즉 재림하시는 인자의 모습을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표현하고 있다(계1:7). 그리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다'고 말씀한다(계1:16). 구약 시104:2-3의 말씀은 지금까지의 설명을 더욱 선명하게 해준다.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
일반적으로 동양을 의미하는 Orient는 '해가 뜬다' 등의 좋은 의미로 쓰인다. 반면에 서양을 의미하는 Occident는 '해가 진다', '죽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죽음과 파멸을 의미한다. 고대 점술가들도 동양을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다. 이는 일출이 생명과 만물의 시작을 뜻하기 때문이다.
당시 동방인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눈으로 보는 바 몸으로 겪는 바 무한한 광명과 온열(溫熱)과 위력으로써 온 세계를 뒤덮고 만물에 생명을 주시는 구체적 존재요, 경험상 사실인 저 태양을 천지의 주재자로 인정했다. 무서운 위엄과 고마운 사랑으로 항상 인간세상(下界)을 내려다 보시다가, 인간에 악이 쌓이고 화가 득실거림을 보시면, 인간을 구제할 양으로 그 아들 중의 한 분을 내려 보내셔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게 하시는 줄로 믿었던 것이다. 이는 독생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구원자로서 오심과도 동일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요3:16).
동방의 해뜨는 나라
수십 년 전 인도의 유명한 시성 타골은 한국 민족의 앞날을 '동방의 빛'이라는 시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동방, 즉 '동양의 해뜨는 나라'로 여겨진 '조선(朝鮮)'은 성경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성경은 동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먼저, 동방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적 소유와 보증을 나타내는 인치는 역사(계7:2-3)가 일어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넘쳐 나와 갈급한 심령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말씀 운동의 역사가 일어난다(겔47:1-2, 6-12, 슥14:8, 계22:1-2). 또한 이 동방에서 구원자가 일어날 것이며(사41:2, 46:1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역사가 일어남(사24:15)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이 구절들에 나타난 동방의 의미는 종말론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태양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 말세에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을 의미한다'고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마지막 구원의 사명
한(韓) 민족의 역사적인 뿌리를 단군신화와 동명왕 설화의 일부 내용을 통해 하나님을 태양으로 비유하고 있음을 살펴 보았고, 그 내용을 성경과 비교해 보았다. 이를 통해 한 민족의 뿌리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어떤 이는 조선의 영어 표기인 'Chosun'을 chosen("choose:선택하다"의 과거분사형)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아 "선택받은 민족"(Chosen people)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근거 있는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한국은 마지막 구원의 역사를 이뤄낼 민족임에는 틀림없다. 동쪽 끝에 위치한 한국이 마지막 '생명의 말씀'인 '구원의 빛'을 세계 땅 끝까지 비춰야 할 사명이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할 것인가?
아리랑은 아라랏에서 시작된 나그네의 한을 담고 있다
한국민족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한'(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담고 있는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다. 전국에 걸쳐 186종이나 되는 이 민요는 우리 민족의 감춰진 '슬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아리랑은 아라랏산에서 시작된 '이별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아리랑과 아라랏의 어원을 통해 우리 민족의 '나그네의 삶'을 알아본다.
한민족의 존재근거
그 시작점이 언제부터인지 어딘지도 모르는 '아리랑'. 그러나 한민족이 있는 곳엔 언제든지 아리랑이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리랑이 저 깊은 곳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왜 아리랑이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민족의 노래가 되었는가? 김열규씨는 '아리랑 역사여, 겨레여, 소리여'라는 책에서 아리랑 민요를 '한민족의 뿌리를 캐고 한민족의 존재근거'로 제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푸념'과 '넋두리' 곧 '맺힘'과 '풀림'의 소리를 간직한 채 지금까지 이어온 이 민요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별의 슬픔을 노래
한 민족은 늘 '이별'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오곤 했다. 아리랑은 이를 노래했다고 할 수 있다. 김연갑씨는 '아리랑'이라는 저서에서 그 어원의 여러 가지 학설을 말하고 있다. 그 중 '처와 이별을 슬퍼하는 뜻'에서 유래한 아리랑(我離랑)설과 '가정을 떠나는 어려움을 읊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아난리(我難離)설 등이 있다. 그리고 송인성의 '갓 결혼한 신부가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면서 홀로 떨어진 슬픈 운명을 노래한 것'이라는 '아리'(我離)설이 있다. 남사고는 그의 저서 격암유록에서 '이상향으로 가는 마지막 고개'로서의 '아리령'(我離嶺)설을 기록하고 있다.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은 '나의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의미로 아리랑을 말한다. 이러한 내용들을 정리해 볼 때, 아리랑은 고개를 넘고 넘어 어쩔 수 없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별의 시점을 창세기에 언급된 아라랏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별이 시작된 곳
5,165 미터의 아라랏산은 홍수 후 노아의 방주가 처음에 머물렀던 곳이다. 아라랏산이 언급된 곳은 창세기 8장 4절이다. '7월 곧 그 달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는 기록이다. 지금의 터어키의 동북방에 있는 한 지역으로 추측되는 곳이다. 그 외에 성경에 기록된 아라랏은 앗수르왕 산헤립을 두 아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례셀이 칼로 쳐 죽이고 도망한 곳으로 나와 있다(왕하 19:37, 사 37:38, 렘 51:27). 이곳은 서아시아의 아라크세스강 중류의 분지에 전개되는 아르메니아의 한지방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라랏산에서부터 인류의 또 다른 시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곧 인류의 큰 분단이 이루어졌던 곳이 바로 아라랏산이다.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이 이 아라랏의 고개를 넘고 넘어 전세계에 퍼져 나간 것이다. 이 과정에는 창세기 11장에 언급된 '바벨탑의 사건'이 있었다. 이로 인해 여호와께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던 것이 작별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창11:9).
어쨌든 아리랑은 인류의 고향인 이 아라랏 산을 중심으로 인류 최대의 작별을 노래한 것이다. 셈의 후손인 한민족은 바로 이런 이별의 한을 품고서 계속 동방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창 11:2). 다시 말해 한민족은 한반도에 정착하기까지 이별의 한을 품은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방랑을 의미하는 아라
아리랑과 아라랏의 관계는 그 의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언급된 '아라랏'의 의미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라랏의 어근인 히브리어 '아라'는 '가다', '여행하다', '걷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명사형인 '오래하'는 '여행자'(삿19:17, 삼하12:4, 렘14:8), '나그네'(렘9:2)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배회', '유랑'의 뜻인 '아라'라는 이름을 가진 아셀자손 예델의 아들과 울라의 아들도 기록하고 있다(대상7:38-39, 스2:5, 느7:10).
아라랏은 방황하는'나그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라랏을 중심으로 나그네, 곧 작별과 이별의 슬픔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리랑은 세상에서의 성도의 삶이 나그네의 삶이라는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2권)라는 책에서 김성일 장로가 인용했듯이, 나그네의 삶이 매우 '아리고 쓰리다'는 노래가 바로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일 것이다. 언젠가는 본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나그네의 삶이 바로 아리랑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히1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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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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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我離랑)설, 아리(我離)설
아난리(我難離)설 : 사랑하는 처 또는 갓 결혼한 신부와의 어려운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것
아리령(嶺)설 : 이상향으로 가는 마지막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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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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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형 '아라' : 가다, 여행하다, 걷다
명사형 '오래하' : 여행자(삿19:17, 삼하12:4, 렘14:8), 나그네(렘9:2)
'아라'(배회, 유랑의 뜻)라는 이름의 사람 : 아셀자손(대상7:38-39, 스2:5, 느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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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는 구원역사의 향기를 뿜어낸다
한국이 원산지로 알았던 무궁화.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인 무궁화는 예수를 지칭하는 성경에서 비롯된 말이다. 더불어 무궁화는 '시리아에서 온 꽃'(Hibiscus Syriacus)이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다. 이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지역이다. 그렇다면 시리아에서 온 꽃인 무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무궁화가 결코 한국에만 제한된 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구원역사를 품고 있는 꽃임을 성경과 꽃 이름의 어원적 특성을 통해 알아본다.
일신지미(日新之美)
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은 무궁화가 핀 적성산에서 신시를 열었다 한다. 고대로부터 동이족의 꽃으로 인식되어져, 신라시대 화랑의 머리에 장식하는 꽃 그리고 조선시대 때는 장원급제자에게 내리는 어사화, 그리고 오늘날 우리나라 대통령의 문장 가운데 있는 꽃도 무궁화요, 우리나라의 국화(國花)도 바로 무궁화이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일신지미'(日新之美)라는 말에 딱 맞는 꽃이다. 꽃송이 하나 하나는 저녁에는 시들지만, 약 100일 동안(7-10월) 매일 새벽 신선한 새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이는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지리서에 기록된 글에서도 동일하게 볼 수 있다.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더라 ”(君子之國有薰華草 朝生暮死). 중국의 고전인 고금기(古今記)에도 '군자의 나라엔 지방천리에 무궁화가 많이 피었더라 '는 기록이 있다. 또 신라의 최치원 선생이 중국에 보내는 國書에서 우리나라를 근화지향(槿花之鄕)이라 하여 무궁화의 나라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런 기록들은 1,400여 년 전인 4세기 중엽에도 우리나라 가는 곳곳마다 무궁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그리고 자생력이 강해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쉽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10년 이후 36년간의 일제치하에선 우리민족의 상징적 꽃이라는 이유 때문에, 전국적으로 뽑아 없애버려 큰 수난을 겪기도 했다.
우리 민족과 수난을 같이 했던 이 무궁화의 용도는 주로 정원수와 나무울타리로 사용된 것 외에 매우 다양하다. 나무껍질의 섬유는 고급제지원료로, 꽃봉오리와 나무껍질, 그리고 뿌리는 위장병 및 피부병 치료제로 옛부터 사용되었다. 또 꽃봉오리는 요리에, 꽃은 꽃차의 재료로 애용되기도 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이로움만을 남기고 가는 꽃이다.
새 아침 이라는 꽃
이처럼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내어주는 무궁화는 새벽 아침에 평화를 알리는 꽃이기도 하다. 온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태양빛처럼 사랑과 구원의 평화를 알리는 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태양, 빛, 영원한 사랑, 평화와 관계된 말이 많은 무궁화의 꽃말에서 엿볼 수 있다(도표 참조). 그 중 '새아침', '신태양', '새빛', '평화', '늘사랑', '한누리'등은 대표적인 꽃말이라 할 수 있다. 朝鮮이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ibiscus Syriacus)라는 무궁화의 '학명'(學名)이다. 이것은 '시리아에서 온 꽃'이란 뜻으로, 그 근원지를 밝히는 말이다. 시리아는 알렉산더 사후(死後)4명의 장군 중 안디오쿠스가 다스린 지역으로 이스라엘을 포함한 곳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바벨론과 니느웨성 등 고대 앗시리아 지역에는 현재 무궁화 모양으로 장식된 고대 건축물들과 성벽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무궁화의 영어이름(英名)이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는 것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샤론'이라는 곳이 이스라엘에 속한 지역이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shrub Althea'라는 학명도 있는데, 여기서 '알테아'(Althea)는 그리스어로 '치료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샤론의 장미
앞에서 언급한 샤론(Sharon)은 이스라엘의 욥바에서 갈멜산까지 이르는 길이 약 90km, 너비 약 18km의 해안평야지대이다. 이 곳은 살림벌채로 인해 대규모적인 목초지가 있을 정도로 비옥하고 경관이 좋은 곳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성경의 속담으로 자주 언급된 장소다(대상27:29, 아2:1, 사35:2). 오늘날 샤론은 대대적인 관계시설을 갖춘 채 감귤류 숲과 다른 상업적인 농장을 위해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는 비옥한 땅이다. 이곳은 옛날에 아름다운 야생화로 덮여 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중 대표적으로 자생하는 꽃이 수선화인 것이다. 성경에는 백합화로 대부분 기록돼 있고, 대부분 팔레스틴 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서식하며 자주색 또는 흰색 꽃을 피우는 아네모네를 가리키기도 한다.
성경에서 일반적인 '샤론'은 원래 넓은 평야와 관계가 있는 빽빽한 초원을 말한다. 샤론이 '평탄한', '곧은', '옳은', '의로운'이라는 뜻의 '야사르'에서 파생된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샤론을 여호와의 영광으로 새롭게 변화된 인간의 상태, 곧 구원과 영원무궁한 평화의 안식처로 기록하기도 한다(사35:2, 사65:10).
구원의 꽃
성경에서 샤론의 장미로 알려진 '샤론의 수선화'(KJB: the rose of sharon, NIV: a rose of sharon)는 모습과 색깔과 향기에 있어서 꽃 중의 꽃, 여왕이라 할 수 있다. 열매는 중요 식품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며 의류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평범한 꽃이다. 어디에서나 자라기에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고귀함이나 화사한 아름다움은 갖추지 못한 흔한 들꽃이다. 예수의 고난을 예언한 이사야 53장 2절에서 기록한 것처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꽃 '이다. 아가서 2장 1절은 '사론의 수선화'를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으로 기록하고 있다. 영국의 대설교가인 스펄전(C.H.Spurgeon)은 아가서 2장 1절을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의 예표'로 설명하고 있다. 곧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장차 이 땅에 오실 예수'(빌2:5-6)로 말하고 있다.
결국 이 무궁화는 시리아인 이스라엘에서 시작한 인류에 대한 사랑과 구원을 말하는 꽃이다. 무명 시인이었던 아이다 가이리(L.A. Guirey)여사는 '샤론의 꽃 예수'(찬89장)이라는 시로 이것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궁화가 '샤론의 장미'라고 지금까지 불리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무궁화의 이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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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종류 : 꽃이름
홑꽃 : 새아침, 신태양, 배달, 영광, 블루버드, 옥토끼, 님보라, 일편단심, 새빛, 옥선, 화랑
반겹꽃 : 사임당, 아사녀, 산처녀, 아랑, 세레나데, 꽃뫼, 한누리, 순정
겹꽃 : 루시(Lucy), 폼폰루즈, 평화, 새한, 눈보라, 늘사랑, 설단심(雪丹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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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룹의 흔적이다
알타이 어군에 속하는 셈계의 민족들은 '새'를 좋아했다. 그래서 알타이계의 신화들은 하나님의 협조자로서의 '새'에 관한 얘기들을 갖고 있다. 시베리아를 건너와 만주에 정책했던 동방족, 곧 한국의 선조들도 봉황새로 국가의 상징을 삼았다. '새의 나라'라고 불리웠던 한국의 뿌리를 '그룹'과 관련하여 역사와 성경에서 찾는다.
하나님의 협조자로서의 새
알타이 계의 민족들은 하나님의 협조자를 '새'로 표현한다고 창조사학회 부회장인 김성일 장로는 말한다(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2권). 이 계열의 신화들은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조물주'와 그를 따라 다니는 협조자를 '새', '오리', '기러기'등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조물주'를 성경 창세기 1장 2절은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상징인 노아의 방주 역시 물 위를 떠 다녔고, 노아는 비둘기와 까마귀를 통해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는 역사도 볼 수 있다(창6-8장).
'운행한다'는 말은 원어상으로 '새가 날개를 펴서 그 안으로 새끼를 감싸 안는다'는 '보호'와도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구약 신명기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홀로 애굽에서 구원하여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가나안까지 이끌어내신 모습'을 이처럼 표현하고 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엎는 것 같이”(신32:11-12). 신약에서는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모음 같이'(마23:37)라고 표현하고 있다.
새의 설화를 가진 민족
이렇듯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 그리고 보호를 나타내는 새는 고대로부터 생명, 신성, 귀인과 관련하여 그 의미가 남아있다. 그 예로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 나타난 '독수리'는 영어 알파벳 'A'에 해당하는 소리값을 가진 단어다. 이것은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인 크리스티앙 자크(Christian Jacq)에 의하면 '죽음을 생명의 양식으로 바꾸어 새끼들에게 실어 나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 미이라의 그림에는 '바'라는 '영혼의 새'가 그려져 있다. 이 새가 언젠가는 죽은 육체에 생명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에서 발굴되는 시신에도 그 머리가 대부분 새의 깃털로 장식했다고 한다. 또 잘 알고 있듯이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새의 깃털로 머리를 장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한민족의 설화에서도 새를 거룩히 여기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귀인들이 알에서 태어난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다. 박혁거세, 김수로왕, 김알지, 고주몽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신라의 금관 역시 새의 날개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시베리아를 건너와 만주에 정착했던 동방족 역시 처음에는 봉황새로 국가의 상징을 삼았다고 한다.
성천자와 평화를 상징하는 새
이 봉황(鳳凰)새는 고대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로 수컷은 봉, 암컷은 황이라 불렀다. 매우 드물게 출현하여 커다란 사건의 징후가 되거나 군주의 위대함을 증명했다고 전해진다. 곧 성인(聖人)과 함께 세상에 나타나는 새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이 새는 5색의 깃털을 지닌 매우 아름다운 새로, 5음(音)의 묘음(妙音)을 내어 의미 있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뭇 새의 왕으로서 귀하게 여기는 환상적인 영조(靈鳥)이다. 그래서 천자(天子)의 궁문(宮門)에 봉황을 장식해 봉궐(鳳闕),봉문(鳳門)이라 했다. 천자의 수레에 장식해 봉차(鳳車), 봉련(鳳輦), 봉여(鳳輿)라고도 했고, 찬자의 도읍인 장안(長安)을 봉성(鳳城)이라고도 칭했다. 이렇게 봉황은 성천자(聖天子)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새로 인식되고 있다.
더불어 경사스러운 일에 봉자(鳳字)를 붙이기도 했다. 또한 '평화로운 세상'을 상징하여 '봉황내의'(鳳凰來儀)라는 말을 사용키도 했다. 주서(周書)에 의하면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오는 봉황이 세상에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유(韓愈)의 송하견서(送何堅序)에서도 '내가 듣기로 새 중에 봉이라는 것이 있는데 항상 도(道)가 있는 나라에 출현한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성군의 덕치를 상징하는 의미로 가무에 이용되었다.
무궁화를 감싸고 있는 두 봉황
지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봉황새 상징의 대표적인 예는 대통령의 문장이다. 이 문장에는 두 마리의 봉황새가 그려져 있고, 그 가운데는 '무궁화'가 있다. 무궁화는 영어명이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의 문양과 비슷한 것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그룹이다. 성경은 이 그룹(케루빔 : Cherubim)에 대하여 천상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있으며, 창세기 3장에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다. 또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로 상징되는 예수, 곧 생명의 말씀을 지키는 임무도 맡고 있다(창3:24). 그리고 대부분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수호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4.5m의 날개를 소유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는 여호와'로 묘사된다. (삼상4:4, 삼하6:2, 대상13:6, 시99:1, 사37:16, 겔9:3, 겔10:4, 18)
결국 시베리아를 걸쳐 만주와 한반도까지 이동해 온 셈의 후손인 동방족은 이 그룹의 기억을 통해 새와의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봉황이라는 새로 상징화되어 우리에게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흔적으로 남은 것이다.
1. 한국의 무궁화
예로부터 상당히 광범한 지역에 관상수로 재배되어 온 무궁화는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었으며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되면서 은연중 나라꽃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무궁화가 나라꽃임을 알고 있으나, 그 근거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 문헌에는 무궁화가 우리의 꽃임을 명시하고 있으나 국화로 제정된 정확한 근거에 관해서는 서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궁화가 우리 민족과 연관되어 나타난 것은 역사적으로 그 연윈이 고조선까지 거슬러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고시대를 재조명하고 있는 <단기고사>에는 무궁화를 근수라 하고 있으며, <환단고기>에는 '환화' '천지화'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의 <규원사화>에 '훈화'로 표현하여 단군시대에 무궁화가 자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고대 중국의 지리서인 <산해경>에는 물론 <고금주> 등에도 우리 한반도는 무궁화가 많은 나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혜공왕 때와 고려 예종 때에는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서 우리나라를 '근화향'이라 표현할 만큼 무궁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 이홍직의 <국어대사전>에 "무궁화는 구한말부터 우리나라 국화로 되었는데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옛부터 '근역' 또는 '무궁화 삼천리'라 한 것으로 보아 선인들도 무궁화를 몹시 사랑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라고되어 있다.
1928년 발행된 <<별건곤>> 3권 2호에 게재된 <조선산 화초와 동물>편에는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무궁화는 꽃으로 개화기가 무궁하다 아니할 수 없을 만치 참으로 장구하며 그 꽃의 형상이 엄연하고 미려하고 정조있고 결백함은 실로 민족성을 그리여 내었다. 한국을 막론하고 각 민족을 대표하는 꽃이 있지만 우리를 대표하는 무궁화 같이 형으로나 질로나 적합한 것은 볼 수 없다"고 실려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이 많이 심고 가꾸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가 쓴 <풍류한국>에 보면 프랑스. 영국. 중국 등 세계의 모든 나라꽃이 그들의 황실이나 귀족의 상징이 전체 국민의 꽃으로 만들어졌으나 우리의 무궁화만은 유일하게도 황실의 이화가 아닌 백성의 꽃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졌고 무궁화는 평민의 꽃이며 민주전통의 부분이라 쓰고 있다.
우리 민족과 무궁화를 결부시켜서 이야기한 것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고, 1896년 독립협회가 추진한 독립문 주춧돌을 놓는 의식 때 부른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내용이 담겨질 만큼 은연중 무궁화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무궁화가 우리 국민과 애환을 같이하며 겨레의 얼로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확고히 부각되었고, 고통 속의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역사와 더불어 자연스레 겨레의 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첫번째가 바로 창조론이냐? 진화설이냐? 하는 것입니다. 찰스 다윈처럼 무신론을 전제로 하여 펼치는 진화설적인 논리와 하나님과 성경을 중심으로한 창조론적인 논리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 관점과 논리가 서로 상반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인류의 역사는 주로 인본주의에 입각한 진화론적 사관으로 기술되어 있기때문에 진화론 그 자체가 많은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오직 진화론적 사관만을 배우도록 강요되고 있는 셈입니다.
진화설적인 측면에서 각기 다른 곳에서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 진화된 인간들이 서로 비슷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문화병행설"이 대다수 학자들의 지배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일부 학자들과 우리와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많은 학자들과 서양의 일부 학자들은 문화 병행설 보다는 창조론 적인 측면에서의 "문화 이동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화 이동설을 중심으로 우리의 조상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그리고, 슈메르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1번째 답변
슈메르 멸망 시기와 고조선 건국 시기와 비슷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