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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 우보만리 한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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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집 모음 스크랩 금산사 金山寺(3) - 대적광전/대장전
우보만리 추천 0 조회 87 12.09.03 13: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금산사 金山寺(3) - 대적광전/대장전

1. 대적광전(大寂光殿)

가람의 중심이며 미륵전의 서쪽에 위치한 대적광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건물이었으나 1986년에 화재로 전소되었다.  1994년에 본래대로 복원되었으나 보물에서는 해제되었다.

 대적광전이 지금의 웅장한 규모를 갖게 된 것은 정유재란 때 절이 전소된 후 1635년 수문대사의 중창에 의해서이다. 이때 별도로 모셨던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과 여섯 보살을 함께 모심으로써 여러 전각들을 대적광전 하나로 통합하여 창건한 것이다. 이후 1776년(영조 52)에 중수된 바 있고, 1926년과 1938년 미륵전 보수 때 함께 수리되었다.

화엄도량이 갖추고 있는 대웅보전과 대광명전, 극락전, 약사전 등의 여러 전각들이 한군데 합쳐진 것과 같다.

 

이 건물은 다른 사찰의 법당과는 달리 정면이 측면보다  상당히 길며 기둥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건물내부는 낮고 가득찬 느낌을 주고, 건물외부의 정면관도 낮고 옆으로 길게 전개되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앞면의 7칸에는 모두 빗살 무늬로 장식된 두 짝 분합문을 달았는데 중앙칸만 출입문이고 나머지는 밑부분에 머름을 설치한 광창(光窓)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좌우 제2협칸에 머름까지 오는 목재계단을 임시로 설치해서 신도들의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옆면은 4칸으로 제일 앞쪽 퇴칸에 한 짝 출입문을 달았다.

공포는 내외3출목이며 다포계 공포구성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다. 공간포(空間包)도 넓은 주간(柱間)에 1개씩만 두어 특수한 구조로 보이는데 중앙칸만은 공간포를 2개 두었다. 건물 내부에는 바닥에 마루를 깔고 뒷면에 6개의 고주를 세운 뒤 그 기둥 사이를 후불벽(後佛壁)으로 만들었다.

 

 보제루(普濟樓)에서 본 대적광전.

 

 정면 7칸 측면 4칸.

 

 6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뒤로 대적광전이 보인다.

 이 석탑은 원래 금산사의 봉천원 구역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인데 기단의 일부와 탑신부 대부분의 몸돌이 없어 졌다.

 

 노주(露柱,보물 제22호)에서 바라본 대적광전.
노주란 ‘노반지주(露盤之柱)’의 줄임말로서 '드러낸 기둥'이란 뜻인데 어떠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 지 불확실하다.

 

 우측면과 배면.

 

 좌측면과 배면

 

 방등계단에서 본 대적광전의 우측면.

 

 합각.

 

 처마 아래에 걸린 「대적광전」 편액은 석전(石田) 황욱(黃旭, 1898~1993)이 1991년 쓴 글씨다.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난 황욱은 붓을 손가락으로 잡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잡고 붓 맨 윗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꽉 눌러쓰는 이른바 악필법(握筆法)을 창안하였는데, 이 편액의 글씨 역시 이러한 악필법으로 황욱의 글씨로는 이 외에 구례 화엄사(華嚴寺)의 일주문에 걸린 「대화엄사(大華嚴寺)」와 「해동선종대가람(海東禪宗大伽藍)」 편액 등이 있다.

 

 정면의 창호와 출입구.

 

 

 

 배면의 창호. 내부의 후불벽이 보인다.

 

 귀공포에는 용두가 초각되어 있다.

 

 

 

 

 

 

 

 3출목.

 

 우측면의 공포.

 

 배면의 공포. 첨차가 사절형이다.

 

 

 

 석련대(보물 제23호). '석조연화대좌'의 줄임말로 돌로 깎은 연꽃잎 장식의 불상 대좌라는 의미.

 대적광전의 석축 아래 오른쪽에 있다.

 

2. 대장전(大藏殿)

대적광전의 서쪽 끝에 동향으로 자리잡아 미륵전을 마주보고 있는 대장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 전각은 보물 제827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산사 사적기"에 따르면, 원래 대장전은 진표율사(眞表律師)가 미륵전을 짓고, 이를 장엄하는 정중목탑(庭中木塔)으로서 팔각원당형으로 조성했던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의 평면이 거의 정방형에 가깝고 옛 목탑의 상륜 부재로 쓰였던 복발(覆鉢)과 원추형 쇠뚜껑, 보주(寶柱)등으로 보이는 잔재가 지붕의 용마루 위에 얹혀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때의 목탑 양식으로 추측하고 있다.1922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건물은 잘 다듬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얹고 그 위에 기둥을 올렸다. 정면 중앙의 어칸에는 2분합의 문을 달고, 아랫부분에는 안상을 조각한 판벽을 댔다. 내부에는 목조로 조성한 석가여래좌상을 본존으로 좌우에 소조로 조성한 가섭과 아난을 협시로 봉안하였으며, 특히 불상이 안치된 불단은 4단으로 구획하고 정교한 솜씨로 투각하여 수미단의 장엄을 나타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

 

 

 

  대장전 앞에 석등(보물 제828호)이 서있다.

 

 

 

 

 

목조로 조성한 석가여래좌상을 본존으로 좌우에 소조로 조성한 가섭과 아난이 협시되어 있다.

불상이 안치된 불단은 4단으로 구획하고 정교한 솜씨로 투각하여 수미단의 장엄을 나타내고 있다.  

  제공에 연화를 초각하여 장식하였다.

 

 우물반자.

 

 정면의 공포.

 

 측면의 공포.

 

 배면의 공포.

 

 이출목.

 

 

 

 초석과 원주

 

 대장전의 꽃살문.

 

 문수동자 벽화와 중머름. 중머름은 여섯우물인데 소란두른 머름청판을 끼우고 중앙에 투각한 풍혈을 내고 안쪽을 널판지로 막았다(18세기 기법).  

 

 지붕의 용마루 위에 얹혀 있는 목탑의 상륜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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