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판사판>이란 용어가 어떻게 해서 생겼을까.
우리는 보통 '이판사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끝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말다툼을 하든지
뜻대로 안되면 하는 말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그래봐야
꼬막만한 주먹에 불과하지만서도) "좋다. 이판사판이다.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라고 한다. 사실은 뾰족한 대안이 없을 때
무의식적으로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으로 이판사판 볼 것 없다고 올인
하고 있다. 이렇듯이 어디를 가건 이판사판이라는 말은 자주 사용이
된다. 그런데 이판사판이라는 용어는 어디서 나왔을까.
고려가 망하고 조선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조선이 들어섬과 동시에 억불정책이 취해졌다.
이것은 고려 말에 불교의 폐해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조선의 건국에 신흥 유학자 사대부 세력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불교는 정권의 교체와 함께 하루아침에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불교를 믿는 불자들도 제각기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한 무리는 산으로 들어갔다. 속세를 피해 은둔하면서 참선과
독경으로 불법을 이으려고 했다. 이들이 이른바 이판승(理判僧)이다.
그에 반해 다른 한 쪽은 그냥 남았다.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사찰을
지켜냈다. 이들이 사판승(事判僧}이다. 그러니깐 공부에 전념하는
승려를 '이판', 살림을 맡아보는 승려를 '사판' 이라고 했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는 '흑백논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이판사판의 진정한 뜻이다.
이판을 하든 사판을 하든 결국 수행의 길은 하나라는 것이다.
사실은 우리 불교가 이만큼이나 성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두 개의 논리 '이판'과 '사판'이다.
그런데도 이 '이판사판'이라는 용어가 잘못 쓰이고 있으니 ....
아무튼 이 어려운 시기에 이판사판 싸워서
좋은 결과를 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