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둘레산길 삼일절 기념 계룡산 용산구곡(龍山九曲) 탐방
2022년 03월 01일, 첫째주 수요일.(흐림, 기온 3˚~ 9˚)
삼일절 기념 계룡산 용산구곡(龍山九曲) 탐방
산행출발 : 공주행 300번 공주시내버스 온천1리 하차
산행도착 : 동학사 버스승강장(107번 종점)
코스 : (온천1리 하차) - 희망교 - 하신리 - 상신리 - 상신계곡(용산구곡) -
큰배재 - 천장골 - 동학사 버스승강장(107번 종점).
거리 및 시간 : 7.27km / 6시간(해설 2시간 포함)
해설 : 느낌표님
탐방 지원 : 돌까마귀 / 신샘
진행 : 마중물(010 5425 8477)
사진 청마(靑馬)
용산구곡(龍山九曲) / 권중면(權重冕), 1856~1936
조선시대 문신, 호는 취은(翠陰), 1907년 일제의 강압에 의한 한일신협약(정미칠조약)을 계기로 능주군수(현, 진도군수) 관직을 버린 후 1916년 계룡산 상신리 자락에 자리를 잡고 은거하며 용산구곡(龍山九曲)을 설정 "용"을 주요 모티프 및 테마로 설정 하고 상신리 계곡을 9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제1곡에서부터 제9곡까지 용이 태어나서부터 승천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펼치며 자연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국권회복을 염원하는 마음을 바위마다 새겨 넣었다.
취음 선생이 45세에 득남해 얻은 아드님이 봉우(鳳宇) 권태훈 선생(1900~1994)이다. 봉우 선생은 우리나라 단학(丹學)의 대가로, 민족운동가이자 단군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1984년에 선풍을 일으켰던 소설 '단(丹)'의 실제 주인공이다. 그 제자들이 '봉우사상연구소'를 설립해 전국에서 활동중이다.
제1곡 심용문(尋龍門) : 용을 찾아가는 문 ↑
취음동천(翠陰洞天) ↑↓
상신리 입석
(사)대전문화유산울림 대표 안여종 님께서 장승에 대해하여 설명을 하고... ↑
코로나로 그동안 탐방을 못하다가 4년여만에 찾아가는 발걸음이다. 용산구곡은 한 사람의 바람을 표현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후대에 그 의미를 되새기도록 전해줘야 할 역사의 거울이다. 하여 이번 탐방에서도 그 의미를 또한번 되새겨 주시길 소망한다.
용산구곡은 구곡의 설정 주제를 용으로 삼은 점이 특징이다. 용이 숨어있다가 승천할 때까지 이야기 전개를 통해 국권을 강탈당한 조선인의 국권회복 의지와 염원을 자연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이루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계룡산 상신계곡에 은거해 수도하던 용이 비로소 때를 만나 여의주를 물고 승천함을 조국이 독립하고 번영하는 것으로 상징화시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용산구곡(龍山九曲)
용산구곡은 충남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계룡산 상신계곡(설희계곡 큰골)에서 금잔디고개와 남매탑 갈림길로 향하는 계곡을 따라 설정 각각의 골짜기마다 다양한 이름과 시구가 암벽에 각인 되어있으며, 제작된 시기는 임신년 팔월(1932년 가을)이다.(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낼 영재들이 많이 나와 나라와 민족이 강성해질 것을 갈구한 기원 메세지이다.)
제1곡 심용문(尋龍門) : 용을 찾아가는 문
제2곡 은룡담(隱龍潭) : 용이 승천할때를 기다리고 있는 곳
제3곡 와룡강(臥龍剛) : 용이 엎드려 있는 바위(용이 수련)
제4곡 유룡대(遊龍臺) : 용이 헤엄치며 노는 물
제5곡 황룡암(黃龍岩) : 용이 공부가 무르익어서 여의주를 얻었다. (중심인 5곡을 황룡 으로 설정 대지(大地)중심성을 상징화)
제6곡 현룡소(見龍沼) : 용이 모습을 나타내는 늪(용이 공부가 일취월장하여 세상의 이치를 보는 능력)
제7곡 운룡택(雲龍澤) : 용이 구름과 함께 하늘로 오를 준비를 하는 못
제8곡 비룡추(飛龍湫) : 용이 하늘로 날아간 못(승천)
제9곡 신룡연(神龍淵) : 용이 하늘로 올라가 신이된 못
제2곡 은룡담(隱龍潭) : 용이 승천할때를 기다리고 있는 곳 ↑
제3곡 와룡강(臥龍剛) : 용이 엎드려 있는 바위(용이 수련) ↑
제4곡 유룡대(遊龍臺) : 용이 헤엄치며 노는 물 ↑
제5곡 황룡암(黃龍岩) : 용이 공부가 무르익어서 여의주를 얻었다. (중심인 5곡을 황룡 으로 설정 대지(大地)중심성을 상징화) ↑
용을 찾아
'1곡 심룡문(尋龍門)'을 열고 들어가니,
용은 '2곡 은룡담(隱龍潭)'에서 조용히 숨어 때를 기다리고 있다.
'3곡 와룡강(臥龍岡)'에 올라와 수련하고,
'4곡 유룡대(游龍坮)'에서 헤엄치며 논다.
용산구곡 중심은
'5곡 황룡암(黃龍岩)'이다. 수련이 절정에 달해 여의주를 얻은 곳이다.
넓은 바위에 '태극암(太極岩)'과 '궁산을수(弓山乙水)' 등 여러 가지 글씨가 있다.
'취음 권중면 임신팔월(翠陰 權重冕 壬申八月)'이라는 글씨도 있다.
임신년(1932년) 8월에 취음 선생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곡 현룡소(見龍沼)'에서 용은 일취월장하여 세상 이치를 꿰뚫는 능력을 갖게 된다.
'7곡 운룡택(雲龍澤)'에서 구름을 만나 조화를 부리고,
'8곡 비룡추(飛龍湫)'에서드디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고 마지막 '9곡 신룡연(神龍淵)'에서 용은 신이 된다.
승천하는 용은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인재를 상징했다.
그들이 조용히 숨어 준비하다가 때가 되면 멋지게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빌었다.
민족 번영을 가져와 국권을 되찾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안타깝게도 취음 선생은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제6곡 현룡소(見龍沼) : 용이 모습을 나타내는 늪(용이 공부가 일취월장하여 세상의 이치를 보는 능력) ↑
제7곡 운룡택(雲龍澤) : 용이 구름과 함께 하늘로 오를 준비를 하는 못 ↑
제8곡 비룡추(飛龍湫) : 용이 하늘로 날아간 못(승천) ↑
제9곡 신룡연(神龍淵) : 용이 하늘로 올라가 신이된 못 ↑
복수초(福壽草)
복(福)과 장수(長壽)를, 또는 부유와 행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산행후
현충원역옆 하동만두샤브에서 뒤풀이를 한다.
뒤풀이후
구암역까지 걸어간다.
용산구곡이 우리들한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계룡산자락 한 능선 넘어 갑사계곡에 '갑사구곡'이 자리하고 있기때문이다. 갑사구곡을 남긴 이가 취음 선생과 동시대에 살았던, 대표적 친일파의 한 사람인 간옹 윤덕영(1873~1940)이다. 그는 순종비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로, 1910년 조선이 국권강탈을 당할때 순종에게 옥새날인을 강요했던 인물이다. 그는 그 공로로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고 또한 적지않은 포상금을 받아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여생을 보냈다. 윤덕영은 갑사계곡에 '간성장(艮成莊)'이란 별장을 지어놓고 유유자적하며 말년을 보냈다. 그리고 '갑사구곡'을 남겼다.
구한말 슬픈 이야기다. 1910년 8월 22일 창덕궁 흥복헌에서 대한제국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일본 앞잡이들이 미리 작성한 위임장을 순종 황제에게 내밀었다. 주권을 일본에 넘길 예정이니 알아서 처리하라는 거짓 내용이었다. 16세인 순정효황후가 병풍 뒤에서 엿듣고 있었다. 위임장에 도장 찍는 것을 막으려고 치마 속에 옥새를 숨겼다.
그 옥새를 강제로 빼앗은 사람이 있다. 황후 큰아버지 윤덕영(尹德榮)이다. 말년에 그는 갑사계곡에 있는 간성장이라는 별장에 머무르곤 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경치 좋은 아홉 군데를 설정했다. 바로 갑사구곡(甲寺九曲)이다.
용이 놀고 있는
'1곡 용유소(龍游沼)'를 지나면, 수정봉과 연천봉에서 흐르기 시작한두 골짜기의 물이 하나로 모이는
'2곡 이일천(二一川)'이 있다. 흰 용이 꿈틀대는
'3곡 백룡강(白龍岡)'과, 배를 띄워 멋스럽게 노는
'4곡 달문택(達門澤)'이 이어진다.
갑사구곡 중심은
'5곡 금계암(金鷄嵒)'이다. 계룡산이 금계포란(金鷄抱卵)의 명당임을 알려 주는 곳이다. 이곳에 공주 갑부가 지어 바친 간성장이 있다. 광복 뒤에는 공주 출신 국회의원 별장과 전통 찻집과 갑사 요사채로 쓰이다가 지금은 비어 있다.
잔잔한 물속에서 밝은 달이 뜨는 '6곡 명월담(明月潭)',
계룡산이 열릴 때 닭이 홰를 치며 울었다는 '7곡 계명암(鷄鳴嵒)',
용문폭포가 있는 '8곡 용문폭(龍門瀑)'이 이어진다. 골짜기를 따라 계속 오르다 물소리가 끊어질 즈음에 신흥암이 보인다.
수정봉을 바라보는 곳에 있는 암자다. 뒤쪽으로 올라가면 바위에 큼지막하게
'9곡 수정봉(水晶峯)'이라고 새겨져 있다.
윤덕영은 한일 병탄(倂呑)에 앞장선 대가로 자작 벼슬자리와 큰돈을 받았다. 갑사구곡을 즐기며 부러움 없는 노년을 보냈다.
운 좋게도 그는 조국 광복 전에 세상을 떠났다.
구곡을 만든 그들 후손은 어떻게 되었을까? 권중면 아들은 소설 '단'의 주인공으로, 단학수련법을 세상에 알린 봉우 권태훈이다. 상신리에 봉우사상연구소가 있다. 윤덕영 증손들은 국가를 상대로 땅 찾기 소송을 낸 바 있다.
세월이 흘러도 바위에 새긴 글자는 그대로 남아, 구곡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연과 어우러진 풍류를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고, 한편으로는 슬프다. 한쪽은 나라를 걱정하며 조용히 보냈고, 다른 쪽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흥청망청 보냈다. 지금은 그들이 남긴 발자취가 각각 존경과 비난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용산구곡과 갑사구곡의 유래가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권중면은 1932년에 하신천(下莘川) 상류의 상신리 상신계곡에서 용산구곡(龍山九曲: 1심용문尋龍門, 2은룡담隱龍潭, 3와룡강臥龍岡, 4유룡대游龍坮, 5황룡암黃龍岩, 6현룡소見龍沼, 7운룡택雲龍澤, 8비룡추飛龍湫, 9신룡연神龍淵)을 각석하였습니다.
윤덕영은 1927년에 하대천(下大川) 상류의 중장리 갑사계곡에서 갑사구곡(甲寺九曲: 1용유소龍游沼, 2이일천二一川, 3백룡강白龍岡, 4달문택達門澤, 5금계암金鷄嵒, 6명월담明月潭, 7계명암鷄鳴嵒, 8용문폭龍門瀑, 9수정봉水晶峰)을 각석하였습니다.
보시느라 수고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