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계서원 (創溪書院)
★자연. 풍경. 여행.멋진사진
2016. 8. 18. 11:00
[출처] 창계서원 (創溪書院)|작성자 문정 좋은인연
창계서원 (創溪書院)
소신과 관용의 리더십을 갖춘 명재상
황희(黃喜, 1363~1452)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한 서원인 창계서원,
창계서원의 정문인 경앙문(景仰門)입니다.
"조선 숙종 21년(1695)에 세운 창계서원은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55년에 다시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 상현재가 있는데,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서원 안에는 황희 정승을 중심으로 황수신·강백진·장응두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7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서원은 장수군에서 가장 오래된 서원이다." <출처; 문화재청>
창계서원 안내문,
『창계서원(創溪書院)』
<황희 정승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한 서원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6호(1984. 04. 01. 지정)>
전북 장수군 정수읍 선창리 566-1
황수신(1407~1467), 황희의 아들로 아버지에 이어 영의정에 오름.
유호인(1445~1494), 조선초기 뭄인으로 "동국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함.
장응두(1913~1972), 근세 시조시인.
강백진(康伯珍, 미상~1524), 김종직의 생질이자 문인으로 사간원 산간을 역임.
<사진출처 : stein at ko.wikipedia.com>
황희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성품이 어질고 청렴하며 충효가 깊어 조선왕조를 통하여 가장 명망있는 정승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황희는 상주의 옥동서원(玉洞書院)과 장수의 창계서원에 제향되고, 파주의 반구정에 영정이 봉안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방촌집≫이 있으며, 시호는 익성(翼成)입니다.
장수에 창계서원이 세원진 것은 황희의 본관이 장수(長水)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상현재(尙賢齋),
경앙문 옆 담장 너머로 바라본 상현재,
그리고 협문 옆에는 1948년에 세운 "滄溪書院廟廷碑(창계서원묘정비)"가 서있습니다.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 상현재입니다.
여행 중 서원을 찾을 때면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으면 조금은 황당합니다.
항상 개방하는 방안을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담장 너머에서 바라본 창계서원,
상현재 뒤 수직축상에 숭앙문(崇仰門)이 있고,
숭앙문을 지나면 황희 등을 모신 창계사(滄溪祠)가 있습니다.
자연과 만나는 장수(長水) 여행에서 논개, 정경손, 순의리 백씨 등 장수삼절(長水三節)과 더불어
조선시대 스타 재상 황희 정승을 만나뵐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창계서원 너머 가을을 맞이한 선창리 들에는 황금물결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황희정승을 모신 창계사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장 옆에는 코스모스가 곱게 피었습니다.
황희정승의 소신과 관용의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호합니다.
문화재청 자료와 안내판에는 "創溪書院"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두산백과사전과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滄溪書院"으로 쓰고 있습니다.
사당의 현판이 "滄溪祠"로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滄"이 맞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문화재청에서 바로잡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출처] 창계서원 (創溪書院)|작성자 문정 좋은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