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닮은 매미
정동식
도서관 가는 길에 매미가 맴~맴~맴~ 메에에~ 울었다.
‘소생들은 어여쁜 반려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여름이 시작됩니다.’라고.’ 세상에 알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 소리가 한여름 대낮에 우렁차게 울어대는 그런 기세는 아직 아니다. 가까스로 허물 벗고 겨우 가지에 걸터앉은 풋내기 매미의 힘없는 외침 같았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아서일까, 한번 울었다가 그치는 시간도 얼치기 가수 지망생의 호흡인 양 짧게 느껴졌다. 올해 처음 듣는 매미 소리여서인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매미 소리가 들리는 나무 아래에서 잔걸음을 치며 걸었다. 눈을 치켜뜨고 하늘을 보니 중국단풍나무잎이 햇살에 팔랑였다. 여기서 나는 소린가? 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더니 저네들도 울다가 따라 멈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벌레가 저 투박하고 거친 껍질 위에서 우화를 펼칠 것 같지는 않았다. 막 허물 벗고 나와 세상 물정 모르는 매미라 할지라도 한 번뿐인 선생蟬生인데 어찌 그런 나무를 택한단 말인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더 가까이 다가서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 보니 느티나무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이미 풍광 좋은 나무 위에 올라 운다면 아래에 반드시 허물이 있으리라. 나는 느티나무 밑동에서 찬찬히 위로 시선을 따라가 봤다. 내 눈높이쯤에 등이 갈라진 허물 하나가 보였다. 매미 형상의 허물이 줄기를 부둥켜안은 채 떠나간 실물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님을 보내고도 어쩜 저리 자리를 떠나지 않고 굳건히 매달려 있는지 신기했다. 움켜쥐는 힘이 대단한 것 같다. 비록 성체가 빠져나간 다음 휙 날릴 정도로 가벼워졌다지만 세찬 빗줄기와 바람에 버티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들의 발에서 빙햄유체(Bingham fluid)’라도 분사하는가, 아니면 갈고리 같은 것을 나무껍질에 탄탄하게 걸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날 매미가 왼쪽 다리 하나를 느티나무 껍질 안으로 걸쳐 놓고 온몸을 지탱하고 있는 줄 알았다. 직접 보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뒤, 이 가정은 보편적 진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다른 느티나무에서 여러 허물을 본 뒤 내린 생각이었다. 키가 20여 미터에 달하는 느티나무 밑동에서 무려 허물 5개를 동시에 발견했다. 나는 곤충학자가 대발견을 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다섯 허물을 살펴보았으나 수직의 가파른 줄기에서 상당한 기간을 어떤 힘으로 버텼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몇 번의 관찰과 심층학습을 통해 비로소 그 원인을 밝혀 냈다. 놀랍게도 우화과정을 견뎌낸 힘의 원천은 발톱이었다. 애벌레가 나무줄기에 발톱을 단단히 박고 고정시켰던 것이다. 마치 목수가 콘크리트 벽에 무거운 액자를 걸려고 시멘트 못을 쾅쾅 박은 것처럼.
그로부터 며칠이 흘러 비 갠 날 오후, 나는 다시 나무 밑으로 매미 관찰을 나갔다. 7월 초에 들었던 소리보다 훨씬 강렬해졌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마치 매미 한 무리가 승천하여 내는 합창으로 들렸다. 그때 마침 새에 쫓긴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추락했다. 그 매미는 현장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새는 다시 비상했고 매미는 생을 마감했다. 어린애가 파닥거리는 매미를 따라가다 “안 움직여요.” 한다. 아이에게 나는 차마 죽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더라도 그 의미를 모르는 나이다. “좀 아픈 것 같네.” 했다.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유아가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더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공원에서 아이와 매미를 관찰하다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지금까지 매미가 활엽수 큰 키 나무에만 올라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알고 보니 편견이었다. 공원 주변 잣나무, 벚나무, 심지어 중국단풍나무에서도 허물 하나를 발견했다. 잣나무에 매달린 허물 하나는 공중곡예 하듯 옹두리 밑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행선지에 과연 무사히 도착했을까, 특히 중국단풍나무 거친 길을 택한 매미와 잣나무의 곡예 매미는 어느 나무에 보금자리를 찾았을지, 궁금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매미가 특별히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지에 호기심이 생겼다.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우화현장은 7월 초순까지는 느티나무가 가장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할수록 잣나무에 훨씬 많이 발견되었고 벚나무, 중국단풍나무 등 다양한 나무에서도 흔적이 나타났다. 심지어 관찰 이십여 일째인 토요일에는 수피가 벗겨지는 산수유나무, 침엽수인 소나무, 선비가 좋아하는 회화나무에서도 허물을 발견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관찰 초기에는 허물이 나무줄기의 높은 곳에서 발견되다가 오늘은 지면에서 불과 일 미터도 안 되는 곳에도 보였고 잎에서 발견된 허물도 있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인생길과 선생蟬生길이 그리 다를 바 없고 모두 자연의 섭리에 따른다는 것을.
사람의 고향이 서울, 대구, 광주 제주 다르듯이 어떤 매미들은 활엽수에서 또 다른 매미는 침엽수에서 저만의 우화를 개성 있게 펼친다. 큰 강과 바다는 세류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매미도 우화 장소를 찾는데 특별히 수종을 가리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세상살이에 풍파가 닥치듯 매미가 처하는 환경에도 천적의 위험성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기가 건강한 어른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매미들도 애벌레 전체가 성충이 되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매미의 일생은 달라 보인다. 육 년이라는 애벌레의 길고 긴 세월 동안 네 번의 탈피를 하며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인생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기간임에도 눈물겨운 우화를 거쳐 짝짓고 알을 낳고, 성충으로서 역할 다 하고, 가차 없이 생을 마감하는 종족보존의 엄숙함에도 또 한 번 절로 머리가 수그러질 뿐이다.
어느 시인은 매미의 오덕을 노래했지만 내가 그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일개 미물일지언정 세상에 태어나 귀하지 않은 생은 없을진대 고귀한 선생蟬生 길을 마치 휴양처럼 여기고, 변변한 집 한 채 없이 한세월 머물다 가는 그들의 초연함이다.
오늘도 매미는 장마 중 햇살이 반가워 맴! 메에에에엠~~~~
사력을 다해 울고 있다.
*빙햄유체(Bingham fluid)~곤충이 분비하는 액체로서 가만히 놔두면 고체처럼 탱탱 하지만 힘을 주면 액체처럼 흐른다. 빙햄유체의 대표적인 예가 치약이다.
(23.7.25)
첫댓글 매미의 일생을 잘 관찰했습니다. 매미는 시골 풍경의 낭만 입니다. 열심히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