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포 닭이봉 전망대의 밤 마실
글/김덕길
“얘들아! 너희들 저기 격포 전망대 올라가봤냐?”
“어따매 저로코롬 높은데 뭐한다고 올라간 디야. 안갈란다.”
“아 그러지들 말고 소화도 시킬 겸 밤마실 가보장께 야경이 기가막히다고 안 허냐.”
“삭신이 쑤셔서 걸어서는 못간당께.”
“그럼 안 갈 사람은 먼저 숙소로 보내고 자가용 한 대만 차로 올라가믄 쓰겄네.”
차로 올라가자는 나의 제안에 그제야 친구들 얼굴이 환해진다.
37년 전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들 10여명이 모처럼 모였다. 낮에 선유도를 관광하고 온 후라 모두 피곤함이 역력하지만 이대로 숙소에 가면 뭔가 허전할 듯싶다.
내가 이곳 격포 닭이봉 전망대를 오르고자 함은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추운 겨울 어느 날 친구들과 격포에 왔다. 매운바람은 채석강 돌 틈 사이를 사정없이 할퀴었다. 회색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 애처로웠다. 바로 그때다.
산꼭대기 전망대 거대한 나팔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누구인가 내게 다가와 나를 부르는 애달픈 눈동자…….중략
바보 같지만 바보 같지만 나는 정말로 잊을 수가 없어…….’
풋풋한 그리움을 주고 떠난 열아홉 살 그녀, 생채기난 내 가슴에 반창고도 부쳐주지 않은 채 떠나버린 그녀의 모습이 노래에 녹아들어 내 심금을 절절히 울렸다.
모델이 꿈이라고, 그래서 떠난다고…….
겨우 손만 잡았을 뿐인데 그리움은 짧지 않았다.
철부지 시골 촌놈이었던 나는 결국 그녀를 잡지 못했다.
‘지금쯤 한혜진처럼 모델로 성공했을까? 아니면 나처럼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까?’
해마다 겨울이 되고 부안을 지날 일이 있으면 추억 속 그녀보다 날 위로해주던 그 노래, 김범룡의 ‘겨울비는 내리고’가 떠오른다.
밤에 닭이봉 전망대를 오르기는 생전 처음이다.
차에서 막 내릴 때다.
‘와~~~~’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휘영청 밝은 달이 바로 내 머리에서 나를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구름과 구름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온 달은 가녀린 빛을 모아 전망대에 걸린 가리비껍질 소원 패를 휘 비추다가, 같이 올라온 친구들의 미소를 들추다가, 바닷가에 일궈놓은 모래이랑을 스르르 미끄러지다, 끝내 바다로 스며들었다.
다른 지역은 자물통을 걸어 사랑이나 소원을 바라는데, 이곳은 가리비껍질에 소원 글을 써서 걸어놓는다. 바람이 전망대를 서성거리면 가라비와 가리비가 부딪는 소리가 마치 실로폰 소리처럼 들린다. 때로는 스님의 목탁소리처럼 들린다. 때로는 신을 부르는 주술로 들린다.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바람과 희부연 구름, 구름사이 달빛, 달빛아래 광활한 묵빛바다, 그리고 점점이 흩어진 작은 조명들…….
너무 아름다우면 말을 잊는다. 친구들도 모두 조용히 밤바다를 응시한다.
커피숍의 빈 테이블도 예술이 된다.
시원한 바람이 간지러워 우리는 웃고 또, 웃는다.
“올라오니 너무 좋구먼. 안 그냐?”
“긍께 말여 뼛속까지 시원해불구만”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우리는 변산의 밤마실을 원 없이 즐겼다.
숙소에 들어서자 이미 만찬이 준비되어있었다.
언제 준비를 했는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술잔 돌아가고 그동안 잊고 지낸 친구들의 수다는 끝날 줄 모른다.
자정이 이슥할 무렵 우리는 다시 해수욕장 밤바다로 향한다.
조개도 잡고 불꽃놀이도 한다. 쉬이 잠들 줄 모르는 아름다운 변산 해변의 밤이 깊다.
(사진은 격포 채석강에서 92년 9월 12일ㅎㅎ 지금 사진은 차마 못 올리겠네 너무 늙어서 ㅋ )
첫댓글 그 시절이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