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천하는 책을 읽으면 당신이 날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 부부 작가가 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인 남편과 일본호러소설대상 수상작가인 아내는 어느 날 서로 책을 추천하는 기획 연재를 하기로 한다. 미에자와 리에의 누드집 『산타페』건 시리즈물이건 상관없이 상대에게 읽히고 싶은 책을 선정하기로 한다. 내가 읽은 책을 남편이나 아내가 읽는다면 날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자, 지금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김에 다이어트 기록도 함께 시도하는 꼼꼼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남편과 머릿속 요정과 함께 사는 필명이 청개구리인 엉뚱한 아내의 상호 이해를 향한 격투가 시작된다.
초현실을 좋아하는 남편 vs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아내
영문을 모르는 존재를 찾아 헤매거나 조우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남편과 다큐멘터리나 공포물을 좋아하는 아내의 책 추천이 시작된다. 독서의 취향이 전혀 달라 도저히 서재 결혼시키기란 불가능한 이 부부의 책장은 각자 비슷한 장르로 채우다 보니 꽂혀 있는 책등의 색깔마저 다르다. 처음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를 추천하다가 반대로 상대가 좋아할 만한 책도 추천한다. 서로의 추천 도서를 보면서 애초에 왜 나랑 결혼했는지 의문이 든다. 부부의 위기를 엿보면서 읽고 싶은 책을 읽어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연재가 끝난 후 단행본으로 편집하면서 서로의 글에 댓글(♀,♂로 주를 달았다)을 붙여 아내와 남편의 속마음도 엿보는 재미를 더한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책 장르가 있었어?
서로 추천하는 책은 장르를 넘나든다. 과제 도서로 지정된 39권 외에 본문에 언급되는 책까지 더하면 100여 권이 된다. 소설이나 에세이뿐만 아니라 경제, 역사, 과학, SF, 괴담, 만화, 요리책이나 종이접기 책도 있다. 또 소재도 무척 다양하다. 그중 동성애를 다룬 소재도 있다. BL(Boy's Love)을 얘기하다가 아내는 에도 중기 전국 도쿠가와 시대의 여담집을 추천한다. 그리고 리뷰를 마친 남편은 이어 롤랑 바르트의 「파리의 밤」을 추천한다. 같은 동성애를 다루지만 18세기 일본과 20세기 프랑스의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책도 작가의 독후감을 통해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러나 의심이 든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나에게 추천한 걸까?
연재를 하면 할수록 부부 사이가 악화되고 있다
남편이 어느 날 메모 한 장 남기고 떠날 것만 같다. 연재를 하면 할수록 상대를 이해하기는커녕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나와 다른 점들이 속속 드러나 내가 결혼한 사람이 이 사람이 맞나 싶다. 어쩌면 부부란 평생 서로의 다른 점을 계속 알게 되는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손재주가 전혀 없는 아내에게 종이접기 책이나 요리책을 추천하기도 하는 남편. 왜 나랑 결혼한 걸까, 아내 다나베 세이아는 의문이 든다. 중얼중얼 말하면서 글을 쓰는 아내와 조용한 곳이 아니면 글이 써지지 않는 남편. 이러다가 이 두 사람, 이혼하고 말 것인가. 아내는 말한다. 성별은 없어지고 큰 마담과 작은 마담이 한집에 살고 있는 느낌이라고. 남편은 말한다. 그저 길에서 만난 개들처럼 느낌만으로 짝을 이룬다면 그걸로 충분할지도 모른다고.
부부가 서로를 딱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별문제가 일어나진 않는다
부부란 평생 서로의 다른 점을 계속 알게 되는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적당 적당히 아내와 무엇이든 꼼꼼 꼼꼼히 남편은 연재를 통해 서로의 성격을 조금씩 더 깊게 알아간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흥미가 없는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상대는 자신이 예상했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 또 나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고마움도 알게 된다. 이런 책을 재밌어 하면 좋을텐데, 이 책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런 것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방향성이다. 연재 횟수가 늘어갈수록 부부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져가는 느낌이 들기는 해도 역시 알게 되는 것도 있다. 책은 읽고 나서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재미가 없었다면 어느 부분이 맞지 않았는지를 말하면 된다. 그뿐이다.
마무리 대담으로 이루어진 작가 후기와 역자 후기
아내는 연재가 끝말 무렵까지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남편은 역시 그런 모르는 상태를 좋아함을 깨닫는다. 이렇게 서로 다른 느낌을 가진 부부이면서도 같이 사는 이유는 자신과 다르다는 점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역시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거리는 안 바뀌었지만 윤곽은 좀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부부로 같이 사는 이 생활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다고 중얼거리긴 하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해!
번역자 부부 또한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작품을 읽느라 힘들었지만 독서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마음에 드는 것만 골백번 읽는 아내와 다독가인 남편. 이들도 작업하는 동안 생각했단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함께 번역하다 이혼할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