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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6일 토요일 갬.
제수씨 기성이 병원에 다녀오시고 나는 맨날 그날이 그날이다.
별일은 없고 김실이 전화 온 것 받고 태훈모 종수씨 전화 온 것 받았으며
서울 희망의 상담 전화하고 MBC 퀴즈로 즐깁시다 청취하며
오후 머리감고 이렇게 하루 보냈다.
관세음보살
7월 17일 일요일 비가 내렸다.
제수씨 영구내 집에 잉어 한 마리 붕어 한 마리 얻어가지고
일부로 안동 근노내 식육점 개업한 곳에 가서 매부 나오라하여 잉어 집으로 보내주고
매부 정산 함께 들어와 승민하고 댐에 고기 잡는데 함께 가서 그물 쳐 놓고 왔다.
저녁 큰집에 놀다 새벽 4시에 왔다고 했다.
매부는 큰집에 자고 나는 온 종일 애들 보고 놀았다.
오전에 옥신네 엄마 나와서 복숭아 공양을 진영 앞에 올리고 정산 집 이야기하고 놀다가
김실이 전화가 와서 받고 저녁 기도하고 서울 기숙 여친에게 편지를 썼다.
10시 넘어 제수씨와 TV이 토지를 시청하고 있다니까 전화 밸이 울여 제수씨 받아서 바꿔 준다.
"안녕 하셔서요." 해서
"안녕 하세요 전화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니
"건강은 좀 어떠세요?" 했다.
"염여 덕분에 여전 합니다"하니
이사를 할 예정인대 편지 3통을 다 받아 보았다며 또 보내셔는지요 한다.
보내려다 안 보냈다하니 편지 내용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며 서로 도움주고 서로 부담 없이 서신연락 하자며 많이 시간 내서 답장 못 드려 죄송해요. 하며 궁금한게 있거던 물어보세요. 한다.
제수씨 옆에 없으면 물을 수 있지만 묻고 싶은 것 못 물으니 편지로 다 물었다니까
고향은 충남인데 부모님 계시고 큰언니 오빠 계시는데 결혼해서 살고 결혼 하지 안은 작은 언니 있고 그다음 기숙씨라 하였다.
아들 낳으려고 낳니 딸이고 하여 여동생이 둘인데 대학교 하는 동생이 함께 있다며 꿈에 나타난 내 모습이 어때써요?
거짓말이죠. 아니요 그런 거짓말을 어떻게 해요 하니 키 작고 얼굴은 여드름 빡빡 낳고 못 생겨써요. 하여
무슨 말씀 하니 서울에 언제 오실기회 있으세요 하여 아직은 정해진 날이 없다 하니
서울 한번 오셔서요? 선생님 해서 18세 21세 때 두 번 정도 가 봤다하고
그 이후에는 혼자 다니기 불편하여 못 가 봤다하고 장거리 전화요금 올라간다니까 ddd 공중전화 돈 많이 들어 오늘 회사 기숙사 숙직 날이 여서 문 꼭 닫아걸고 마음 놓고 전화하니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세요 하며 편지 써서 모아 간직 나중에 소포로 부쳐주세요. 하며 어디 다른 친구 편지 오는데 없어요 하여 서울 대구 장애인 단체에 자원봉사 하는 분들 한태서 가끔 오지요.
7월 23일이나 말일부터 휴가라고 했다.
말일 경이면 나는 대구 야유회 간다하고 23일경 휴가하면 서울 대구 부산 등지에서 낚시 노로 많이 오니 친구들과 함께 낚시 노로 놀로 오라니까 예고 없이 선생님 문 앞에 가서 명함을 부를지 몰라요 했다.
집을 옴기면 주소를 가르쳐 드릴 테니 써둔 편지 소포로 우송 하시면 여러 친구들께 자랑하고 선물 보내 드릴지 알아요.
건강하시기를 빌어 드릴께요 건강 하셔야 해요 하며 저는 건강한 체질 아픈 데는 없어요 하여 그래야지요 건강하세요 하니 먼저 끈으세요 하며 앞으로는 긴 전화는 못 할 거예요 했다.
그래요 알아요 하니 꼭 건강하시기를 빌께요 그럼 전화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니 먼저 끈으세요 한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 한 통이지만 나에게 마음먹고 시간을 할애하여 전화해줘서 참 기분 좋은 전화 한통 15분은 했을 것 같다.
제수씨 이상하게 생각 하실 것 같다.
그러나 별수 있나 tv이 시청하다 편지 한통 써놓고 한 시가 넘어 잠자리 들었다.
7월 18일 월요일 맑음
매부 정산 동생하고 들왔다.
일어나서 방청소하고 기도하고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소물 부엌 앞을 쓸고 들와 아침상을 받았다.
매부 큰집에서 자고 나와 과수원에 다녀와 고란 고추 밭에 갔다가 영구내 집에서 향어회를 쳐서 술 한 잔 하고 왔다.
아침을 먹고 승민이 나오라하여 수박을 깨 놓고 솔방울 주 담은 것으로 함께 나눠 마시고 10시 넘어 모두 간다고 나서 가고 나도 고란 고추 밭에 가서 돌아보고 왔다.
고추에 오후 2차 비료를 주고 주진 안호 사형께서 놀러 와서 대화하시며 이석 혼인을 위하여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시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보내 주신다며 가시고 안동 종수씨 전화가 왔다.
매부 물고기 가지고 온다하여 매운탕 끓일 준비 해 놓고 기다린다 하신다.
김실이 한태 전화하니까 고기 10여마리 가지고 왔다 했다.
매부 두 마리만 가지고 간다고 한다며 그러니 야단법석이다.
정말 제수씨 오후 홋 이불과 빨래해 놓고 소를 먹여 오시고 저녁 먹고 TV이 시청하고 놀다 기도하고 취침 한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7월19일 화요일 흐림
마늘 열접 시목으내 것 샀다.
아부지 고추 2차 비료 종일 주고 제수씨는 장에 같다 오시어 과원에 다녀오고 나는 오전 기성이 대리고 놀았다.
봉화 상운 시목 외가에서 전화가 왔다.
마늘 사로 온다며 시목이 방학 하면 대릴로 방학하면 성목이가 온다고 했다.
오후 애들 대리고 집 앞에 나가 놀았다.
뒤집 할매 앞집 할매 삼촌 숙모 오셨다 가시고 마늘 값 2만원을 드렸다.
저녁에 효순 조부 놀러 오셨으며 TV이 시청하다 기도 한 시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부처님이시여 이렇게 기도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도와 주소서 가피력 주소서 관세음보살
7월20일 수요일 집중호우 경보 100미리 이상 내렸다.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렸다.
일어나 우순풍조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세수하고 들와 아침상을 받았다.
아버지 함께 TV이 시청하다가 잤다.
12시 반부터 빗줄기 장대처럼 쏟아 붓기 시작하더니 한 시가 넘으니 100미리 이상 집중 호우로 변하여 20년만의 폭우였다.
아버지 논과 밭으로 다녀와서 점심을 먹고 은진 엄마 종질여가 전화를 해왔다.
정산 우체국 앞에 내러가는 데 길이 끈어져다고 했다.
매부 낚시 노로 온다고 전화가 왔다고 했다.
제수씨는 소먹이로 아버지는 전밭골 논으로 과원으로 돌아오시고 나는 애들 보며 놀다 용상동 정경미양 사연이 KBS방송 내일은 푸른 하늘 프로를 통하여 흘러나와 감동 깊게 청취하고 전화번호가 함께 소개대어서 적어놓고 위로 축하 전화를 했다.
감사하다며 24세며 태어나서 부터 지금까지 학교는 다니지 못하고 혼자 스스로 글을 익혀 노래 가사를 250여 편을 왼손으로 써 노 앗다며 곡을 부쳐 작곡해 주실 분을 찾고 있다며 노래모음 회를 이끌고 있으며 친구들이 가끔 찾아온다고 했다.
참 훌륭하고 장한 아가씨다 용기일치 말고 더욱 정진하여 소망을 이루라하고
나 소개도 해주고 이렇게 하루를 감사히 보내다.
7월21 목요일 흐림
오늘 날씨도 맑개 개지 않고 흐린 가운데 아침 기도를 하고 이불을 갠다.
저녁마다 아버지가 펴 주시는 이부자리 일어나서는 내가 갠다.
아침을 먹고 있다니 김실이 전화가 왔다.
선예 대리고 시내 나와는지 궁금하고 비 피해는 없는지 매부하고 함께 전화했다.
저들도 별 피해 없다고 했다.
앞집 할배께서도 수해는 없는지 하면서 오셨다가 가시고 할매 큰집 형수 종숙모 빨래 탈수 하로 오셨다.
가시고 뒤집 할매도 오셨다 가시고 저녁 때 서울 기숙 여친에게 편지를 다시 써다.
저녁에 효순 조부 오셨다 가시고 오후 7시 넘어 뒤산에 영봉 내 도라지 밭까지 올라가 댐에 물이 올라 온 것을 봐라보고 내러 와서 뉴스에 148미터 수위라 하는대 제사 있던데 까지 올라왔다.
기도를 하고 감사한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꿈속 몽정을 하였다.
7월 22일 금요일 맑음
매부가 한용운 님의 침묵 산골소녀 김옥진이 시집을 사가지고 제수씨 기성이 병원 데리고 같다오는 데 사가지고 보냈다.
선예는 고모내 집 간다고 함께 대리고 가서 고모부 한태 막기고
아버지 아침을 차려 먹고 병원 다녀온다 해도 돈을 한 푼도 못 줘 보내니 내 마음이 별로 편치 못 했다.
누어 있다니 배달이 왔다간다.
MBC 이종환의 여성시대 책자를 6월호 이제 배달 된다. 매우 늦었다.
흥농 종묘사에서는 가을 고추 추비와 농약 살포 방법을 가르치는 안내지 함께 왔다. 모두 잘 읽어봤다.
오후 옥진이 시집을 읽는대 구절 구절 한편 한편 주옥같은 내용이라 눈물 없이는 읽을 수가 없어다.
두 시간 동안 끝까지 모두 다 읽어다.
눈물이 앞을 가려 읽는데 어려움이 많앗다.
이런 시를 읽어보기는 난생 처음이여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영혼 때 묻지 않은 시심을 간직 했을까? 정말 부럽고 감탄스러웠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업는 고운 영혼에게 자연 머리 숙여집니다.
부디 건강을 찾으시도록 시방 제불전에 축원합니다.
부처님이시여 이 소녀를 통하여 많은 것을 느겼습니다.
이 중생에게도 무엇인가 할수 있다는 힘이 생겨서 옥진이와 같은 시나 소설을 쓸 수 있던지
불도를 성취하던지 무엇이라도 이뤄지게 하소서.
기성이 노라고 두어더니 삼푸를 배추 절여 놓은대다 모두 부어 노앗다.
제수씨 애 잘 못 봤다고 야단 쳤다.
저녁 먹고 일기 쓰고 TV이 시청하고 기도하고 했다.
산골소녀 옥진이 시인께 전화를 하니 서울에 있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 적어가지고 서울로 하니 받았다.
감사하다해서 편지를 하면 받아 볼 수 있는지요 하니 주소가 아직 확실치 안타며 고향으로 하면 받아 볼 수 있다고 했다.
먼 곳에서 전화 주셔서 감사하다며 두 번이나 거듭 말했다.
주옥같은 시집을 오늘 사서 읽는데 시야가 눈물로 흐려저서 읽는데 고생했다 하고 안동에 사는 권광력이란 사람인데요 지체가 많이 불편한 장애인입니다 감사합니다. 밤 늦은 시간에 전화 드려 미안합니다.
고향으로 전화 하니 서울로 같다하여 서울로 하니 계속 통화중이여서 늦은 시간이지만 전화에 응해주어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시 많이많이 써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남부 장애자 복지회관에서 결혼 강좌를 한다고 해서 상담 전화을 하니
담당 퇴근했다고 내일 9시 넘어 전화해 보란다. 감사합니다.
전화가 잘 못 걸린대도 있어다 약 3분정도 걸린 것 갔다. 감사 기도하고 잤다.
7월23일 토요일 맑음 오후 논에 약침
나는 벌써부터 악몽에 시달리며 본래 건강치도 못한 몸에 또 다른 병마가 붙어 3년째 고생하고 있으나 누가 알까 부처님이나 하늘이나 땅이나 천지신명이나 알지 배가 부었다 낮았다.
초봄부터 그래서 병원 간다고 돈 준비까지 했으나 병원 한번 가보기 이렇게 힘이 들어 못 가보고 참고 살고 있다.
건강 하시던 백모는 배가 부어 15일 내로 도라 가셨다.
그러나 죽지 안으면 살지 뭐 내일 죽을 줄 모르고 천년 살 연구 한다는 옛 말처럼 나의 타고 난 운명이 그런 걸 누구를 원망 할까?
7월 30일 날 잔디회 야유회 참석하라고 하니 그 때 같다오는 길에 병원 들여 진찰이나 받아볼까 하고 있는데 그간에 더 악화 대지는 안을지 수마가 할퀴고 가서 도로가 끈어져서 위급환자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잇는 형편이다.
요즘 같으면 인명은 제천이라 했으니 부처님 뜻에 막기고 오늘도 평소와 같이 하루가 지나간다.
낮에 쉬다니 백부 오셔서 모심기 일찍 한 논에 도열병이 생겨다고 약을 치라하여 물가에 하고 다치고 꼴을 베 오셨다.
제수씨는 소를 먹여오고 기성이를 대리고 노는데 배가 또 더부룩하고 다답하여 방에 업들여떠니
기성이 우물가에서 또 저지레를 했다.
애 잘 못 봤다고 야단을 맞았다.
내 몸 아픈 것도 귀찬은데 애는 유별나게 온갖 저지레를 다 한다.
저녁 먹고 TV이 시청하다 기도하고 서울 기숙 여친에게 편지 초안을 해둔 것 써 놓고 안동 정양 한태도 전화 한 통 해주고 뒤집 할매 부탁하여 편지 한통 써 들여더니 고마워 하셨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7월23일 일요일 맑음 장날
제수씨 과수원에 칠 약을 사왔다.
평소와 같이 일어나서 기도를 하고 아침을 먹고 제수씨는 장에 가시고 어른은 밭둑 깍으로 가시고 나는 기성이하고 놀았다.
TV이 시청하다니 제수씨 두 시에 와서 점심을 먹고 오환내 경운기로 고란에 약을 두 시간 만에 다 치고 아버지는 꼴 베로 가시고 제수씨는 사장댁 소를 몰고 가시니 함께 가서 더 먹여 오시고 나는 팔자가 좋아서인지 이제 나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안아도 된다.
모든 것 알아서 다하니까 소외된 기분이 자꾸만 들어 나는 죽지 안는다면 어떻게 산단 말인가?
어떻게 살아야 옳게 살아다 할 것인지 괴롭게 생각 하면 한없이 괴롭고 이것 저것 생각없이 살면 마음은 편하다.
건강이나 이대로라도 좋으면 무엇이라도 해 보련만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자니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녁 때 큰집 종질여 나와서 병원에 같다온 이야기하고 나가고 고란에 약치는데 같다 와서 저녁 먹고 앞집 할매 놀러오셨다.
가시고 TV이 시청하다 기도하고 부처님 은혜 속에 오늘 하루도 감사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관세음보살
7월25일 월요일 맑음
과원에 약치로 간다하여 들 구경하려고 기성이를 대리고 리어까를 타고 모두 과원에 같더니
휘발유가 없어 제수씨 구해 와서 시동은 잘 대는데 돌아가다 꺼져서 서너말 치고 집에 와서
점심 먹고 휘발유 큰집에 것 가지고 가서 정산 신흥철공소에 문의하니
기름 올라가는 나사를 조정하면 된다하여 제수씨께 얘기하고
기성이와 놀면서 양대 뽑아둔 것 따고 마당 청소하고
아버지 제수씨 오후 약을 75말 꺼지는 시동을 걸어가면서 다 치고 오시고
안동 4촌 오만이가 전화로 주진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물어서 배주 나루터 진이라 하니
어떻게 쓰나하여 3수변에 법률 율자 변을 쓰면 나루터 진 자라하고 가르쳐주고 대구 오건이도 안부 전화 왔다.
제수씨와 TV이 보면서 수박 깨 먹고 기도하고 잤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7월26일 화요일 비가종일 밤까지 내렸다.
일어나서 기도하고 아침을 먹고 비가 와서 누었다.
시집을 읽다가 기석이가 나와서 얘기하고 주진 강문석 어른이 오시고 앞집 할배도 오셔서
수박과 커피 우유를 내와서 접대하고
수해로 정산 우체국앞 도로가 끈어져 복구비 2000만원 이상 든다며 언제 복구 될지 미결이라고 얘기하신다.
오후 기성이와 놀다 잤다.
큰집 형수 종숙모 나오셨다 가시고
제수씨는 소먹이로 가시고 아버지는 상명의내 집에 가서 놀다 점심 얻어 잡수시고 저녁 때 오셨다.
저녁에 제수씨 복숭아로 통조림 만든 것 내와서 먹었다. 맛이 좋아다.
기석 앞집 할매 놀러 와서 함께 먹었다.
tv이 시청하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 가고 일기 쓰고 기도하고 감사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아버지가 펴주신 잠자리에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계시무로 나는 편히 대접받고 있다.
부처님이시여 이 가정에 평화와 안녕으로 행복과 건강이 두루 함께하여
근심 걱정 없이 살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뤄지게 하소서.
7월27일 수요일 맑음
안동 장날 전자시계를 외상으로 사 달라 해더니 웅동생이 돈을 주고 사 보냈다.
제수씨 선예 대리로 시내가서 병원 기성이 약도 타오고 내가 대구 잔디회 캠프 참석하기 위하여 사오라 한 남방 쓰봉과 하복을 사오셨다. 옷이 마음에 들었다.
시계도 22000원 주고 샀다 하신다. 마음에 들었다.
내 돈 주고 한번도 사 본일 없다.
15년 전에 숙모내가 만원주고 사준 시계를 차봤으며 한 오년 차다가 김용진씨 새로 산 시계 외상 값 25000원 있던 것으로 받았더니 한 10년 잘 쪘다. 그리고 이번 전자시계 3번째 동생이 현찰 주고 사주었다.
제수씨와 동생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신경 써 수고해 주니 마음속으로는 항상 고마우나 내 성격 타인지 표현을 할줄 몰랐다.
왜 그럴까? 제수씨께서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낭비라도 할까봐 그러나 대구 가봐던 곳이지만 자봉이 대리로 오니까 나간 길에 병원 들여 진찰도 좀 받아보고 오면 해동사 법회도 참석 할 수 잇을 것 갔다.
겸사겸사 한번 바람도 씨고 다녀 올 계획을 하고 그날만 기다리고 있다.
동생이 함께 갈 줄 알아더니 오락실 비워 놓고 못 간다는 제수씨 얘기다.
저녁 큰집에 떡 만들로 나가고 TV이 시청하고 효순 조부 놀러 오셨다가고 기도하고 취침하였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7월28일 목요일 맑음 오후 안골에 약을 쳤다.
음력 6월 보름 오늘부터 날이 맑아 젓다.
백모 상망 날이라 아버지는 큰집에 나가시고 제수씨 빨래 해놓고 나오라는 전화가 와서 나갔다.
오시고 제수씨 깨밭에 가고 어른은 안골에 물을 준비해 노로 가시고 나는 집 안을 청소하고 대구 갈 준비물 챙겨놓고 금화 한태서 전화가 왔으며 점심 먹고 오후 기성이 대리고 놀고 선예는 안골에 약치는데 따라가고 아버지와 약을 일찍 다치고 오셨다.
뒤집 아지매는 땅콩을 갈로 오시고 할매는 놀러 오셨다 가시고 나는 골안에 고추 밭에 돌아보고 왔다.
TV이 시청하고 기석 효순 조부 놀러 와서 대화하다 가고 제수씨랑 대화하며 새로 사온 쓰봉 가봉을 하시무로 참으로 고맙고 사랑스러운 나의 제수씨 갓가지 맛있는 것 사와서 먹으라고 주시고 내가 사다 달라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사다 주시고 상월 대조사님 진영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하여 양초 한통 사오세요 해더니 사 오셔서 불을 밝힐 수가 있어다.
부처님이시여 이 가정에 불은이 충만하여 항상 행복과 사랑이 충만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게 하여 근심걱정이 소멸대게 하소서.
농작물이 튼튼하여 모든 병충해를 이기도록 운기로 도와주시고 두 동생들이 하는 사업이 날로 번창하여 뜻하는 대로 잘 대도록 운기로 도우소서 내가 동생들을 위하여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 전에 간절한 마음염원으로 기도하는 것 밖에 그 어떤 것도 보이는 것은 도와 줄 수 없으며 장애를 극복하며 열심히 살 수 있는 지혜의 힘을 얻게 하소서.
우리 모두에게 하오시어 우리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제수씨를 행복하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건강한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게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부처님 은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기도하고 취침을 한다.
7월29일 금요일 맑음 대구 잔디회 하계수련대회 참석하려고 출발 한 날
오늘부터 날씨가 화창하게 맑아진다.
언제부터인지 손꼽아 기다리던 잔디회 여름 캠프 하려고 오늘 집에서 출발 하는 날이다.
아버지는 놀러 가시고 제수씨는 장에 가시고 나는 머리감고 면도를 가위로 대강하고 옷을 갈아입고 한시까지 애들 보며 기다려도 전화 오지 않고 해서 전화하려고 수화기를 드니 고장이 나있어 상명이내 집에 시목이 가지고 가서 실험해 오라 해더니 상명이 모 도와주어 전화기 선이 연결 상태 불량하여 그러타고 알아내 주어서 고마웠다.
대구 전화 해더니 김기락이 말이 자봉이 대릴로 갔다하여 알았다하고 저녁에 만나자하고 15시 넘도록 기다리다니 성오용군이 작년에 와서 날 업고 갔던 친구와 두 명을 대리고 왔다.
인사하고 제수씨 수박과 콜라를 내다주어서 먹고 주진 배로 갈까 해더니 자봉께서 대구 가서 만날 사람 약속시간 때문에 택시로 정산으로 가기로 하고 경운기도 업고 해서 소달구지 타고 아버지 길 끈어진대 까지 태워다 주었으며 절벽 높이가 30미터 이상 대는대 업고 내러가는대 세명이 앞에서 길을 치우고 다듬고 작년에 왔던 친구가 업고 오용은 뒤에서 잡고 내러갔다.
위험한 길을 내러가서 또 다른 친구가 교대 하여 업고 농협 앞에까지 가서 권정홍 택시를 잡아왔다.
오락실 앞에 가서 동생한태 간다하니 회비 만원 주었다.
곳 출발하여 안동에 도착 택시비 오용내고 대구까지 무전차비는 8000원 내가 주었다.
돈을 흘러 버려 모자란다하여 내 돈을 주었다.
북부 정류소 내러 택시 잡는 대까지 오용 업고 가서 한참 기다려 여러분 양보를 받아 겨우 타고 파동 복지 회관에 도착하니 이길자와 총무가 반겨 주었다.
악수를 하고 최화열 와 있다.
짜장으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자리를 옴겨 총무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먼저 자정이 넘어 취침하고 고돌이 두시 넘도록 치다가 함께 잤다고 해쓰며 박총무 구인사가서 두꺼비 밟았던 얘기 영천 지회 교무간사로 포교 활동을 해던 경험 종교를 바꿔 지금은 대순진리회 천존미륵 옥황상제님을 믿으며 회에 참석도하고 전도하며 믿쳐서 먹는 곡식 벼 끝내 준다며 동쪽에 미륵종 불이 오셨다. 1만 이천봉 황우 장사 원한 4천인과 8천인 합하여 대성 5만년 용화세계 운이 오고 있으니 수확 할 날이 멀지 않았으니 열심히 기도하라는 이야기로 밤을 새우며 두 시경 잤다.
7월30일 토요일 맑음
파동 장애인 복지관에서 일정 7시 반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아침 먹으로 함께 식당으로 가서 먹고 나니 9시.
강 학모 자봉 도움으로 휠췌를 타고 이발 하로 나왔다.
친절한 부부가 경영하는 이발관에서 먼저 면도부터 하는데 서비스가 좋았다.
처음으로 그런 서비스 받아 보았다. 요금도 3천원 밖에 안 받았다.
10시경 들어가니 시내 모든 회원이 체육관에 모여 있다.
인사를 나누고 오전에 이름을 알리며 자기 소개하는 진행 프로를 신효순 김휘정 맡아봤다.
점심 먹고 오건이 한태 전화를 하고 오후 깨임을 하고 노는 데 김기숙 예쁜 아가씨가 찾아와 인사를 한다.
김기락 여동생 자원봉사를 한다고 했다 미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있다니 오건이 찾아왔다.
모두 함께 인사를 나누고 저녁 먹고 돌아가며 내일 오후 늦게 다시 온다 했다.
이발 하고 왔을 때 최경희 반가와하며 동생 경현이 안부 전하며 참석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다.
오상원 이우동과 악수를 나누고 상택이 안부를 물으니 취직을 했다고 했다.
양옥희 자봉이 왔다.
저녁 때 잔디 밤 캠프 당연 회원 모두 휠췌를 타고 자봉과 함께 부모님들도 몇명 함께하시고 50여명이 불꽃놀이하며 떠오르는 달빛 속에 청백으로 갈라 노래하며 춤추며 11시까지 흥겹게 놀았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이 중천에 떠 오른 것을 직접 본 것은 10년도 더 된 것 같다.
저녁에 밖에 나오지 않아 보지 못 하던 달을 대구 잔디 캠프에 와서 열이레 떠오르는 달빛을 보니 어찌나 밝고 둥근지 생전에 처음 보는 달덩이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복지회관 앞산에서 떠오르는 저 달빛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어라.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과 불티는 손에 손잡고 놀고 있는 우리들을 휘돌아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 오르니 새로운 그림이며 신선한 밤바람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 덕분에 찬 공기가 돌아 추운 줄은 몰랐다.
오늘이 오래도록 추억에 남는 하루 정말 멋있어 다고 생각 된다.
사진도 찍고 숙실로 11시 들와서 경희는 내일 못 온다며 인사하고 나는 애들하고 일찍 잔다고 잠자리를 경희 봐 주고 갔다.
애들 전민철 전재민 김도형 이정현 4명이 소리소리 질러서 잠을 못 이루었다.
두시 넘어 겨우 잠이든 것 같다.
피곤함을 잊고 잠이 든다. 정박 아동들이 교육 받고 있는 교실이여서 별로 춥지 않고 잘 잤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즐거움으로 어려운줄 모르고 자원봉사 도움으로 감사히 보냈다*
7월31일 일요일 맑음. 수성 못에 유람선을 타고 돌았다.
오늘 6시 넘어 일어나니 김보환 군이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인사를 한다.
오 그래 너도 잘 잔나?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아침을 먹고 나서 9시가 넘어 우리 모두는 휠췌를 타고 자봉 도움으로 수성 못으로 향했다.
유원지 나무 밑에는 시민들이 벌써 많이들 나와 있다.
강학모 군이 내 휠췌를 밀고 도착해서 차례로 유람선을 타는데 우리는 청룡 호를 타고 유원지를 돌며
사방을 둘러보니 놀러 올만 하다.
우리는 특별히 선장이 섬을 두 바퀴 돌아주었다.
기념사진도 두 판을 찍고 독사진도 한판 찍었다.
11시 반까지 뱃놀이를 하고 복지관으로 와서 쉬어가지고 점심을 먹고 유원지에서 양옥희 양이 안동에서 오셨습니까? 하며 인사를 해서 예하니 오시는데 수고하셨다며 총무 한태 주소 알아가지고 나중에 놀러 갈게요 한다.
오후에는 체육관에서 노래자랑을 해서 강학모 나보고 노래한곡 부르라고 여러 번 권해도 사양하고 있는데 양옥희가 내 노래 듣고 싶다며 추천하여 더는 사양 할 수 없어 배틀가를 불렀다.
보물찾기도 했다. 표는 여러 장 찾았으나 모두 꽝이다 노래자랑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상품은 앨범이였다. 애들 장끼 자랑 할 동안 총무 상원이 현기 감사와 후원 회장 상호신용금고 이사님 이렇게 둘러앉아 잔디회와 근 디스트로피에 대하여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나와서 시상을 하고 동생 건이가 왔다.
시내 거주하는 애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건이 하고 샤워실에서 목욕을 하고 어제 6시 신정희 양이 근무하는 영아 보육원에 나 밀고 가서 둘러봐는데 누군가 낳아서 장애가 있으니 버림 받은 영아들을 돼지 새끼 마냥 기르고 있다.
보모 한 명당 15명 이상 돌본다고 했다. 실로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오건이도 함께 저녁을 먹고 이 감사 자봉들 모두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나는 총무 광배 우동 현준 기락 자봉등 함께 대화하며 장기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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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명심보감님께 들렸습니다.
어제는 당신께서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이사로 활동하셨던 국제근육병장애인협회에서 2013 송년회를 하였습니다.
여느때 처럼 아우(금춘햇살)님이 진행사회를 하였구요.
생전에 정심(正心)과 정언(正言)으로 늘 협회사랑을 해주신 덕분에 우수회원, 모범 활동보조인, 도움이 필요한 회원들께
난방비도 10만원씩 지급하였습니다. 또한, 금춘가족을 대표하여 (백호) 육도영선생님께서 근육병환우들에게 희망성금도
기탁해주셔서 금춘가족과 국제근장협의 우의를 더없이 돈독하게 하는 자리였습니다.
늘 함께하던 자리에 당신의 모습을 뵐수 없었기에 시린날씨만큼 마음이 아려집니다.
같은 병을 앓으며 함께 활동했던 국제근장협 이사였던 형님이 돌아가신지도 벌써 1년이 넘었어요.
형님은 돌아가셔도 그때 써 놓았던 일기는 남은지라 시간나는 대로 형님의 지난 삶을 옮겨 놓습니다.
아직은 좀더 살아서 국제근장협이 꿈꾸는 그런 세상을 살았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