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여행기
2010년 8월 11일(수)
이번 대만 여행은 관광학과 졸업여행이다. 나는 관광학과 졸업생인데 이번 여행에 참여했다. 오전 7시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서 8시 15분에 출발하는 공항 버스를 탔다. 버스는 9시 45분에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짐을 내리고 인천국제 공항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돈을 아직 환전하지 않으신 분들은 환전을 했다. 우리는 10시반쯤에 롯데공항 직원들의 설명을 듣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출국 심사대에 도착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공항을 빠져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렇게 혼잡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12시 25분에 대만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는 한국 시간으로 3시 20분 정도에 대만 공항에 도착했다. 대만의 시간은 한국의 시간보다 한시간이 느리다. 나는 그곳에서 시계를 대만의 시간으로 맞추었다. 대만 공항에서 출국 심사를 받고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오는데 그곳에서 소광옥 가이드님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43인승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 대만 여행은 모두 21명이 함께 3박4일동안 함께 했다. 우리팀은 7명, 가족팀 6명, 2명씩 4팀 모두 합해서 21명이었다. 우리는 먼저 대만의 자랑거리중의 하나인 101층건물로 향했다. 대만 101층 빌딩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하늘을 향해 한자로 팔(八)자를 거꾸로 층층히 쌓아올린 것 같은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높이 외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를 자랑한다. 5층 매표소에서 89층 전망대까지 걸리는 시간은 37초에 불과하고 내려오는 시간은 45초이다. 101의 의미는 백점 만점에서도 1등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건물의 총높이는 508미터이다. 5는 중국어로 나를 의미하고 8은 발전한다는 의미한다. 그래서 508은 “나는 발전해 나간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건물은 건물 위의 탑이 12층이고 전망데가 89층이다.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는 방풍추 즉 바람을 막아주는 추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대만은 지진과 태풍이 많은 나라이다. 그런데 101층 건물은 지진대에 지어졌다. 지금 지하는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라고 한다. 지진대에 101층 건물이 들어서고 지하는 지하철 공사라! 정말 역설이었다.
그래서 지진이 일어나면 지진의 피해를 막아주기 위해 방충추가 설치되었다. 방풍추의 크기는 아주 컸다.89층에서 우리는 여러가치 강철 조각품을 보고 88층에서는 산호를 감상했다. 산대만은 산호의 주생산국가이다. 산호는 10년에 1cm가 자란다수심 1000m 이하에 피산호가 자란다. 산호에게서 울퉁불퉁 있는 것은 의 숨구멍이다. 우리는 1층으로 내려왔다.
실내는 에어컨 시설이 있어서 시원했는데 밖으로 나오니 더운 바람이 나왔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용산사로 향했다. 용산사는 대만 시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대만스러운 곳이다. 이 절은 44년에 걸쳐서 지어졌다. 이 절의 본당은 불교식이거 후당은 도교식이다. 이 절에는 42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제일 큰 기둥은 본당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야시장을 구경했다. 야시장은 용산사 앞의 대만의 각종 먹거리를 둘러볼 수 있는 거리이다. 야시장은 주택이 많은 곳에 모여 있다. 이곳 사람들은 뜨겁게 먹는 음식을 좋아한다. 한국인들이 삼복 더위에 삼계탕을 먹는 것처럼 이열치열의 의미라고나 할까? 우리는 9시쯤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의 이름은 가든 호텔이다. 짐을 풀자 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2010년 8월 12일(목)
우리는 아침 7시에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대만 최북단에 있는 바닷가인 야류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여기 저기에서 오토바이가 보였다. 대만의 인그는 2300만인데 오토바이의 숫자는 1300만이라고 한다. 오토바이의 뒷넘버에는 색깔이 있는데 녹색은 50cc,흰색은 100~125cc, 노란색은 150cc 이상, 빨강색은 450~500cc라고 한다.
대만을 한국과 비교하면 남한의 3분의 1이 조금 넘는다. 경상남북도와 제주도를 합한 면적이다. 대만에서 3000m를 넘는 산이 무려 133개라고 한다. 대만의 인구 밀도는 세계 2위이다. 대만의 면적은 남북이 400km이고 동서가 150km이다. 대만은 이민을 받지 않는다.
기후는 남쪽은 열대성 기후, 북쪽은 아열대성 기후이고 높은 산은 온대성 기후이다. 그래서 대만의 식물 분포는 아주 넓다. 이 나라는 차의 왕국이고 나비의 왕국이다. 이 나라의 나비는 480종이다. 나비 박제는 대만의 특산품이라고 한다.
드디어 버스는 야류에 도착했다. 야류는 풍화 작용과 해식작용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대만의 평균 강우량은 2500mm 인데 야류의 평균 강우량은 6000mm이다. 대만은 원래 바다의 밑에 있던 나라이다. 대만은 지금부터 약 200만년 전에 융기 현상으로 인해서 올라온 나라이다.
이곳의 바위들은 칼슘 성분이 많아서 제주도의 돌하르방처럼 구멍이 뽕뽕 뚤려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현무암이고 대만의 야류의 바위는 바다의 침식에 의해서 이루어진 바위라는 것이다. 현무암은 화산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바위이다. 제주도가 화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라는 단적인 증거이다.
우리는 양명산 국립공원에 들려서 온천 체험을 했다. 이 지역의 온천은 깊은 산 속에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온천과 더불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온천을 마치고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한식이었다. 한국과는 약간 음식의 맛이 달랐지만 그래도 아주 맛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고궁 박물관으로 향했다.
고궁 박물관은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중국 5000년 역사에 버금가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중국의 보물들로 가득차 있다. 이곳의 유물은 총 70만점이다.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인 산 속에 위치해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박물관이 안보인다고 한다. 이 박물관은 규모가 작아서 한해에 7000점을 전시하는데 70만점을 다 전시하려면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 나라의 주민들도 이곳의 유물을 다 못보고 죽는다는 의미이다.
내가 본 것중 인상적인 것은 찜통 시루가 무려 3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과 우리가 라면을 끓여먹는 양은 냄비의 시조인 뚜껑과 그릇을 함께 쓸수 있는 도구가 무려 3000년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실로폰의 조상이라고 하는 인류 최초의 타악기인 석종을 감상하고 天人合唱이라고 쓰여져 있는 전시실로 들어갔다. 천인합창이란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노력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돼지 모양의 돌멩이가 발견되면 장인은 거기에 한겹을 입혀서 돼지삼겹살과 똑같은 모양의 돌멩이를 만든다. 이것이 바로 천인합창이다.
우리는 상아 하나로 만든 8각 9층 석탑, 17겹의 공등 여러 가지 유품들을 보았다. 우리는 박물관을 감상한 후 순국선열들의 위패가 모셔져있는 충열사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고 발경락 맛사지를 받고 저녁을 먹은 후 저녁 7시에 호텔에 도착했다.
우리는 한국의 명동과 유사하다는 대만의 거리를 구경했다. 정말 많은 인파들로 밤거리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대만은 치안이 안전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가 관광객들이 밤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허용한다. 우리는 호텔로 들어온 후 방에서 우리 일행끼리 간단하게 소주와 맥주로 조촐한 뒷풀이를 했다. 그렇게 대만여행의 둘째날이 지나갔다.
2010년 8월 13일(금)
오늘은 화련이라는 곳을 여행하는 날이다. 우리는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화련까지는 2시간 40분 정도가 걸린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밖에 있는 풍경을 감상했다.
차창밖의 풍경은 한국의 풍경과 흡사했다. 한국과 다른 것이 있다면 간판이 중국어로 쓰여있고 방송이 중국어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화련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은 후 원주민들의 민속춤공연을 감상했다.
花蓮의 의미는 이곳의 경치가 꽃처럼 아름답고 이곳은 공해에 오염되지 않아서 연꽃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대만의 원주민의 수는 대략 50만명이라고 한다. 화련은 땅값도 싸고 집값도 싸고 오염도 안된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이곳은 교통이 불편하고 지진과 태풍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버스를 다고 차창 밖을 보는데 밖에는 가드레일이 있고 그 밑으로 천길 낭떠러지였다. 가히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고 할만하다. 이곳은 산 전체가 하나의 대리석이다.
정부에서 이곳에 도로를 내기 위해서 하루에 150만명의 인원을 동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도로를 blood and tears라고 한다. 우리는 고산에 있는 휴게소에서 음료를 마신후 다시 버스를 타고 계곡을 내려왔다. 도로를 내려오는데 밑에서 또 한 대의 관광버스가 올라오고 있다.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인데 차 두 대가 바짝 붙어야만 갈 수 있었다. 아찔했다.
화련은 대만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타이루꺼 협곡의 지역 거점으로, 웅장한 동부 산맥의 광활한 태평양 사이에 위치한 관광 보고이다. 공예가들에게는 거대한 대리석을 다양한 dydd도로 쓰기 위한 채석지이며 아미족을 비롯한 대만 원주민들이 그들의 전통 문화를 지키며 살아온 곳이기도 하다.
화련을 감상한 후 우리는 다시 기차를 3시간 정도 타고 역에 내렸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밤 10시가 되었다. 하루에 기차를 왕복 6시간 타고 관광을 해서 그런지 너무 피곤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자 마자 잠이 들었다.
2010년 8월 14일(토)
이제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다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중정 기념관으로 향했다. 중정이란 『중용』에 나오는 大中之正에서 나오는 말인데 여기에서 중과 정을 합한 말로 장제석의 호이기도 하다.장제석은 대만의 영웅이다.
장제석은 1948년에 중국에서 대만으로 온 후 대만이라는 나라의 기초를 만든 분이다.장제석 총통이 89세에 돌아가셔서 계단의 숫자도 89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다.이 기념관을 만들기 위해서 해외에 있는 화교들까지 자발적으로 모금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기념품 가게와 면세점에 들린후 점심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가이드께서 출국 수속을 다 해주셨다. 우리는 간단하게 쇼핑을 한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속도를 내면서 이륙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대만의 모습이 보였다. 대만은 중국과 유사하지만 중국과 다르다. 대만은 한자와 중국어를 사용하고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중국과 유사하다. 그러나 대만은 가격이 정찰제이고 모든 상가는 대만돈이 아니면 안받는다. 환융를 신경쓰기 귀찮다는 뜻이다. 또한 대만에는 돈 달라고 손벌리는 거지가 없다. “만원에 몇 개 사세요.” 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2시간 30분 정도 지나자 비행기는 인천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대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있지만 대만에는 없는 법이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대만에는 도시 재개발법, 재건축법이 없다. 내집 가지고 내가 사는데 건물이 무너지지 않으면 100년, 200년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대만인들은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건물을 지은지 20~30년만 지나면 건물을 다시 지으려 하는데 한국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두 번째는 대만에는 자동차 폐차법이 없다. 한국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10년정도가 지나면 폐차한다고 한다. 대만인들은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를 많이 타고 다닌다. 한국에서는 주로 배달차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데 대만은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위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용한다.
나는 이번 대만 여행을 통해서 여행은 정말 사람을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만은 휴양지보다는 문화 탐방을 위해서 오는 곳이라고 한다.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의 뇌 속에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의 방을 만들게 되었다. 대만 再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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