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가오네요.
이건 봄과 여름의 경계를 지나가는 비겠지만,
비가 내리는걸 보니 지난 겨울의 런던과 파리의 찌뿌둥 했던 날씨가 떠오릅니다.
수능을 끝내고 한창 대학 원서를 써야 했던 시기.
친구들보다 일찍 입학 확정을 받아놓았던 터라
겁도 없이 덜컥, 여행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레 내린결정이었기에 일주일간 꼬박꼬박 밤을 새워가며
여행 공부를 하고, 계획을 짰습니다.
국내여행도 한 번 홀로 해 본적 없는 제가 해외여행이라니, 그것도 혼자서.
온 가족들은 펄쩍 뛰었지요. 꾸중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용감하게 떠났어요.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었거든요.
고등학교에도, 대학에도 속해있지 않은 이 시간이 가장 자유로운 시간일거라 생각했어요.
2006년 1월 19일. 강릉이 집인 저는 홀로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처음 가보는 인천 국제공항, 처음 타보는 비행기.
출입국 신고서도 작성할 줄 몰라 쩔쩔매고, 기내 매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도 하고,
마냥 설레면서 , 그렇게 20살을 향한 저의 첫 도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다시 일상에 지쳐 피곤하고 힘들어질때마다 저는 여행 사진들과 추억들을 들춰봅니다.
여행내내 들고 다녀서 너덜너덜해진 지도, 기차안에서 썼던 일기들..
그 추억을 돌이키면 다시 제 가슴이 뜁니다.
한 번, 두 번... 새로운 도시를 만나고 헤어질때마다 저에게 조금씩 생긴 용기들이
다시 제게 힘을 줍니다.
또 다시 가야하지 않겠어..?
테이트 모던에서 바라본 런던 시내를, 세느 강변의 낭만을,
하이델베르그 성의 야경을, 프라하성의 눈부심을, 리기산의 구름바다를,
로마의 광활함과... 포지타노의 지중해를.
내년, 21살. 이번엔 여름의 유럽을 계획중입니다.
19살의 유럽과는 또 다른 유럽을 만나고 올 수 있겠죠.
그래서 다시 제 가슴이 뜁니다.
아래는 제 여행 사진일기 중,
각 나라의 마지막 일정에 해당하는 날의 일기입니다.
일기에 첨부된 사진들과 더 자세한 여행 사진일기들은 싸이에 있는데..
정리해서 여행기에 올려야 하나.. 싶은데^^;; 제가 게을러서..
혹시 더 보길 원하시는 분들은 (그러실 분이 있으시려나~^^;) 꼬릿말 남겨주세요.
2006.1.24 화 1:56 pm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가는 중이다.
Good bye London. See you.
기차 밖으로는 드넓은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멀리 초원을 가로지르는 가로수길, 한가로워 보이는 집들..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가축들까지도.
워털루역까지 가는 버스안에서,
워털루 브릿지를 건너며 본 런던은 내가 머문 시간중 가장 아름다웠다. 물기가 묻어나는 햇살에 반짝이는 세인트 폴 대성당, 빅벤.. 국회의사당.. 타워브릿지.. 런던아이까지.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기를. See you again.
2006.1.29
독일로 떠나는 날 새벽.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길을 나섰다.
한번, 두번 새로운 도시를 만나고 다시 떠날때마다
나에게 조금씩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Good bye, Paris.
2006.1.30
프라하성의 야경.
사실 처음 여행전에 세웠던 계획에는 프라하가 1박 2일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2박 3일을 머물렀다.
정말 혹한의 추위였지만, 결코 후회없을만큼 아름다웠던 곳.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각에 처음 프라하 중앙역에 내렸을때는
동유럽국가- 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와 닿아서
정말 무서웠었다.
독일에서 프라하로 넘어가는 열차안에도 나 혼자였기 때문에
(그것도 그 객차에 나혼자;; 사람이 아예 없었다.)
차표를 검사하러 온 경찰관 조차 믿지 못해서
여권을 보여달라길래 찌릿, 째려보면서 경계할 정도였으니. ^^;;
나를 어이없어하며 자기는 정말 경찰이라고 웃던 아저씨.
죄송합니다~~;;
아무튼 프라하에서는 정말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내 두 발로 모든곳을 구석구석 누빈 곳이다.
지금도 거리하나, 골목 하나까지-
뻥좀 섞어서, 아예 지도가 머릿속에 있는 것 같다. ^^
프라하로 들어가던 밤의 열차는 무섭고 두려웠지만,
스위스로 발길을 떼면서 탔던 야간열차는 마음이 따뜻했다.
또 한 도시, 내가 발도장을 쾅쾅- 찍고 떠나는 구나, 싶어서.
2006.02.02
스위스 베른(Bern)역에서, 야간열차를 기다리며.
리기산을 내려와서 너무나 춥고 흐린 날씨에
도무지 시내를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프라하에서 잔뜩 감기기운을 얻어 밤새 야간열차를 타고 온데다,
다시 또 당일날 야간열차로 이탈리아에 가야 하는 강행군.
한국에서 여행공부를 했던 기억력을 십분 발휘하여^^
한시간 남짓 걸리는 취리히행 열차를 탔다.
(열차안은 따듯하니까~^^)
취리히역 근처에 있는 Coop (대형할인마트)에 가서 구경도하고,
저녁으로 간단하게 먹을것도 사고,
가족이랑 친구들 줄 초콜릿도 구입.
만족해하며 Coop을 나서는데 펑크족차림의 남자 두명이
나를 탁- 스치고 지나가면서 귓가에 대고 욕을 한다.
역시나 이번에도, 독일에서 그랬던 것 처럼 깜짝 놀라서 벙...
스위스에서까지 이럴줄은 몰랐는데.
물론 독일에서 당했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두번이나 이런식의 일을 당하니까 이젠 길에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진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거냐구.
서둘러 다시 기차를 타고 루체른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야간열차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인터넷 카페에가서 친구들이며 가족들에게 메일좀 써주고,
싸이에 일기도 하나 써주고,
코인락커에서 짐을 챙겨 베른(Bern)행 열차를 탄다.
아무도 없는 베른 중앙역의 플랫폼에서
지난 여행들을 떠올려봤다.
이제 마지막 한 나라만 남았구나.
겁없이 혼자 훌쩍 떠나서, 이젠 아예 겁을 상실하고
야간열차까지 홀로 타고있는 나. 장하다! ^^;;;
혼자 스스로를 다독여준다. 그리고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모든 선택은 내가, 모든 책임도 내가.
항상 모든일에 신중하자.
아까부터 나와 같은 플랫폼에서 왔다갔다 하시던 여자분,
기차에 오르고 보니 나와 같은 칸이다. ^^
한국분이시죠? 하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근데 어디서 만난 적 있는 것 같아요, 하고 보니
런던에서 파리로 떠날때 유로스타에서 만난 적 있는 분이다.
금새 친해져서 쫑알쫑알 이야기 꽃을 피운다.
몇 시간쯤 지나니 한 분의 한국 여자분이 더 오신다.
야간열차에서 처음만난 세 여자. 자는것도 잊고 수다를 떨었다.
그 두분 덕에 안심도 되고, 즐겁게 로마까지 갈 수 있었다. ^^
자, 이렇게 또 한곳에 발도장 콕콕 찍었다.
My story goes on.
2006.02.06
로마 여행의, 그리고 내 배낭여행의 마지막 코스.
콜로세움. (로마에 머무는 동안 콜로세움만 3번 째였다. ^^;)
처음 여행계획을 세울때,
런던in, 파리out을 생각해보긴 했었는데
혹시 여건이 된다면 그리스쪽으로 넘어가볼수도 있지 않을까-해서
결국 로마를out으로 잡았었다.
겨울이라 배가 일정치 않다는 말과 고등학교 졸업식때문에 그리스는 다음으로 미뤄둘 수 밖에 없었지만. ^^
이탈리아는- 특히 로마는
내가 특별히 가보고싶다거나 하던 곳이 아니었다.
다만 유럽여행에서 빼 놓으면 허전한 곳이었기에 방문한거였는데
런던이나 파리와 같은 낭만은 없었어도
그래도 가보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든다. ^^
이탈리아어라고는 한 마디도 뻥긋 못하면서
무대뽀 정신으로 무작정 아무 버스나 잘 타고 다니고
(나는 길 찾는데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난게 아닐까?ㅋㅋ)
험악한 사람들에 긴장도 가끔하고
지저분하고 난잡하기까지 로마의 분위기에 처음엔 실망했지만
마지막날 공항으로 가기전,
테르미니 역에서 한참이나 발걸음을 망설였던것을 기억한다.
나도 어쩌면 로마와 사랑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이미 빠져버렸던 것 같지만.
See you, Rome.
2006.02.07
오후 2시 비행기를 놓치고 오후 9시 비행기를 탔다.
뒤척뒤척거리다 이제 좀 자볼까.. 하는데
새벽 2시, 벌써 동이 터온다.
여행을 떠나오던 때와는 다른 의미로 마음이 설레인다.
이제부터 내 추억들이 시작되고,
이제 다시 내 일상들이 시작되겠지.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에 다녀온 것 처럼
뒤돌아보면 하나하나 나에겐 행복하다.
하루에 10시간이 넘도록 걸어다녀서 녹초가 되었던 일도
험한 일을 당했거나, 아프거나, 무서웠던 기억까지도.
이 여행은 나의 20살을 시작하는 첫 도전이었다.
그래서 19살과 20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이런 경험을 하고, 이런 추억을 남긴것에 너무나 감사한다.
End.. and, ing.
첫댓글 멋집니당.. 그나이에 유럽간다는 생각을 할수있다는게 존경스럽습니다.. ^^
19 살에 유럽여행이라... 다시 그곳으로 만나시길 바랍니다..^^*
올해 겨울때 가셨군요 -그럼 일본은 마일리지로~ㅋ 여기 갔다오신분들 대부분이 다시 가길 원하죠~
사진 배경사진으로 씁니다.^^
여행기! 보고 싶어요!! 원츄원츄♡
멋지세요~!!!!!
20살때 처음으로 혼자 부산으로 떠난 여행도 정말 특별했는데...유럽에..그것도 혼자..정말 기억에 남겠어요^^꼭 다시 가세요~
너무나 좋은 글이네요. 정말 20살 맞으세요?? 글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나 성숙하네요.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좋은 글 감사하구요~ 여행기도 올려주실 수 있나요?
이 글 읽으니... 지금 모든 일 팽개치고 떠나고 싶어지는.. ^^; 너무 좋은 글 입니다.
잘 읽었어요..짧은 여행기가..이상하게 저의 여행메모와 비슷하게 느껴지네요..ㅎㅎ
사진이 넘 이뻐 퍼갑니다...^^
저도 1년전 19살때 유럽여행을 막 준비했었는데.... 넘 어리고 부모님한테 돈 받기보단 제가 직접 벌어가고 싶어서 접었지요...참 부럽습니다!
오^^ 멋진경험하셨네요..전 왜 19살때 그생각을 못했을까요^^;; 여행기 기대하겠습니다~
젊음.. 도전.. 정말 멋있네요... 난 그 나이에 넘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은 듯 하네요... ^^;; 하지만,.. 늦게나마 짐서 떠나려고 해용..
전 대학에 일찍입학했지만, 아직 19인데.. 혼자가는 첫 유럽여행이 너무나 떨리지만, 한편으론 겁이나서 쉽게 결정을 못하겠는데, 상당히 용감하시네요,!! 멋져요!!
저도 작년에 대학 입학하고 첨 여행갔는데 너무 좋았어여....^^~~~~
나두나두 나두 가고 싶어라는 맘이 막들게 만드네요~^^ 저의 10일이라는 일정이 너무 짧게 느껴져요~ 어린나이에 너무 대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