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장난아니네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오전과 밤에는 영하권을 넘어갈거라 하네요..
얼마전에 부탁을 하나 받은게 있습니다. 까페회원이신 무차이 님이 갑자기 비행기 제품 하나를 구매하시면서 리뷰를 부탁하신것이였습니다.그제품은 바로 얼마전 출시된 타미야의 신제품이였던 1/32 Aircraft Series No.23(6032)번 NORTH AMERICAN P-51DK MUSTANG (PACIFIC THEATER)이란 제품입니다. 요새 침체기에 빠져있긴하지만 특별한 부탁이고해서 바로 리뷰해봅니다. (이자리를 빌어 소중한 킷을 제공해주신 무차이님깨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타미야에서 머스탱의 신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바로 1/32 Aircraft Series No.23(6032)번 NORTH AMERICAN P-51DK MUSTANG (PACIFIC THEATER)이란 제품입니다.]
[이 제품은 지난 2011년 10월 출시된 타미야의 신제품인 1/32 Aircraft Series No.22(60322)번 North American P-51D Mustang 제품의 바리에이션 제품입니다. 출시전부터 상당한 기대와 지난5월 시즈오카 에서 공개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제품 입니다. ]
2차대전에 활약한 전투기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라도 아마 무스탕이라는 이름은 한번씩을 들어봤을 듯 하다. 정확히는 머스탱(MUSTANG; 뜻은 야생마라는 의미이다) 이란 발음이 맞겠지만 어느새 미국식 표현에 익숙해져인지 무스탕 이란 이름이 더 익숙해진듯 합니다.
독수리 사러갔다 조랑말을 대신 사온 영국무기사절단..
P-51 머스탱은 2차대전이 한참인 1943년경 등장하여 종전과 한국전쟁까지 등장한 전투기로 2차대전에 등장한 전투기중 가장 우수한 전투기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기체중 하나 입니다.
한참 히틀러의 야욕이 불타오르던 1939년… 전쟁이 바로 코앞에 임박해 있음을 직감한 영국공군은 아무래도 자국의 공업능력으로는 턱없이 전투기가 부족할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부족한 전투기 생산분을 충당하러 여기저기 알아보던중 역시 당시 최고의 공업능력과 생산력 그리고 항공기술의 최강국가중 하나로 알려진 미국으로 무기구매사절단 보내게 됩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당시 최강의 전투기로 알려진 미국 커티스사의 P-40 토마호크를 구매하러 무기구매 사절단을 파견하게 됩니다
[세계 2차대전이 임박해있던 1939년 당시 최고 성능을 가진 미국제 전투기중 하나가 바로 커티스사의 P-40 워호크 였다. 전쟁이 임박해있음을 잘알고 있었던 영국의 처질은 미국으로 전투기 구매를 위한 무기사절단을 보내게 된다. 당시 쓸만한 미국제 전투기라는게 P-39 에어라코브라, P-40 워호크나 F4F 와일드캣 정도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전쟁은 유럽만의 이야기!!’ 라고 치부하고 중국이나 프랑스등 다른 나라들로부터 주문받은 전투기 생
산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도저히 커티스사의 생산능력으로는 영국이 원하는 양의 전투기 생산은 제때 어려운 상
황이였습니다.
[P-40 은 2차대전전 가장 우수한 성능을 가진 전투기였으나 독일의 ME-109 메서수미트나 이어 나온 포케불프등에 비하면속도나
기동성면에서 한참 떨어지는 기체였다]
영국무기사절단은 고심하죠.. 전시라면 우째 미국을 조르거나 압력을 넣어 좀 해보겠는데 당시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
는 1차대전 참전이후 극심한 미국의 대공황과 불황기를 막 빠져나온지라..다시는 유럽의 전쟁에 발을 담구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영국의 무기사절단이 그렇게 달가울리 없었죠 (그래서 사가던 말던 내버려둡니다.
다만 영국의 처칠과의 입장때문에 수출금지까지는 못하고 있었죠)
[당시 미국은 1차대전 이후 급격한 대공황으로 경제가 와해직전에서 겨우 빠져나올 정도로 어려웠는데.. 유럽
에서 일어날지 모를 전쟁은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겐 애시당초 관심도 없었습니다.자기 살것도 빠듯한
데 남의 나라 일까지 신경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였죠.. 사진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긴줄을 서고 기다리는 대공
황 시절의 미국인의 모습]
커티스사는 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가 주문한 전투기 물량을 대기도 바쁘고 또 사정이 어려운 영국이 비행기만 주문해두
고 지불을 못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역시 본체만체…
[커티스사는 당시 최고의 전투기로 인정받고 있는있던 P-40 호크기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때맞침 일본이 중국본토를 침
공하면서 이들 전투기의 주문이 폭주하게 됩니다. 당장 돈준다고 달러 흔드는 중국 국민당 정부에 팔 전투기도 없는데 돈
떼일지도 모를 영국에 줄 전투기란... 사진은 2차대전전 일본의 침공에 맞서 용볍부대로 활약한 프라잉타이거스 소속의
P-40 키티호크들...]
한시라도 급한건 역시 영국무기사절단이였고 (영군 첩보부의 정확한 정보에 의하면 나찌독일의침공이 코앞에 다가온걸
로 보고가 들어오는지라..) 일단 주문을 넣어두는 한편, 당시 역시 전투기 제작능력이 있던 신생항공사노스 아메리카사에
라도 P-40 토마호크를 같이 생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까지하게 됩니다. (물론 돈은 충분히 줄테니..)
[2차대전 전에 창립된 노스아메리카(North American Aviation (NAA)) 사는 회사가 생긴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기술력
과 패기 하나는 정말 대단한 신생항공사로 P-51 무스탕을 비롯 T-6 택산 이나 B-25 미첼 중폭격기를 생산하여 호평을
받았는데..머스탱의 성공을 기반으로 F-86 세이버 제트 전투기로 빅히트를 치게 된다!]
당연 커티스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어쩌면 라이벌 업체가 될 수 있는데 이런 귀중한 기체를 라이선스 생산하게 하다니.. 누구 좋으라고…
이에 당시 젊은 패기로 가득차있던 노스아메리카(North American Aviation (NAA)) 의 사장인 ‘제임스 킨델버거(James H. Kindelberger)’ 씨는 엄청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이렇게 큰소리 치죠~
[젊은 패기로 가득차있던 노스아메리카(North American Aviation (NAA)) 의 사장인 ‘제임스 킨델버거(James H. Kindelberger)’ 씨 (좌측)과 수석기사였던 에드가 쉬무트 의 모습 당시 젊었던 두 젊은이들이 뭉쳐 제작한것이 바로 P-51 머스탱이였다.]
[당시 컴퓨터나 캐드 같은 편리한 장비가 없던 시절..수천장에 이르는 도면을 살피고 살피 기체를 설계하는것은 사람잡는 일중 하나였다. 그래도 영국무기사찰단에약속했던 200일보다 훨씬 빠른 117일만에 정말 새로운 전투기를 완성해냈으니..]
“ 나에게 4개월만 주시오 그렇게 하면 내가 커티사의 P-40 보다 좋은 전투기를 만들어 드리겠소,,!”
이렇게 큰소리를 치자 영국 무기사절단은 사정이 절박했던지라…
“ 만약 생산된 전투기가 그보다 좋다면 바로 3백대를 구매하고 만약 그보다 떨어진다면 계약은 파기”
한다는 약속만 하고 바로 계약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계약을 한지 117일만인 1940년 10월26일 노스아메리카의 첫 시험기가 힘차게 하늘을 날아오르게 됩니다.
NA-73이라고 명명된 시제기는 영국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멋진 시범비행을 실시했고 최고속도가 P-40보다 무려 시속 40km가 빠른 최고시속 640km를 기록했습니다.
[ 영국무기사찰단과 그 계약을 한지 117일만인 1940년 10월26일 노스아메리카의 첫 시험기가 힘차게 하늘을 날아오르게 된다 .NA-73이라고 명명된 시제기는 영국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멋진 시범비행을 실시했고 최고속도가 P-40보다 무려 시속 40km가 빠른 최고시속 640km를 기록으며 전체적으로 매우 인상적인 성능을 보여준 기체로 영국무기사찰단은 그자리에서 320대를 계약해버린다. 사실 이 전투기는 갑자기 만들어 진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계획중에 있던 기체로 때맞침 영국무기사찰단이 전투기를 필요로 한데서 제안한것인데 운때가 잘 맞추어진 것이다. 초기형은 외형적으로 P-40 을 상당히 닮아 있는데 이로인해 카피혐의까지 의심받기도 하였지만 카피는 아니고 참고정도..무스탕의 설계중 가장 어려웠던 풍동실험장치가 없어 (예나 지금이나 항공기 제작에 풍동장비는 기본중 기본이다) P-40 데이타를 그대로 갖다 썼다고 하나 후에 이 데이타 마져 정식으로 사들이게 되어 카피혐의는 대부분 벗게 되었다고 한다]
일단 시험비행의 결과는 매우 만족할 만한 것이었으며 영국측이 제시한 조건에 대부분 충족하고 있었으므로 노스아메리카사는 약속대로 영국으로부터 즉시 발주를 받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하여 영국측으로부터 Mustang Mk. I 이라고 명명된 (노스 아메리칸사의 제식명칭은 P-51A) 이 야생마는 320기의 발주를 받아 생산되는 족족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실려가게 됩니다.
[약속했던대로 P-51의 시험비행의 결과는 매우 만족할 만한 것이었으며 영국측이 제시한 조건에 대부분 충족하고 있었으므로 노스아메리카사는 약속대로 영국으로부터 즉시 발주를 받는데 성공했다. 영국측으로부터 Mustang Mk. I 이라고 명명된 (노스 아메리칸사의 제식명칭은 P-51A) 이 야생마는 320기의 발주를 받아 생산되는 족족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실려가게된다]
이로써 영국군은 저렴한 가격에 P-40 보다 뛰어난 전투기를 획득하게되었고 당시 신생항공사인 노스아메리카사는 멋지게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하면서 항공사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되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 됩니다.
영국에서 조련된 야생마 P-51 Mustang
급한대로 P-40 대신해 전장에 투입된 Mustang Mk.I 은 전반적인 성능은 매우 만족할만하였고 확실히 P-40 보다는 뛰어난 기체인 점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딱 한가지만 빼고..
[영국으로 수출된 Mustang Mk.I 은 전반적인 성능은 매우 만족할만하였고 확실히 P-40 보다는 뛰어난 기체인 점은 확실해 보였다 다만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Mustang Mk.I에 (미국명 P-51A) 장착된 미국제 엘리슨 엔진으로는 저공에서 성능을 탁월했지만 고도가 높은 고고도에서는 급격한 성능저하를 가져오는 것이 문제로 4만미터 이하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은 성능을 보였지만 9만미터 이상에서는 헐떡이기 시작하면서 제성능을 못내는게 단점이였다. 아쉬운대로 영국군은 저공에서 아군을 호위하거나 적기를 쫓는 용도로 사용하게 되지만 아쉬운 부분은 끝내 아쉬운점..]
그 한가지란 다름아닌 미국에서 개발되어 Mustang Mk.I에 (미국명 P-51A) 장착된 미국제 엘리슨 엔진으로는 저공에서 성능을 탁월했지만 고도가 높은 고고도에서는 급격한 성능저하를 가져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초기 무스탕에 장착된 엘리슨 엔진은 저공에서만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는 엔진으로 (무스탕 MK.I은 고도 4.2km(1만4천 ft)에서라면 최대 615km/h(382mph)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다른 비행특성도 노스 아메리칸이 장담하던 대로 P-40보다 나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고고도에서의 성능은 떨어지는 편이었으며, 고도 9.1km(3만 ft) 이상까진 올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유럽전선에서는 이런 높은 고도에서 공중전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에 영국군 입장에서는 무스탕 Mk.1을 본격적인 전투기로 쓰기엔 부족했으나, 그래도 이 전투기는 지상공격이나 적 공격기를 쫓아내고 부족하나마 고성능 전투기들을 돕는 보조 전투기로서는 손색이 없는 성능이었다.) 이로인해 한동안 수입된 Mustang Mk.I에 (미국명 P-51A) 은 모두 저공에서의 공중지원임무기체로 돌려져 사용되게 되었다]
그 문제는 엘리슨엔진의 츨력저하 때문이였는데 초기 무스탕에 장착된 엘리슨 엔진은 저공에서만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는 엔진으로 (무스탕 MK.I은 고도 4.2km(1만4천 ft)에서라면 최대 615km/h(382mph)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다른 비행특성도 노스 아메리칸이 장담하던 대로 P-40보다 나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고고도에서의 성능은 떨어지는 편이었으며, 고도 9.1km(3만 ft) 이상까진 올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유럽전선에서는 이런 높은 고도에서 공중전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에 영국군 입장에서는 무스탕 Mk.1을 본격적인 전투기로 쓰기엔 부족했으나, 그래도 이 전투기는 지상공격이나 적 공격기를 쫓아내고 부족하나마 고성능 전투기들을 돕는 보조 전투기로서는 손색이 없는 성능이었다.) 이로인해 한동안 수입된 Mustang Mk.I에 (미국명 P-51A) 은 모두 저공에서의 공중지원임무기체로 돌려져 사용되게 됩니다.
이는 미육군항공대에서 주문된 기체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미육군은 이들 기체가 급강하폭격에 유효한 사실을 알고 A-36 아파치란 이름으로 급강하 공격기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무스탕이 고고도에서 약한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스탕에 탑재된 엔진인 엘리슨의 V1710이 저고도에 특화되어 있는 모델이기 때문인데 최대 1150마력의 힘을 낼 수 있는 이 V1710은, 최대 출력만 놓고 보자면 동시기의 다른 전투기들이 사용하던 엔진에 비해 특별히 약한 편이 아니었지만 비행고도만 높아지면 힘이 약해졌습니다.
애당초 V1710은 고고도 비행을 그리 중요시 하지 않고 설계된 엔진이다 보니 수퍼차저의 성능이 높지 않았습니다.
이에 영국공군은 당시 스피릿화이어에 장착되던 머린 61(Rolls-Royce Merlin 60 series) 엔진을 장착해보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초공업력이 강한 영국은 특히 엔진에 관한 절대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롤스로이스사는 당시 소형이면서 최고의 성능을 내는 엔진을 만들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 롤스로이스 머린61형이 ( (Rolls-Royce Merlin 60 series)엔진이 바로 그것이였는데 이 엔진은 스핏화이어를 비롯 모스키토등에 장착되던 우수한 항공기용 엔진이였다]
그랬더니…새롭게 개조된 머스탱은 기존의 머스탱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성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마치 이 엔진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엔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죠..
영국제 머린엔진을 장착한 머스탱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속 704km 라는 경이적인 속도를 보여주게 됩니다.
[영국에서 제작된 머린엔진을 장착한 머스탱은 전혀 다른기체로 여겨질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었으며 영국제 머린엔진을 장착한 머스탱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속 704km 라는 경이적인 속도를 보여주게 된다. 이 엔진의 장착으로 무스탕의 문제였던 고고도 에서의 엔진출력 저하 문제 역시 전혀 발견되지 않아 오늘날 우리가 아는 궁극의 전투기로 다시 탄생하게 된다 놀라운 발견을 한 영국공군은 이를 Mustang Mk. II 라 부르며 곧바로 자국의 롤스로이스 머린 엔진(Rolls-Royce Merlin 60 series) 을 미국의 팩커드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여 탑재하여 생산해줄 것을 주문하는 한편 2천대라는 대규모 물량을 추가 주문하게 된다 사진이 팩커드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여 무스탕에 탑재되기 시작한 멀린-패드사 엔진의 모습]
또한 고고도 에서의 엔진출력 저하 문제 역시 전혀 발견되지 않아 오늘날 우리가 아는 궁극의 전투기로 다시 탄생하게 됩니다.
영국공군은 이를 Mustang Mk. II 라 부르며 곧바로 자국의 롤스로이스 머린 엔진(Rolls-Royce Merlin 60 series) 을 미국의 팩커드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여 탑재하여 생산해줄 것을 주문하는 한편 2천대라는 대규모 물량을 추가 주문하게 됩니다.
[영국공군은 자국의 롤스로이스 머린 엔진(Rolls-Royce Merlin 60 series) 을 미국의 팩커드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여 탑재한 기종을 Mustang Mk. II 라 부르며 곧바로 생산해줄 것을 주문하는 한편 2천대라는 대규모 물량을 추가 주문하게 된다 한편 미육군도 막상 전쟁이 터지면서 참전하게 되자 마땅한 전투기가 없었는데 영국군이 이를 개량하여 채용하자 바로 따라서 P-51B형이라 이름 붙이고 정식채용하기 이른다. 이는 독일공군으로서는 불행의 시작이였다]
궁극의 전투기 MUSTANG D 형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 장착으로 전혀 새로운 전투기로 재탄생한 머스탱은 이후 빠른 개량이 실시됩니다.
롤스로이스 엔진을 미국의 팩커드 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여 장착한 타입인 P-51B 형을 시작으로 영국식 무장 (기수에 caliber 50 12.7mm 기관총 2정, 주익에 브라우닝 7.7mm 기관총 4~6정) 과는 달리 주익에 12.7 밀리 Cal 50 기관총 4정을 장착한 타입을 미군에 납품하기 시작합니다.
[단지 엔진하나만 바꾸어줬을뿐인데... 새롭게 멀린엔진을 장착한 머스탱은 전혀 다른 기체로 변신하는데 성공했고 이후 무장과 운용중 드러난 문제점을 개량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롤스로이스 엔진을 미국의 팩커드 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여 장착한 타입인 P-51B 형을 시작으로 영국식 무장 (기수에 caliber 50 12.7mm 기관총 2정, 주익에 브라우닝 7.7mm 기관총 4~6정) 과는 달리 주익에 12.7 밀리 Cal 50 기관총 4정을 장착한 타입을 미군에 납품하기 시작한것]
특히 주익의 무장을 6정으로 늘리고 외부연료탱크 장착으로 항속거리가 최대 3,347km 에 달하는 C형도 이어 등장하게 됩니다. 이 B/C형은 총 3,748기나 생산되게 됩니다. 영국도 P-51B/C를 Mustang Mk.III라는 이름으로 도입했습니다.
[특히 주익의 무장을 6정으로 늘리고 외부연료탱크 장착으로 항속거리가 최대 3,347km 에 달하는 C형도 이어 등장하게 되는데 이 B/C형은 총 3,748기나 생산되게 됩니다. 영국도 P-51B/C를 Mustang Mk.III라는 이름으로 도입합니다. B/C형형의 활약상은 아래 동영상참고!!]]
하지만 무엇보다 궁극의 머스탱으로 불리는 기종은 역시 D형으로 궁극의 성능을 추구한 기종이자 가장많은 생산대수를 자랑하는 기종이 바로 D형이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궁극의 머스탱으로 불리는 기종은 역시 D형으로 궁극의 성능을 추구한 기종이자 가장많은 생산대수를 자랑하는 기종이 바로 D형이였다. 무스텅의 전 씨리즈중 완성도도 높고 그만큼 성능도 우수했던 기종 이다]
새로운 엔진 장착으로 전혀 새로운 전투기로 재탄생한 머스탱 이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캐노피의 시야가 썩 좋치 못하다는 점이였습니다.
[D형의 외형적 차이로는 물방울식 캐노피 (Buble Canopy) 가 도입되었다는 점으로 이는 바람의 저항면에서도 우수했고 특히 후방의 시야가 확 트이는 장점이 있었다]
[버블탑 방식의 캐노피는 스핏화이어 나 P-47D 형에 시범적으로 적용되었는데 효과가 이외로 좋아 머스탱에도 도입된것 프레임이 없고 팍트여 시야가 엄청 좋아졌고 또한 물방울 형태의 유선형이라 바란의 저항도 적었다 무엇보다 외형적으로 상당히 보기좋게 다듬어 졌다는게 ^^]
초기 머스탱 들은 레이저백 (Razorback)형 이라 불리는 캐노피를 장착하였는데 이 캐노피는 후방의 시야가 막혀버리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기존 B/C형의 캐노피는 흔이 레이져백이라 불리는 창살형 프레임이 붙은 캐노피였다]
[레이져 타입은 이처럼 창틀로 인해 가려지는 사선 부분도 많고 특히 6시 방향은 동체에 가려져 볼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리하여 당시 스피릿화이어나 P-47D 썬더볼트 등에 탑재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던 물방울 형태의 물방울 (bubble)형 캐노피가 도입되어 시야가 훨씬 좋아진 D형이 등장하게 됩니다.
[반면 버블탑 방식의 캐노피는 이처럼 프레임이 없어 사선이 생기지도 않았으며 전방위 감시가 가능한 장점이 있었다]
[D형에 장착된 버블탑 방식의 캐노피에서 후면을 바라본 시야.. 전혀 어려움이 없이 시야를 확보할수 있어 공중전에서 적보다 먼저 발견할 가능성을 높여준 획기적인 변화중 하나였다]
D형은 머스탱의 궁극의 타입이라 불리는 타입으로 물방울 캐노피를 도입하여 기체의 라인이 더욱 세련되어진게 특징입니다.
[D형으로 오면서 외형적으로 더 세련되어 졌으며 공기역학적으로도 더 안정적으로 변화하였는데 머스탱의 또다른 문제점이였던 연료탑재량에 따라 변화하는 균형점을 맞추기 위해 수직미익부터 동체로 이어지는 도셜핀이 추가된것도 D형의 특징중 하나이다]
또한 기존버젼들의 문제점중 하나였던 급기동시 잼이 걸리는 주익의 기관총 급탄부에 모터방식의 급탄기를 사용 하고 기관총을 수평으로 배치하는등 잼 현상을 없애는등 궁극의 전투기로 불리우게 됩니다. 거기에 무장도 기존의 12.7밀리 각4정에서 6정으로 늘려 총 6문의 12.7밀리 기관총을 장착 화력을 늘릴수도 있었습니다. (기존의 B/C버전은 각 3정씩 총 6문을 장착..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일수 있어 때론 이 무장을 선호하는 조종사도 있었다)
[D형부터는 C형에 일부 도입되었던 6문의 12.7mm 기관포가 고정화 되었는데 이는 영구공군기에 장착된 하스파노 20밀리 기관포보다는 공격력은 떨어졌지만 탄약수가 월등히 많았는데 바깥쪽 4정 각 250~70발 안쪽 2정 각각 400발 로 2천여발에 달하는 막대한 탄약으로 탄막을 펼칠수 있어 젖기에 관한 명중성은 오히려 더 우수했다고 한다]
[P-51D의 기관총 배치도. 한쪽 날개에 3자루씩, 총 6자루의 기관총을 가졌다. 또한 P-51B와 달리, P-51D는 기관총을 똑바로 배치하여 고질적인 기관총 고장 문제를 해결했다.]
[탄약을 장착중인 병사의 모습 D형으로 오면서 각 주인데 3문씩 총 6문의 12.7mm M2 브라우닝 기관총을 장착하였는데 이는 지상용으로 사용되던 것을 개량한것으로 공중에서 빠르게 기동하는중에 사용되기 때문에 냉각에 신경쓸 필요가 없는대신 총신의 길이를 늘리고 발사속도를 빠르게 한것이 다르다.이는 영국공군이 사용하는 하스파노 20밀리 기관포나 독일군의 13~20밀리 기관포보다는 효과는 적었지만 작은총알을 분당 800발 이상을 뿌려댈수 있어 단기간에 강력한 탄막을 펼치기 좋았고 이외로 직진성과 철갑탄을 사용시 효과도 우수해 거의 미군전투기의 표준부장으로 사용되었다]
[D형에 있어 차이점중 하나는 당시 최신의 K14 조준경을 장착했다는 점으로 이는 간단한 탄도계산기가 장착된 것으로 흔히 이를 가르켜 에이스 제조기라 불르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
[영국의 허리케인 전투기가 320m 앞의 독일 전투기, Fw190를 추적하고 있다. 사진에서 표적 주변에 잘 보면 몇 가지 점들이 표적을 둘러싼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사진 오른쪽 위의 다이아몬드와 점으로 구성된 조준점으로, 조준기가 적기의 거리와 각도를 계산한 상태에서, 이 다이아몬드 안쪽 원에 적기의 날개가 가득 차도록 조준한 다음 발사하면 적기에게 예측 사격을 하게 된다. 사진을 잘 보면 조준기의 마크가 중앙이 아니라 옆으로 치우쳐 있다. 즉 현재 상황에서 기총은 적기보다 훨씬 앞쪽을 향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이 상태에서 기총을 발사하면 총알들은 적기와 만나게 된다. 즉 조종사는 자연스레 예측 사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속의 조준기는 영국의 Mk.II이나, 무스탕이 사용한 K-14와 거의 유사하다.]
P-51D형은 이후 대량 생산되어 계속 전쟁에 투입되었으며 영국군도 Mustang IV라는 이름으로 도입하여 사실상 전체 머스탱을 대표하는 기체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군사전문가들은 P-51D형을 진정한 머스탱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숫자상으로도 머스탱의 총 생산기수 15,586 기의 절반을 넘는 7,956기가 생산되는등 머스탱 하면 가장 이미지가 강한 기종으로 인기가 높은 기체중 하나 입니다.
[2차대전중 생산된 P-51 기체들의 생산량을 나타낸 표 후기형 모델인 D형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잘 알수 있다]
[머스탱은 D형에 이르러 궁극의 완성을 보았고 생산대수도 가장 많았다. 외형적으로도 가장 잘 다듬어 졌으며 공기역학적으로나 항속거리면 그리고 공중기동력등 모든면에서 기존의 전투기들과 차원이 다른 전투기였다]
D형은 높은 성능으로 인해 존 메이어(John C. Meyer),조지 프레디 등 많은 에이스를 배출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Me-262 를 대상으로로 많은 격추를 올리는등 (주로 속도가 떨어지는 이착륙 때 격추한 거지만..) 많은 활약을 하게 됩니다. 특히 머스탱은 특유의 긴 항속거리로 인해 4발 중폭격기의 가드로 많은 활약을 하게 되는데 당시 머스탱의 항속거리는 웬만한 폭격기들보다 월등하거나 맞먹는 수준이라 독일을 폭격하는 4발 폭격기들의 수호천사로서 인기도 높았습니다. 물론 독일공군 입장에서는 공포의 은빛사신으로 불리기도 했지요..
[머스탱 D형의 등장으로 머스탱을 탄 에이스도 증가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에이스중 하나가 조지 프레디(George E. Preddy)는 미해군의 비행사에 지원했으나 약한 체력으로 세번이나 낙방후 간신히 미육군 항공대에 지원 합격 천신만고끝네1942년 10월, 프레디가 조종사로서의 명성을 본격적으로 얻게 되는 비행대인 352 전투 비행단 소속 487 비행대에 배속되었다. 당시 비행대장이며 전설의 에이스 존 메이어(John C. Meyer)는 처음에 프레디를 보고, 아주 평범한 조종사로 생각했다고 한다, 왜냐면, 체구도 작고, 너무 유순해 보이는 첫인상이 전투기 조종사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이곳에서 승승장구하게 되는데 주력기체인 P-47을 탔으며1943년 7월, 프레디가 속해 있던 제 352 전투 비행단, 일명 "보드니의 푸른 코의 사생아들" (Blue-Nosed Bastards of Bodney ; 보드니는 그들이 당시 기지를 두고 있던 지명이며, "푸른 코"란 그들의 전투기 카울링 부위를 푸른 도색을 해서 얻은 별명, 마치 JG 26이 노란코의 아브빌의 아이들이라고 불리운것 처럼..... 비행대에는 "사생아"들이라는 별명이 많네요.... 사실 보잉톤이 이끈 "검은 양 비행대"도 원래 별명은 "보잉톤과 그의 사생아들"이었고, JG 26의 또 다른 별명이 "아브빌의 사생아들"이었으니...^.^)은 드디어 보드니에 기지를 세웠다. 프레디는 1943년 9월 드디어 유럽 전선에서의 첫 임무 비행에 들어갔고, 그해 12월 1일, 드디어 자신의 첫격추 기록을 세우게 되는데, 제물은 독일의 Bf 109 전투기였다.
[그로부터 3주후, 그는 다시 한대의 격추를 더 기록했다. 이때 프레디는 4기의 P-47로 구성된 편대를 이끌고 B-24 폭격기 호위 임무를 수행중이었는데, 독일 10기 이상의 Bf 109들이 미군 폭격기들을 공격해 온 것이다.
프레디는 1기의 P-47로 하여금 고공에서 커버 플레이를 일임하고, 나머지 3기를 이끌고 적기에게 뛰어들었다. 곧 치열한 공중전이 시작되었고, 이 와중에 프레디의 윙맨, 리차드 그로우(Richard Grow)가 선회전을 하다가, 편대에서 이탈되어, Bf 109들의 집중 공격으로 격추되었다.
프레디는 B-24 폭격기들을 공격하고 있던 독일기들을 유인해, 그중 1기를 격추해내고, B-24들의 데미지를 줄인 것이다. 이공로로 그는 "은성 훈장"(Silver Star)을 수여 받았다]
[1944년 5월을 기해, 352 전투 비행단은 주력기를 P-47에서 P-51 무스탕으로 교체했다. 얼마후인 5월 13일, 프레디는 자신의 5번째 격추를 성공시켜, 명실상부한 에이스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탑건의 자리에 있던 가브레스키가 포로가 되고, 로버트 존슨이 귀향하면서, 그후 몇개월간 프레디는 유럽 전선의 미국의 선두 에이스로 등극하게 된다. 1944년 12월25일 발지전투의 지원을 나갔다 어이없게 아군의대공포에 격추되어 잔사할때까지 그가 올린 격추수는 총 24기로 유럽전선 미육군 항공단 격추 3위의 에이스 였다]
[그가 몰던 무스탕은 파란색의 코로 유명한 프레디가 속해 있던 제 352 전투 비행단, 일명 "보드니의 푸른 코의 사생아들" (Blue-Nosed Bastards of Bodney ; 보드니는 그들이 당시 기지를 두고 있던 지명이며, "푸른 코"란 그들의 전투기 카울링 부위를 푸른 도색을 해서 얻은 별명) 기체로 이부대에는 특헤 에이스가 많았다 그 부대를 이끌던 부대장이 전설의 존 메이어(John C. Meyer 유럽전선 미군 4위 랭크 에이스) 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후반에 머스탱D형으로 교체하면서 에이스가 증가한점도 특이할만하다]
[ 존 메이어(John Charles Meyer (April 3, 1919 – December 2, 1975)는 유럽방면 에이스 부대인 352 전투 비행단 소속 487 비행대의 비행대장이였다. 그는 비록 총 격추수 4위에 불과하지만 우수한 비행술과 비행전술을 가진 조종사로 수많은 에이스를 배출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조종사이다 ]
[존 메이어(John C. Meyer 유럽전선 미군 4위 랭크 에이스)의 기체칼러.. 역시 푸른색의 코를 하고 있으며 이는 이부ㄷ의 전통과 같았다. 타미야나 하세가와 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어 잘 알려진 기체이다]
[그는 2차대전을 비롯 한국전쟁에도 참전했으며..]
[훗날 미육군항공대에서 분리된 미공군의 참모총장까지 되는 참군인이였다.]
[한편 잘 드러나지는 않치만 2차대전 에이스중 한사람이자 인류최초로 음속을 돌파한 척예거도 무스탕의 이스중 하나였다고.. 그에대해서는 아래에 정리~]
2차 대전에선 미 육군 항공대 파일럿으로 11.5대를 격추시켰고, 1945년 2월 전장에서 미 본토로 돌아와 종전 이후에는 미 공군 소속 테스트 파일럿이 되어 1947년 10월 14일 벨 X-1 실험기[2]로 세계 최초로 고도 13,700 m에서 수평비행으로 마하 1을 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으니... 비행 이틀 전 말을 타다 넘어져 갈비뼈가 2개나 부러졌는데 비행을 못할까 봐 수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고 부인과 친구에게만 이야기 했다고. 흠좀무.
2차대전 당시 통산 1킬 후 프랑스 상공에서 격추당했는데,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탈출해서 복귀했다. 원래 이런 귀환자들은 작전중 다시 격추 당해 나치스의 포로가 되면, 독일의 우월한 고문기술에 의해 레지스탕스에 대해 이것 저것 다 불어버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으므로 전투 임무에서 배제되었는데,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잡힐것 같으면 자결하겠다' 고 직접 청원하여 다시 전장으로 복귀, 나머지 10.5킬을 달성했다. 개중에는 제트 전투기인 Me-262도 한대 포함...
참고로 모든 비행기에 Glamorous Glennis라고 쓰는 버릇이 있었는데 부인 Glennis Faye Dickhouse의 이름이라고...[3]
1969년 준장으로 진급, 1975년 퇴역했다. 고졸의 사병 출신으로 준장까지 진급한 흔치 않은 케이스. 2차대전 중 파일럿의 부족으로 사병 중에서 파일럿을 모집해서 훈련시킨 후 부사관(Flying Sergeant)으로 임관시켰는데, 전투기 정비병이다가 여기 선발되었다고. 2차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대위까지 진급했다. 뉴타입이냐...[4] 본인의 자서전에 의하면 이런 경력 때문에 알게 모르게 차별을 좀 받은 모양이다. 결정적으로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선발시 대학졸업장이 없어서 애시당초 지원도 못 했다.[5] 하지만 우주비행사 학교 교장(자서전 번역본-임무는 비행사들 평가였던 듯)을 역임했다. 그리고 비행사 자질 평가에 대해선 나름대로 확고해서 흑인 비행사 뽑으라는 지시에 비행사 지원 인원 중에서는 우수한 흑인 비행사는 없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인종 차별이 아니라 그 때 흑인 교육생 실력이 모자랐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독일 근무시 흑인 조종사와 같이 근무 했던 적이 있고 그들보다 못하다고 평가한다.
이 양반의 조종사, 특히 테스트 파일럿으로서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무식한 시력 쌍안경을 능가한다고 하며, 전투기에 레이더가 없던 2차대전 당시 지평선에 아른거리는 적기를 맨눈으로 포착하여 공격한 적이 여러번 있다고 한다. 사슴 사냥도 좋아하는데 노인이 된 지금에도 조준경 없이 저격 수준의 사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인간 AWACS? 연방의 파일럿은 뉴타입이란 말인가
정밀한 조종능력 비행학교 시절, 비행기의 고도와 속도를 자동으로 모눈종이에 기록하는 장치를 한 채 비행을 한 적이 있는데, 자로 대고 그은 것 같은 선이 나왔다고...
악운에 강한 점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격추되든, 사고가 나든 반드시 살아남아서 돌아왔다. 특히 과거에는 원격감시장치나 블랙박스가 부실했기 때문에 조종사가 살아남아야만 사고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F-100 슈퍼 세이버 전투기의 경우, 초기 모델에서 원인 불명의 추락 사고가 많았는데, 이 양반이 살아 돌아오는 덕에 조립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음을 알아냈다고.
가끔 에어쇼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1997년에는 음속 돌파 50주년 기념으로 F-15D를 타고 플라이바이를 펼치기도. 취미로 낚시를 즐기면서 잘 지내는 모양이다. 2000년에 등산하다 36세 연하의 여성을 만나 재혼;;; 2005년에는 국회 청원에 의해 예비역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강연이나 책 등으로 번 돈도 있고, 결정적으로 특정 전투기[6] 제작사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적도 있어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인생의 승리자.
지금은 자기 사인 들어가있는 물품을 프리미엄 붙여서 팔고 있다. 우표나 사인 새긴 자기 동상, 여러 물품을 파는데, 동상 가격이 무려 1만 달러…. 흠좀무. #이 정도면 샬롯 피규어 팔아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데
1990년도에는 그의 이름을 딴 비행 시뮬레이션도 나왔다. 한국 출시 제목은 '척 예거의 공중전'. 적들이 시대에 걸맞지 않는 뛰어난 AI를 가지고 있는데 놀랍게도 학습 기능이 있어서 플레이어가 자주 쓰는 공중기동에 대응까지 한다고 한다. 고전게임중 흔치 않은 비행 시뮬레이션 계열에선 명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정발은 동서게임채널이 맡았는데 동봉된 매뉴얼이 매우 개념넘치는 수작이었다.
이 굇수 뉴타입 양반도 결국은 모에선 맞아서 아직 생존해있는데도 불구하고 스트라이크 위치스의 주역급이자 스피드를 사랑하는 샬롯 E. 예거가 되었다. 그것도 큰 슴가에 나이스 바디인...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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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속도 기록은 수평 상태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100m 경주 기록이 내리막길을 인정하지 않듯. [2] 폭격기에서 투하되어 미사일처럼 로켓 엔진으로 비행하는 비행기였다. [3] 사모님 성만 봐도 얼마나 글래머러스(한국에서의 뉘앙스와는 다르게 영어에서는 '매력적인'이란 뜻.)하실지 짐작이 안 간다...dick의 house흠좀무 [4]아무로 레이조차도 1년전쟁 종전시 소위였는데... [5]머큐리 우주비행사의 자격 요건에는 대졸인 미군 파일럿이라는 항목이 있다. [6] 이때 밀었던 전투기가 F-20, 우리나라에 팔아먹으려다 시범 비행 중 추락한 그놈;;;
머스탱은 대전중 탄생한 연합군 및 독일군을 통털어 최고의 전투기로 불리는 기체로 총 55개국이상 국가에서 사용되어졌으며 총15,000 여대 이상이 생산된 전무후무한 전투기였습니다.
특히 1차 중동전에는 이스라엘의 BF-109 등과 전투를 치루기도 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에는 유엔군의 근접지원기로 애용되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미그15기를 20여대나 격추하는등 맹활약을하는 한편 우리나라 공군 최초의 전투기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2차대전이 종전된후에도 머스탱은 퇴역하지 않고 주방위군의 기체로 활약하였는데 1950년 한국전쟁이 발생하자 유엔군의 지원기체로 한국에 상륙 주력기체들이 제트전투기들로 바뀌자 한국공군에 공여되어 한국공군의 초초이 전투기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1951년 평양폭격중 한장면으로 외부연료탱크를 투하하며 공격임무에 들어가는 광경이다. 미그15등의 제트전투기가 등장했음에도 불구고하고 여전히 머스탱은 유효한 공격기로 맹활약하였으며 승리교 폭파작전등이 이들 임무로 유명했다]
[한국전쟁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호주군도 초기에는 무스탕을 사용햇는데 점차 이들 기체가 미티어등의 제트기로 바뀌면서 남는 기체를 한국공군에 이관해주기도 하였다 아이고 고마워라~~]
한국전쟁에서는 이미 제트전투기들이 전투의 주역이 되어있었으므로 주로 전선통제기나 근접지원임무기체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신념의 조인이라는 마크로 유명한 기체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만화참고)
[한국공군에 있어 특히 최초의 노즈아트를 한 기체로도 유명한데 한국공군에 조종솔을 가르키는 임무인 바운트부대의 교관 헤스소령의 퍼스널마킹이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념의 조인' 이였기 때문이다]
헤스소령과 신념의 조인에 대한 일화는 아래 카툰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머스탱은 비행기 매니아들에게 최고의 인기기체로 사랑받는 기체중 하나 입니다.
대전중반에 등장하여 초기에는 빈약한 엔진으로 주목받지 못한 기체였지만 영국제 멀린엔진의 장착으로 기사회생 종전까지 미공군 및 영국군의 주력전투기로 많은 사랑을 받은 대기만성형 기체로 뛰어난 고속성능과 독일본토까지 중폭격기를 호휘할 수 있는 긴 항속거리 거기에 총 8문의 기관총과 다양한 무장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전투기로 2차대전중 가장 뛰어난 전투기로 기록되며 오늘날까지 많은 대수가 보존되어 날아다니고 있는 레시프로 전투기의 전설과 같은 기체가 바로 머스탱 입니다.
[2차대전중 머스탱만큼 멀리날고 또 높은 고도로 날수 있는 기체는 드물었다. 유일하게 4발중폭격기를 엄호해 독일본토까지 왕복할수 있는 기체였으며 우수한 성능과 가동력으로 수많은 에이스를 배출했던 기체가 바로 머스탱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