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을 이긴 발라드 이문세
이문세는 매체와의 인터뷰에 인색하다. 만나려면 꽤 공을 들여야 한다. 왜 인터뷰를 자제하느냐고 묻자"일부러 꺼린 게 아니라 할 말이
없어서 그랬을 뿐, 방송에서 공연에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니까요"라고 답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선택했다.
방송진행자로 화려한 경력을 쌓은 인물답게 솔직하면서도 잘 여과된 언어들이 그 둘레를 친다.
2002년 앨범 <빨간 내복>과 2006년 <발칙한 여자들OST>등 앨범 발표는 더디지만, 공연에 관한 한 전성기 그대로다.
10년을 넘긴 독창회의 지속적 성공과 소극장에서 하는 독창회인 소창회에 이어<붉은 노을>공연으로 매진과 연장이라는 대박을 치고 있다.
2011년으로 그는 데뷔 30년을 맞이했다. 서른 해를 활동한 가수가 펄펄 뛰고 있는 셈이다. 오래된 미래라는 수식이 적당하다.
<붉은 노을>이라는 타이틀은 아이돌 그룹 빅뱅에 의해'붉은 노을'이 리메이크되어 열렬히 사랑받은 것을 활용하고,
그 곡의 오리지널 가수가 바로 이문세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는다. 물론 기성세대와 젊음을 동시에 잡으려는 의도다.
리메이크는 이문세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배가수들이 많은 선배 가수 가운데 유독 그의 것을 집중공략했다.
1인집중형 리메이크 태풍이다. 빅뱅의 '붉은 노을' 훨씬 이전인 2000년대 초반 이수영의 '광화문연가','성시경의 '소녀',
서영은의 '가을이 오면' 등 이문세 노래 리메이크가 쏟아져 나왔다. 이 무렵 최고 인기그룹 신화도 '붉은 노을'을 불렀다.
서영은은 ' 이별이야기', 리즈 역시 '난 아직 모르잖아요'와 '굿바이'두 곡을 리메이크했다.
김범수도 자신의 리메이크 앨범에 '오래된 사진처럼'을 수록해서 대열에 합류했다.
남녀 솔로와 그룹을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마치 경주하듯 이문세의 지나간 1980년대 명곡들에 덤벼든 기이한 형국이었다.
오리지널 가수가 주목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간접적 경로로 다시 유명해졌다고 할까. 이런 식으로 강력하게 재평가 된 일은 우리
대중음악역사에서 흔치 않은 사례라는 점에서도 그는 화제의 꼭짓점으로 솟아났다. 당시 한 신문은 "리메이크 히트하려면 이문세 노래를
불러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으며, 진행하던 라디오프로를 통해 "이러다가는 내 노래 다 동나겠다.
제발 그만 좀 불러 달라!" 며 하소연할 정도였다.
후배가수들이 다투어 이문세 노래를 리메이크하고 있습니다.
정도가 조금 심하지요. 왜 후대가수들이 그토록 이문세 곡에 집중하는 이유는 뭘까요?
"내 노래가 만만하니까요. 지금 인기가수들의 청소년기, 그러니까 음악을 접하기 시작하던 때 제 음악이 있었죠.
실제로 저한테 와서도 후배들이 '형 노래듣고 자랐어요. 평소에 부르고 싶었어요!'라고 해요. 근래 음악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신곡에 대한
불안감이 있고, 또 침체를 돌파하는 안전한 방법이 리메이크잖아요. 이수영의'광화문연가'가 성공한 이후로 상업적 이유도 많이 가세한다고
봅니다. "'광화문연가를 듣고 처음에는 낯설었어요. 하지만 이수영만의 맛을 잘 살렸죠.
제 노래 리메이크의 시작은 2000년 조성모의 '깊은 밤을 날아서'인데 그 곡에 대해선 솔직히 반감이 생기더라고요. 완전히 다르게 가든가,
나도 깜짝 놀랄 만큼 해주든가 기대를 했는데 실망했죠.'이 노래는 놔두지 하는 곡도 있고,이 노래는 재해석을 잘했다'는 느낌이 교차합니다
너무 잦은 리메이크라 걱정은 안 되나요?
"우리 세대는 이문세곡이 갖는 신비감이랄까, 그런게 들추어지는 것 같아서 싫다는 반응도 있어요. 우려는 되는데요, 하나의 패션이라고
봅니다.오래 가지는 않을 거예요. 참 유리상자는 제 노래만으로 된 리메이크 앨범을 고려한다는군요. 그렇게 많이들 도전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들어보면 제 노래에 빈 구석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후배 입장에서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생기는
생기는 거죠.좀 전에 '내 노래가 만만해서'라는 표현은 그래서 쓴 겁니다."
막상 부르기는 결코 쉽지 않은데.
"리메이크했던 가수들이 저한테 머리를 조아려요. 이수영도 생각보다 어렵더라, 듣기는 만만한데 맛을 내기가 쉽지 않더라고 하더군요.
그럴 때 제 노래에 대해 조금의 자부심을 갖습니다. 수준이 떨어지는 곡이라면 그토록 많은 가수가 부르지는 않았겠죠."
후배가수들 덕분에 재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간접 전성기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행복합니다. 먼저 작곡가 이영훈 씨의 곡을 잘 소화했든 못했든 이영훈의 음악세계가 세월이 흐르면서 더 빛을 본다는 점에서
행복하고요. 리메이크 열기는 분명 이영훈 멜로디의 승리라고 봅니다. 또 공연에서 신세대들이 내 노래를 인지한다는 점에서도 기쁩니다.
'광화문연가를'를 들으며 엄마와 딸이 동시에 교감하는 장면을 실제로 목격했어요.가족끼리 대화의 코드가 된거죠."
이문세는 MBC 라디오프로 <별이 빛나는 밤에>진행을 맡았던 1985년 갑작스레 최고 가수로 점프했다. 이전 두 장의 앨범이 실패한 뒤
작곡가 이영훈과 콤비를 이뤄 그해에 발표한 3집 앨범에서'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 하나로는 부족했던지 '할 말을 하지 못했죠','소녀','그대와 영원히'등이 라디로를 석권했다.
1987년 4집 역시 '사랑이 지나가면' 그리고 고은희와 듀엣으로 부른'이별이야기'를 비롯해 '가을이 오면','굿바이','그녀의 웃음소리뿐'등
불멸의 히트작을 쏟아냈다.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해에 나온 5집에서도 '시를 위한 詩','광화문 연가','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붉은 노을'등
대박은 계속되었다.그 후 1990년대,2000년대에서도 식지 않은 인기를 과시하면서 이소라와 호흡을 고른 '슬픈 사랑의 노래',
'기억이란 사랑보다'등 인상적인 곡을 냈지만, 이문세의 대첩시대는 1980년대 중후반이었다.
한때는 이문세가 조용필의 인기를 눌렀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지난 80년대는 이문세와 함께 짝지어져 의미가 규정된
시기였다. 때문에 그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이문세의 음악이 추억의 심장부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했다. 2000년대 초반 키워드로 자리를
잡았던 7080붐은 서둘러 이문세를 불러내 80년대에 대한 향수를 낳았다. 그 결과가 리메이크 태풍이었다.
이영훈 음악을 어떤 느낌으로 불렀나요?
"곡마다 다 달랐어요.하지만 전체적으로 그의 곡은 메이저풍이지만 슬픈 멜로디였죠. 이미 슬픈데 슬프게 부를 필요는 없다는 게
저의 포인트였습니다. 그래서 절제해야 했고, 또 절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영훈 음악은 오케스트라 편곡을 하면 클래식이나
다름없습니다. 가수가 유연하게 멜로디를 진행시키면 클래식으로 들리게 되죠. 저는 대중가수고 대중음악의 느낌을 구현해야 했습니다.
'붉은 노을'이 대표적이지만 많은 곡을 뚝뚝 끊어서 불렀죠. 거기서 이문세의 정체성이 나왔다고 봅니다."
이문세 음악이 의미했던 바는 뭘까요?
"굳이 말하자면 우리 가요를 다소 저급하게 생각했던 사람들로 하여금 가요를 듣게 했다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팬레터 중에 실제로 '난 팝만 들었거든요. 가요는 사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하는 내용이 많았어요.국산품 애용을 떠들어도 막상
제품이 불량이면 속상하잖아요.민감한 젊음이 국산품도 좋더라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문세의 수려한(가요계의 말을 빌리자면 뽕 끼가 없는) 팝 발라드가 나오기 전까지 음악 팬들은 팝을 들었다. 그들은 빌보드 톱40순위를
줄줄 꿰거나 아니면, 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에 심취해 서구음악만을 파고 들었다. 가요는 음악 취급도 하지 않았다.
이문세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와 '할 말을 하지 못했죠'가 나온 1985년을 기점으로 마침내 '팝에서 가요로!'의 대역전이 시동을 걸었다.
서서히 라디오도 가요프로로 중심이 이동했다. 이문세의 공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가요가 질적 상승을 하지 못했다면 사람들은 팝을 계속 들었을 것이다. 뽕 멜로디가 아닌 클래식에 바탕을 둔 이영훈의 곡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30대 여성들이 대거 음반시장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문세의 전성기와 맞물린다.
여성 팬들의 트랜드 장악과 과거와 비교했을 때 참혹한 수준의 팝 지분 등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가요계의 단면들은 이문세와 이영훈의
더블, 더 정확을 기하자면, 이문세, 이영훈, 김명곤(이영훈,김명곤 두 사람은 세상을 떠났다)의 트리플 플레이가 그 시작 버튼을 누른 것이다
이문세는 덩치를 불리기 시작한 가요시장의 진정한 출발선이다.
- 가수를 말한다에서 발췌; 임진모지음 " 빅하우스 "펴냄-
첫댓글 소리쳐 부르지만~저 대답없는 노을만 불게 타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