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직도 손가락이 아리다...
고추의 매운 성분이 살갗을 파고들어
상처를 내었는지?
그리고 빗물이 눈에 들어와 그걸 닦아내노라
눈가를 몇번 훔친 것이
눈을 빨갛게 만들어놓고야 말았다.
할매눈은 선녀보다 더 빨갛다.
눈물이 자꾸 고이고~ 아프시단다...
열흘째 비가 그치지 않고 주룩주룩~
어떨땐 천둥번개까지 난리를 치며 쏟아져
아예 농사일을 손놓고 있었는데
고추따기는 시기를 놓치면
다 물러빠지고 병들기 때문에
어서 따야하는데
하도 비가 징그럽게 내리니
물러빠져도 헐 수 없다~ 싶어서
그냥 냅뒀었는데
우리가 그렇게 게으름을 부리고
반 포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부지런한 이웃들은
세번이나 고추를 따서 말렸단다.
비가 그렇게 와도..
우비를 입고 온몸이 다 젖어도...
더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아까운 고추를 그냥 물러빠지게 버려둘 수도
없고 해서
오늘은 비옷을 걸쳐입고 고추밭으로 갔겠다.
비는 오락가락~~
퍼붓다가 이슬비로 바뀌다가
부슬부슬~~ 오는듯 마는듯...
아주~ 장난을 치며 온다.
아이들에겐 고추밭에 뱀나오니까
절대 오지말고
니들 셋이 놀아라~~ 단속해놓고...
고추밭에 올라갔다.
빈 비료푸대를 여러개 들고
빨간 푸대도 몇개 갖다놓고
한 고랑씩 맡아 따 나가기 시작하는데...
아유... 고추밭 고랑속이 벌겋다.
다 물러서~ 그 크고 좋은 놈들이
다 물러빠져~ 그 시체가 즐비하다.
퍼런놈들도 물렀고~ 어린놈들도 물러빠져버렸다.
빨갛다고~ 손으로 잡으면 쑥~ 빠지는 것이
아~ 이놈도 틀렸다.
딴딴하다고 꼭 잡아 꺽으면? 아~ 짜개졌거나
끝이 물렀다...
이래저래 빨간 것은 많으나 딸것이 없는...
희한한 고추따기였다.
할매는 그동안 비온다고 공친 것이 후회가 되시는듯...
고추금이 근당 2000원 밖에 안하는데
애써 딸 것이 무어냐고~
먹을 것만 나오면 된다고~
애써 딸 생각을 안 했었다는데...
결과가 이리 나오니
그래도 아까운 생각이 무지 드시는가보다...
고추잎이 섶이 좋고 고추도 굵고
아주 농사는 잘 되었는데
이노무 하늘이 빵구가 났는지
계속 비를 따루는 바람에..
고추들이 초상을 만났다...
갓골에 있는 고추고랑은 좀 나았고
가운데~ 바람이 잘 들지 않는 곳은 아주 손이
갈 것이 없을 정도로 전멸이었다.
그래도 우짜냐... 딸 것 있나 눈 부릅뜨고
찾아 따야지...
고추꼬다리는 질겨서 잘 안 따지는데
이노무 줄기는 왜그리 약한겨
손만 대면 두두둑~ 꺽어지는 것이
애꿎은 퍼런 고추만 작살내기 딱 좋을 지경이다.
그래도 이놈을 고추섶위에 올려놓으면
자랄놈은 자라고 벌걸 놈은 벌겋게 되기도 한다.
해서 버릴 건 없는데...
고추란 놈이 아주 따기가 거북한거이
키도 어중간하고~
고추가 아래로 달려있기 때문에
퍼질러 앉아서 위를 쳐다보고 따야할 판이다.
고개를 기우뚱~ 푹 숙이고 고추대를 위로 쳐다보며
고추를 일일이 따야하니
고개도 아프고~ 허리도 끊어지고
다리도 저리다..
해서 일부러 섰다 앉았다~ 구부렸다 해가면서
몸의 체형을 바꿔가며 따야만 오래 견뎌낼 수
있으므로...
누가 고추따는 선녀를 보았다면
왜 저리~ 일어섰다 앉았다~ 난리를 칠꼬~ ㅎㅎㅎ
했을거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지요~
온몸은 고추잎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다 젖어
옷이 딱 달라붙어 앉고 일어서기 거북하야...
앉았다 일어설때마다 몸을 비틀어 옷을 바로잡아야 할 지경...
고추는 맵지요~
물러빠진 고추를 만지다보니 왜그리 손은 미끄러워요~
빗물이 눈에 들어가~ 손으로 씻어내다보니
매운 고추물이 눈으로 들어가~ 따끔거리지요~
에구..
할매는 고추따는 일이 젤루 하기싫고 힘들다 하신다.
고추금이 좋다면야~
주렁주렁 달린 고추들이 다아~ 돈으로 보이기땜에
재미라도 있겠지만
요즘같이 고추값이 똥값일때는~
다 귀찮다~ 하신다.
사람은 왜 고추를 먹어야 하느냐고~
왜 조상들은 고추를 먹어야 하게끔 우리 입맛을
길들여놓았느냐고~ 막 항의를 하신다. ㅎㅎㅎ
해봐야 소용없는 일...
언젠가 고추가루가 똑! 떨어져서
누구네 집에 꾸러 가기도 구찮고~
햇고추가루 곧 나오니까 그때까지만 참자 싶어서
빨간고추를 찧어서 걍 대용으로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으아~~~ 아주 죽겠단 말이시...
모든 음식맛이 닝닝한 거이~
빨간고추하고 고추가루하고 천지차이더란 말이시...
당췌
고추가루 없으면 하루도 못살겠다구여~~
해서 견디다 못해 앞집으로 꾸러 갔었다는
웃기지도 않은 사연이 있었으니...
한국사람과 고추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천생연분이라...
웃채 할매말쌈으론
그 못돼처먹은 왜놈들이
조선사람들 다 먹고 죽으라고~
퍼뜨렸다나 모라나... 믿거나 말거나...
하여간 고랑도 길기도 긴~ 고추고랑...
처음 봄에 심을때는 몇포기 안 되어 보이던
것이~ 왜이리 많아진겨~
이놈들이 핵분열을 했나~~
고랑에 앉으면 사람모습이 안 보일 정도로
섶이 우거졌으니~
거기에 달린 고추들이 얼마나 많겠노...
비록 비땜에 물러빠진 것들이 두어푸대는
버려졌지만...
그래도 앞으로 날이 좋아지면
마구마구 달릴 것이므로~
기대는 좀 해도 될 것이다마는..
고추값이 좋아질까?
시방 2000원인데~ 오를지 말지...
고추를 따면서 왜그리 풋고추는 먹고싶던지
고추장에 푹~ 찍어서 이놈을 먹고말아야지~
이럼서 고추를 땄다.
이웃 밭에도 그 너머 밭에도 고추를 따노라
부부가~ 고부간에~
내외간에~ 비를 맞으며...
부지런히 고추를 따다 나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네들은 몇날며칠동안 고추를 따고 있다.
우리야~ 고추밭이 얼마 안되니 일이 별로 없지만
그네들은 돈을 만들 셈으로~
본격적으로 하는 사람들인지라...
하루종일 온 식구가 매달려 고추를 딴다.
큰놈 작은놈은 뱀이 나온다는 소리에
겁을 먹었는지 밭근처에도 안 오는데
요 꼬맹이는 그말을 이해할 나이가 아니므로~
쫄랑쫄랑 고추밭에 쫓아와서~
엄마~~ 가자~~ 그만 따고 가자아~~
졸라댄다...
퍼런 고추를 따서 주다가~
덜빨간 고추를 따주다가~
할매한테 혼나고~ 엄마한테 혼나고~
살살 달래는 할매한테 소리소리 지르다가~
집에가서 미숫가루 타먹고 누나랑 놀아라~~
달랬더니만...
뜻밖에도 순순히~ 가버리네? ㅎㅎㅎ
나중에 집에 돌아와보니
미숫가루는 안 타먹고 엉뚱한 김밥 만들어먹는다고
온 부엌바닥이며 마룻바닥을 밥풀떼기를 만들어
놓은 놈들... 으그그...
네 고추고랑을 기어이 다 따고
푸대에 나눠 담은 고추들을 짊어지고
하나씩 집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며칠동안 비가 와서 땅은 질척질척~
고추를 따노라 온몸이 젖었고
장화에도 물이 들어가 질퍽질퍽~
고추푸대를 매고 진땅을 걸어내려오자니
에구~ 미끄럽기는~ 자빠질까 조심조심...
자꾸 등밑으로 내려가는 푸대를 추스리다가
냅다 고추를 쏟아붓지 않나~~
겨우겨우 몇번에 걸쳐 마당으로 옮겨 날라놓고
할매는 닭집문 단속하러 가셨고
선녀는 소먹이 주러 갔다.
오는 길에 닭집에 들러 알낳아놓은거 몇개 가져오고
저녁쌀 앉혀놓고~
샤워를 하니... 그제사 피곤이 몰려온다.
눈도 게슴츠레 감겨지고~
고추물때문인지~ 아님
빗물때문인지~
비옷을 입고 하다가
하도 거추장스럽고 빗물때문에 앞이 안보여
벗어던지고 그냥 모자만 쓰고 했더니
온몸이 젖어 한기가 든다.
애들은 엄마가 뭐 맛있는거나 해줄까싶어
앞에서 알짱거리고~
한나절 집에 없었던지라
고추푸대를 들고 들어오는 엄마를 반겨하는
그 모습이 마치~
며칠동안 집을 비운 엄마가 돌아온
환영인사보다 더 끔찍하드라...
닭집 알둥우리에서 꺼내온 계란으로 찜을 하고
호박썰어넣고 오징어볶음하고~
된장찌게하고 깻잎절임에다~
가지찜 고추찜 정구지무침
김 김치 비름나물무침만으로
그냥 보리밥먹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시골반찬에 익숙해져서
아주 맛있다며 순식간에 밥 한그릇을 다 비우게끔
훈련이 되었다.
처음 산골에 왔을때는
자기네들 먹을 만한 반찬이 없다며
징징거리더니~
이제는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고~
아주 좋단다...
도시살적엔 졸라도 해주지 않는!!!
햄 같은 것만 찾고
인스턴트 음식만 해달라고 했었는데
여기 산골에 온 뒤론~
그런것이 구하기 쉽지 않고
그냥 밭에서 나는 야채들로만 반찬을 해주니
첨엔 질색팔색을 하더니
요즘은 그 맛을 알아~ 잘 먹어준다.
이제 반팔은 못 입겠다.
비를 맞아가며 일을 해서 그런가~
긴팔 셔츠와 긴바지를 꺼내입어야 했다.
이렇게 일을 하고나면 몸과 맘이 개운하기는 하다.
그동안 일을 못한 갚음을 하노라
참 열심히 했다.
천상 난 일을 해야할 체질이다.
일을 하면 엉킨 실타래같이 안 풀리는 속도
스르르... 풀려지곤 하니말이다.
오늘 딴 고추들은 내일 건조기에 넣어 말려야한다.
태양초는 꿈이다.
열흘가까이 햇볕구경을 못했는데
무신 태양초를 꿈꾸어볼 수 있느냐 말이다.
시중에 나도는 태양초는 반이상이 가짜일꺼다.
아님 건조기에 넣어 반쯤 말려 햇볕에 말린것이거나
아님~ 연탄불 넣은 비닐하우스에서 말린 것이거나
하여간 그럴꺼다.
다 사실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고추를 키우고 따고 말려본 입장에서
태양초는 꿈이라 할밖에...
장마가 짧거나
햇볕이 좋은 해는 태양초가 가능하겠지만
올해같으면~
태양초는 없다~ 라고 봐야할꺼다.
오늘 고추를 땄으니
한 사날 있다가 또 따야할꺼다.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큰일이다.
이노무 하늘이 진짜로 빵꾸가 났나부다.
도시에서 고추가루 사먹는 사람들이사
고추값 비싸다고 원망이겠지만
우리 산골 고추농사꾼들은
그 값에 한번 팔아봤으면 좋겠다~
중간상들의 농간에...
죽어나는 건 도시민들하고 농사꾼들이다.
에이~ 망할...
*** 이 글은 언제적이던가...
한달 여 줄기차게 비 억수로 짜들었던 해...
고추골을 정글헤집듯이 따야했었던...
그해에 적어놓은 글입니다.
고추를 따다가 문득...
첫댓글 시중에 나도는 태양초 99% 가짭니다... 여러해 진짜 태양초 맹글라꼬 해봤는디, 반 이상 날라갑니다. 듣기로 건조기로 말렸다가 하루 볕에 내놓거나, 그 반대로 해서 태양초로 나오는걸루 압니다.
제마음을 옮겨놓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지가 한 3년을 태양초로 해봤습니다. 손실은 날씨를 봐가면 달라지지만 기계건조보다 투입되는 노동력은 무시하고도, 손실은 평균 40%로 이상는 됩니다. 근데 사먹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비싸다고만 하죠, 믿어 주지도 않구요, 그리고 태양초를 해보면 고추안에 곰팡이가 많이 생기는데 그걸 다 못거른 경우도 있을듯합디다... 요즘은 전기건조기에 넣는데 일이 얼마나 편하던지요.ㅋㅋ 저희집도 오늘 고추땁니다. 이글을 읽다보니 처음 귀농해 고추따다 쉬~ 아를 하다 혼이난 기억이 떠오르네요.^^
맞구먼.. 태양초가 좋긴 하겠지만 손실이 너무 크니 고집할 일은 아닌듯 해요. ^^*
작년에 산 매트는 하우스에다 메주 두 가마 올려 띄우다가 눌어붙어서 고물이 다 되었고(덕분에 메주는 잘 떴는데…^^*), 올해 새로 산 매트(원적외선, 38만원)에 널어 말리는데, 지난 화요일부터 건조에 들어가서 현재까지는 잘 말라가고 있어요. 작년 첫해 경험해 보았다고 올해는 제법 느긋하게 일해갑니다. 미리 비 새는 곳 없게 손질하고 외부 습기가 안으로 유입되지 않게 차단하고……, 저온 건조(45~50℃)해 갈 뿐 태양초는 근년 여름 날씨에 엄두도 못내죠. 그런데도 태양초 5천원 6천원 한다는 소리가 믿어지지 않더라구요. 아직 농민 자격도 못되니 건조기는 알아 볼 생각도 안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야 첫물 고추를 땄습니다. 이틀 정도 후숙시키다가 병든 고추나 무른 고추 골라내고 씻어 널어 놓은 것이 76근 나오네요. 남들 첫물 두물 딸 때 저희는 병든 고추 따 버리느라고 첫물 따기가 늦었어요. 그래서 김장밭 준비도 늦었고요^^* 이병과를 일차 제거했는데도 탄저가 너무 심해서 고추 따기를 포기했던 세 줄 두렁을 오늘 마저 뽑아버리거나 깨끗이 다듬어 버리는데, 먼저 딴 구역에 벌써 또 딸 때가 되어가지만 말릴 곳이 부족해서 좀더 나무에서 푹 익혀버려야 할까봅니다....참, 닉네임을 풀피리에서 다시 금강송으로 환원합니다. 옆지기 성화에(?)………^^*
아이구, 금강송으로 돌아오니 새삼 반갑네요^^* 뭐 본격 귀농한다는 소식만 전하고 하도 뜸해서 어찌 지내나 궁금했슈.ㅎㅎ 돌천지님도 잘 지내시지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별다른 큰 변수가 생기는 게 아니라면 충주와 원주 중간쯤에서 정착하게 될 모양입니다. 인연이 그렇게 흘러가나봐요. 올해 안에 이사할 계획인데 집은 아직 못 구했어요. 계속 알아 보고는 있는데, 임시로 몇 년 거처하다가 한 번은 더 이사해야지 싶습니다. 옆지기는 여전하답니다. 단호박 농사 지어서 단호박 막걸리도 만들어 오늘 감자전 부쳐 날궂이도 하고…, 은행주도 발효 끝나서 곧 소주 내려야 하고, 밀농사 지어서는 아직 누룩을 미처 빚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