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청 공조해야 원하청 모두 교섭력 커진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지회장 하창민)은 지난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노조설립 이후 10년 동안 비공개 조합원으로 있던 조합원들이 공개 활동을 시작했고, 노조 설립 이후 최초로 12개 업체와 임단협 단체교섭을 진행하다가 파업권을 확보해 부분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한계도 있었다. 하청지회 조합원 수가 적어 파업 효과는 적었고, 원하청 공동투쟁을 하려 했으나 이 역시 큰 효과는 내지 못했다.
▲ 현대중공업 원하청노조는 4일 울산시청 기자실에서 회견을 열고 하청노조 집단가입 운동에 공동으로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출처: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
현대중공업에는 원청노동자가 약 2만5천 명, 하청노동자가 약 4만5천 명 있다. 지난해 현중 정규직노조가 전면파업을 벌였을 때 조합원 1만7천여 명 가운데 6천여 명이 참여했다. 7만 명 일하는 사업장에서 6천명이 파업하면 파업 효과를 내기 어렵다. 현중 사내하청노조는 하청노동자 4만5천명 가운데 조합원 수가 매우 적어 파업 효과를 내기 어렵다. 아무리 절박한 요구라고 할지라도 파업권을 통한 노사협상은 사실상 어렵다는 말이다.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조는 올해 하청노조 집단 가입운동을 벌인다. 양쪽 노조는 원하청 공동투쟁을 확대해 한 사업장 내에서 노동자 권리에 공동대응할 계획이다.
하창민 현중사내하청지회장은 “2014년 하청노조 투쟁은 새로운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고, ‘원하청 공동 4대 요구안 쟁취 1만인 선언 운동’에 원하청 노동자 2천여 명 이상이 참여해 원하청 공동투쟁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했다.
2014년 ‘현중 사내하청 노동환경실태조사’ 결과 하청노동자 78.7%가 노동조합에 가입할 의향이 있지만 75.7%는 해고와 블랙리스트가 두려워 가입을 못한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하청노동자는 노조에 가입하게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 임금과 단체협약 체결, 임금인상, 고용안정 보장을 꼽았다.
사내하청노조는 2014년 임단협 주요 요구안은 임금인상(정규직과 동일한 인상 적용), 고용보장(업체 폐업 시 근속과 고용 보장), 안전한 일자리 확보(공상처리 금지와 산재처리, 산재처리자 불이익 금지, 하청노조 현장 안전점검 참여) 등이다.
하창민 지회장은 “지난해 45일 동안 천막농성까지 했지만 임단협 마무리를 못했고 2015년에도 요구안은 유효하다”고 했다.
10년 만에 현대중공업에 민주노조가 들어섰다. 정규직노조는 지난해 원하청 공동투쟁에 있어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길었던 공백만큼 원청노조 조직정비를 우선했다.
정병모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위원장은 올해 4월 23일 현중노조 2015년 임단투 출정식에서 5월 14일에 있을 ‘하청노조 집단가입 및 공동투쟁 선포식’을 미리 알리면서 하청노동자 조직화에 시동을 걸었다.
현대중공업노조와 현중사내하청노조, 조선하청노동자 권리찾기사업단은 오는 14일 오후 6시 10분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앞에서 ‘하청노조 집단가입 및 원하청 공동투쟁 결의대회’를 연다.
폐업 방식 노조탄압 현대중공업이 책임져야
대법원, 폐업 통한 노조탄압 원청에 책임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 조합원에 대한 계약해지와 징계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하청노조 조합원과 간부 4명이 고용승계를 거부당하거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노조활동을 이유로 업체를 폐업하는 행위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 울산노동법률원 정기호 변호사가 4일 시청기자실에서 조선사업장 하청구조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
하청노조 최도섭 조합원은 지난해 7월 현중 협력업체 대조립 1부 신화ENG 폐업 선언으로 해고 위기에 놓였다가 노조 항의로 변경된 업체에 복직했다. 최씨가 일하게 된 화진기업은 최씨가 쟁의권이 없음에도 조퇴 후 노조 파업에 참여했다며 정직2주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최씨는 쟁의권이 없더라도 조퇴계를 내고 파업에 참여한 것은 정당하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내서 승소했다.
올해 3월 20일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금농산업은 업체가 방위산업체임에도 김채삼 조직부장이 파업에 참여했다며 김씨를 징계해고했다. 김채삼 조직부장은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낸 상태다. 3월 9일 하청지회 김지우 조합원이 속해 있던 영동기업이 폐업했고 김씨는 고용승계를 받지 못했다. 전인표 조합원은 또 다른 업체로부터 게약기간이 만료돼 계약해지됐다.
현중 사내하청노조(지회장 하창민)는 업체 폐업과 징계가 노조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창민 지회장은 “대법원 판결조차 하청업체가 폐업이라는 방식으로 조합원을 사업장에서 배제(해고)하는 것은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책임져야 한다”며 항의했다.
현중 사내하청지회 조성웅 초대지회장 등은 노조 설립 뒤 조합원 소속 업체가 잇따라 폐업하며 조합원을 배제(해고)하자 노동부에 원청(현대중공업)으로 인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다.
2006년 5월16일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이태종)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 설립 이후 폐업이라는 방식으로 조합원을 사업장에서 배제(해고)한 것이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한 지배개입 행위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 한다”며 “원청회사인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는 지위에 있다”고 판결했다.
현대중공업은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소송을 냈다. 하지만 2010년 3월 25일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현대중공업이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하청업체들이) 경영상 폐업할 별다른 사정이 없었음에도 조합 설립 뒤 즉시 폐업이 결정된 것을 볼 때, 노조 설립 이외에 다른 폐업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중공업이 노조활동을 한 협력업체들의 폐업을 유도함으로써 협력업체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인정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인터뷰 : 조민구 금속노조 충남지부 당진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장
20개 하청업체 임금인상 4.8%·성과급 300%·격려금 440만원 합의
노조설립 2년 8개월 조합원 1062명
노조설립 초기부터 원하청 공동 대응
충남 당진에 있는 금속노조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지회장 조민구)는 지난해 10월 사내협력사 20개사와 ‘2014년 임금협약 별도합의서’를 체결했다. 별도합의서 내용은 기본급 4.8% 인상, 성과급 기본급의 300%, 격려금 440만원, 재래시장 상품권 30만원 지급 등이다. 노조는 장비운송사와 2차 하청업체와도 11월 15일 같은 내용의 별도합의서를 작성했다. 현재 별도합의서 내용은 잘 지켜지고 있다. 협력업체는 노조전임자 3명을 인정하고 전임자 임금과 노조사무실 제공을 공동으로 책임진다.
▲ 현대제철 당진공장 원하청노조는 지난해 9월 3일 최초로 원하청 공동파업을 진행했다. 이날비정규직청노조 15개 업체 500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또 현대제철 충남 당진공장과 전남 순천 공장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11월 10일 사상 처음 공동 파업에 돌입했다. [출처: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
당진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2012년 8월 16일 설립했고 당시 조합원 수는 12명이었다. 2015년 4월 말 기준 현재 조합원 수는 1062명이다. 노조설립 2년 8개월 만에 조합원 1040명이 가입했다. 2014년 임금협약이 체결된 뒤 노조가입률은 속도를 더하고 있다.
조민구(47) 지회장은 “노조설립 초기부터 정규직노조가 회사 탄압을 방어해 조합원들이 상대적으로 노조 가입을 쉽게 했고, 원하청 연대는 비정규직노동자의 자신감을 높여줬다”고 했다.
지회는 노조 설립 초기 금속노조충남지부, 현대제철 당진 정규직노조, 비정규직지회가 3주체로 ‘원하청연대회의’를 구성했다. 원하청연대회의는 노조탄압에 공동대응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공동투쟁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각 조직 내부의 의견차이로 정규직 노동자는 하청노동자의 노조가입을 통한 확대가 현장관리에 어려움이 많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청노동자는 원청노동자를 중간 관리자로 보는 경향성이 있어 두 문제를 조율하고 연대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조민구 지회장은 “이 문제는 한 번의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연대투쟁을 통해 해결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지회 자료에 따르면 현대제철 당진공장에는 사내협력사 90개(9500명), 외주협력사 1500명 등 비정규직이 약 1만2천명 있다. 정규직 노동자는 현장직 4천여 명, 관리직 1500여 명 등 약 5500명이다.
당진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노조설립 초기엔 인간관계로 조직을 확대했고 증가 속도는 느렸다. 노조설립 3개월까지 조합원 120명, 6개월까지 250명, 1년까지 400명 수준이었다. 그러다 2014년 들어 눈에 띠게 조합원이 증가해 현재 1068명에 이른다. 지회는 노조설립 직후부터 노조 인정 천막투쟁, 하청노동자 고용불안 해소, 산재사망 책임자처벌 등을 요구했다. 지회 투쟁은 지회 파업, 현대제철 당진과 순천공장 공동투쟁, 당진공장 원하청 공동투쟁, 금속노조와 공동파업 등으로도 이어졌다. 2014년 6월엔 정규직 파업투쟁에 하청지회 15개 업체 500여 명이 연대했다.
금속노조와 당진비정규직지회가 설문조사한 내용을 보면 하청노동자가 노조 가입을 꺼려하는 주되 이유는 고용불안과 인사 불이익, 정규직 채용 시 거부 등이었다. 지회는 이 조사를 근거로 노조 인정, 고용보장 투쟁을 2년여 간 진행해 많은 부분을 해소했다. 이는 노동조합에 가입해도 안 잘리고 노조가 지켜준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사업주가 비정규직지회 노조 설립을 가만히 두고만 보지는 않았다. 회사는 2013년 7월 노조 인정 투쟁 때 노조 주요 간부와 조합원 6명을 계약해지하고, 2명을 징계해고 했다. 지회는 노조탄압에 맞서 끝까지 투쟁했고, 금속노조 충남지부와 정규직노조 도움으로 2013년 9월 계약해지자 6명 복직 합의를 이끌어냈다. 2015년엔 남아 있는 징계해고자 2명의 원직복직을 위해 투쟁할 계획이다.
조민구 지회장은 “작년(2014)까지 하청업체 도급계약 종료로 인한 고용불안이 있었지만 고용과 근속보장 합의에 따라 현재는 업체변경 시 고용해지, 계약해지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회는 노조설립 다음해인 2013년 기본협약, 2014년 임금 별도합의서 작성으로 마무리했다.
조민구 지회장은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산재사고, 낮은 임금, 고강도 노동을 그냥 볼 수 없어 1년 여 동안 노조설립을 준비했다. 조 지회장은 “노조 설립 이전 자신이 속한 업체 어용 노사협의회를 해체시켰다”고 했다. 조 지회장은 노사협의회 해체 이전에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로 활동하면서 업체 수당신설과 인상, 부당한 처우 개선, 관리자의 부당대우 근절 등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조 지회장은 이를 통해 현장노동자와의 단결을 강화하고 다른 업체로 확산시켜 노조설립 초기 동력을 만들었다.
현대제철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가 많아 ‘노동자들의 무덤’, ‘'살인기업’ 등으로 불려온 중대 산업재해 사업장이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지난 2012년 9월부터 모두 7차례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12명이 숨졌다. 지난 2013년 5월에는 하청업체 노동자 5명이 제강공장 전로에서 질식사해 숨졌다. 고용노동부가 ‘2013년 산업재해 관련 사업장’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산업재해 발생 보고 의무를 20건 위반해 294개 사업장 가운데 위반 1위를 차지했다.
당진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앞으로 조직 확대를 통한 비정규직 차별 해소, 나아가 비정규직 철폐로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 계획이다. 조 지회장은 “불법파견 문제는 원청사가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소송으로 인한 학습효과로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다”며 “지회는 조직확대를 통해 현장 내 비정규직 없는 정규직 전환을 투쟁으로 돌파하고자 한다”고 했다. 덧붙여 더 많은 조직 확대를 위해 원하청 연대가 필요하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