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 (45) 최후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소행성 충돌, 핵전쟁, 전염병, 거대한 자연재해 등 영화나 드라마가 그리는 종말의 모습은 대부분 파괴적이며 공포스러운 사건과 함께 찾아옵니다. 재림 예수나 종말의 때를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이비 종교들도 대부분 종말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하곤 합니다. 개인의 죽음이 우리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것과 같이 세상의 종말 또한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미지의 영역인 만큼 여전히 두려운 사건으로 느껴지는 분들도 많아 보입니다.
성경이 전해주는 최후의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양과 염소를 가르듯 의인과 악인을 나누시고,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나게 되는 사건입니다(마태 25,31-33.46).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 때문에 우리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우리의 선과 악을 판별하는 두려운 심판자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가르치는 최후 심판에 관한 성경 말씀의 핵심은 “‘은혜로운 때에, 구원의 날에’(2코린 6,2) 회개하라고 하느님께서 아직도 사람들에게 하시는 호소”(가톨릭 교회 교리서 1041항)입니다. 악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정의가 모든 불의를 이긴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40항).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며 회개하라고 호소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우리들은 마지막 날에 모든 불의가 사라지고 오직 사랑만이 가득한 세상을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함께 듣습니다. ‘무슨 일이든 다 하실 수 있는’(마태 19,26 참조)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며, 이에 따라 교회도 아무도 멸망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가운데(가톨릭 교회 교리서 1058항) 모든 사람의 구원을 희망합니다.
최후 심판 때 사람들은 모두 부활하여 하느님 나라가 존재하는 어딘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고 우리가 살아가던 이 세상은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종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으로 표현되는, 곧 우리의 육신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부활하는 것과 같이 이 세상도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인류와 이 세상 모두가 하느님의 뜻에 맞게 완성되는 것으로써 인류 공동체는 더 이상 죄와 더러움과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죽음도 슬픔도 고통도 없는 공동체로 새롭게 될 것이며(가톨릭 교회 교리서 1044~1045항), 우리가 살아간 이 우주 자체도 변화되고, 세상 자체가 최초의 상태로 복원되어(가톨릭 교회 교리서 1047항) 죄로 이지러진 세상의 모습은 사라지고 정의와 평화가 흘러넘치는 새로운 세상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그때가 언제일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육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 안에서 지금 우리의 육신을 지상 생활 동안 잠시 사용하고 버리는 영혼의 감옥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한 부분으로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희망 또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소중히 돌보아야 할 관심을 오히려 불러일으켜야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49항).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에 있으며,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소중히 돌보고 변화시켜 나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희망을 지금 여기에서부터 분명하게 그려나가야 합니다.
QR코드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이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교리서 424~430쪽, 1038~1060항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2025년 2월 9일(다해) 연중 제5주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