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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 용성면 반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반룡사 전경. 규모 면에서 단출해 보이는 반룡사는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전진 기지 역할을 했을뿐 아니라 원효와 요석공주 설총 등이 얽힌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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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삼국통일 전진기지이자
- 원효·요석공주와 아들 설총의
- 애틋한 사랑·가족 이야기 전해져
- 태종무열왕이 딸과 외손자 보러
- 넘나들었다는 고개 '왕재'도
경북 경산 용성면의 사찰 반룡사를 찾은 날은 제법 굵은 봄비가 내렸다. 용성면은 경산의 대표적 특산물인 육동(여섯 개의 마을이 모여 있다고 붙여진 이름) 청정 미나리 단지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공장이 없어 청정 지역이라고 한다. 구룡산이 뻗어내린 반룡산 아래에 자리 잡은 반룡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절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날씨 때문에 절 뒤쪽의 산에 안개구름이 걸려 있고, 절 입구 과수원의 분홍 복사꽃이 비에 젖어 운치 있는 정도랄까. 건물은 대웅전과 천불전 요사채 등으로 규모가 큰 절에 비하면 오히려 단출해 보인다.
하지만 반룡사가 없었다면 신라가 삼국통일을 못했을지도 모르고,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의 역사 흐름도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반룡사에는 어떤 역사적 '스토리'가 전해져오고 있을까.
■원효와 요석공주의 운명적 만남
신라 태종무열왕에게는 고타소와 아유다(요석공주)라는 두 딸이 있었다. 큰딸 고타소는 품석장군과 결혼해 대아성(지금의 경남 합천)에서 성주인 남편과 함께 지냈다. 그러나 신라는 대아성을 백제에 내주게 되고, 고타소마저 백제의 성충 장군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이처럼 신라는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태종무열왕 개인적으로도 대내외적으로 커다란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신라는 국운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지도자가 절실했다. 그뿐만 아니라 왕에게도 자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물을 찾고 있었다. 신라의 이런 절실함에 부합하는 인물은 당시 원효대사가 유일했다. 원효는 화랑 출신으로 지략과 전략에 통달한 인물이라는 데 조금의 이의도 없었다. 경산이 고향인 원효는 당시 자신이 창건한 반룡사에 머물고 있었다. 태종무열왕은 원효가 자신의 둘째 딸인 요석공주와 결혼해 왕실의 일원이 돼 주길 원했다. 문제는 원효가 왕실로 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걸림돌이 있었다. 원효는 신분이 스님인 데다, 아버지가 정육품 출신에 불과했다. 원효도 이를 잘 알았지만, 고민 끝에 국가를 세우는 대승불교를 실천하겠다는 어려운 결심을 한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앞장선 원효
요석공주가 머물던 요석궁 입구 연못에 원효가 빠지는 일이 생기고, 이를 '핑계'로 원효는 요석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날 밤의 인연으로 아들 설총이 태어난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이날 만남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 만다. 홀연히 떠난 원효는 당나라 유학 대신 나라를 구하기 위한 전쟁에 직접 나선다. 지금의 경산 압량면에서 현지인들을 모아 병사들을 조련한다. 원효는 김유신(대장군) 김인문(사령관·훗날 문무왕)과 함께 군사라는 직책으로 대아성 탈환 전투에 나서게 되고, 신라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전과를 올리게 된다. 이 전쟁 당시 출정식을 한 장소가 바로 반룡사다. 지금의 경산은 당시 압독국으로 군사 요충지였다. 반룡사에서 바로 아래 용전마을과 용천을 지나 소천을 거쳐 대천(지금의 청도 운문댐 근처)으로 이어진다. 대아성의 백제 염탐병들은 반룡사 아래 용전마을만 보고 군사 수가 얼마 안 되는 것으로 잘못 파악했다고 한다.
■원효를 뛰어넘는 학자가 된 설총
세월이 흘러 만삭의 요석공주는 출산을 위해 반룡사를 찾았다. 아버지의 기운이 있는 곳에서 아이를 낳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원효는 고구려와 전쟁 등으로 이미 반룡사를 비운 지 오래다. 요석은 결국 절 아랫마을의 한 종갓집에서 설총을 해산했다고 한다. 설총은 유년시절을 어머니와 함께 이곳 반룡사에서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태종무열왕 내외는 딸과 외손자를 보기 위해 수시로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태종무열왕 부부가 함께 걸어서 넘어온 고개를 왕재라고 하며, 이 길은 지금은 청도 쪽으로 연결된 등산로로 개발돼 있다. 왕재는 태종무열왕 이전에도 파사왕과 지마왕 등이 넘나들던 곳이다.
요석공주와 설총 두 모자는 이후에도 원효대사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원효는 지금의 동두천 소요산에서 수행할 때도 자신을 찾아온 모자를 끝내 만나지 않았다고도 한다. 요석공주도 말년에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설총은 신라 10현에 꼽힐 정도로 학문적 조예가 깊었고, 특히 이두를 집대성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원효는 아내인 요석공주와 아들인 설총에게 아버지로서의 애정이 없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반룡사의 주지 혜해 스님은 "옛날에는 원효 같은 큰스님이 입적하면 뼛가루와 진흙으로 실제 모습인 '소상'을 만들었는데, 설총이 인사하러 가자 원효의 소상이 고개를 돌려 설총을 쳐다봤다는 얘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진다"는 말로 대신했다. 실제로는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깊은 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혜해 스님은 2007년부터 이 세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는 '대재회'라는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혜해 스님은 "요석은 원효를 파계시킨 게 아니라 자기를 희생해서 아버지와 신라를 구했으며, 비록 아버지(원효)가 곁에 없었지만 아들도 훌륭히 키워냈다"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어머니상으로서 재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300여 년 만에 다시 만나는 세 사람
반룡사 입구 망루 앞에는 꽤 넓은 마당이 있다. 1300여 년 전 저곳 망루에 올라 병사들을 모아놓고 삼국통일을 위한 전쟁에 나서는 각오와 결의를 다지는 원효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절 뒤쪽으로 난 왕재로 오르는 길도 마찬가지다. 태종무열왕이 부인과 함께 외손자를 보기 위해 환한 얼굴로 걸어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하며 한참을 걸어봤다. 다음에 다시 한 번 찾으면 왕재까지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룡사는 글자 그대로 용이 하늘로 박차고 올라가는 기운이 있는 곳이다. 신라 왕실의 정신적 지주로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반룡사를 감싸 안고 있는 반룡산과 구룡상의 산세도 좋지만, 맞은편 산으로 넘어가는 낙조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 경산 그 외 가볼 만한 곳
- 고즈넉한 난포고택…조선 사대부가 멋 오롯
- 유림교육 산실 관란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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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포고택 |
반룡사를 찾았다면 근처의 난포고택과 관란서원도 들러보길 권한다.
난포고택은 임진왜란 때 전라도 도사(都事)로 전라북도 전주를 수호했던 난포(蘭圃) 최공철(崔公鐵)이 살던 집으로, 1546년(명종 1년)에 지은 집이다.
이 가옥은 임진왜란 때에도 별다른 화를 입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으나, 임진왜란 이전 양식은 보이지 않고 대략 17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집으로 추정된다. 난포고택은 원래 정침(正寢) 사랑채 아래채 중사랑채 방아실채 행랑채와 대문채 고방채 마판 사당 등을 고루 갖춘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었으나, 지금은 정침 행랑채 사당만 남아 있다.
원래는 'ㅁ'자형인 사랑채와 안채가 종으로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一'자형이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 끝에 사랑채가 있고 좌우에 작은 사랑채와 고방채가 있으며 안채는 그 뒤에 있었다.
잡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있는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었다.
관란서원은 1660년(현종 1년)에 지방유림들의 공의로 이언적(李彦迪)의 도덕과 학문을 추앙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715년과 1743년에 묘우(廟宇)를 중수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왔다.
1869년(고종 6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서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유생들의 학문을 닦는 곳으로만 사용돼왔다. 경내의 건물로는 강당(3칸)·고사(2동 5칸)·대문(1칸) 등이 있다.
# 사랑 실은 S-train…득량역 '추억마을' 찍고 보성·순천만 綠陰 속으로
코레일 부산경남본부(본부장 방창훈)는 다음 달부터 관광전용열차인 S-train을 타고 부산역을 출발해 득량역, 보성녹차밭, 순천만 생태공원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기차여행상품을 운용한다.
여행일정은 부산역을 오전 8시20분에 출발해 구포 삼랑진 진영 창원중앙 마산 진주역 등을 거쳐 '추억의 거리 득량역'에 도착한다. 코레일은 5월 2일부터 한 달 동안 득량역에 1970년대를 테마로 '추억마을'을 개장하고 '추억의 코스프레 축제'를 개최한다. 1970년대를 테마로 한 아버지 세대의 향수와 복고를 콘셉트로 추억의 교련복 롤러장 이발소 다방 등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하며 추억의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득량역 체험을 마친 후에는 보성 녹차밭으로 유명한 '대한다원'을 방문한다. '대한다원' 체험을 마친 후에는 세계 5대 연안습지이자 국내 최대 갈대 군락지로 유명한 '순천만 생태공원'을 방문한다.
남도해양열차 S-train을 타고 떠나는 테마기차여행 상품가격은 어른 기준 7만4000원(주말 7만9000원·연계 버스비 입장료 등 포함)이다. 자세한 사항은 부산역 여행상담센터(051-440-2513) 등에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