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E 클래스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내린 결론은 하나다. '이전 E 클래스의 기록을 갈아 치우겠는데?'
잘 팔리는 덴 이유가 있다. 한두 달 반짝 잘 팔리는 건 얘기가 다르지만 몇십 년 동안 계속 잘 팔린다면 그건 제품이 무척 매력적이란 뜻이다.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니까. 메르세데스 벤츠 E 클래스는 1946년 출시 이후 전 세계에서 1400만대 이상이 팔렸다. 메르세데스 벤츠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이다. 한국 시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2016년 6월 국내에 출시된 10세대 E 클래스는 지난해 7월 누적 판매대수 10만대를 찍었다. 단일 모델로 10만대 판매를 기록한 수입차는 E 클래스가 처음이다. 올 1~10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도 E 클래스다. AMG 모델을 뺀 E 클래스의 판매대수(쿠페, 카브리올레 포함)는 2만3910대로 2위를 차지한 BMW 5시리즈(1만6933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참고로 올 1~10월 메르세데스 벤츠 전체 판매대수는 6만147대다. 열 달 동안 팔린 벤츠 모델의 40%가 E 클래스란 얘기다.
그 E 클래스가 또 한 번 변신을 단행했다. 10세대 E 클래스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된 거다. 벤츠는 새로운 E 클래스의 겉모습이 완전 변경 수준의 대대적인 변화로 더욱 다이내믹해졌다고 강조했다.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 부메랑처럼 생긴 두 줄의 주간주행등이 하나로 정리됐고 손자국 같던 테일램프도 날렵하게 바뀌었다. 트림에 따라 세 가지 프런트 그릴이 달리는데, 아방가르드는 벌집 모양 그릴 가운데 커다란 벤츠 로고를 박아 넣었고 익스클루시브는 보닛 위에 우아하게 세 꼭지 별 로고를 얹었다. AMG 라인은 아방가르드와 비슷하지만 작은 크롬 조각을 촘촘히 붙인 것처럼 디자인해 한층 화려하다. 하지만 그래서 다이내믹해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좀 더 여성스러워졌다면 모를까? 실내 역시 조금 새로워졌다. 무엇보다 운전대가 달라졌다. 트림에 따라 운전대도 두 가지가 준비되는데 아방가르드와 익스클루시브 인테리어에는 날렵하게 곡선을 살린 3 스포크 운전대가, AMG 라인엔 양쪽 스포크가 두 개로 나뉘는 운전대가 달린다.
엔진 라인업도 다양하다. 디젤과 휘발유는 물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고성능 AMG 버전까지 모두 여섯 가지다. 이 중 E 220 d 4매틱은 벤츠가 2016년 공개한 새로운 직렬 4기통 OM654 디젤 엔진을 얹었다. 실린더부터 헤드까지 알루미늄으로 만들고 실린더 벽을 나노슬라이드로 코팅해 무게와 마찰저항을 줄인 새로운 디젤 엔진이다. GLE 300 d에도 같은 엔진이 얹히는데 조용하면서 매끄러운 질감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다. E 220 d 역시 예상대로였다. 아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정말 디젤 엔진 맞아?’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 만큼 부드럽고 조용했다. 신호를 기다리느라 잠시 멈췄을 때도 가르릉거리는 엔진 소리가 거의 들이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진동과 소음 때문에 디젤 엔진은 사양할게요’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는걸? 9단 변속기와 짝을 이뤄 내는 최고출력은 194마력, 복합연비는 리터당 13.2km다. 준수한 출력과 흐뭇한 연비가 아닐 수 없다.
E 350 4매틱은 M264 휘발유 엔진에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결합해 최고출력 299마력을 낸다. 300마력에서 딱 1마력 부족한 299마력이 차체를 힘차게 밀어준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경쾌한 엔진 소리가 차 안으로 들이친다. 움직임은 전반적으로 매끄럽다. 하지만 승차감이 마냥 부드럽진 않다. 서스펜션을 적당히 단단하게 조인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면 요철이나 충격이 엉덩이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정도의 단단함은 아니다. 벤츠 특유의 안락함과 매끈함은 살아 있다. E 350 4매틱은 8880만원의 몸값에 걸맞은 안전장비와 편의장비를 잔뜩 챙겼다. 디스플레이에 뜨는 실제 도로에 안내 화살표가 겹쳐 보이는 증강현실 내비게이션과 앞차와의 거리와 차선을 스스로 조절하며 달리고, 멈췄다 출발하기까지 하는 준자율주행 장비를 살뜰히 품었다. 한층 진화한 MBUX의 음성인식 시스템은 말을 더 잘 알아들을 뿐 아니라 세 단어 주소로 내비게이션 목적지까지 검색한다.
새로운 E 클래스의 가장 큰 장점은 풍성한 안전·편의장비다. 가장 아랫급에서 하나 위인 6890만원의 E 250 익스클루시브만 해도 멀티빔 LED 헤드램프와 열선 스티어링휠, 앞자리 열선·통풍 시트, 뒷자리 열선 시트,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챙겼다. 이 값의 벤츠에서 누릴 수 없던 옵션들이다. 가격 정책만 봐도 메르세데스 벤츠가 한국 시장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E 클래스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는 중국 다음으로 한국이다. 그런데 이 기세가 쉽사리 잦아들 것 같지 않다. E 클래스가 60년 넘게 장수한 이유는 분명했다.